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8. 부흥회 5일
본문 ▶ 열왕기하 3:10-12
제목 ▶ 말씀으로 만져 주시는 은혜
그 다음을 믿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참은 것은 그 다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그 많은 박해와 매를 맞으면서도 참은 것은 그 다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 다음을 믿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가 내 놓았던 도시락으로 그 다음 주님이 하실 일을 준비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그 다음을 믿어야 합니다.
은혜도 어설프게 받으면 사람이 이상해집니다.
어설프게 받은 사람은 은혜를 받았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은혜 받은 사람은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보여주고 다닙니다.
은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다음의 부흥회는 없습니다.
다음의 부흥회를 기대하지 말고, 이번 부흥회에 받을 은혜에만 집중하세요.
헤롯이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베드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은 야고보를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깊은 감옥 속에 있는 베드로를 다음 날 아침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날 밤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구출해 내십니다.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를 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야고보를 못 구하셨겠습니까?
아니요.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야고보도 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야고보의 사명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자신이 한 것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다루실 수 있도록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전날 밤에 감옥에서 구해질 때 그 밤에 성도들이 무엇을 했어요?
베드로의 구출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수 있도록, 일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결정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 다음 일을 하실 수 있도록 드려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 다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결정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해요.
그 다음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우리들이 작업을 해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순간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뉠 때 북왕국은 모압을 속국으로 남유다는 암몬을 속국으로 삼습니다.
시간이 지나 북왕국 이스라엘의 국운이 쇠퇴합니다.
속국으로 삼었던 모압이 반란을 합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남유다 여호사밧의 왕에게 모압을 징벌하자고 합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허락합니다.
여호사밧왕은 속국인 암몬도 함께 가게 합니다.
그런데 가다보니 마실 물이 없어서 세 나라 연합군이 탈진하게 됩니다.
이때 10절에서 여호람왕은 낙심하여 말합니다.
10.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나타난 현상을 보고 여호람은 ‘슬프다 여호와께서 ... 넘기려 하시는도다.’라고 좌절합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밤에 찬송하고 기도하자 감옥터가 움직입니다.
그리고는 옥문이 열립니다.
자고 있던 옥사장이 열린 옥문을 보고 죄수가 다 도망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바울이 막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옥사장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짐작으로 죄수가 다 도망갔다고 생각하여 죽으려고 합니다.
이때 드는 생각은 ‘옥문 속을 들여나 보지.’입니다.
여러분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거든 그 현상을 보고 좌절하지 마세요.
옥문 속을 들여나 봐야합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옥문이 열린 것은 이 옥사장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이 세 왕에게 물이 떨어진 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렇게 물 떨어진 상황 속에서 여호람은 좌절하지만 여호사밧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람을 찾습니다.
11절을 보세요.
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러분의 인생에 물이 떨어지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지는 잠정적 포기가 있습니다.
‘나 이제 너에게 말 안한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여전히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은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은사는 올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감각과 느낌으로 하면 실패합니다.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보세요.
은사가 양념이라면 말씀은 고기입니다.
고깃집에 가서 양념이 맛있다고 양념만 빨아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헛것만 먹는 거죠.
좋은 고기는 양념이 없어도 맛있습니다.
여호사밧을 보세요.
여호사밧은 물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물을 하나님의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습니다.
그러자 11절에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맞이하면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러분이 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 형편은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속사람을 봅니다.
이 말씀이 좋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다 아신다는 것은 두려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힘이 들어서 사람들 앞에서 웃다가도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어떻게 해요...
어깨를 펴고 있다가도 움츠러 드는 것을 어떻게 해요.
하나님은 중심을 알고 있다니까요...
여호사밧의 중심은 ‘자신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사밧의 영성입니다.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묻는 훈련을 하세요.
늘 하나님께 물어 봐야해요.
아이성의 실패는 하나님께 묻지 않아서 였습니다.
아시죠?
하나님께 물어야 해요.
청년들, 잘 들으세요.
파마 하나 하는 것도 ‘하나님, 이쁘게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해요.
파마 하나 하는 것도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데 결혼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도해야 해요.
하나님께 묻는 영성이 있어야 해요.
잘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 물어 보면 하나님께서 금방 대답하시던가요?
“하나님 파마를 할까요? 단발로 할까요? 머리를 기를까요?”라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파마로 해라”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아니요.. 말씀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물어야 해요.
왜냐하면 시간이 지난 뒤에 이렇게 물었던 것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요.
말씀으로 나를 만지시도록 해야 해요.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가시도록 해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개천을 파서 모아진 물을 마시고 이 연합군이 결국은 이깁니다.
인생이 너무 힘들고 지쳤을 때는 기도만 하지 말고 성경도 읽으세요.
여러분의 말만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여호사밧이 말씀을 의지하여 개천을 팝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만지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순종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주 물으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만져주심을 늘 경험하셔서 인생의 승리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오니 저에게. 은혜의 손길로 어루 만져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