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넘기고 보니
맨얼굴이 미안타
두꺼워진 낯짝하며
감언이설 입술하며……
꽃분홍 립스틱으로
날 숨기고
싶은
날,
-김영란, ‘꽃향유’ 전문
제주 들판엔 지금 꽃향유가 피어나겠다. 분홍색이 나는 자주색의 꽃. 그리 예쁘진 않아도 뾰족뾰족 길게 올라와 투덜대는 모양이 곱다. 처음 이 꽃이 꽃 이름인 줄 몰랐다. 꽃이란 말이 처음에 들어가서, 무슨 꽃의 기름인 줄 알았다.
시인은 어느 날 꽃향유를 보고, 마흔이 넘어 낯이 두꺼워져 ‘아줌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본다. 분홍빛 립스틱이라도 짙게 바르고 다시 ‘여자’이고 싶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
김영란의 첫 시조집『꽃들의 修辭수사』(2014, 동학사)에는 꽃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그 시들을 처음에 배치하여 한껏 가독성을 높인다. 꽃은 만인에게 가깝다. 서시격인 ‘꽃들의 수사’를 필두로 수선화, 장다리꽃, 제비꽃, 나팔꽃, 달개비, 달맞이꽃, 상사화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말을 건다. 불혹을 지난 그녀에게 이것들은 삶의 예지로, 아픔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을 마른 나무 비틀어 짜도 물이 안 나온다며 컴퓨터 앞에서 조합한 시로 기교 부리지 말고 발로 쓰는 시대를 앞서 가는 시인이 되라고 늘 나의 시론이 되어 주는 이 땅의 민주화와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바보처럼 곧고 바르게 걸어가는 그 사람 건강을 기원하며 이 시집을 바칩니다’.
그 사람은 양 모씨. 하나 아래 띠동갑 몇 년 더 아래의 아내는 그 고집쟁이 남편의 뒷바라지로 얼마나 오래 맨얼굴이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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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꽃이름이 참 이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