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은 카키색 추억이다.
대한민국 성인 남자 대부분은 엄지 손가락 크기의 군용 건빵에 대한 추억 한자락쯤은 간직하고 있다.
훈련소 입소 때부터 나오는 건빵은 중년 이상 세대에게 훈련의 고됨과 허기를 수통의 맹물과 함께
달래주던 눈물 젖은 간식. 건빵의 로망인 별사탕은 '사랑의 기억을 지우는 달콤한 묘약' 이였다.
신병 신고식, 말년 병장이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을 안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별사탕을 '하사'하던
'시절. 감격한 신병은 단맛에 취하지만 군 생활에 익숙해져 별사탕의 진실'을 알아버린 순간,
달콤함은 쓴맛으로 변한다.
애인 생각을 잊게 만든다는 '정력감퇴제'란 요상한 카키색 풍문이 빚은 조화 때문이다.
별사탕은 건조한 과자를 먹을 때 입안에서 군침을 돌게 하기 위한 배려다.
눈사람을 만들 때 눈을 굴리는 원리로 만들어진다.
초기엔 구심점 역할을 할 좁쌀을 넣었다.
'정력감퇴제'는 이 정체불명의 좁쌀을 둘러싼 '음모론'에서 비롯됐다.
별사탕은 고무신 바꿔 신는 쓰라린 사랑의 상처를 잊게 만드는 묘약이란 마법의 지위를 확보한다.
건빵은 뽕짝(토로트)이다.
전투식량과 가요를 대표해온 건빵과 뿅짝이 걸어온 발자취는 판박이다.
우리가 일본이 원조인 줄 알고 있는 트로트는 기실 미국의 한 음악장르가 뿌리다.
뿅짝은 개화기 일본에 전해진 뒤 일제시대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한국인의 정서에 융합돼 뿅짝 문화가 만개한다.
건빵의 원조는 '두 번 구운 빵'을 뜻하는 서양 비스킷. 일본군이 청일.러일전쟁 동안 비스킷 개량
작업을 거쳐 지금처럼 먹기 좋고 휴대가 간편한 소형 건빵 생산에 성공한 것은 2차대전 발발 직전.
만주 전선의 극한 추위와 동남아 더위, 습기를 견디도록 개선돼 전투식량 최강자로 등극한다.
무미건조한 건빵은 우리 신세대 장병들에 의해 '창조적 요리'로 진화하고 있다.
2000년대 군번 취사병들은 잘게 부순 건빵에 우유를 붓고 별사탕으로 달콤한 식감을 자극한
군대 시리얼 '건플레이크'와 '건빵 튀김' 요리법을 개발, 건빵 요리의 '신경지'를 개척했다.
최근 군 체험 예능 프로그램 MBC '진짜 사나이'에 소개되면서 국민 간식으로 인기를 끌자
군용 건빵 제조업체가 시중에 건빵 세트메뉴를 내놓을 정도다.
정력 감퇴제니, 뿅짝처럼 '친일 딱지'를 붙이는 건 '웃기는 자짱면'이다.
신세대 장병들에 의한 건빵의 변신은 無罪다. 정충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