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돔 산지는 작은 그랜드 케년과 같습니다. 에서의 후손들은 이 산에서 사냥으로 수렵문화를 만들었습니다.
27. 「에돔」을 지나 「세일산」에서 뒤를 돌아보니
우리는 싯딤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고 비옥한 땅이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모압 평야를 왼쪽으로 하고, 또 오른쪽으로는 거의 80km나 되는 소금바다를 사잇길로 하여 남진을 계속했습니다. 세렛 골짜기를 지났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에돔땅입니다. 갑자기 평야는 사라져 버리고, 붉은 산과 붉은 바위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버스는 산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해수면 아래 400m에서 해발 1200m까지, 거의 1700m 이상 되는 가파른 산길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갔습니다. 「에돔」 이라는 말의 뜻이 “붉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붉고 또 이렇게도 험할지는 짐작도 못했습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창세기 25:29-30)
에돔이라는 말, 즉 붉은 땅, 붉은 산, 붉은 사람이라는 말들은 모두 다 배고픈 중에 동생이 쑤는 붉은 팥죽을 보고 그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이야기와 연결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긴 에서는 바로 여기 붉은 땅, 붉은 산에서 붉은 사람이 되어 에돔에 삶의 거처를 정하고, 농사를 짓는 대신에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는 농사를 지을 땅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가끔 바위틈에 꽂힌 나무들과 가시처럼 작은 잎새를 지닌 산풀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1년 강우량이 50mm도 채 않되는 산악지대입니다.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이 되었으나 양이나 염소조차도 키우기가 마땅치 않은 지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버스가 산 중턱을 돌고 돌때마다 우리는 환성을 질렀습니다. 햇빛에 비치는 바위들의 색깔이 어찌나 붉고, 형형색색으로 변하던지 말로는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산과 산, 바위와 바위, 골짜기와 골짜기는 다른 곳에선 다시 볼 수 없는 절경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날듯이 바위를 오르 내리며 사냥하던 에서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우리 가이드 김동문 목사는 말했습니다. “여기는 리틀 그랜드 캐년(Little Grand Canyon)입니다” 진짜 세일산은 또 다른 신비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에돔산지의 꼭대기에 올라오니 거기에는 옛날 「보스라」 성터가 있었습니다. 1200m 산 위에 이처럼 난공불락의 천연요새가 있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성과 무너진 돌무더기 뿐이지만, 이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사해바다와 멀리 유대땅과 모압 평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보스라는 에돔왕 「요밥」의 고향이었고, 후에는 「나바티아」 왕국의 수도가 된 곳입니다. 창세기 36장에 나오는 에서의 후손들 이름을 꼼꼼히 읽어보면 다 나오는 것들입니다(창세기 36:1-39, 특히 31-33절). 그런가 하면 욥기에 나오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고향이 이곳 보스라라는 설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지니는 중요성은 욥기를 단순히 허구에 근거한 문학 작품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역사적이며 지리적인 사실을 배경에 깔고 있는 사실문학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에돔산지 중 최고봉인 세일산은 고도가 1700m입니다. 드디어 우리는 보스라 근처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도 한 이야기이지만, 이 길이 바로 「왕의 길- The King’s Highway」입니다. 북쪽으로는 암만을 거쳐 다메섹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이제 가려고 하는 「페트라」(Petra)를 거쳐 「아카바 만」(Gulf of Aqaba)까지 이어지는 요르단의 중심도로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에돔산지의 정상에 있는 「왕의 길」에 들어서니 그냥 지날 수 없는 옛 이야기가 다시 생각납니다.
민수기 20장 이야기입니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은 「숙곳」을 거쳐 「마라」, 「엘림」, 「르비딤」을 지나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 애굽을 나온지 2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십계명을 받고, 이스라엘 종교를 확립하는 성막과 제사의식에 대한 일체의 모든 제도를 세우게 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들을 시험하고, 연단시키기 위하여 광야로 내몰아 38년이나 되는 긴 훈련을 시키십니다. 바란 광야를 거쳐 드디어 신 광야에 이르렀습니다. 모세는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서 가나안땅에 정탐꾼을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이 완악하고 패역한 백성들은 또다시 실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고라의 반역 사건을 비롯한 여러가지 비극적 경험을 거친 후 모세는 드디어 가데스에서 에돔왕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청컨대 우리로 당신의 땅을 통과하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나 통과하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공히 마시지 아니하고 우리가 「왕의 대로」로만 통과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 까지 좌편으로나 우편으로나 치우치지 아니 하리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대로로 통과하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줄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통과할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민수기 20: 17, 19)
바로 여기 모세가 통과하도록 요청한 도로가 에돔땅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앙도로로서 「왕의 길」이라고 불렸던 길입니다. 모세는 이 요청에 앞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를 설명하고, 이삭의 아들 에서와 야곱의 형제 우애를 강조한 다음 이렇듯 좀 편의를 봐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왕은 이 모세의 요구를 아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에돔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통과하지 못하리라 내가 나가서 칼로 너를 마지할까 염려하라… 그가 가로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에돔왕이 이같이 이스라엘의 그 경내로 통과함을 용납지 아니 함으로 이스라엘이 그들에게서 돌이키니라”(민수기 20: 18, 20-21)
만악 그때에 이스라엘이 이 「왕의 대로」로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이 되었더라면, 모세는 그의 백성을 이끌고 잘 닦인 중앙도로를 이용하여 아주 편안하고 쉽게 암몬을 거쳐 길르앗라몬을 지나 골란고원과 두로와 시돈과 다메섹까지 이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돔왕은 끝내 이를 허락지 아니했고, 모세는 할 수 없이 중다한 그 백성들을 이끌고 오늘 우리가 지나온 골짜기와 산악의 험한 길을 택하여 염해를 돌아 모압길을 거쳐 요단강까지 나간 것입니다.
이는 물론 먼 길이요, 험한 길입니다. 더디고, 답답하고, 고생스러운 길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의 뜻이 잘 이해되질 않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왜 하나님은 빠른 길, 넓은 길, 편한 길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거친 길, 좁은 길, 힘든 길로 이끄셨을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욥기 7:17-1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