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격인 M.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해 T. W. 아도르노, H. 마르쿠제, W. 벤야민, E. 프롬, F. 폴록, F. L. 노이만 등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 연구소에서 배출된 J. 하버마스, A. 슈미트 등을 포함하는 총칭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하고 여기에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미국 사회학의 방법을 결합시켜 현대산업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을 전개했다. 나치즘의 대두로 미국에 망명해 있는 동안에 기관지 〈사회연구〉를 발행하고 〈권위와 가족〉(1938)·〈권위주의적 성격〉(1950) 등의 공동 연구서를 내놓았으며, 〈계몽의 변증법〉(1947)과 같은 서유럽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했다. 아도르노의 〈부정적 변증법〉(1966),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노이만의 〈비히모스 Behemoth〉(1942), 마르쿠제의 〈1차원적 인간〉(1964), 하버마스의 〈이론과 실천〉(1963), 〈인식과 관심〉(1968) 등은 이들 연구성과의 일부이다.
* 비판이론[批判理論, Kritische Theorie]
1930년대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철학자·사회과학자·문화과학자들의 모임이 발전시킨 일련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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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자본주의(나중에는 사회주의까지 포함) 산업사회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켰다. 이들의 분석 목적은 그러한 사회가 지닌 억압적인 경향을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데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심지는 1924~33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였다가 나치 집권기에는 뉴욕·로스앤젤레스·버클리 등으로 옮겼으며 1949(또는 1950)년에 다시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돌아왔다. 1세대격인 M. 호르크하이머, T. W. 아도르노, F. 폴록 등과 2세대인 H. 마르쿠제, E. 프롬, L. 뢰벤탈의 뒤를 이어 J. 하버마스, 알프레트 슈미트, 오스카 네크트, 알프레트 벨머, 클라우스 오페 등이 활동하고 있다. 1967~72년 서독과 서구대학 등이 중심이 된 학생운동에 비판이론가들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서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 특히 소련과 동독의 의견과 대립되었고 서독 내에서 비판적 합리주의의 분석적 과학이론과 방법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비판이론은 사회를 변혁하려는 실천적인 정치 목표를 지니고 사회·문화 연구를 통해 현대사회에 관한 사회·역사 철학을 추구했다. 이들 이론을 이끈 주요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헤겔적 의미의 변증법적 역사관을 통해 현대를 스스로 소외된 개인들의 갈등의 역사로, 승인되지 않은 지배형태로 파악한다. ②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으로써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이를 통해 전세계적 경제위기와 전쟁, 그로 인한 첨예화한 착취와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문화·법·과학 등 이데올로기의 타락이 빚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자기붕괴를 분석한다. ③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들여, 부르주아 및 프롤레타리아 가족에 미치는 사회 갈등과 문화 왜곡의 부작용, 직업세계와 정치 여론을 통해 아버지 우상에 대한 권위적인 교육 강제를 분석한다. 계몽과 이성의 '해방적 관심'은 이와 같은 사회관계를 거부한다. 이러한 시도는 비판이론의 소수 '비판적 지식인', 경제적으로 착취받는 자,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자(프롤레타리아와 주변집단)들이 연대하여 억압적 사회관계와 지배적 '허위의식'(예를 들면 과학적 실증주의나 대중매체의 문화 산물들)에 비판적·실천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930년대의 연구 논문과 출판물은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가족에 대한 사회경제적·사회심리학적 비판에 중점을 두었다. 이것들은 〈사회연구지 Zeitschrift für Sozialforschung〉(제1~9권 1932, 제10권 1941, 1970)와 포괄적인 연구보고서 〈권위와 가족〉(2권, 1936, 파리)으로, 호르크하이머가 기고한 글들은 슈미트가 편집한 〈비판이론 Kritische Theorie〉(2권, 1968)으로 묶여서 출판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에는 파시즘과 반유대주의에 대한 분석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반민주주의 태도와 권위에 얽매인 편견들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조사가 아도르노와 베틀하임에 의해 〈권위주의적 인격〉(1950)으로, 호르크하이머의 〈선입견에 관한 연구〉(5권, 1949~50)로 출판되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은 물론이고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비판이론은 정치적 전제주의를 진단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데 진력해서 자유주의 경제국가와 사회주의국가를 근본적으로 비판했다. 비판이론은 개인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노동강제와 소비강제에 매몰되어 무기력해지고, 대중매체의 '문화산업과 의식산업'에 의해 도덕적·정신적 에너지를 빼앗긴 상태에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호르크하이머의 〈이성의 부식〉(1947)과 아도르노와 함께 쓴 〈계몽의 변증법〉(1947, 1969)에 나타나 있다. 전후 10년간 이 사상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동일한 것을 지향하는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One-Dimensional Man〉(1964)은 서구와 북아메리카에서 문화혁명적 청년운동에 폭발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도르노는 〈부정 변증법〉에서 보편화한 '기만적 연관'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 그는 이것이 '개념의 지배'에 대한 비판과 과학기술의 엄밀한 방법에 대한 비판으로써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산업사회에서 서구적 계몽과 이성주의의 왜곡된 실현에 대항해서 이러한 계몽의 근원적인 자유의 이상과 행복의 약속이 유지되어야 한다. 아도르노의 제자인 하버마스는 비판이론을 새롭게 사회정치적인 언어철학으로 확대시켰다. 그는 현대 언어학의 도움으로 이상적인 언어행위 체계를 기획하고 그 체계의 규범과 규칙에 따라 '강제 없고 지배 없는 의사소통'으로 '자유롭고 선한 삶'을 추구하는 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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