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원나라 공녀 차출에 과부와 역적의 아내들을 보냈지만,
나중에는 처녀만을 요구하여 고려에서는 '결혼도감'이라는 걸 만들어 온 나라에 금혼령을 내리기도 하고 '과부처녀추고별감'을 만들기도 하는 등 원나라의 비위 맞추기에 온갖 추태를 부렸다(이들이 전부 남자놈들이었음.ㅎㅎ...)
심지어는 금혼법을 만들어 양가의 처녀는 먼저 관청에 신고한 후 혼인하도록 했다. 우리나라 조혼풍습은 공녀로 팔려가지 않으려고 딸을 일찍 시집보내려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두만칠은 '기씨'를 황궁으로 들여 보냈다. 궁녀가 된 '기씨'는 순제의 차나 끓이며 세월을 보내게 되었는데 어느 봄날 끓인 차를 들고 당시 황제이던 '순제'의 방으로 들어갔다.
순제는 춘곤증에 시달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그녀를 보았다. 앳된 얼굴의 고려여인이 눈앞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순한 암사슴같았다고 해야할까?
순제는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수작을 붙였다.
"짐이 못보던 계집이로다!"
"폐하, 소녀가 궁에 들어온 지 두서너 해 되었사오나 용안을 직접 뵙기는 처음이나이다."
"허허, 그동안 짐이 어찌 너를 보지 못했단 말이더냐?"
"소녀, 원나라 말이 신통치 않아 폐하 앞에 나설 기회가 없었나이다."
"이젠 원나라 말을 제법 하는구나?"
순제는 무료하던 차에 기씨를 만나 흥이 일었다. 기씨의 때묻지 않은 청순하고 순진한 모습에 매료되었던 모양이다.
"방년 몇인고?"
"열 일곱이나이다."
"실로 꽃다운 나이로다."
순제와 기씨 사이가 나날이 가까워졌다. 그 무렵 순제는 황후 '타나시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럴만한 과거 사연이 있었다.
1330년 권신 '앤태무르'가 권력을 전횡하려고 순제의 아버지 명종을 죽이고 동생 문종을 세웠다.
그리고 아들, '토곤 테무르'(나중에 순제가 됨)를 인천 앞바다의 대청도로 귀양을 보냈었다. 그 때 토곤테무르의 나이 11세였다. 어린 황태자는 1년 5개월 동안 고려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고려에 대해 각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후 운좋게 그는 원나라로 돌아와 2년만에 순제로 황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황후는 앤티무르의 딸이었다. 순제가 원수의 딸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어느날 순제가 기씨를 침실로 불러들였다. 이 밤 이후 기씨의 역사가 새로이 써지게 된다. 기씨가 잉태한 것이다.
황후는 시기와 질투가 심한 여인이었다. 기씨를 불러 채찍을 휘두르는가 하면 온갖 횡포를 부렸다.
다행히도 기씨는 황궁에 고려 여인들이 많고 고려 출신 환관들이 많아 그들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원나라는 공녀 외에도 고려에서 환관을 많이 들여왔다. 고려인들이 재주가 뛰어나고 글을 많이 알아 부리기에 편해서였다.
고려 환관 중에 '고용보'는 황궁에서도 막강한 실력자였다. 고용보가 기씨의 배후에서 고려 궁녀와 환관들을 결집시킬 수 있었다.
그러다 황궁에서 역모사건이 하나 터졌다. '나타시리'황후의 형제들이 순제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발빠르게 승상 '빠앤'이 순제와 손잡고 역도들을 일거에 제압할 수 있었다. 황후는 사약을 받았다.
순제는 비어었는 황후자리를 기씨로 채우려 하였지만 , 이번엔 '빠앤'의 반대에 부딪쳤다. 아무리 태자를 낳았다고는 하지만 공녀 출신에다가 고려 여인을 황후로 세울 수는 없다는 황궁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할수없이 순제는 '빠앤' 집앙ㄴ의 '빠앤후두'를 황후로 맞아들였다.
기씨는 서둘지 않고 관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