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께서는 선천 2년 8월 3일(AD713년 8월 28일) 에 돌아가셨다. 7월 8일에 문인들을 불러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며 작별을 고하였다. 육조대사의 고별사인 본 진가(眞假)편에 대한 소주(蘇州)사람 백가(白家) 경천(擎天) 송계(松溪)의 해(解)가 그 종지(宗指)를 살려 계합(契合)한다. 이제 열반에 들려고 다 놓아 버렸으나 제자들에 대한 염려는 크기만 하다. 아직 덜 깨우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의 잔을 채우려는 큰 자비 보살의 모습니다. 눈물 한방울 없이 미동도 하지 않는 하택 신회를 칭찬한 반면 나머지 제자들이 울며 불안해 하는 것을 보며 육조께서 사후에 어디로 가는 줄 몰라서 그런 거라고 꾸짖는다. 하택신회(荷澤神會)는 돈오법으로 북종선을 넘어 그 법을 이어받아 남악회양(南嶽懷讓)과 함께 오늘 날까지 육조 혜능이 있게한 육조현창(六祖顯彰) 운동에 신명을 바친 수제자다. 법해를 비롯한 제자들이 울며 염려하는 것이 육조께서 어디로 가는지 몰라서 흔들린다고 말하며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는데 왜 그러느냐고 채근한다. 마지막 제자들을 불러 놓고 입멸 후에도 종지(宗旨) 삼기를 부탁하며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로 고별 법문의 문을 여신다. 모든 것에는 진실한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이 진(眞)이다. 눈앞에 보이고 감각하는 모든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의 거울에 비친 相일 뿐 자성(自性)이 있는 진유(眞有)가 아니다. 거짓된 相인 가유(假有)일 뿐이라는 것이 가(假)다. 가치 판단인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실체가 있느냐 공(空)한 것이냐는 연기(緣起)의 문제다. 연기로 이루어져 자성이 없기에(空) 잠깐 가(假)로 있는 것이니 내가 나고(生)죽는 것(滅)도 假有요 오고(來) 가는 것(去)도 가유니 양변에 취착 갈애 하지 말고 쌍차쌍조의 중도(中道)를 닦으라는 뜻의 게송이다. 마음에 거짓된 相을 부여 잡고서야 어찌 진여자성(眞如自性)을 보겠는가? 깨어 세간(世間)의 生滅來去의 미망을 깨고 돈오하여 출세간(出世間)으로 눈물을 닦으라. 왜 흔들리느냐? 여여부동(如如不動)한 불성(佛性)에 네게 있거늘 왜 動과 不動(靜)에 끄달리느냐? 움직인다면 산생물인 유정이고 안움직인 다면 돌맹이 같은 무정일 텐데 너는 뭐냐? 본래 동함도 없고 정함도 없는 여여부동한 진여자성만 있는 것이 아니더냐? 깨어 세간의 動靜의 미망에서 벗어나 깨어 성성하나 산란함이 없고 고요하나 잠들지 않는 如如不動寂한 공부를 하라. 眞假動靜의 양변에 취착갈애하는 미망에서 벗어나 直指人心 見性成佛하라. 스승의 가르침이 무겁고 무겁다. 갈 날은 한 달여 밖에 안남았는데 생멸래거에 미혹되어 질질짜고 흔들리는 이 제자들을 어찌할꼬 어찌할꼬...無住•無相•無念으로 宗을 삼고 돈오법을 用하여 直指人心 見性成佛토록 정진하라! 한 순간이라도 미망에 잡히면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니 眞假動靜에 잡히지 마라! 오로지 中道로 行하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첫댓글 육조의 수제자 하택신회(荷澤神會)의 평상심을 알게 됩니다.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다.
장로님의 법해를 통해서
인연은 제자들을 슬픔으로 이끌고 있으나 스승과 또 한 제자는 흔들리리 않고 중도를 향하게 ㅡ됨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