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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원문보기 글쓴이: 해원
느헤미야서를 통해 배우는 크리스천의 사명과 비전
제1장 사명을 아는 자가 되자(느헤미야 1:1-3)
오늘날 왜 많은 젊은이들이 죄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는가? 인생의 비전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 삶 안에 주시는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에 나의 목숨을 걸기를 원하는가? 무엇에 나의 인생을 투자하기를 원하는가? 엉뚱한 데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방을 위해 사명을 깨닫고 그것에 목숨 거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자.
우리가 느헤미야를 본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그에게 몇 가지 특이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느헤미야를 쓰셨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사람이다.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바벨론이 무너뜨린 예루살렘 성벽을 52만에 완성해 냄으로 말미암아 부흥을 일으키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감당한 사람이다. 그는 선지자도, 예언자도, 제사장도 아니었다. 그는 정치인이었다. 다시 말하면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였다. 그는 정치인의 직업을 가진 평신도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무너진 성벽을 회복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부흥을 주도했다.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느헤미야가 하나니의 음성을 들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자신의 서명을 깨닫는 데 있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이 모세나 예레미야에게 하셨던 것처럼 직접적인 계시를 주신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사명에 대해 말해 준 예언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굉장한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너의 비전은 이것이다. 너의 사명은 이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말씀을 통해서 내 스스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분이다. 그 사명을 깨닫고 준비하는 자만이 이 시대와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1880-1968)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시력은 있는데 사명이 없는 사람,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
-사명을 아는 자가 쓰임받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닫고 그것에 목숨 거는 백성이 되자.
-첫번째, 관심이 사명이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주시는 그 관심이, 부담감이, 열정이 바로 사명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담감은 무엇인가?
먼저, 느헤미야가 살았던 배경을 보면, 기원전 586년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예루살렘성이 훼파되었다. 그리고 바벨론도 바사 제국에 의해 망하면서 다시 유다는 바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느헤미야는 포로 신분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바사 제국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리고 바사 제국에서 술관원이라는 높은 직책에까지 올랐다. 한 마디로 출세한 사람이었다. 물론 예루살렘이나 유다에는 가 본 적이 없었다.
2절 말씀에 “그가 수산궁에 있었을 때에” 즉 에스더가 있었던 그 수산궁에 있었을 때에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느헤미야가 가졌던 사명의 시작이다. 느헤미야의 마음에는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자신의 영적인 고향이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인 예루살렘과 조국인 유다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부담감이 있었다. 관심과 부담감이 있으니까 물어보고 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청소년 사역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 홍정길 목사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저도 이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서 청소년 사역을 하게 되었나요?” 많은 분들이 묻는다. 저의 대답은 “얼떨결에 하게 되었습니다.”로 간단하다. 하나님이 저에게 나타나셔셔 말씀하신 적도 없고 소위 유명한 예언자들을 통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시 적도 없다. 단 한 가지 저는 청소년들만 보면 마음이 좋았고, 청소년들만 보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눈물이 안 나는데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할 때는 마음에서 통곡하기 시작하고 눈물이 흐르고, 신문과 뉴스를 보더라고 청소년들에 관한 기사는 늘 제 눈을 사로잡는다. 저는 청소년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놓을 줄을 모른다. 시간을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정말 이 아이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에 하나라도 더 전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헌신할 수 밖에 없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주신 부담감이 있다면 그것이 사명인 줄 믿으시기 바란다]
[18세기 영국 정치인 중에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스물다섯 살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그는 ‘주님, 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영국에 잡혀 온 노예들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그들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고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이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윌버포스는 스물일곱 살 때 노예 폐지 운동을 일으키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 하나님께서 부담과 관심으로 주신 일을 깨닫고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기 시작한다. 사명이 있는 자는 그것에 집중한다.
1833년 7월 27일 윌버포스가 노예 해방을 위해 헌신한 지 56년 만에 영국 의회는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56년 간 반대도 많았고 암살 위협도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싸워서 이겼다. 이것이 사명을 가진 백성들의 모습이다.]
-두번째, 눈물이 사명이다
내가 겪은 아픔이, 눈물이 있다면 그것이 사명이다. 그 아픔을 덮지 말고 주님 앞에 치유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아픔을 역전시켜 아픔 있는 자를 위로하는 백성이 되자.
느헤미야는 포로국의 사람이었다. 우리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일본 사람들로부터 당한 서러움이 있었듯이, 느헤미야도 비록 바사 제국에서 출세를 했지만 식민지 나라의 사람으로서 당해야 했던 아픔과 서러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백성들은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예루살렘 성은 무너졌고 성문들은 다 불탔다. 그 말을 듣자마자 느헤미야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비록 그 곳에 없지만 이 곳에 있으면서 당한 아픔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라를 잃고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픔을 겪은 자만이 아픔을 가진 자를 위로할 수 있다. 눈물을 흘려본 자만이 눈물 흘리는 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유명한 토크쇼를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는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는 ABC 방송의 ‘오프라 윈프리 쇼’의 진행자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앵커이기도 한 그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녀의 쇼는 미국 전역에서 1,400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하고 그녀가 TV에 나와서 책 한 권을 들고 ‘이 책 좋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하면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밀리언셀러가 된다. 그런데 그녀의 삶을 보면 눈물과 아픔 그 자체이다. 18세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매일 몽둥이로 맞고 마굿간으로 쫓겨 가서 쭈그리고 앉아 기도했다. ‘하나님, 백인되게 해 주십시오. 백인은 자기 자식을 안 때리는데 왜 흑인들은 이렇게 맞나요?’ 그러던 중 아홉 살 때 십대의 친척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후에도 여러 사람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14세에 임신을 하여 조숙아를 낳다가 아이가 죽었다. 수치심과 불안감 때문에 그녀는 그런 사실을 감추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진행하는 토크쇼의 주제가 성폭행이었다. 방송이 시작되고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나와서 자신들이 당한 끔찍한 일들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프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을 껴안고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오프라가 그 여성에게 한 말이 ‘I know your pain.'이었다. ’나는 너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었다. 그 한마디에 방송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전국에서 TV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울었다.
오프라는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으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세번째, 나에게 주신 은사가, 축복이 사명이다. 하나 더 가진 것이 사명이다
남들보다 하나 더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사명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축복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을 감싸줄 수 있는 사명자가 되자.
느헤미야는 식민지의 사람이었지만 바사 제곡의 술관원, 다시 말해 왕의 생명을 책임지는 술관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술관원은 지금으로 얘기하면 대통령의 경호실장이다. 그 당시에는 술에 독약을 넣어서 왕을 독살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술관원이 하는 일은 단순히 왕의 옆에서 술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왕에게 술을 주기 전에 독이 들어 있는지 안 들어 있는지 먼저 마셔 보는 일을 했다. 그만큼 왕이 신뢰하는 자리다. 더군다나 적국의 사람인 느헤미야를 왕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혀 놓을 정도면 그에 대한 왕의 총애가 어떠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느헤미야는 굉장히 출세를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11절 말씀에 보면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내가 지금 술관원이라는 축복을 얻었는데 이 축복이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주님 가르쳐 주시옵소서’라는것이다.
[결론]
* 누군가가 와서 ‘너의 사명은 이것이다’ 말해 주지 않아도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을 알 수 있다. 그 사명을 깨닫고 준비하는 자만이 시대와 역사에 영향을 주는 인생이 된다.
* 누구에게나 관심이 가거나 뛰어난 분야가 있다. 그것을 사명으로 붙들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명자는 이런 사람이다.
* 내가 겪은 아픔이, 흘린 눈물이 사명이다. “주님, 내가 아픕니다. 내가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아픔이, 이 눈물이 변하여 나의 사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라.
* 하나 더 가진 것,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가졌다면 그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한 번도 예언자의 예언을 듣지 못한 느헤미야가,
한 번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듣지 못한 느헤미야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무너졌던 성벽을 회복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했던 것처럼
나에게 주신 이 부담감을, 관심을, 열정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아픔이 사명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 있는 나를 고쳐 주시고,
이제 나의 이 슬픔, 고통, 아픔이 역전되어
나의 사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은 눈물이요, 고통이요, 가난이요, 패배지만
주의 보혈의 능력으로 내 인생을 역전시켜서 영향력 있는 인생으로,
사명 있는 백성으로 쓰실 줄 믿습니다.
사명을 알고 사명에 목숨 바치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2장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백성이 되자(느헤미야 2:1-10)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말이 앞서는 백성, 입으로만 말하는 백성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눈물로 헌신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준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키신다.
-말하기보다 먼저 준비하는 인생이 되라
입으로 자랑하지 말고 대가를 지불하며 준비하라. 준비하는 인생은 놀랍게 쓰임받는다.
느헤미야 1장 1절에는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었더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가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 년 기슬르월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기슬르월은 지금으로 얘기하면 11월중순 정도이다. 2장 말씀에서는 이제 느헤미야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사명을 알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2장 1절에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니산월은 지금으로 따지면 3월 중순 이후이다. 그러면 1장과 2장 사이에 약 4개월 정도의 공백이 있다는 것이다.
느헤미야는 이 4개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어떻게 이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쌍을 것인가, 내가 어떻게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이 일을 이룰 것인가, 사람들은 어떻게 모을 것인가, 어떤 재질이 필요한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들이 필요한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철저히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느헤미야가 왕에게 술잔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얼굴에 근심이 있었다. 술관원이라는 사람이 얼굴에 근심이 있다는 것은 큰일날 일이다. 목숨을 건 도전이다. 왜냐하면 왕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얼굴색이 변한다는 것은 왕을 모살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왕이 물었다.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란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도한다고 마음의 모든 걱정이 순식간에 짝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내 안에 근심이 있고 어려움이 있고, 두려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두려움까지도 축복으로 주시며, 사용하시는 분이시다.
왕이 다시 물을 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것이 너에게 근심이라면,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했을 때, 느헤미야가 5절 말씀에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요청했다. 왕이 또 물을 때,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6절에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네가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왕이 물었을 때 느헤미야는 글쎄요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이 물었을 때 정확히 언제라고 말할 수 있었다. 11절과 12절, 13절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왕의 허락을 받고 왕에게 비자를 요청하고 모든 재목까지 얻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후 3일 동안 아무에게도 자신이 왜 왔느지를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명과 비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3일동안 무엇을 했나? 느헤미야는 자신이 일해야 될 그 무너진 성에 가서 얼마나 무너졌는지, 얼마나 파손되었는지를 살펴보며 또다시 준비하고 있었다. 분명한 사명이 있었기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회복하겠다는 확고한 사명이 있으니까 준비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무작정 ‘나는 뭐가 되겠습니다’ 선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으면 어렵다.
-십대 시절에 공부하면서 준비하라
목표가 있으면 시간 낭비할 여유가 없다. 사명을 아는 자는 시간 낭비하지 않는다. 엉뚱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
십대 때 준비되지 않으면 이십대에는 어렵다. 십대 때 인생의 목표와 비전을 정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육의 문제는 비전을 주지 못하고 사명을 가르치지 못하고 준비를 시켜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명을 알고 준비하는 자가 인생을 역전시킨다
쓰임받기 원한다면 준비해야 된다. 대가를 지불하고 고통을 통해서 준비하라. 그래야 역사가 일어난다.
-사명을 이루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라
기도하다 보면 사명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 사명을 가지고 일하기를 원하는 분야를 위해 지금부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입술로 선포하라
사명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그 사명을 이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신다. 선포하는 백성들이 사명을 이룬다.
[결론]
* 많은 사람들이 나는 무엇이 되겠다. 비전을 말하고 선포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지 않는다. 말없이 준비하는 자가 사명을 이룬다.
* 꿈만 꾼다고 사명만 가졌다고 위대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대가를 지불하며 준비해야 한다.
* 준비하는 자가 인생을 역전시킨다. 조건과 환경을 탓하지 말고 사명을 붙들고 무릎 꿇고 기도하며 준비하라.
* 사명을 입술로 선포하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선포하면 이루어주신다.
하나님,
사명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간 낭비하지 않고 말보다는 먼저 대가를 지불하며
준비하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청춘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서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눈물이요.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나를 드리며 헌신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가 나를 저주하고 비웃고 조롱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하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실력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고 넌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위대하게 하심을 믿습니다.
영향력을 발하는 인생이 되게 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3장 사명을 위해 무너진 예배를 회복하자(느헤미야 3:1-32)
하나님 앞에 사명을 이루기 원한다면, 먼저 무너진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양문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 예배가 무너진 백성에게는 희망이 없다. 소망이 없다.
예배에 대한 기쁨이 살아나고, 예배에 대한 감격이 살아나야 한다. 예배에 목숨 걸 때 사명을 이룰 수 있고, 예배에 목숨 걸 때 영향력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라
나는 죽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예배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어야 된다. 예배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된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된다.
-목숨 걸고 예배를 드려라
물질과 시간의 희생이 없이는 예배의 기쁨이 없다. 희생의 헌물을 드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끝까지 목숨 걸고 예배 우선적인 삶을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
-사명을 위해 협력하라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백성들은 협력한다. 각자의 은사를 활용하여 함께 일하면서 겸손을 배우고 섬김을 배운다.
-사명을 이루기 원한다면 지금 맡겨진 일에 힘써 일하는 자가 되라
‘나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다’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명을 이룬다. 주님이 맡기신 일에 헌신하는 자가 쓰임 받는다.
[결론]
* 예배는 형식이 아니다. 기대하는 마음과 갈망함이 있을 때 예배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다.
* 예배가 무너진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 소망이 없다. 예배에 대한 기쁨이 살아나고 감격이 살아나야 한다.
*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여 예배 우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예배드리는 인생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끝까지 목숨 걸고 싸워야 될 것이 예배다.
* 사명자들은 겸손함과 상대방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협력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
* 지금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 힘쓰는 자가 쓰임을 받는다. 작은 일에 충성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이 쓰기 시작한다.
하나님,
내 안에 양문(*sheep gate,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 무너져 있습니다.
예배에 대한 감격이 사라졌습니다.
찬송을 해도 기쁨이 없고
교회에 가도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예배에 목숨 거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기쁨을, 감격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바룩과 같은 자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어진 일에 힘써 일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들과 비교해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원망하며 짜증내며 열심히 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주님이 맡기신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사람들과 협력하여 사명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양문: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양들이 필요했다. 양을 죽이고 그 피흘림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다. 바로 그 양들을 드나들게 했던 문이 양문이다. 제사에 사용될 양들, 예배에 사용될 양들이 들어왔던 문이 양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이루기 원한다면, 먼저 무너졌던 양문이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예배의 문이 회복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명을 이룰 수 있다. 느 3장 말씀에서 유일하게 성별하였다는 단어가 쓰인 것은 바로 양문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예배를 위한 양문이 구별되어야 한다.
제4장 사명을 위해 싸워 이겨라(느헤미야 4:1-23)
사명은 생각한다고 꿈꾼다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명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될 때는 반드시 사단의 방해가 있다. 사명자는 싸워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강하다. 싸우지 않으면 사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험을 통과하고 고난을 이겨내서 축복을 나누는 위대한 인생이 되어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이겨라
사단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좌절하고 포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되는 것이다. 사단과의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조롱, 비웃음과 싸워 이겨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나간다면 세상의 어떤 조롱과 비웃음도 이겨낼 수 있다. 이것이 승리하는 비결이다.
-위협과 싸워 이기는 백성이 되라
왕따를 당하더라도 어떤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협박에 무릎 꿇지 않고 협박을 이김으로써 영향력 있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눈에 보일 때는 패배같지만 이것이 진정한 승리이다.
-패배의식, 두려움과 싸워 이겨라
우리가 낙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싸워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
[결론]
* 사명은 싸워서 이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사단의 방해가 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서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 세상의 비웃음과 조롱을 이기는 방법은 맞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잠잠히 기도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된다.
* 세상의 위협, 협박에 무릎 꿇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싸워 이겨 영향력을 발하는 사명자가 되라.
*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패배의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일어나 주를 기억하고 싸우자고 말하는 사명자가 되라.
하나님,
이 세상의 조롱과 비웃음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조롱과 비웃음을 묵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나를 조롱하고 비웃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잠잠히 기도함으로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위협과 협박을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삶으로 인하여
내가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왕따를 당할지라도
그것에 무릎 꿇는 백성이 아니라 오히려 협박을 이김으로
영향력 있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패배의식, 두려움과 싸워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워하는 나를 보지 않고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5장 사명을 위해 분노하라(느헤미야 5:1-19)
사명을 가진 자는 가나하고 핍박당하고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면서 크게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잘못되고 진리가 아닌 현실에 분노하되, 중심에 계획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라
사명자는 있는 자보다는 없는 자, 가지지 못한 자, 고통 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문제에 분노하라
사명을 가진 자는 죄에 대해 문제에 대해 잘못된 현실에 대해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중심에 계획하라
사명을 가진 자는 분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판단하고 모든 문제를 살핀 다음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중심에 계획한다.
-문제를 해결하라
비판만 하는 사람은 쓰임받지 못한다.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고쳐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라
내가 이 땅에서 잘 먹고 큰 집에 살고 큰 땅을 가진 욕심꾸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결론]
* 하나님의 사람들은 없는 자들의 소리를 듣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 사명자는 내가 아프고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진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에 크게 분노해야 한다.
* 그러나 무조건 분노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욱하는 감정으로 분노를 발산하지 말고 중심에 계획해야 한다.
* 사명자는 문제를 비판하고 지적만 하지 않는다. 대안을 제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 사명자는 권력과 부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회함으로 하난미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고통받는 자, 없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의 아픔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옶소서.
그들의 고통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잘못된 것에, 진리가 아닌 것에 분노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보면서 분노하며 일어서는
사명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러나 화를 다스리고 중심에 계획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합니다.
정직함으로 시대의 모델이 되고 시대를 주도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원합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6장 사명에 집중하라(느헤미야 6:1-19)
여러분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고 무엇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주님이 주신 사명에 미쳐 있는가? 아니면 생명도 없고 열매도 없고 소망도 없는 것에 미쳐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내 눈에 주신 사명에 미치고 집중해야 한다. 나를 죄악 가운데 빠뜨리는 잘못된 것에 집중하고 있다면 속히 빠져 나와야 한다.
-마지막까지 사명에 집중하라
사명을 가진 백성을 마지막까지, 사명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사명에 집중하면서 원수의 공격을 이겨 내야 한다.
-사명에 집중하기 원한다면 거절하는 법을 배워라
사명을 가진 백성은 거절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잘못되고 생명이 없는 일에 대해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끝까지 거절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사명에 집중하기 원한다면 소문에 움직이지 마라
누가 어떤 소문을 만들어 내더라도 누가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사실이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변명할 필요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해결하신다.
-사명에 집중하기 원한다면 말씀의 기준을 가져라
말씀의 기준을 가져라. 말씀으로 무장하라. 어쩐 사건이나 제안이 올 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깨닫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없는 이야기는 다 거짓말이다.
[결론]
* 사명자는 마지막까지 초지일관하는 자세로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소망이 없고 열매가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사명에만 미쳐야 한다.
* 거절하는 능력을 가져야 사명에 집중할 수 있다. 부정과 부패를 거절하고 오직 진리만을 고집하는 사명자들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바뀌어질 것이다.
* 사단이 만들어 낸 소문과 말에 요동하지 말라. 자신을 변명하고 진상을 밝히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계속해서 사명에 집중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
*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말씀의 능력으로 일어나는 사명자가 되라. 말씀을 깨달아야 진리와 거짓을 분별하고 사명을 집중할 수 있다.
하나님,
사명에만 집중하는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엉뚱한 것에 목숨 걸지 않고,
컴퓨터와 음란한 것에 세상적인 것에
생명도 없고 소망도 주지 못하는 일에 목숨 걸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만 목숨 걸기를 원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사명을 위하여 거절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하여
어떤 소문과 말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깨닫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게 주신 사명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의 역사가
내게도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7장 사명과 지도력(느헤미야 7:1-7)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실력 있고 기도하고 예배의 중요성을 알고 말씀의 기준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교회는 이런 지도자를 키워 사회 각층으로 보내서 이 나라와 민족을 이끌어 가게 해야 한다. 이 나라를 책임질 수 있는 정치계, 경제계, 음악계, 연예계 지도자, 문화계 지도자들을 키워야 한다. 이 지도자들을 통해 올바른 영향력이 백성에게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지도자가 되라
사명을 분명히 알고, 그 일을 위해 준비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가진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협력하라
뛰어난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넘겨 주고 함께 사명을 이루어 나간다. 비성숙한 지도자가 혼자 다 하려고 한다. 모든 영광을 혼자 다 차지하려 한다.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거든 정보와 자료를 활용하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정보와 자료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무작정 믿음으로 행한다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정보와 자료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자료를 모으고 인터넷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거든 돈이 올바른 곳에 쓰여지도록 하라
지도자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생명을 살리는 일에 사람을 키우는 일에 돈이 쓰여지게 해야 한다. 돈이 올바른 곳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재물에 대한 두 가지 사상이 있다. 하나는 청빈 사상이고, 하나는 청부 사상이다.
청빈 사상은 가난하고 깨끗하게 사는 것이 영적인 삶이라는 것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사상이다.
청부 사상은 깨끗한 부자로 돈 벌어서 남 주는 것이 영적이라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재물관이다.
[결론]
* 이 땅의 십대, 이십대들은 장차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에 영향을 줄 미래의 지도자들이다.
* 세상의 원리는 이기와 경쟁 속에서 상대를 짓밟고 일어서는 것이지만 사명을 가진 지도자는 서로의 인격과 능력을 존중하고 함께 협력하면서 사명을 이루어 나간다.
* 영향력 있는 지도자는 정보와 자료를 활용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 사명을 가진 지도자는 먼저 자신의 재정 사용에서 본을 보여야 하고 공공의 재정이 올바른 곳에 사용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하나님,
세상은 참된 지도자를 갈급해하고 있습니다.
어둠은 더욱 짙어가고 백성들은 길을 찾아 헤매이고 있지만
이들을 인도할 지도자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저희를 긍휼히 여기사
당신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주시옵소서.
여기 있는 하나님의 십대, 이십대들이
한반도와 한국 교회의 미래인 것을 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지도력을 주시옵소서.
사람들을 모아 함께 협력하게 하여 주시고
다른 사람의 은사와 다른 사람의 뛰어난 것을 인정하고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정보와 자료를 활용할 줄 아는,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돈의 흐름을 올바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와 사명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8장 사명과 부흥(느헤미야 8:1-18)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교회 건물이 커지는 것만이 부흥은 아니다. 진정한 부흥은 말씀의 원리가 나라와 민족 가운데 회복되고 선포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사회 가운데, 문화 가운데, 우리의 학교 가운데, 우리의 직장 가운데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다. 이런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사명자들에게 주신 사명이다.
-사명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흥이다
부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몰려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말씀의 원리가 나라와 민족 가운데 회복되고 선포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사명자들에게 주신 사명이다.
내가 무엇이 되었다, 무엇을 이루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후에 있을 하나님의 말씀의 회복으로 말미암은 부흥을 기대하는 것이 진정한 사명자이다. 내가 대통령입니다. 내가 국회 의원입니다. 재벌 총수, 의사, 수능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을,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정치 분야에서, 경제 분야에서 적용하려는 사람이 없다는게 진정 문제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원하는 부흥은 내가 갈 그 분야에, 내가 섬기는 그 영역가운데, 정치계 안에, 경제계 안에, 연예계 안에 말씀의 원리가 회복 되도록 하는 것이다.
18세기의 요한 웨슬리로 말미암은 부흥이나 1903년 웨일즈의 부흥,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을 보면, 말씀의 원리를 사회와 가정과 나라 가운데 적용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씀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부흥이다.
-말씀의 원리를 세상에 심어라
사명자는 말씀의 능력을 가지고 잘못된 것을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고 거기에 말씀의 원리를 심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사명자들이 말씀의 원리를 가지고 나가서 적용하면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들이 일어난다
부흥이 오면 백성들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온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외하는 마음을 표한다.
-부흥이 오면 말씀을 깨닫게 되고 기쁨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말씀은 죄를 회개하게 하기도 하지만 기쁨과 즐거움이 회복되게 한다. 말씀은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부흥이 오면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주일 성수에 목숨 걸기 시작하고 기쁨으로 나아오는 역사가 일어난다.
[결론]
* 사명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가정, 사회, 나라와 민족 가운데 회복되는 부흥이다.
* 교회가 많아지는 것이 부흥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가 사회 각 영역에서 회복되는 것이 진정한 부흥이다.
* 사명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서 잘못된 것들을 뽑아 버리고 그 곳에 말씀으리 원리를 심어야 한다.
* 부흥이 오면,
-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기 위해 나아온다.
- 백성들이 말슴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기쁨이 회복된다.
- 말씀에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하나님,
먼저 우리 안에서 부흥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부흥이 일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사모하는 영을 주시고
말씀의 원리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윌리엄 윌버포스, 요한 웨슬리같이
말씀의 원리로 세상을 변화시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레미야의 입술 가운데 말씀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말씀을 주셔서 뽑고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건설하고 심는 일에 쓰임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한반도에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서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연예계 등
모든 분야에 말씀의 원리가 적용되고 세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가 이를 위해 준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교회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9장 사명과 영향력(느헤미야 9:1-5)
사명을 가진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한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게 만든다. 사명을 가진 지도자가 돈에 눈이 멀고 뇌물과 불의에 앞장서면 백성들도 그런 일에 앞장서게 된다.
사명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한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
-사명을 가진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한다
지도자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백성들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선한 영향력을 행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백성들은 지도자의 수준만큼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보여 줬던 그 모습으로 느헤미야가 보여 줬던 그 삶의 태도로 백성들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지도자가 영향력을 발해 주는 만큼 백성들도 따라가는 것이다.
-영향력을 발하는 지도자가 되기 원하거든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일은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고백하는 지도자가 영향력을 발할 수 있다.
-세상의 영향을 받는 백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백성이 되라
세상의 습관과 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영향을 발할 수 없다. 우리는 어두움에 지는 백성이 아니라 어두운 곳에 가서 어두움을 이기는 빛과 소금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영향을 받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끊어야 된다. 어떤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동기가 되고 만다.
-영향력을 발하는 백성은 남의 죄까지 아파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자이다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남의 죄까지도 대신해서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너 때문이다가 아니라 내 탓이오 말할 수 있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 아십니까? 너 때문이라고 말할 때 손가락 하나는 너를 향하고 있지만 나머지 네 개는 나를 향하고 있다. 바로 나 때문이다. 정치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인물을 키우지 않은, 사람을 키우지 않은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남의 죄까지도 끌어안아야 한다. 우리 믿는 백성들에게 주신 능력은 나의 죄뿐만 아니라 나의 가정의 죄, 예수 안 믿고 술 먹고 바람피우고 폭력적인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죄를 위해 무릎 꿇는다면, 이 나라와 민족의 죄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면 하늘의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예배하는 자가 영향력을 발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의 회복이 바로 회개의 열매들인 것이다.
[결론]
* 지도자는 백성들의 삶과 생각에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한다.
* 영향력을 발하는 지도자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한다.
* 세상이 아무리 견고하고 강해도 사명을 가진 자는 세상의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으로 서야 한다.
* 사명자는 남의 문제를 지적하고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의 죄까지도 대신해서 무릎을 꿇고 아파할 수 있어 야 한다.
하나님,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주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엘리야 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바로 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향력을 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돈이 없고 배우지 못했고 능력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면
내 앞에 있는 골리앗도 무너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나의 아비의 죄와 나의 어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무릎 꿇고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가정 안에 영향력이 흘러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가정 안에 역전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10장 사명과 믿음(느헤미야 10:28-39)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님만 신뢰하겠습니다. 어떤 조건에서든지 말씀의 원리대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백하며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떠나고 믿음 가운데서 떠나면 서글프고 고달프고 배고픈 인생이 되지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 역전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가진 백성들이 나가면 무너진 믿음을 회복시키는 역사가 일어난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본이 되는 지도자였고 앞장서는 지도자였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시대의 지도자임을 알아야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바로 저렇게 사는 것이다. 저런 삶을 살아야 된다.’ 말하며 따라올 수 있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 회복되어야 할 첫번째 영역은 결혼이다
‘외모나 학벌,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결혼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 된다. 가정은 예수 믿는 백성들이 만나서 함께 협력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전초기지이다.
* 믿음 안에서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배우자는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 헌신하고 말씀을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교회만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숙한 사람을 만나야 된다.
* 청년의 때에 전적으로 주님과만 연애하는 시기를 가져야 한다. 청년 시절에 연애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청년의 시기는 사명을 알고 그 사명에 집중하고 목숨 바치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을 믿는다면 부모가 승낙할 때까지 기다려라. 부모가 허락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
* 주님의 이름을 빙자한 연애를 하지 마라.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은 신령하고 성숙한 것 같지만 사실은 미성숙한 사 람 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확신을 주시는 분이다. ‘주님이 당신과 결혼하래요’라고 말하면, ‘주님이 나에겐 왜 말씀을 안 하십니까? 더 기도하고 오십시오.’ 하고 돌려보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화 잘 내는 남자, 폭력적인 남자는 포기하라. 넓은 가슴으로 품어 주고 믿어 주는 가슴이 넓은 남자를 만나시기 바란다.
* 여자에게 목숨 거는 인생은 절대 만나지 마라. 죽기 살기로 따라다니는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마시기 바란다. ‘난 너 아 니면 안 돼.’ 하고 집 앞에서 새벽 4시까지 기다리는 남자들, 별 볼일 없는 인생들이다. 새벽 4시까지 성경 봐도 그 인생이 풀릴까 말까 한데 여자에게 목숨 거는 인생이 잘 될 리가 없다.
* 자매의 미모에 속지 마라. 형제들이여, 화장발에 속지 말라. 자매의 외모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
-믿음을 회복해야 할 두 번째 영역은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나의 의지로 열심히 한다고 농사 잘 짓는다고 축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더라는 믿음의 고백이다.
하루 장사 안 하고 하루 공부 안 하고 교회 가는 것이 계산상으로는 얼마나 손해입니까? 남들은 주일에도 학교 가고 학원 가고, 새벽 같이 문 열고 장사하는데 장사 안 하고 공부 안 하고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손해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쉬라고 말씀하신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하려는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내가 하려는 교만함을 포기하는 것이 안식일의 의미라는 것이다.
안식년은 무엇인가? 6년 동안 농사짓고 1년 쉬는 것이 안식년이다. 6년 동안 농사짓고 7년째는 땅을 쉬게 한다. 그리고 6년이 지나고 7년째 안식년이 되면 빚진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 준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빚을 지고 6년 동안 못 갚으면 마지막 7년째 되는 해에는 다 탕감해 주는 것이 안식년의 법이다. 인간적인 계산으로 따지면 큰 손실이다. 6년 동안 농사짓고 7년째 짓지 않으면, 단순히 1년 간의 손해가 아니라 2년 간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렵겠나?
그런데 경제학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레위기 25장 18~21절 까지의 말씀을 보면, 6년 째 되는 해에 3년의 소출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7년째 먹을 것과 8년째 농사지을 동안 먹을 것까지 3년 간의 필요를 6년째에 몽땅 주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나를 신뢰하라는 것이다.
목사님도 6년 동안 일하고 나면 1년 동안 쉬는 안식년 제도가 있다. 왜 쉬게 하시는 건가? 많이 일했기 때문에 쉬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의미는 목회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교만함을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내가 주일에까지 학원 다니고 공부해서 1등을 했다가 아니라, 내가 주일에 안식하며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우선권을 두니까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셔서 1등을 하게 되었다는 겸손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를 원하십니다. ‘네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들은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이것이 안식일과 안식년의 핵심이다.
-믿음을 회복해야 할 세 번째 영역은 헌금이다
십일조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중요한 믿음의 행위이다. 은행에 맡기면 몇푼의 이자밖에 안 나오지만, 하나님 나라에 드리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이 있다. 돈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돈이 없으신 분이 아니다. 돈을 믿느냐, 하나님을 믿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십일조는 헌금이 아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중요한 믿음의 표현이 바로 십일조이다. 십일조는 헌금과 구별될 필요가 있다. 여기 열 개가 있다. 이 중 몇 개가 주님의 것인가? 한 개? 아니다. 열 개가 다 주님의 것이다. 그 열 개 중 하나를 주님께 드림으로써 열 개가 다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행위가 바로 십일조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떼어서 내는 것이 아니라 건들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것을 인정하고 드리는 믿음은 곧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신다는 믿음이다. 계산하는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들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섬기로 주신 재정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돈 벌어서 남 주자는 것이다.
헌금을 많이 하고 구제를 많이 하면 마이너스가 될 것 같지만 거기에는 주님의 더 큰 축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주님, 물질에 있어서 믿음을 회복하겠습니다. 나의 뛰어난 머리가, 나의 재테크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누는 것이 내가 잘사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란다.
[결론]
* 믿음은 어떤 환경, 어떤 조건에서든지 주님만 신뢰하고 말씀의 원리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며 실제로 그러한 삶 을 사는 것이다.
* 결혼, 안식일, 십일조에서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 믿음이 결혼 조건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 믿음 안에서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이상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다.
* 주일에 하루 장사 안 하고, 하루 공부 안 하고 교회 가는 것이 세상적인 계산으로는 손해지만 여기에는 ‘너희들 은 내가 책임진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의미가 들어 있다.
* 십일조는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우리가 드리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 는지, 안 하는지를 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드리는 백성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다.
하나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의 결단들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결혼에 대해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조급해하거나 염려치 않게 하시고
결혼 조건의 우선 순위를 외모나 학벌, 재산에 두지 않고
신앙에 둘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일을 지키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겸손한 신뢰를 드림으로써
더 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고 재정에 있어서도 주면 줄수록 불어나는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를 깨달아
헌금도, 구제도 인색함 없이 드릴 수 있게 하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11장 사명과 헌신(느헤미야 11:1-2)
사명이 있는 자는 자원하여 헌신한다. 쉬운 상황 편한 상황에서는 누구든지 헌신하고 자원할 수 있지만, 힘들고 고통이 있는 순간에 자원하기는 어렵다. 어려운 때에 사명자들이 먼저 본을 보여햐 한다.
사명자는 누리는 자가 아니라, 앞장서는 자이고 대가를 지불하는 자이다.
-사명자는 자원하여 헌신한다
부흥이 일어나면 헌신하는 일이 벌어진다. 자원하는 일이 벌어진다. 사명을 가진 백성은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 자원하여 헌신하는 마음을 가진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하고 어려움이 없는 상황 가운데서 헌신하고 자원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자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차려주는 밥상을 즐기기보다는 먼저 자원해서 밥상을 차릴 줄 아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 바란다. 바쁘지만 피곤하지만 어렵고 힘들 때 움직일 수 있는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들이 먼저 본을 보이고 앞장서야 한다
살기 힘들고 어려운 때에 지도자들이 헌신하고 자원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보여 준다면 그 영향력은 크다. 지도자는 먼저 본을 보이고 희생이 있는 곳에 먼저 달려가는 자이다. 부흥이 일어나면 헌신하는 일이 벌어진다. 부흥이 일어나면 자원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때 앞장서는 사람들이 지도자들이다. 지도자들이 헌신하고 자원하는 첫 번째 그룹이다.
살기 힘들고 어려운 때에 지도자들이 헌신하고 자원해서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보여 준다면 그 영향력은 매우 크다.
지도자는 누리는 자가 아니라 앞장서는 자이고 대가를 지불하는 자이다. 지도자가 권력과 부를 가지고 특권을 누리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나라가 부정부패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다.
지도자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먼저 본을 보이고 희생이 있는 곳에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다. 남을 시키기보다는 먼저 앞장서는 자가 되십시오. 말하기보다는 먼저 행동으로 보여 주는, 먼저 대가를 지불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사명을 알고 자원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백성들은 원망하지 않는다. 협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고백한다. 나를 여기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는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명을 깨닫고 준비해서 영향력을 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백성들이 쉽게 열등감에 빠지고 재수 탓, 팔자 탓을 한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내가 왜 이런 상황 가운데 왔을까? 내가 왜 이런 직장을 선택했을까?’라고 말하지 않고, ‘어렵고 힘들어서 눈물 흘리지만 나를 여기에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싸워 이겨서는 변화 시키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찾으신다. 이런 백성들이 바로 사명자이다.
-사명자들은 시키지 않아도 강요하지 않아도 어려움과 고통을 자원해서 선택한다
힘들고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지만 그것을 자원해서 선택하는 백성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지도자는 고통과 희생이 요구될 때 백성들에게 함께 동참하자고 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이 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백성들에게 이런 도전을 했다. ‘영국은 지금 여러분들에게 피와 땀과 고통을 요구합니다.’ 이 한마디의 메시지를 젊은이들에게 던졌을 때 영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원하여 군인이 되었고 결국 독일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처칠 수상의 도전이 바로 영국의 힘이었고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결론]
* 살기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지도자가 먼저 자원하여 헌신하고 앞장서면 백성들도 따라간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지도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백성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런 환경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싸워 이겨서 변화시킨다.
* 남이 나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나로 말미암아 이 곳에 역사가 일어난다는 마음으로 고통과 눈물을 취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먼저 앞장서는 지도자로 준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력과 부를 가지고 특권을 누리며
백성의 등을 치면서 앞장서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들의 앞에 서서 따라오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먼저 대가를 지불하고
내가 먼저 헌신하여 본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지도자로 세워 주시옵소서.
이 시대를 바꾸고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의 섭리로
나를 이 곳에 보내신 줄을 믿습니다.
절망하고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는 백성이 아니라
싸워 이기는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대학에서 이 가정에서 이 상황 가운데서 영향력을 발할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12장 사명과 겸손 (느헤미야 12:1-30)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나설 때는 나서고 물러갈 때는 물러갈 수 있는 겸손한 백성이다. 교만한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내가 중심 인물이 되고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나를 낮추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겸손한 자이다. 다른 사람의 뛰어남을 본받고 인정할 줄 아는 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사명자가 되라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을 내려 놓는 것이 겸손이다. 다른 사람의 뛰어남을 인정하고 배우는 것이 겸손이다.
회사가 잘 되는 것은 바로 직원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헌신이 있었기에, 자기 회사처럼 일한 대가 지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한 경영인들이 되시기 바란다. 우리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은 목회와 설교, 기도잘하는 나 때문이 아니라, 우리 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목회자가 되시기 바란다. 나라가 잘 되고 회사가 잘 되고 교회가 잘 되는 것은 바로 나와 함께 한 동역자들이, 함께 한 백성들이, 함께 한 직원들이 , 함께 한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한 지도자들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의 장점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뛰어난 점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원한다. 이런 병을 ‘백설공주 계모 증후군’이라고 한다. 날마다 거울을 보면서 묻는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 당신입니다.’ 이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저는 이것이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고 생각한다. 이 병에 걸리신 분들은 제가 권하는 약을 드시기 바란다. 신약과 구약이다. 이 약을 드셔야지만 나을 수 있다]
-겸손은 다른 사람들의 헌신과 수고를 인정하고 그 헌신과 수고에 감사하는 것이다
앞세대에 대해, 부모에 대해 감사하는 백성이 되어야 한다. 설령 그들이 못나고 못 배우고 눈에 보이는 업적이 없을지라도 비판하고 원망하고 무시하는 마음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모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수 있고, 교회의 기성 세대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기에 부흥이 있다는 것이다.
[느헤미야 12장 말씀을 읽으면서 좋은 참고 도서를 찾는중 기가 막힌 책을 찾아 냈다. 느헤미야를 잘 알고 싶은 분은 이 책을 꼭 읽어 보라. 느헤미야서와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이다.
주인공은 세끼구찌 쇼타라고 하는 청년이다. 초등학교 3학년 수업 시간에 장래 희망에 대해 말하라고 했을 때 쇼타는 벌떡 일어나서 ‘내 꿈은 초밥 요리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빠를 도와 원초밥을 일본 제일 가는 가게로 만들고 싶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선포한다. 그러나 그가 이 사명을 이루는 데는 온갖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다. 제가 감동을 받은 것은 쇼타는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절대로 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생선을 보고 밥을 보면 무조건 달려가서 어떻게 하면 초밥을 더 맛있게 만들까? 그것에만 목숨을 걸었다. 저는 쇼타를 보면서 사명에 미친 백성의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쇼타는 초밥 만드는 데 목숨을 걸었다. 쇼타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사사끼라고 하는 청년인데 쇼타 아버지의 가게를 빼앗으려고 했다. 사사건건 쇼타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하고 죽이려고 한다. 마치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사람이다. 결국 쇼타의 어머니가 이 사사끼 집안의 농락에 빠져서 돌아가신다. 슬픔과 역경이 있었다. 그러나 쇼타는 그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다 이겨 내고 마침내 전국 초밥 요리사 대회에서 어린 나이에 당당히 우승을 한다. 자신의 사명을 이루게 된다. 우승을 하고 가게를 왔는데 사사끼가 또 나타나서 비꼬기 시작한다. “그래 너 잘났다. 나는 비참해지는데 너는 잘 나가는구나.”
이때 쇼타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낸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 사람들이 “넌, 여기 왜 나타났어. 이 나쁜 놈아!” 하면서 사사끼에게 초밥을 던지고 생선을 던질 때 쇼타는 “앉아라. 네가 올 줄 알았다. 내가 너를 위해 초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초밥을 딱 내밀었다. 초밥을 주니까 사사끼가 묻는다. “너는 내가 밉지도 않니?” 쇼타가 이렇게 대답한다. “미웠다. 그러나 너를 생각하며 나는 이 초밥을 만들었다.” 무슨 얘기인가? 나에게 사명을 이루게 해 준 견인차 역할을 바로 네가 했다는 것이다. “너는 나의 적이 아니다. 네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초밥왕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못되게 굴었지만 그 못되게 군 것도 나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걸 생각하며 초밥을 만들었다. 먹어라.” 그러자 사사끼가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내가 잘못했어.”
바로 느헤미야가 자기 조상들에 대해, 믿음의 선배들에 대해 감사하고 있지 않는가? 이 책에서 느헤미야의 지도력을 이 쇼타라는 청년에게서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사명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겸손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내가 이루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시키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찬양할 때 겸손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시면 그것이 사명자의 기쁨이다.
우리가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는 궁극적인 목표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음악의 아저비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잘 아실 것이다. 그는 곡을 만들 때마다 곡을 다 쓰고 난 다음에는 꼭 악보의 마지막에 SGD라는 세 개의 독일어 문자를 써 넣었다. Soly Gloria Deo의 약자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이라는 뜻이다. 이 곡을 만든 내가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이 곡을 통해 영광받으시기를 원한다는 마음이다. 그것이 찬양곡이든 미사곡이든 세속적인곡이든 그는 자신이 만든 모든 곡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원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바흐의 음악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실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을 당시 사람들은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음악가로 가난하게 살았다. 죽을 때 자식들에게 남겨 준 유산은 낡은 악보와 빚뿐이었다. 바흐고 죽고 100년 정도 지난 후에야 그는 위대한 음악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기도하고 고백한 대로 그는 모든 영광을 자기가 아닌 하나님만 받으시게 했던 것이다. 우리모두 여기서 도전받기를 원한다.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지 마시기 바란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마지막에는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드리는 백성이 되라]
-겸손은 일할 때는 앞장서고 영광을 받을 때는 뒤에 서는 것이다
겸손한 사명자는 함께 한 동역자들을 앞세워서 그들의 수고를 축복해 주고 그들로 박수받게 하고 자신은 뒤에 서 있을 수 있는 백성이다. 겸손한 지휘자는 연주를 마쳤을 때 자신은 뒤로 물러가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다 일으켜서 그들로 하여금 박수를 받게 한다. 이 연주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라는 뜻이다.
[결론]
* 사명을 가진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겸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 겸손은 앞세대의 수고와 헌신을 인정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 겸손은 하나님께만 시선을 집중시키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 겸손은 일할 때는 앞장서고 영광를 받을 때는 함께 한 동역자들을 앞세워서 박수받게 하고 자신은 뒤에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
겸손한 사명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겸손하게 하시고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시고
뒤로 물러갈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시대에 겸손한 지도자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내 안에 있는 모든 교만함을 죽이고
겸손한 영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는 백성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느헤미야가 앞세대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했던 것처럼
오늘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하옵소서.
나의 부모님에 대해, 나를 못살게 구는 직장 상사에 대해,
나를 무시하는 교회 선배에 대해 감사하게 하옵소서.
그들이 나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나의 사명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13장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느헤미야 13:1-31)
사명을 가진 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나 자신과 나의 가정과 나의 학교와 나의 직장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목숨이 다할 때 까지 싸워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는데 왜 내가 포기하려고 하는가?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격려하고 있음을 안다면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명을 가진 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안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것이 무너져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싸워서 이기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사명을 가진 백성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느헤미야가 몇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부흥을 경험한 백성들의 모습에서 이전의 부흥은 찾아볼 수 없고 상황이 더 심각해진 것을 보고 사명을 가진 지도자 느헤미야의 반응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이 민족은 안 된다. 역시 우리 민족은 가능성이 없다. 내가 12년 동안 무릎 꿇고 기도하고 목숨 걸고 헌신해서 부흥시켜 놓았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이렇게 다 무너졌던 말인가? 우리 민족은 정말 소망이 없다.’ 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다시 도전하고 개혁하기 시작했다.
무너져 있으면 다시 세우면 되는 것이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실패했다고 어렵다고 포기하는 자들이 아니다.
-나 자신에 대해 포기하지 마라
힘들고 어렵지만, 내게 돈이 없지만, 내게 타고난 재능이 없지만,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고 따라가면 결국 위대한 인생이 된다. 주님은 오늘도 도전하십니다. ‘너는 할 수 있다.’ 세상은 나를 향해 안 된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나를 향해 여전히 가능성이 있고 여전히 할 수 있다고 도전하신다. 실패하였나요? 그것이 나를 강하게 하는 약이 된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계심을 안다면, 하나님이 나를 격려하고 계심을 안다면 나의 인생이 역전되어 반드시 쓰임받는 인생이 될 줄 믿는다.
[영국의 수상을 지냈던 윈스턴 처칠이 한 학교 졸업식에 연사로 초대를 받았다. 영국의 수상이며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인물에게서 어떤 메시지가 나올까?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렸다. 청중들의 기대 속에 연단에 선 처칠이 입을 열었다. ‘Never never never give up.'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이 한마디만 하고는 연단을 내려가 버렸다.
그런데 이 말이 역사에 가장 유명한 한 마디가 된 이유가 원지 아십니까? ‘Never never never give up.'이라는 이 한 마디가 사람들의 심장을 흔들고 감동을 주었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원스턴 처칠은 언어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말을 할 때마다 힘이 들었던 사람이었다. 연설을 많이 해야 하는 정치가가 언어 장애에 학습 장애까지 있었다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졸업생들에게 도전한 것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언어 장애가 있었지만,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다.]
[베토벤을 보십시오. 십대 시절부터 음악의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작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음악을 시작한 지 10년도 안 되어서 귀에 문제가 생겼다.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하고 또한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의 충동과도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 냈다. ‘나는 살아야 되나’는 강한 신념으로 자살 충동을 이겼을 때 그의 청각은 완전히 상실되고 말았다. 음악가가 청각을 상실했다는 것이 끝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위대한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내면 세계로 듣는 법을 터득하여 내면 속에서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귀가 멀기 전보다 작품의 난이도가 더 높아졌다. 비평가들이 비판하기 시작했다. “베토벤이 귀가 멀더니 음악이 이상해졌다. 저것도 음악이냐?” 그 얘기를 들은 베토벤이 기가 죽었을까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베토벤을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음악은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내면의 목소리로 더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 낸 베토벤을 보시기 바란다. 베토벤이 이런 상황 가운데서 포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목숨 걸고 달려가면 영향력 있는 백성들로 설 줄 믿는다]
-나의 가정에 대해 포기하지 마라
나의 가정이 눈물이요 고통이요 가난 가운데 모욕당하는 삼류 인생, 변두리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역전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주어진 환경에 대해 포기하지 마라
내 앞에 주어진 환경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도망가고 포기해 버리면 사명은 이루지 못한다. 그 상황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싸워 이기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주어진 문제에 대해 포기하지 말라. 모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혼자 ‘예’라고 말할 수 있는 백성이 되어야 된다.
[나는 미국 비자를 2년 동안 일곱 번이나 거절당했다. 제일 가기 싫은 곳 중의 하나가 미국 대사관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여덟 번 시도를 해서 결국 미국에 갔다. 제가 미국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그 곳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믿고 계속해서 시도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했더니 ‘당신은 돈도 없고 직장도 안정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안 된다.’면서 거절했다. 홍콩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홍콩에 갈 일이 있을 때 비자을 신청했는데 도 거절을 당했다. 너무 화가나서 ‘왜 이러느냐? 미국이 무슨 파라다이스냐? 왜 사람을 차별 대우 하느냐?’ 소리를 지르니까 경찰이 와서 끌어내는 수모도 당했다. 그래서 나는 미국 대사관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 다시 스웨덴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했다. 그 당시 스웨덴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비자를 받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일곱 번을 거절당하고 나서 다시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하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모두 말렸다. ‘너의 이름은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2년 동안 일곱 번을 거절당한 것은 미국에 못 간다는 증거다. 홍콩, 스웨덴 다 거절했는데 누가 너에게 비자를 주겠느냐? 돈 낭비, 시간 낭비 하지 말고 그만 포기하라’고 했다. 그때 내가 가졌던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하나님이 이루신 다는 것이었다. 미국 대사관에 당당하게 들어가 앉아서 기도하며 인터뷰 차례를 기다렸다. 인터뷰하는데 영사가 묻는다. “당신의 직장이 Youth With A Mission(예수 전도 단)입니까?” 그렇다고 했더니 이 영사가 하는 말이 “Youth With A Mission은 일하는 사람들 월급도 안 주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나쁜 선교 단체”라는 것이다. 자비량 선교 단체를 이해를 못하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우리 예수 전도 단은 그런 단체가 아니다. 예수 전도 단은 하나님이 쓰시는, 기름 부으신 선교 단체다.” 열변을 토했다. 그랬더니 이 영사가 됐으니까 그냥 가라면서 뭘 써 준다. 비자를 줄 테니 “이거 가지고 빨리 가라”는 거다. 저는 속으로 ‘할렐루야!’ 하면서도 “지금 내게는 비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하고 이야기를 좀 더 하자”고 귀찮게 굴었다. 그랬더니 명함을 주면서 나중에 연락하라고 한다. 할렐루야! 하면서 나왔다. 하나님은 제 안에 확신에 대한 테스트를 하신 것이다. 정말 네가 미국에 갈 확신이 있느냐는 것을 물으신 것이다. 여러 번, 일곱 번 문을 두드렸는데 안 열리면 여덟 번 두드리는 백성들이 되시기 바란다. 상황이 힘들고 어렵지만 계속해서 뛰어넘기를 시도한다면 그 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행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포기하면 사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나라가 어렵고 힘들어서 이민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은 입시 지옥이고 학습 환경과 조건이 어렵다고 다 유학을 가 버린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도 중고등학생들 열 명 중 여섯 병은 기회만 된다면 유학을 가고 싶다고 얘기한다. 이것은 싸우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지금 밴쿠버나 오클랜드 같은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가 있는 지역을 보면 열 병 중 여덟 명은 실패한다. 처음에는 한국에 안 사니까 너무 좋다고 얘기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싸우는 법을 못 배웠기 때문에 그 곳의 환경 가운데서도 결국 패하게 되어 방탕하고 방황하는 인생이 되고 만다.
부모님이 돈이 없어서 유학을 못 보내 주거든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란다. 이 어렵고 힘든 상황은 우리를 연단시키고 가르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여 승리해야 할 사명자들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포기하고 도망가지 마시기 바란다.
학교가 어려운가? 학교가 어렵다고 무조건 전학 가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쓰임받을 수 없다. 오히려 그런 환경과 싸워 이겨서 나쁘다고 말하는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도 마찬가지다. 상담오는 이메일 10통 중 2통은 교회를 옮기고 싶다는 내용이다. 교회를 옮기는 것이 성경적인지를 묻는다. 교회를 옮기고 안 옮기고는 마음대로 하시면 된다. 하지만 그냥 교회를 옮기기보다는 교회의 어려운 문제들과 부딪쳐 싸워 이기는 사명자가 되시기 바란다.
직장이 힘이 드나? 그래서 더 좋은 직장으로 가고 싶은가? 그런 사람은 사명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직장으로 보내신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눈물로 싸우고 무릎으로 싸워서 그 직장을 변화시키는 것이 사명자이다. 사명자는 싸워 이기는 사람이다.
[결론]
* 무너져 있으면 다시 세우고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실패했다고, 어렵다고 포기하는 자는 이루지 못한다.
* 자신을 포기하지 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격려하고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역전되어 반드시 쓰임받는 인생이 된다.
* 가정을 포기하지 마라. 하늘 문이 열릴 때까지 가정을 위해 무릎 꿇고 부르짖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가정은 반드시 역전되다.
* 주어진 환경과 문제들 앞에서 포기하지 말고 눈물로 싸우고 무릎으로 싸워서 이기는 사명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에 대해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가정을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학교를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직장을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지막까지 싸워 이기는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 번을 실패해도 만한 번을 시도하는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안에 담대함을 주시고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싸워 이기는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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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원문보기 글쓴이: 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