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틈달 2번째 지부모임에서는 소농들의 얼이 담긴 '동학'에 대해 공부했어요.
아래의 2가지 텍스트를 가지고 동학에 대해 배우고,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두 텍스트 모두 동학 연구자이신 백승종 선생님의 글이었어요.
녹색평론 기사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소농을 생각한다>는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 역사적/사회경제적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고,
책,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동학의 주요 가르침과 동학농민혁명의 과정 및 의의를 다루는데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어체로 쓰여져서 정말 쉽게 읽혀요.
이번 모임에서 책은 1-2장까지 읽었는데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의 생각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풀어놓았어요.
http://greenreview.co.kr/greenreview_article/127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02635295&start=pnaver_02
요컨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직접적 원인은 조정의 무분별한 개방정책에 있었다.
동학농민군의 주축은 소농이었고, 그들은 굳건한 마을조직을 기반으로 투쟁의 역량을 강화했다.
(백승조, 녹색평론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에 소농을 생각한다>)
동학농민혁명(2022년부터 정식 명칭)은 안으로는 국가와 부폐한 관료들의 조세수탈,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과 무분별한 개화정책으로 인한 농산물과 공산품 가격의 하락 등
소농들이 공통된 울분과 평민지식인들의 문제의식이 만난 사건이라고 해요.
동학에 대해서는 국사시간에 배운 녹두장군 전봉준과 인내천 사상밖에 몰랐는데...
시대적 맥락과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들의 사상과 규모(전국 각지에서 약 300만명, 당시 국민의 1/4이 참여)에 대해 알고 나니 새삼 대단해보이더라고요.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동학농민혁명이 빠르게 조직화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저자가 당시 조선이 '소농 중심의 자급자족적 공동체 사회'였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었어요.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18세기까지도 상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은 자급자족적 공동체 사회였어요.
요컨데 상업이 발달하지 못하면 걸어서 서로 오고 갈 만한 거리에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좁은 지역 안에서 서로 마음을 담아서 물건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이는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닙니다.
서로의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함께 나눠먹고 사는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p.40-41)
과거에는 양반집 담벼락이 높지 않았다고 해요. 결국 돈이 있으나 없으나 흉년과 풍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마을공동체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개화파 양반들과 한국을 눈독들이던 외세가 손잡고 추진한 시장개방(오늘날로 치면 FTA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한반도에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들어오면서 당시의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깨져버린 것이죠.
동학은 도를 찾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았어요. 조선땅에 있는 여러 종교와 가르침에서부터 도를 발견해요.
실제로 저자는 동학이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서학(기독교)의 교리를 포괄하는 융합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주장해요.
최제우는 서학과 동학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주는 이미 우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천명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상제가 계신다. 우리에게 하늘님이 이미 계셨잖아.
그러나 동시에 수운선생은 서학(기독교)에 대해 아주 날카롭게 통찰하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오늘날 우리들이 통렬히 되돌아봐야 할 지점인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그리스도인)은 몸에는 기화지신이 없고, 학에는 한울님의 가르침이 없으니 형식은 있으나 자취가 없고...
제 몸만을 위하여 빌고 있으니 그들의 도는 허무하다
제가 이해한 동학의 핵심은 '모두가 하늘이다' 즉 '우주 만물이 더없이 지극히 귀하다'는 것입니다.
"나도 하늘이고, 너도 하늘이고, 밥도 하늘이다. 그러니 우리 곁의 하늘님을 잘 모시며 살자!"(시천주)
하늘을 모시며 사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성(정성), 경(공경), 신(신뢰) 3가지를 제시하고 있고요.
저도 동학의 가르침을 따라
지금 이 후기글을 쓰는 것도, 이따가 먹을 점심식사도, 방금 일터에서 받은 문의 전화도...
모두 하나님을 모시듯 정성껏 해보려 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눈가림으로 섬기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충성을 다하십시오.
무슨 일이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
(골로새서 3장 22-23절)
첫댓글 모든 생명에게 공경을, 모든 일에 정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