제4장 신심 생활의 진보를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함
청년 토비야가 아버지 토빗에게 메디아의 라게스로 가라는 지시를 받자 “메디아로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도 저는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믿을 만한 사람을 하나 구해서 같이 가거라.” 하고 말했습니다(토빗 4-5장 참조).
필로테아 님, 나도 그대에게 이와 똑같은 말을 하겠습니다. 그대가 신심 생활을 시작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그대를 지도해 줄 거룩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신심 깊은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말한 것처럼,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직접 실천하고 권해 온 겸손과 순명의 길을 걷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성녀는 코르도바의 가타리나 부인이 혹독한 고행을 하는 것을 보고 이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고해 사제가 고행을 반대했지만, 그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내 딸아, 너는 안전한 길을 걷고 있다. 너는 그녀의 고행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네가 순명하는 것을 더 기쁘게 여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로 성녀는 순명의 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장상에게 순종함은 물론, 특히 자신의 영적 지도자에게 순명할 것을 맹세했으며, 그의 명령과 지도에 충실히 따름으로써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데레사 성녀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에 따르고자 하느님의 종들에게 순종했습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도 그녀의 저서 ≪문답≫이라는 책에서 순명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왕후였던 엘리사벳 성녀도 그녀의 영적 지도자인 콘라드에게 철저히 순명했고, 위대한 루도비코 성인 임금도 죽기 전에 왕자에게 “자주 고해 성사를 보아라. 현명하고 영혼 구원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적당한 고해 사제를 선택하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자신의 우정을 바르게 키워 나가니 이웃도 그의 본을 따라 그대로 하리라.”(집회 6,14-17)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에 관한 것이며, 이 생명을 얻으려면 먼저 우리의 의논 상대가 되어 우리를 지도하고 마귀의 함정과 유혹에서 지켜 줄 충실한 벗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 벗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슬픔, 실패를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는 지혜의 샘이 될 것이며, 우리 영혼이 병들었을 때 치료해 줄 신약(神藥)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악에서 보호하여 선으로 이끌고, 우리 병을 고쳐 죽음의 그늘에서 우리를 구해 낼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이러한 벗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러한 사람은 하느님을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곧 참된 벗은 신심이 깊으며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필로테아 님, 신심 진보의 여정에서는 참된 벗의 안내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신심 생활을 하는 데 적합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보내 주시도록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또 하느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토비야에게 하신 것처럼 착하고 충실한 영적 지도자를 그대에게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늘이 그대에게 보낸 천사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대는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 지식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느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어 그대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지도를 그에게 맡기시고, 그를 당신의 중개자로 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를 하느님 나라의 길을 가르쳐 주려고 내려온 천사로 알고 그의 말을 잘 들어야 하며,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대의 모든 행위를 고백하고 진실한 마음을 열어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그대의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잘 발휘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대의 결점을 올바르게 고쳐 줄 것입니다. 또한 그대가 곤경에 놓일 때 그대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해 줄 것이며, 그대가 바라던 바를 이룩했을 때 자만하지 않도록 주의를 줄 것입니다. 그대는 그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딸이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처럼 그를 신뢰하고, 아들이 어머니를 믿는 것처럼 그를 존경하십시오. 그대와 그대의 영적 지도자의 우정은 견고하고 달콤하며, 거룩하고 신적이며 영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천 명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말했으나, 나는 만 명 중에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겠습니다. 신심 생홀을 지도하는 데 적격인 사람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사랑과 지혜가 풍부하고 현명한 사람이어야 하며,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 됩니다. 먼저 하느님께 기도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사람을 보내 주시기를 청하십시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찾았으면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십시오.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순박하고 겸손하게 생활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기쁜 마음으로 그대의 여정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