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民軍 윤상원, 그는 왜 기꺼이 죽음의 과녁에 꽂히는 화살이 되고자했는가?
"항쟁자의 눈빛은 차분했다. 그러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80. 5. 28, 브레들리 마틴 기자가 송고한 <볼티모어 선>紙 1면 머릿기사 제목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1980년 5월의 투사들은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죽어 갔는가? 그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였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삶과 죽음, 투항과 결사 항전의 기로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 죽음을 선택을 하였는가? 윤상원, 그는 한때 잘나가는 은행원으로서 편안한 소시민의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듯이 윤상원을 비롯한 5월 항쟁의 열사들은 뻔히 눈 앞에 보이는 죽음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광주 문화방송의 {市民軍 윤상원}(극본 박효선, 연출 오창규)은 이에 대한 충실한 영상 보고서이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외신기자였던 브래들리 마틴(볼티모어 선紙), 테리 앤더슨(AP통신), 필립 퐁스(르몽드紙)의 취재 경험과 증언을 뼈대로 윤상원을 중심으로한 5월 항쟁 지도부의 투쟁과 고뇌,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외신기자로서 가장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해야했던 그들은 한 시민군 지도자의 결연하고 숙연한 삶의 태도에서 받았던 감동을 숨기지 않고 고백하고 있다. 이들의 발언은 80년 광주를 취재한 외신기자들의 최초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市民軍 윤상원}은 다큐멘터리로서 충실하게 재현된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로서의 극적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도 절제되어 있고 차분했다. 특히 윤상원 역(박효선)과 고아인 박용준 역(나창진)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이 다큐드라마를 통해 5월 항쟁에서 시민군 지도부의 도청 내 상황에 대한 최초의 영상화가 이루어졌다고 볼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비디오 아트 기법을 활용한 독특한 예술적 시도가 눈에 띠었다. 이것은 윤상원의 여러 사진들과 홍성담의 판화들을 합성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노력들이 축적 되어서 5. 18의 영상화가 더욱 진전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뒤늦게나마 광주문화방송이 이러한 기획을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아울러 이러한 시도가 반드시 계속되어져야함을 지적하고 싶다.
이 드라마에서 학살의 만행과 그에 대한 저항, 학살의 정당화와 진상의 폭로를 위한 노력은 일관해서 선명하게 대조, 대비되고 있다. 계엄군부의 괴뢰이자 나팔수로 전락한 당시 대통령 최규하와 기성 언론의 행태는 새삼스럽게 가증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특히 잔악하게 무력 진압을 하고 있는 계엄군의 영상과 함께 나오는 최규하의 육성 담화는 형식적인 최고 권력자의 뻔뻔함과 무력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대통령 최규하 올시다. 다같은 우리 동포요 우리 국민들, 이성을 되찾고 냉정히 다시 한 번 생각을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필연적으로 <투사회보>가 탄생하게 됨을 보여준다.
"여기 처음 올 때 끝까지 같이 있기로 약속했잖아?"
"나 그런 약속 한적 없어!"
"거짓말하지 마" "나 고아잖소 죽어도 괜찮다께라우, 형도 집에 안가잖소"
"우리까지 도망가면 그놈들이 우릴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것냐"(5. 26 밤 상원과 용준의 마지막 대화)
"We will fight until the last man. 우리가 오늘 진다고 해도 영원히 패배하진 않을 것입니다"(5. 26 마지막 외신기자 회견)
윤상원은 결국 죽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윤상원, 그가 두려움없이 죽음의 과녁에 꽂히는 화살이 되고자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5. 18, 치열했던 역사의 한복판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던 윤상원의 삶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인가? 윤상원은 정말 죽음으로써 끝나버리고 마는 삶을 살았던 것인가? 이 질문들은 다음과 같이 더 계속될 수 있다. 5. 18, 그것은 한갓 과거의 역사적 사건인가? 역사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단순한 기록에 불과하며 그 안에서 인간의 행위는 시간 속에 스러져가는 허무한 몸짓에 불과한 것인가?
이 드라마 끝 부분에서 김영철씨와 그의 부인의 대화에서 우리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야할 것 같다.(김영철씨는 5월 항쟁 이후의 고문 후유증으로 국립 나주 정신병원에서 치료 중)
"윤상원이하고 박기순, 지금 어디서 살고 있다고 나한테 사실을 얘기해줘야 혀"
"그 사람들 다 죽었어, 땅에 묻었다니까요!"
"허, 허 사람은 안죽는다 해도 그래에, 관만 묻은 거예요. 나 윤상원 박관현 박기순 박용준이 모두 보고 싶어, 만나야 해"
그렇다. 우린 윤상원 박관현 등을 다시 만나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우리의 관념적 과거 속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뜻과 정신은 역사적 현재로서 부활해야하고 그것은 우리의 몫이다.
출처: 광주 매일일보 투고
리멤버 U 518 [인터넷 검색자료]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퍼갈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