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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전과 부도 |
갑사 계곡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0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약사여래의 영험도량으로 계룡산 연천봉에서 서북쪽으로 앞이 환하게 트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계룡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합류하는 곳을 앞에 두고 주변의 산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곳이다. 갑사는 鷄龍岬寺, 岬寺, 岬士寺, 鷄龍寺라고도 한다.
현재의 사명(寺名)인 ‘甲寺’는 나라 안에서 으뜸가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며, 여기에 산의 이름을 더하여 현재 ‘鷄龍甲寺’라 부르고 있다.
갑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구이신왕 원년(420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로부터 위덕왕 3년(556년) 혜명(慧明)대사가 창건했다는 설,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혜명대사가 중건했다는 설, 그리고 신라 진흥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혜명선사가 증축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모두 확실하지 않다. 다만 신라 의상대사의 화엄십찰 중에 계룡산 갑사가 포함되어 있어 이 무렵에는 창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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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사 입구 |
갑사 편액 |
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갑사는 화엄종 사찰로서 크게 번성했다.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무염대사가 중창한 바 있고 그것이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도 갑사는 대찰로서의 면모를 이어간다.
임진왜란 중에도 건재하였던 갑사는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 37년(1604년)에 들어와 인호, 경순, 성안, 병윤 등의 스님이 현재의 터전에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였다. 이어 효종 5년(1654년)에 관찰사 강백년의 도움으로 크게 중창하여 가람을 일신하였다.
임진왜란 후 갑사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영규대사를 배출한 호국사찰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영조 14년(1738년)에는 왕명으로 표충원(表忠院)이 건립되었다. 이후 정조 21년(1797년)에 원선사(圓禪師)가 중창불사를 한 바 있고, 고종 12년(1875년) 대웅전과 진해당의 중수불사가 있었으며, 광무 3년(1899년)에는 적묵당을 신축하였다.
절 안에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조성된 불상과 탱화 경판이 남아있으며, 고종 3년(1866년) 개금불사 한 시주질이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현 주지인 장곡스님의 원력으로 사천왕문 복원불사를 하였고, 법당 바로 앞에 놓여진 강당을 현 위치로 이전함과 동시에 범종루를 신축하였고, 2004년 7월 현재 성보전시관을 신축 중에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강당, 대적전, 천불전, 응향각, 진해당, 적묵당, 팔상전, 표충원,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내원암, 신흥암, 대성암, 대적암, 대자암 등이 있다.
관람포인트
1. 현재 갑사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름답고 웅장한 철당간이 남아 있다.
2. 갑사가 위치한 갑사계곡은 여름철 더위를 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3. 갑사 진입로 5리길은 봄에는 황매화가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4. 해발 620m의 계룡산 금잔디고개를 넘어 동학사에 이르는 4.7km의 산길은 아 이들과 함께 넘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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