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정군수 / 전주문인협회회장
8월은 녹음의 계절이다. 눈 들어보면 녹음빛이 천지를 감싸고 있다. 산이거나 들이거나 녹색물감을 크레파스에 마구 문질러놓은 것 같다. 절정을 이룬 갈매 녹음은 제 안에다 매미소리를 키워가며 여름과 함께 깊어간다.
그러나 이때쯤이면 꽃을 보기가 힘들다. 빨간 꽃술을 단 자귀나무가 사랑을 받았으나 이미 져버린 지 오래다. 층층나무나 산딸나무도 꽃을 지우고 녹음과 한 빛이 되어 열매를 키워가고 있다. 어쩌다 배롱나무가 자기를 보아달라는 듯이 붉게 꽃을 피우고 있지만 무덤 앞에 많이 심는 나무라서 그러는지 별반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이때 우리 눈을 밝혀주는 꽃이 있으니 그것은 무궁화다. 8월은 무궁화의 계절이다. 태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신선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꽃, 아침마다 다시 피어나는 꽃이 무궁화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우리 꽃이라는 고정관념으로써 사랑을 받는 것이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궁화가 우리 꽃이라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 정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우리 꽃 무궁화, 얼마나 친근하고 정감이 가는 이름인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우리의 애국가 후렴구에 늘 붙어 다니는 꽃, 얼마나 많이 노래를 불렀던가? 그러나 다른 꽃, 이를테면 목련이나 장미나 벚꽃 등에 비해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면 흔해서 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목련이나 장미는 웬만한 정원에 가면 볼 수 있고, 벚나무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가로수로 볼 수 있다.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이면서도 그것을 보려면 학교나 공원이나 공공기관의 정원을 찾아가야 볼 수 있다. 그러면 다른 꽃에 비해서 아름답지 않아서일까? 그것은 더구나 아니다.
무궁화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 중순부터 분홍과 하얀색으로 피기 시작하여 8,9월을 다 보내고 저녁 산들 바람에 가슴이 시려올 때까지 쉬지 않고 피는 꽃이다. 소박하면서도 청초한 아름다움이 있는 꽃이다.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꽃송이가 깨끗하게 떨어진다 하여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 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인용한 고금주(古今註)에는 ‘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 (우리나라 지방 천리마다 무궁화가 많이 핀다)’하여 조선을 근역(槿域)이라고 부른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양하씨는 수필에서 ‘자기 키만한 나무에서 수백송이의 꽃을 볼 수 있으며, 피고 지는 꽃송이를 센다면 몇 천 송이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듯 무궁화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피고 지는 꽃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비유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은 무궁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말이다.
나는 가끔 차를 몰고 여행을 할 때 바쁘지 않으면 새로 난 도로보다는 꼬불꼬불한 구도로로 가기를 좋아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량통행이 적어 여유롭고 창밖으로 자연풍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에 부쩍 가로수를 벚나무로 심어놓은 것을 보았다. 어느 도로를 가더라도 벚나무 일색이 되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만은 아니었다. 무궁화가 군데군데 그 벚나무 아래서 잡초와 함께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이것은 어느 한 도로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정말 무궁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도처에서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벚나무를 먼저 심고 무궁화를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가로수로 심어놓은 무궁화를 가꾸지 않고 그 옆에 벚나무를 심은 것이다.
왜 그럴까? 벚나무가 일본 국화라서 갖는 편견은 아니지만, 가로수 수종으로 벚나무가 그렇게 적합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벚나무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애정에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봄 한철 만개한 벚꽃놀이를 위해서인가? 이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하는 것은 헛된 일일 것이다. 도로마다 한 때의 상춘객을 위한 벚나무 일색의 가로수만을 심지 말고 무궁화 가로수길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 자치단체의 깨어있는 의식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무궁화를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심고 가꾸겠는가?
번영로(전주 군산간 구도로) 벚꽃 백리길이라는 말이 요새는 무색해졌다. 벚나무를 하도 많이 심어서 가는 곳마다 벚꽃 천지니 고목이 되어 시들어가는 그 길의 영광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벚꽃 백리길을 무궁화꽃 백리길로 바꾸자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고목이 된 번영로 벚나무를 과감하게 베어버리고 무궁화를 심어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무궁화꽃 백리 길을 우리 전라북도에 맨 처음 만들고 싶다. (2008. 8. 29. 전북중앙신문 오피니언 칼럼)
첫댓글 가슴속에 넣어두고 등한시해온 무궁화꽃을 세상에 끌어내 정말 우리나라 꽃으로 가꾸자는 메세지인 것 같습니다. 내것은 정작 소홀히 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이지요. 지금부터라도 무궁화꽃을 피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희미하게 올려놓으셨습니까 조금 글씨를 선명하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교수님..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12P 다시 올렸습니다. 가을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이젠 희귀한 골동품가게에서나 볼수 있는 1원짜리 동전이 문득 생각 납니다..그 뒷면에는 무궁화가 새겨져 있었지요..우리는 한번쯤 "무궁화"라는 이름이 어찌 지어진 것이며 또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國花 가 되었는지 생각을 해본적은 있었는지 깊은 반성을 하게 합니다...
곱게접어 고결하게,추하지않고,죽음마저 아름답게 지는꽃.초록잎들은 거미줄에 엉긴체 고향집 울타리역활하며 안쓰럽게 피어있던 무궁화꽃.볼때마다 가꾸어 빛냈슴 일편단심 꽃말처럼 피고지고 우리에게 기쁨일텐데...교수님 말씀대로 무궁화꽃 백리길을 전라북도에서 만들것을 꿈꾸어 봅니다.
교수님 오랜만에 문안 드립니다. 주간반 까지 생겼다니 이 여름 교수님님의 덕망의 그늘이 점차 더 커져가고 음을 실감합니다. 교수님의 칼럼 너무나 공감합니다. 항상 잊지 않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맞습니다 . 도민으로서 한 표 찍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 제자로서 한 표 더 찍고 , 전주 사니까 한 표 더, 가끔 그 길로 출근하니까 한 표 또 보태겠습니다. 자꾸 보태야 합니다.
우리 겨레의 꽃이 점점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는데 교수님의 글을 접하니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교수님의 글을 동감합니다 삼천천에 보면 무궁화가 듬성듬성 피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숭고한 마음에 가슴이 떨리는듯 한 묘한 감정을 받곤 했어요 앞으로 사라져 가는 무궁화꽃 삼천리 방방곡곡에 뿌려서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퇴색되듯 잊혀져 가는 무궁화 다시 찾고 갑니다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90년대의 일입니다. 밥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고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박진감 넘친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단편소설이 생각납니다. 돌려보다 1권은 사라지고 2,3권만 덩그마니 꽂혀있는데 새삼 장르만 바뀐 2탄 무궁화 꽃이 숨 쉴 겨를 없이 다시 피었습니다.” 번식력 강하기로는 으뜸인 나무를 번영로에 심자는 제안에 저도 한 표 보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새롭게 조명되는 무궁화가 진정 나라 꽃으로 모든 국민들의 염원이 무궁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주간 반이 생겼다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마음이 끌립니다. 이 번 학기는 늦었고, 정식 학생은 아니어도 한 번 들어가서 명강의를 듣고 싶습니다. 교수 님, 건강하시지요? 그 볼그레한 용안의 미소를 뵙고 싶습니다. 달리 의논할 말씀도 있고요. 건승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의미있는 칼럼 ,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