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뉘엘 마이야르 수녀
진실과 정의로 주님을 공경하고, 부모와 친척들을 존경하여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복될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아무것도 훔치지 않은 사람들, 즉 하인들의 일에 있어서도 정당한 것을 주고 일을 시켰던 사람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너무 잔인하여 경멸감과 반항심이 생길 정도라 해도 그들을 죽이거나 명예를 훼손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 자기의 이웃과 진실을 해치는 거짓을 맹세하지 않았던 사람들, 간음하지 않고 어떤 육욕의 죄도 짓지 않은 사람들, 온유하고 체념하여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지 않고 항상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였던 사람들, 그들은 복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그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왜 남편 요셉과 아들 예수님과 최초의 그리스도교 순교자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이들의 죽음을 당신이 직접 목격하지 않은 것처럼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는가?
왜냐하면 칸탈라메사Cantalamessa 신부의 말대로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모세가 느보 산에서 죽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의 영혼을 거두어가시기 위해 여러 천사를 보내셨다. 하지만 모세의 위대함을 보고는 천사들 중 누구도 감히 모세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모세는 하느님을 마주 보고 사귀지 않았는가.( 신명 34, 10)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직접 모세의 영혼을 찾으러 가시기로 하셨고, 입 맞춤으로 모세의 영혼을 빨아들이셨기 때문에 “모세는 하느님의 입에서 죽었다.” (신명 34, 5 참조. 히브리어 성경 참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며 죽는 사람은 행복하고 축복을 받았다. 실제로는 다른 삶으로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아니,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축하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기쁘게 축하해야 한단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느끼는 기쁨과 똑같은 기쁨을 누려야 한다.”
때때로 하느님께서는 이 신성한 개입 전에는 결코 의심할 수 없었던 차원에서 당신의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외과수술적인 방법으로 단호한 수단을 취하신다. 프랑스 리지외 근처에 살고 있는 앙투안과 플로랑스 부부는 6명의 자녀를 두었다. 1988년에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 엄마 플로랑스는 그 아기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광채를 보고 너무나 놀라서 창조주께로 향했고, 그분께 깊은 감사를 드렸다. 그녀의 마음에서는 끊임없이 감사의 물결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엄청난 보물을 낳았다.
플로랑스는 이미 충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심지어 대단히 열성적이었다. 그녀의 모성애는 하느님과의 친밀함 속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 사는 기쁨은 주목할 만한 단계였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어린 새 생명에게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자신이 아주 작아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로서의 감수성으로 그녀는 어린 엠마뉘엘의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것이며, 이 아이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도록 돕기 위해 그분과 협력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다른 아이들도 태어났고 엄마 플로랑스는 모두를 사랑으로 키웠다.
아들 엠마뉘엘이 열한 살이던 그해 어느날, 엠마뉘엘은 학교에서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면밀한 검사 후에 내려진 진단은 단두대의 칼날처럼 부모의 가슴을 내리쳤다. 엠마뉘엘의 뇌에는 암 종양이 세 개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수술도 할 수 없다니....
아이를 잃은 부모만이 그 충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느님께서 아이에게 기적적인 치유를 허락하시거나 혹은 허락하지 않으시거나....
엠마뉘엘의 부모는 하느님을 향해 아주 강렬하고 뜨겁게 간청했다. 아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엠마뉘엘에 대한 소식이 주변에 퍼지자, 사람들은 엠마뉘엘을 위해 기도와 단식의 고리를 구성했다. 이 그룹의 한 사람은 메주고리예를 알고 있었고, 기도 모임 중에 성모님의 말씀 중 하나를 전달했다. 플로랑스 부부가 메주고리예를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으며, 덕분에 이 부부는 기도와 성체조배를 하는 그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뇌에 종양을 지닌 채 엠마뉘엘은 자기 집에 오는 모든 사람을 기뻐하며 위로해주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상태에 관해 매우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엄마 플로랑스는 아들을 주님께서 다시 데려가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깊은 직관으로 알았고, 그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엠마뉘엘이 태어났을 때 자발적으로 했던 것처럼 다시금 하느님 앞에서 아들을 봉헌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도 많이 울었는데,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죽음을 겪으셨던 것처럼 고통과 영광이 뒤섞였기 때문이었다. 아들 엠마뉘엘은 이 지상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으니 이제 놓아주어야만 했다. “주님께서 주셨고, 주님께서 곧 다시 데려가시니 그분 이름은 찬미받으실지어다!” 하며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들이 떠날 때 영원한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아들을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과 예수님의 성심께 다시 봉헌했다. 엠마뉘엘이 떠나던 날 밤, 온 가족이 중 환자실의 엠마뉘엘에게 모였다. (분명 성모님의 특별한 허락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마치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매우 단순했다. 엠마뉘엘은 이미 그분의 손에 넘겨졌지만, 그의 가족들은 엠마뉘엘을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카락에서는 향기가 났다! 모두의 말에 의하면, 장례식은 매장이라기보다는 "천국” 같은 분위기에 가까웠다! 미소와 눈물이 뒤섞여 있었다.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에 내가 메주고리예의 한 순례자 그룹에서,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봉헌하는 4단계 과정 체험을 제안했을 때 엄마 플로랑스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내 말이 끝날 즈음 그녀가 내게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제가 경험한 일입니다! 우리 가 어떻게 그처럼 평화롭게 엠마뉘엘을 떠나보낼 수 있었는지 그 까닭을 알고 있습니다! 불안도 없고, 낙심도 없고, 반항도 없었습니다…. 기도 중에 우리는 말 그대로 감동하였습니다. 엠마뉘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와 함께 있으며, 우리는 가족으로서 그 아이에 대해 행복하게 이야기합니다. 그 아이를 통해 우리가 받은 것은 하느님의 평화입니다!"
바로 이 신실한 그리스도인 가족에게 엠마뉘엘은 천국과의 연결고리이자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신앙 속에서 성장하도록 하시고, 사라지지 않는 보화를 열망하게 하셨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셨으므로 그들은 이 출발을 탄생으로 체험한 것이다.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달콤한 눈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참된 삶에 들어갈 때 우리 모두가 진정한 사랑을 체험하고 기뻐하기를!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요한 14, 28) 하셨다. 이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1153년, 축일 8월 20일)도 이렇게 말했다. “지상에 있을 때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때 비로소 태어납니다. 지상에서 우리는 하느님 어머니의 품 안에 안겨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의 현실이며, 많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죽음은 단지 이 세상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며, 참된 탄생과 연결되어 있다. 이때문에 동정 마리아께서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2000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난 슬라브코 바르바리치 신부 (프란치스코회)의 추모 1주기인 2001년 11월 24일 다음 날, 성모님께서 슬라브코 신부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는 성인처럼 죽었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성모님께서는 “나와 함께 기뻐하여라. 너희 형제 슬라브코는 천국에서 태어났으며, 너희를 위해 중개하고 있단다!” 하셨다.
그대의 죽음을 봉헌하라! 하느님 어머니의 품에서 전적으로 산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 우리에게 약속된 이 신비로운 탄생에 대한 두려움, 미지의 세계로 건너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는 의미다. 모든 어머니는 섬세한 보살핌과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아이의 탄생을 준비한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우리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주시는가!
메주고리예의 비카 이반코빅Vicka Ivankovic은 성모님과의 만남으로 알게 된 진리를 말한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같은 집의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것 입니다! 아니, 심지어는 방 한구석에서 같은 방의 다른 구석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하느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 사람들이 안다면,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물질주의라는 안개로 뒤덮인 세상에서 우리는 삶의 궁극적인 전망을 잃어버렸다!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돌아올 수 없는 출발과 무자비한 추락과 아주 검은 벽뿐이다. 그러나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마침내 그 문은 우리에게 창조된 삶을 열어준다.
이런 이유로, 우리 존재의 이 결정적인 순간이 이미 성모님의 손을 통해 하느님께 온전히 속하도록, 동정 마리아의 아들딸로서 우리의 죽음을 예수님과 티없으신 성모님의 성심께 봉헌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를 혼란케 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침투하지 않도록, 여기 우리 각자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취할 수 있는 네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집으로 데려가시는 그 순간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지금, 이 순간이건, 내일이건, 50년 후이건 간에, 하느님께서 우리 영원의 관점에서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순간을 선택하실 것임을 알고 우리가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지 하느님께 말씀드리자.
둘째,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데려가시기 위해 선택하신 방식에 감사하자. 우리의 상상력이 우리에게 영화로 만들지 않기를!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일어나지 않을 일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아시는 분의 손에 전적으로 내맡기기 위해 공상, 즉 상상을 억제하자.
셋째,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당신 집으로 데려가시기로 하신 순간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내일? 50년 후? 이 신성한 선택이 그와 그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최선이기 때문에 그가 축복받기를 희망하자. 여기에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 신뢰의 원천은 그분의 거룩한 사랑의 의지에 내맡기기 때문이다. 넷째, 이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기 위해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방식에 감사드리자. 이 접근 방식은 깊은 내면 작업이 필요하며 강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기에 항상 자연스럽게 흐르지는 않는다. 아버지를 신뢰하는 자녀가 되는 기회이기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결국 “예”라고 응답하게 된다. 그 “예”에서, 하느님의 계획에 신뢰하는 내맡김에서 나오는 큰 선물은 우리의 두려움, 게다가 죽음에 직면한 우리의 불안까지도 없애준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의 손안에 분명하게 내맡겼다면, 어떻게 두려움이 여전히 우리에게 스며들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감히 불안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겠는가?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우리의 모든 불안을 짊어지셨다면, 그것은 그 모든 불안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박 아가다 수녀 옮김
(마리아지 2024년 5•6월호 통권 245호에서)
☆ 영성 잡지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마리아지를 구독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마리아지는 격월지로 1년에 6권이 출판되며 1년 구독료는 18,000원입니다.
주문처 : 아베마리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