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벚꽃이 만개해 사방천지에 꽃잎이 흩날린다. 벚꽃이 피면 이를 소재로 한 축제가 많이 열린다. 벚꽃의 매력은 웅장한 나무에 피는 꽃으로는 보기 드물게 일시에 화려하게 핀다는 점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꽃에 대한 감상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사람들도 벚꽃이 핀 것을 보면 탄성을 지르게 마련이다. 이렇게 화려하게 피는 벚꽃, 그 나무의 이름이 왕벚나무이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사쿠라나무라고 했던 바로 그 나무이다.
그런데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막연히 일본의 나무라거나 일본의 꽃이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제주도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지 이미 오래다. 도로변이나 공원, 그리고 학교 같은 곳에 있는 벚꽃만을 보아온 사람들은 이렇게 화려하게 피는 벚꽃이 우리나라 산에서 다른 나무들과 섞여 자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왕벚나무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재배하는 식물이 유래한 곳을 원산지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 곳이 어디인가를 규정하려면 자생지가 어디인지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자생지의 조건은 천연식생 중에 생육하고, 개체수가 많아야 하며, 다양한 변이를 가져야 하고, 늙은 나무에서 어린 나무까지 골고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혈연적으로 가까운 종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이와 같은 조건을 구비한 곳은 세계적으로 한라산이 유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라산에는 천연식생 내에 자라고 있는 나무들이 많은데, 이 나무들은 어린 나무에서 200년생까지로 추정되는 늙은 나무까지 골고루 자라고 있다. 그리고 꽃, 열매, 종자, 잎 등 여러 가지 특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왕벚나무 외에도 한라산에는 특산 벚나무가 3종이나 더 있다. 이와 같은 요건을 구비한 곳은 아직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어느 곳도 알려진 바 없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여기구나 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시 오등동의 한라산 관음사의 왕벚나무 숲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이곳의 왕벚나무 숲을 보면 삼척동자라도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한라산에서 왕벚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은 해발 450㎙에서 900㎙ 사이 산허리를 한바퀴 도는 지역이다. 그렇지만 관음사의 왕벚나무 숲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도 없다. 이곳에는 100년생은 족히 되는 왕벚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외도 여러 가지 벚나무 무리들이 있다.
올벚나무, 산벚나무, 잔털벚나무, 섬개벚나무, 산개버찌나무, 사옥, 한라벚나무 같이 왕벚나무의 사촌쯤 되는 나무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자생 벚꽃을 동시에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특이한 숲이다. 세계 유일의 왕벚나무 자생지의 모습을 두루 갖춘 곳이다.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인 나무 중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나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할 우리의 자원이다.
/김찬수·국립산림과학원 박사 daram@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