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산 / 정지용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허짐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소리 쩌르렁 돌아옴즉도 하이 다람쥐도 좃지 않고 뫼ㅅ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디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판에 여섯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히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속 겨울 한밤내……
· 성격 : 산문적, 관조적, 독백적 · 제재 : 장수산 속의 고요함
· 주제 : 장수산 겨울의 고요함.
절대고요의 신비로운 공간인 장수산에 안주하고자 하는 동양적 세계관
· 표현 : 1) 한 순간을 포착하여 시화詩化하고 있다.
2) 고어를 사용하여 전아典雅한 느낌을 주고 있다.
· 해설 : 장수산 속에서 탈속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심정을 표현한 이 시는 산문적인 호흡으로 전체 시상이 펼쳐지고 있다. 시적화자는 먼저 벌목정정伐木丁丁 이라는 개성적인 시어를 통하여 장수산의 장중한 형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장수산에 빽빽이 들어찬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도끼로 베어낼 때 쩌렁쩌렁 소리를 낼 만큼 당당한 자태를 지니고 있다. 시적화자는 이러한 소리들이 골짜기를 한바탕 울린 뒤 메아리가 되어 다시 들릴 것 같다고 노래한다. 이렇듯 장수산은 절대 고요의 공간으로 이곳에는 다람쥐나 멧새와 같은 산짐승들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기에 장수산의 고요함, 적막함은 시적화자의 내면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게 된다. 그리고 시적화자의 눈에 비친 보름달은 너무나도 환해 마침 흰 눈이 내린 오늘을 기다렸던 것처럼 보인다. 즉 겨울밤과 흰 눈 뿐만 아니라 밤하늘의 보름달도 장수산의 적요함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시적화자는 이어서 웃절 중에 대한 인상을 표현하고 있다. 웃절 중은 시적화자와 장기를 두어 여섯 번을 졌으면서도 여전히 탈속적인 모습, 그러면서도 무욕과 자족의 내면적인 이미지를 남긴 채 산으로 올라간다. 웃절 중의 조찰한 모습을 닮으려고 하는 시적화자의 태도는 세속의 명리나 현실적인 욕망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하는 무욕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마음 속으로 밀려드는 시름들을 넉넉히 이겨내려고 하여 결미에서는 홀로 우뚝하게 시름을 극복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허적虛寂과 절대 적막의 공간인 장수산에서 슬픔이니 꿈이니 하는 것들을 하얀 고요함 속에 묻어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의도적으로 시행을 종결시키지 않음으로써 시적화자의 이러한 의지를 더욱 여운 있게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