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카페 게시글
박약회대구지회 청장년부 스크랩 서초구 내곡동 헌릉 . 인릉을 찾아서
이장희 추천 0 조회 371 14.06.12 21: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헌릉. 인릉(사적 제194호)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1번지

 

 

헌릉 . 인릉을 가기 위해서는 양재역 7번 출구에서 성남행 버스를 타고

헌인릉 입구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서 현인릉 방향으로

 약 5 ~ 10여분을 걸어서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능을 가기전에 헌.인릉을 관리하는 재실이 먼저 나타나는데

재실 앞에는 산벚꽃이 활짝 만개하여 나그네의  눈길을 잡아끈다.

 

 

도로변에 위치한 재실은 솟을대문으로

재실 입구에는 재실 개방시간이 적혀있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재실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니  전통건물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재실의 모습을 사진을 살짜기 담고 나오려 하는데 사람이 살고 있다.

 

 

재실은 원래 능역 안에 있었으나 그 중간 부분이 6.25이후

농지로 개간되어 서로 떨어져 위치하게 되었다.

나무에 둘러쌓인 재실의 전경을 바라보고 조금만 걸으면 헌.인릉이 나온다.

 

 

헌릉 . 인릉 안내도 옆으로 매표소가 있고 입장료는 1,000원이다.

 

 

헌릉. 인릉 안내도

 

 

헌릉. 인릉 안내문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전통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헌릉 . 인릉을 바로 들어가면 신성함을 알리는 인릉의 홍살문을 만나게 된다.

 

 

인릉은 조선 제23대 왕  순조와 비 순원왕후 김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길은 참도라 하는데

가운데길은 신도(혼령이 다니는 길)이고 약간 낮게 설치된 길은 어도(왕 등이 다니는 길)이다.

 

 

높은 곳에  능이  자리하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고 위로는  올라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옆길로 돌아가야 정자각과 비각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그 주위에는 진달래꽃이 예쁘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비각은 능에 세우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이다.

이곳에는 1857년(철종 8) 세운 비석과 1900년 세운 비석 2기가 보호되어 있다.

 

 

정자각은 왕과 왕비의 신좌(神坐)를 모시고 각종 제사를 지내는 J자 형태의 건물이다.

 

 

능 주위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만발하였다.

 

 

소나무가 울창한 나무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인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올라 가면서 만난 골풀과의 여러해살이풀 꿩의밥

 

 

조선 제23대 왕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와 그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1789~1857)를 합장한 무덤으로

순조는 1834년 11월 13일 경희궁 회상전에서 숨을 거뒀다.

 

 

1835(헌종 1) 4월 19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 무덤 장릉 왼쪽 산줄기에 예장하였다가

풍수가 좋지 않다 하여 1856년(철종 7) 10월 11일 현 위치로 옮겼다.

순원왕후는 1857년 8월 4일 창덕궁 양심각에서 숨져 그 해 12월 17일 순조와 합장되었다.

 

 

봉분을 애워싸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병풍석은 설치하지 않았다.

봉분 주위로 석양, 석호 각 2쌍을 교대로 배치하였으며,

봉분 앞에 상석을 놓고, 상석 좌우로 망주석 1쌍을 세웠다.

 

 

봉분 바깥쪽에는 3면의 곡장을 쌓았다. 봉분 아랫단에는 문인석 석마 각 1쌍과

장명등 1좌가 있으며 그 아랫단에는 무인석  석마 각 1쌍이 마주보고 서 있다.

문인석과 무인석은 사실적 기법으로 형상화되어 있어 섬세하고 아름답다.

 

 

인릉 위에서 바라본 모습 오른쪽으로 국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인릉에서 내려와 쉬어가려고 쉼터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국수나무가 보인다

자세히 보았더니 진짜 국수처럼 늘어진 모습이다.

옛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고 국수를 생각하면서 배고픔을 달랬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다.

 

 

조용하고 편안한 산책로가 너무 좋았다.

 

 

나무들이 많아서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은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헌릉이 나온다.

 

 

가는 길  중간마다 쉼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가금 가서 쉬어도 좋을 듯하다.

 

 

조금만 걸어가다 보면 이제 헌릉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늦봄에 하얀꽃이 줄줄이 피는 아름드리 큰 나무 귀룽나무이다.

 

 

왼쪽 위로 올라가면 헌릉이 자리하고 있고

 

 

소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기로 한다.

 

 

무덤 언덕 아래에는 헌릉의 정자각과 비각이 세워져 있다.

 

 

헌릉은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봉릉이 같은 언덕에 조영된 쌍릉 형식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병풍석의 규모와 확트인 전경, 정자각 중심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 사이의 높이 차이 등 초기 조선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헌릉의 능 앞 석물들은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은 1쌍이고 양석, 호석은 각각 4쌍,

문무인석과 마석은 각각 2쌍씩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 제도를

기본으로 한 것이며 조선시대에서는 가장  웅장한 규모로 조선왕릉 중에 가장 크다고 전해진다.

 

 

헌릉이 지닌 조선 초기 왕릉으로서의 특성을 두 가지 꼽자면 소전대와

 상석 아래 놓인 고석의 개수를 들 수 있다. 정자각 북서측에 있는 소전대라고 하는

 석물은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지방을 불사르는 시설로 태조 건원릉과

 이곳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석물이다.

 

 

한편 봉릉 앞 상석 아래에 놓인 고석의 개수가 5개인데,

 이와 같이 고석이 5개인 능은 태조의 건원릉, 태종의 헌릉으로

 모두 조선 초기 상설제도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원경왕후가 1420년(세종 2) 7월 10일 수강궁(창경궁) 별전에서 태종보다 일찍 세상을 뜨자,

 태종의 명으로 같은 해 9월 17일 대모산 기슭에 건좌손향으로 왕후의 능을 조영했는데,

 억불정책으로 원찰을 세우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22년(세종 4) 태종이 승하하자

아들 세종은 같은 해 9월 6일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봉릉을 따로 만들어

 아버지를 모시고 난간으로 연결하여 쌍릉을 조성하고 곡장을 둘렀다.

 

 

세종은 승하하여 18년간 이곳 헌릉의 서쪽에  모셨다가

예종 원년(1469년)에 지금 경기도 여주의 영릉으로 모셨다.

세종의 영릉 신도비는 서초구 내곡동 원래의 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73년에

발굴하여 현재의 청량리 홍릉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입구에 있다.

 

 

비각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손상된 원래 신도비와,

1695년(숙종 21) 하나 더 증설하여 세운 것이다. 왕릉의 신도비는 태조의 건원릉,

정종의 후릉, 태종의 헌릉, 세종의 영릉 때까지 세웠다가 그 이후에는 완전히 폐지했는데,

현재 왕릉의 신도비는 건원릉과 헌릉에만 볼 수 있다.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번째 아들로 1367년(고려공민왕 16) 5월 16일

 함흥 귀주동 사저에서 태어나 1422년(세종 4) 5월 10일

연화방 신궁(창경궁)에서 56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은 새 왕조 개창기에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정도전 등에 의해 견제되었다.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신덕왕후 소생의 세자 방석을 폐위시켰으며,

둘째 형인 영안군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양보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박포의 계략에 넘어간 태종의 넷째 형이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태종은 이를 평정하고 1400년 11월, 정종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오른 뒤  계속된 피의 숙청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조선왕조의 기반을 닦는데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500년 조선조 국가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었다.

 

 

헌릉 입구에서 발견한 현호색  색깔도 곱고 너무 이쁘다.

 

 

 

 

조선시대  왕릉은 우리에게 왕실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유산을 제공하고 도심 속에서 한국 전통 숲의 맑은 공기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쉼터를 안겨주고 있다.

 

 

헌릉 옆으로 산책길이 조성되어 능을 가운데 두고

빙 돌게끔 되어 있어 들꽃도 탐색하고 자연을 느끼기 위해 산책길에 나섰다.

 

 

산속에 벚꽃도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녹음이 우거진 곳도 있어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여러종류의 들꽃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습기가 많은 곳에는 이끼가 끼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야생동물이나 새들에게 생태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이곳에서 새를 유심히 관찰하고 사진에 담고 있는 분을 만났다.

방해가 될까봐 살금살금 소리없이 길을 지나갔다.

 

 

산책길에 만난 단풍나무 모양을 한 적단풍취

 

 

뱀딸기와 비슷한 노랗고 귀여운꽃 양지꽃

가장 흔하기에 무심코 지나치는 야생초의 특징은 수수하고 생명력이 강하다.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숨결이다.

 

 

처음 보게 된 앙증맞은 개별꽃

멸종위기의 희귀식물로서 하늘의 별을 닮았다고 개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나리와 사촌쯤이며 꽃모양도  비슷한 미선나무

 

 

물푸레나무과로 세계적으로 충북과 전북 일부에만 자라는 귀하고 귀한 우리나무이다.

색깔이 거의 흰빛에 가까운 연 자주 빛이며 열매의 모양이 둥그스름한 부채를 뜻하는

미선(尾扇)을 닮았다고 하여 미선나무라고 하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산책길은 흙길로 잘 조성해 놓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고요하고 평온한 길을 마음껏 사색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인동과에 속하는 나무로 한국의 특산나무인 병꽃나무

 

 

산을 끼고 있는 환경에 작은 계곡과 수로들이 있어서 생태환경에도 좋고

 

 

맑은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왕릉은 곳곳에 피어있는 봄꽃과 희귀식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며

 

 

일상에 지친 도시인에게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선사하였다.

 

 

 

 

라일락 꽃은 아직은  꽃봉우리를 터트리기 전이고

 

 

라일락 꽃이 활짝 피면 향기가 진동하겠지~~~

 

 

 

 

 

 

 

 

 

 

 

 

 

 

 참빗살나무는 옛 사람이 사용하였던 참빗을 이 나무로 만들기도 했다고...

우리나라 산의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회나무 종류의  하나로서

가을 날 붉은 열매가 눈길을 끌며 붉은 단풍도 굉장히 예쁘다고 한다.

 

 

 

 

 

 

 

 

 

 

 

 

양재동 동쪽 대모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헌인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가 모셔진 헌릉,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인릉이 합쳐진 이름이다.

능 아래쪽에는 17,000여 평에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이 숲은 2005년에 서울시에서 생태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하였다.

 

 

오리나무숲 일대는 지하수가 풍부하고 토심이 깊어 서울에서는 둔촌동 생태경관보전지역과

 더불어 오리나무 군집을 형성하고 있다. 또 곳곳에 물웅덩이와 소규모 수로가 있어

물봉선, 삿갓사초, 애기나리, 둥굴레, 붓꽃 등 다양한 습지성 식물이 자라고

오색딱따구리, 꾀꼬리, 박새 등도 출현하고 있다고 한다.

 

 

서초구 내곡동은 옛 언주면(彦州面)의 일부로서 본촌(本村)의 안쪽에 있으므로

안골 . 안말이라고 불리던 것이 한자로 내곡동(內谷洞)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헌릉 . 인릉이 있어 주택이 들어설 수 없었으며

수목이 울창하여 많은 짐승들이 나타나던 지역이었다.

 

 

집에 오려고 주차장에 갔더니 이렇게 예쁜꽃이 피어있다

 무슨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뭏튼 너무 이뻐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오늘도 맑은 공기와 꽃들을 실컷 보는 행복한 하루였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