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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혼으로 피어나는 시-경주
-역사의 현재화, 상상력의 보고로서의 경주 - 손진은(시인·문학평론가)
1. ‘경주’, 그리고 ‘신라’라는 시원의 공간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1960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황혼에 경주 시골길을 지나고 있는데,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 달구지에는 짚단이 조금 실려 있었지만 농부는 자기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있었다. 합리적인 서양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상하게 볼 광경이었다. 힘들게 지게에 짐을 따로 지고 갈 게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싣고 농부도 타고 가면 편했을 것이다.
펄 벅이 물었다. “왜 소달구지에 짐을 싣지 않고 힘들게 갑니까?”
그러자 농부가 대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했으니 짐을 서로 나누어져야지요.”
펄 벅은 감탄하며, “나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걸 다 보았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다.”고 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도 존귀하게 여겼던 농부처럼 경주 사람들은 본디 배려를 잘하던 심성을 가졌다. 펄 벅이 만난 시골 농부의 이야기 속 경주는 한국인의 근원적 심성으로 지금 우리에게도 강한 울림을 준다.
백석의 시는 그 시원을 신라로 소급하여 음식의 맛에서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 백석, 「함주시초(咸州詩抄) ― 북관(北關)」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 『정본 백석 시집』, 문학동네, 2007.
전문
함주는 함흥을 가리킨다. 시인은 명태 창난젓과 고추무거리(고추와 곡식 가루를 빻아 가루를 내고 남은 찌꺼기)를 비벼 익힌 음식의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에 동화된다. 뜻밖에 시인은 이 투박한 음식의 맛과 냄새에서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고, “신라 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신라 백성의 향수’라는 말에 주목하여 보면, 우선 신라 진흥왕이 국토의 영역을 확장하여 540년에서 576년까지 함흥지역 남쪽이 신라의 영토가 된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진흥왕은 함흥 지역에 황초령순수비와 마운령순수비를 세워 그것이 신라의 영토임을 표시했다. 그때 그곳으로 이주해 왔던 신라 백성이 먹었던 까마득한 음식의 기원을 현재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 지역의 마음씨뿐만 아니라 음식의 역사와 장소성 역시 뿌리가 깊다.
서정주는 경주를 아득히 신라와 연결시켜 ‘상승과 하강의 긴장과 조화’를 이룬 장소성의 공간으로 파악한다.
아무도 이것을 주저앉힐 힘이 없는 때문이겠지.
황릉(王陵)들은 노랑 송아지들을 얹은 채
애드발룬처럼 모조리 하늘에 두웅둥 떠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아랫두리를 벗은 어린아이 모양이 되어
그 끈 밑에 매어달려 위험하게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토함산(吐含山)에 올라서니
선덕여왕릉(善德女王陵)이지 아마
그게 시월[十月] 상달 석류(石榴) 벙그러지듯 열리며
웬일인지 소리내어 깔깔거리고 웃으며
산(山)가슴에 만발하는 철쭉꽃밭이 돼 딩굴기 시작했다.
누가 그러는가 했더니
석굴암(石窟庵)에 기어들어가 보니까
역시 그것은 우리의 제일 큰 어른 대불(大佛)이었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식지(食指)의 손톱께를 지긋이 그 응뎅이로 깔아
자즈라지게 웃기고,
또 저 뭇 황릉(王陵)들이 즈이 하늘로 가버리는 것을
그 살의 중력(重力)으로 말리고 있는 것은….
- 서정주, 「경주소견(慶州所見)」 서정주, 『미당 시전집』, 민음사, 1994.
전문 - 토함산 일출 사진
시인의 상상력에 의하면 경주는 대단히 역동적이고 팽팽한 공간이다. 시인은 상상력을 통해서 두 가지 풍경을 본다. 그것은 원심과 구심성, 혹은 상승과 하강의 길항이라 할 만하다. 원심성이 작동하는 풍경은 왕릉들이 애드발룬처럼 하늘에 떠서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그 끈에 매달려 부유하고 있다는 상상이다. 그것은 먼 곳, ‘신라라는 이상적인 시공간에 대한 끌림’이다. 시인은 그 이유를 “아무도 이것을 주저앉힐 힘이 없는 때문”이라 단정한다. 경주는 여전히 신라라는 왕조로의 자장으로 끌리고 있다는 뜻이다. 토함산에 올라서 보니 신라의 하늘에 대한 끌림은 선덕여왕의 몸짓에서 기인한다. 선덕여왕릉이 시월 상달 석류 벙글어지듯 열려 산가슴에 만발한 철쭉꽃밭으로 뒹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승의 힘을 지긋이 누르는 또 하나의 힘을 시인은 본다. 석굴암 대불이 선덕여왕의 둘째 손가락 부분을 엉덩이로 깔아, 살의 무게로 뭇 왕릉들이 신라의 하늘로 가버리는 것을 말리고 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과 대불의 이런 성애화는 유머스럽고, 그만큼 시인의 상상력 속 선덕여왕의 인간미와 석굴암 대불의 천진미를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은 욕계 제이천으로 올라가서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선덕여왕과, 현실을 이상적인 불국토로 만들려는 대불(“부불어오르는 가슴 속 사랑”, 서정주, 「석굴암관세음의 노래」)의 팽팽한 길항과 조화가 오늘의 경주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미당에게 경주는 신라문화의 자장 속에서 움직이며 신라의 힘이 작용하여 다스려지고 있는 공간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경주는 현재 인구 삼십만이 못 되는 중소도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신라의 수도를 넘어 ‘나’의 원적지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박목월은 이를 ‘마음 속에 존재하는 두 개의 고향’으로 파악하고 있다.
밤차를 타면
아침에 내린다.
아아 경주역.
이처럼
막막한 지역에서
하룻밤을 가면
그 안존하고 잔잔한
영혼의 나라에 이르는 것을.
천년을
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
이슬 자욱한 풀밭으로
맨발로 다니는
그 나라
백성. 고향 사람들.
땅 위와 땅 아래를 분간하지 않고
연꽃하늘 햇살 속에
그렁저렁 사는
그들의 항렬을, 성(姓)받이를.
이제라도
갈까 보다.
무거운 머리를
차창에 기대이고
이승과
저승의 강을 건너듯
하룻밤
새까만 밤을 달릴까 보다.
무슨 소리를.
발에는 족가(足枷).
손에는 쇠고랑이.
귀양 온 영혼의
무서운 형벌을.
이 자리에 앉아서
돌로 화하는
돌결마다
구릿빛 시뻘건 그 무늬를.
- 박목월, 「사향가(思鄕歌)」 이남호 엮음 해설,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전문 -모량역 사진
시인에게 고향 경주는 어떤 곳인가? 현실적으로는 “밤차를 타면/아침에 내”리는 곳(1연)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사는 “막막한 지역” 건너편, 다다르고 싶은 “영혼의 나라”(2연)다. 더욱이 그곳 사람들은 “천년을/한가락 미소로 풀어버리고”(3연) 태초와 원시의 맨발로 “이슬 자욱한 풀밭”을 걸으며, “땅 위와 땅 아래를” 그 죽음과 삶을 “분간하지 않고” “그렁저렁”(4연) 산다. 그래서 원초적 고향에서 “귀양 온 영혼”(6연)인 화자는 그곳으로 가는 것이 “이승과/저승의 강을 건너”(5연)는 것만큼 어렵다.
서정주의 「경주소견(慶州所見)」이 선덕여왕과 석굴암 대불이라는 높은 존재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으로서 경주를 파악했다면, 박목월의 이 시는 평범한 “성(姓)받이”들이 존재성이 현실과 역사를 초월하여 살고 있다는 인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타관에 사는 화자는 고향을 두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다. 현실적인 고향과 “영혼의 나라”로서의 본향 말이다. 하룻밤 사이에 도달하는 경주라는 지역은 비근한 현실적인 고향에 불과한 것이고, 영혼의 나라로서의 본향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정신적인 곳이다. 그래서 시인은 “발에는 족가, 손에는 쇠고랑”을 찬 유배자(“귀양 혼 영혼”,6연)가 되고, “이 자리에 앉아서/돌로 화하는”, 결마다 “구릿빛 시뻘건 무늬”(7연)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고향을 부정하는 심리적 기제가 아니다. 끝내 고향에 다다를 수 없다는 인식이다. 결국 이 시의 근저에는 영혼의 나라인 고향은 경주에 직접 가더라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래서 시인은 『박목월자선집4』(삼중당, 1974, 24-25쪽)에서 고향을 “마음의 안식을 갈구하는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본향(本鄕)을 동경하는 우리의 사모와 동경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 시인의 시편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경주는 신라라는 시공간과 탯줄을 잇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문제는 그것을 오늘의 삶과 어떻게 결부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2. 자애와 사랑, 그 육체성의 긍정
우선 우리는 신라라는 이상적인 국가가 ‘사랑’을 정신성으로만 파악한 것이 아니라 살의 일, 즉 육체성을 함께 파악하였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헬레니즘 문화가 그렇듯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은 사랑의 인식이 깊이를 가진다. 더욱이 신라는 이웃에 대한 자애와 함께 ‘살’과 육체성의 사랑이라는 덕목을 높이 평가한 국가였다. 이를 살피기 위하여 먼저 서정주의 시 한 편을 읽는다. 이 시편은 미당이 신라를 바라보는 지혜와 시각이 담겨 있다.
짐(朕)의 무덤은 푸른 영(嶺) 위의 욕계(欲界) 제이천(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터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병약자한테 시량(柴糧)도 더러 노느고
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
첨성대(瞻星臺) 위엔 첨성대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황금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천년의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어라.
짐의 무덤은 푸른 영 위의 욕계(欲界) 제이천(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그런 하늘 속.
내 못 떠난다.
- 서정주, 「선덕여왕의 말씀」 서정주, 『미당 시전집』, 민음사, 1994.
전문 -첨성대 사진
* 선덕여왕은 지귀(志鬼)라는 자의 여왕에 대한 짝사랑을 위로해, 그 누워 자는데 가까이 가, 가슴에 그의 팔찌를 벗어놓은 일이 있다.
신라인들은 영혼 또는 혼령의 상태에서 존재하는 불멸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무덤 속에서도 영혼이 몸 안에 기거하면서 인간의 현실적인 삶에 직접 관여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은 신화적 영원성을 가진 존재였던 것이다. “욕계 제이천”은 도리천이다. 지상 가까운 그곳에 묻혀서 백성을 사랑하고 돌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벡성에 대한 자비와 보시와 긍휼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다. 놀라운 것은 “살의 일로써”에 나타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은 사람과 욕망이 살아움직이는 현세적 삶에 대한 긍정, 인간존중의 정신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귀의 사랑을 무시하지 않은 그녀에게 ‘피와 살을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의 사랑은 “서라벌 천년의 지혜가 가꾼 국법보다도 국법의 불보다도/늘 항상 더 타”야 할 것이다. 이는 안티고네가 크레온이 다스리는 테베의 국법을 어기고 육체와 인륜의 도리를 따라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에 흙을 뿌린 것과 비견될 만한 일이다. 인간적 사랑과 현세적 욕망을 긍정하는 신라인들의 열린 태도는 동서양을 통해서도 두드러진 정신인 것이다. 이는 ‘효불효교’ 전설을 토대로 한 다음 시편에서도 드러난다.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不動)
나의 유산은
- 장석남, 「나의 유산은」 장석남,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문학동네, 2012.
전문 - 효불효교 사진
장석남의 이 시는 후반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경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효불효교 전설(孝不孝橋傳說)’(『동국여지승람』 권 21 「경주 교량」 조에 수록, 『한국구비문학대계』 에 28편 채록)을 기반으로 창작되었다. 혈연이 강조되고 가문 보존이 최우선이던 조선조 사회에서 홀어머니의 밤 나들이는 인정될 수 없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전에 욕망을 가진 한 인간이고 여인이기에 일곱 아들이 어머니의 행위를 비난하지 않고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굳어진 효의 관념을 부정하고 육체성을 긍정하였다는 면에서 설화 향유층인 민간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시인은 밤나들이를 위해 묵묵히 참으며 기꺼이 돌처럼 머리를 수그렸던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를 화소로 삼아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으로 확장한다. 효불효교 전설이 어머니의 밤나늘이를 위한 아들들의 효도와 헌신이 돋보였다면, 장석남은 모두를 위한 배려와 소통이라는 삶의 덕목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맥락으로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징검돌은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의 발밑이 되어 남들을 건네주는데, 그 의지는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줄 수밖에 없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은 한결같음이다. 시인이 더 천착한 것은 기꺼이 돌이 되고자 하는 그 배려에는 때로는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는 고통과 인고의 시간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헌신이 이 시의 빛나는 지점이다. 결국 우리는 선인들의 지혜가 깃든 철학적 사유를 재문맥화하여 세대간의 소통과 배려라는 오늘의 정신으로 확장하여 ‘자신의 유산’으로 삼고자 하는 데서 시인의 예지를 엿볼 수 있다.
3. 심성과 유적, 상상력의 파노라마가 개진되는 촉발점
많은 유적지와 함께 풍요로운 인간미를 거느리고 있는 경주의 곳곳은 오늘을 살고 있는 시인들에게 그들만의 상상력의 공간을 풍요롭게 제공하는 장소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장에서는 신라의 유적과 정신이 오늘의 경주, 그리고 이 땅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창조되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먼저 오늘을 사는 경주인들의 심성을 다루고 있는 시편들과, 이어서 유적에서 떠올리는 상상력을 다룬 시편들을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1)심성에서 떠올리는 이곳 정서
경상도 그 중에서도 경주인의 심성은 어떤 것일까? 박목월은 「눌담(訥談)」, 「기계(杞溪) 장날」, 「한탄조(恨歎調)」 같은 시편들을 통해 고향 공간에서 살아가는 투박한 인물의 심성을 그리고 있다. 특히 「만술 아비의 축문」은 이런 시편들을 대표한다.
아베요 아베요
내 눈이 티눈인 걸
아베도 알지러요.
등잔불도 없는 제사상에
축문이 당한기요
눌러눌러
소금에 밥이나 많이 묵고 가이소
윤사월 보릿고개
아베도 알지러요
간고등어 한손이믄
아베 소원 풀어들이련만
저승길 배고플라요.
소금에 밥이나 많이 묵고 가이소
*
여보게 만술 아비
니 정성이 엄첩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 있을락꼬.
망령도 감응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
니 정성 느껴느껴 세상에는 굵은 밤이슬이 온다.
- 박목월, 「만술 아비의 축문」 이남호 엮음 해설,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전문 - 목월 노래비, 목월 생가 사진
투박한 경주 사투리를 전면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 시는 1연과 2연의 화자가 다르다는 점이 우선 새롭다. 1연의 화자 만술 아비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내 눈이 티눈인 걸/아베도 알지러요.”) 까닭에 아베 앞에 축문 대신 자신의 맘을 눅진한 말투로 쏟아놓는다. 누대의 지긋한 가난을 못 벗어나, 망자가 그렇게 좋아하는 간고등어 한손도 차리지 못하고 소금에 눌러 담은 밥밖에 제사상에 올릴 수 없는 형편이지만 아베를 생각하는 마음은 지극하기만 하다.
2연에서는 그 모습에 감동한 또 하나의 화자가 말을 받는다. 읽기에 따라 망자일 수도 있고, 제3자(아마 이웃어른)일 수도 있다. 망자로 볼 경우에는 끝 두행은 시인의 발화로 봐야 하는데, 첫째 연과 같은 구조를 고려하면 둘째연 전체의 화자는 제3자라 봐야 한다. 제3자라야 “망령도 감응하여, 되돌아가는 저승길에”라는 말을 자연스레 쓸 수 있는 것이다. 망자인 아베는 아들 만술 아비의 정성에 감응하여 되돌아가는데, 하늘마저 그 정성에 울어울어(“느껴느껴”) 굵은 눈물(밤이슬)을 쏟아낸다는 이 절창은 후기시로 접어둔 『경상도의 가랑잎』 의 대표작이다.
박목월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준비하는 제사의식을 통해,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오늘 이 땅, 배우지 못한 경주 지역민들의 인정과 마음씨를 만술 아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승 저승 다 다녀도/ 인정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이 땅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 소중한 정신의 정수다.
다음 시편 역시 오늘의 경주인의 심성을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가을비 추적추적 안강 장날이었지요 메기입 어물 장수가 때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습니다 발길 뜸한 장날 푸념처럼 허연 김 피어오르고 간혹 빗방울이 국물 양 보태는 돼지 국밥
젖은 누렁이 한 마리 칭얼거리듯 얼쩡거렸습니다 복어처럼 부풀어오른 볼 실룩거리며 밥 씹다 말고 물끄러미 쳐다보다 눈길 마주치자 넙치 같은 손으로 입 훔치고는 그릇째 바닥에 내려놓더라구요 비칠비칠 기다시피 누렁이는 다가와 후루룩 쩝쩝 먹기 시작하는데
또 어디선가 중심이 무너진 검둥이 한 마리가 와서는 낑낑거리자 누렁인 가만히 머리를 비켜주는 것이었습니다 두 놈의 젖은 몸을 풋가을비는 더 젖게 하고 그들이 허겁지겁 허기 채워 가는 동안 그릇은 제 몸 안의 것을 조금씩 비워주었지요
나는 바다가 저장된 고등어 한손 샀습니다 사내가 건넨 고등어가 지느러미 날개로 날아오는 낮은 허공 아래에서 머리 맞댄 두 마린 그릇에 달라붙은 마지막 냄새까지 설거지하듯 핥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무릎 밑의 두 마릴 푸르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으로 검둥이의 뒷다리를 슬쩍 받쳐주는 것 같기도 했답니다 눈에선 금세라도 짠 바닷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았지요
- 김우전, 「한 식구」 김우전, 『숲 속 국어시간』, 애지, 2020.
전문 –안강 장날 사진
안강은 경주시가 거느리는 ‘읍’이다. ‘메기입 어물 장수’는 “메기수염의 늙은이”(백석, 「정주성」)와 같은 개성적인 외양인데, 볼이 동그랗고 입이 넉넉한 외양을 가진 어른으로 보인다. 추적추적 가을비 내리는 날 그가 때 이른 점심으로 빗방울이 국물을 보태는 돼지 국밥을 먹고 있는데, 젖은 누렁이 한 마리가 얼쩡거린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잔한 눈길이 “비칠비칠 기다시피 다가”오는 누렁이에게 먹던 음식을 그릇째 바닥에 내려놓게 한다. “후루룩 쩝쩝 먹기 시작하는 누렁이.” 여기에 먹는 입이 하나 더 등장한다. “중심이 무너진 검둥이 한 마리”. 이번에는 누렁이가 머리를 비켜 주어 둘은 같이 허겁지겁 먹어댄다. 시인의 눈은 여기서 “그들이 허겁지겁 허기 채워 가는 동안 그릇은 제 몸 안의 것을 조금씩 비워주었지요”라고 묘사한다. 우리는 어물장수, 누렁이, 검둥이에 더하여 그릇까지 연민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목도한다. 어물장수는 누렁이에게, 다시 누렁이는 검둥이에게 자신의 먹을 것을 양보하는데, 그릇 역시 자기 몸을 비워낸다. 모두 다 흠과 상처를 가진 존재들인 사람과 동물, 기물이기에 이 시는 더욱 빛난다.
“무릎 밑의 두 마릴 푸르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사내는 성별에 관계 없이 한없이 자애로운 대양(大洋)의 모성을 가졌다. 그러기에 “마음으로 검둥이의 뒷다리를 슬쩍 받쳐주는” 게 보일 수 있고, 무엇보다 “눈에선 금세라도 짠 바닷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을 수 있다. 어물 장수 사내는 “메기입”, “복어처럼 부풀어오른 볼”, “넙치 같은 손”, “푸르고 잔잔한 바다 같은 눈” 같이 온통 넉넉한 바다의 속성을 띤 신체를 가졌다. 다분히 시인의 의도성이 드러난 표현이겠지만 추적추적 가을비 속의 바다는 이 시를 보는 이들의 마음에도 애린의 ‘짠 바닷물’로 일렁이게 한다. 그래서 시인은 “사내가 건넨 고등어가 지느러미 날개로 날아오는 낮은 허공”이 되는 감동의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2)유적이 퍼올리는 상상력의 파노라마
집이 십만 호를 넘었고 탑이 기러기처럼 많았다는 통일신라를 기억할 것이다. 그 탑들의 흔적을 가장 많이 보관하고 있는 곳이 경주 남산이다. 이곳은 김시습을 비롯한 조선조의 문인들과 많은 현대 시인들이 노래했던 유물의 보고이다.
경주 남산 달밤에 가오리들이 날아다닌다
아닌 밤중에 웬 가오리라니
뒤틀리고 꼬여 자라는 것이 남산 소나무들이어서
그 나무들 무릎뼈 펴 둥싯, 만월이다
그럴 즈음은 잡티 하나 없는 고요의 대낮이 되어서는 꽃, 새, 바위의 내부가 훤히 다 들여다보이고 당신은 고요히 자신의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때 귀 먹먹하고 숨 갑갑하다면 남산 일대가
바다로 바뀐 탓일 게다
항아리에 차오르는 달빛이 봉우리까지 담겨들면
산꼭대기에 납작 엎드려 있던 삼층석탑 옥개석이 주욱, 지느러미 펼치면서 저런, 저런 소리치며 등짝 검은 가오리 솟구친다
무겁게 어둠 눌러 덮은 오랜 자국이 저 희디흰 배때기여서
그 빛은 참 아뜩한 기쁨이 아닐 수 없겠다
달밤에 천 마리 가오리들이 날아다닌다
골짜기마다 코 떨어지고 목 사라진 돌부처
앉음새 고쳐앉은 몸에
금강소나무 같은 굵은 팔뚝이 툭, 툭 불거진다
- 장옥관, 「가오리 날아오르다」 장옥관,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문예중앙 시선 21, 2003.
전문 - 용장사지 석탑 사진
경주 남산의 달밤에서, 천 마리 가오리들이 날아다니는 상상력을 개진하는 시편이다. 시간은 만월이 둥싯 떠올라 “꽃, 새, 바위의 내부가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밤, 달빛 그 신성한 빛으로 인해 낮동안 숨죽였던 돌들이 들썩이고, 뒤틀리고 꼬인 남산 소나무들이 무릎뼈를 편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누워있는 몸이 그들의 상승과는 반대로 “고요히 바닥으로 가라앉”는 실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귀 먹먹하고 숨 갑갑”해지면서 경주 남산의 달밤이 일순 바다가 되고, “산꼭대기에 납작 엎드려 있던 삼층석탑 옥개석이 주욱, 지느러미 펼치면서 저런, 저런 소리치며 등짝 검은 가오리”로 솟구쳐 날아오르는 경이를 본다.
이런 상상력은 흩어져 있거나 석탑에 달려있거나 간에 옥개석의 모양이 영락없이 가오리를 닮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가오리는 해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천천히 움직이는 어류이다. 가라앉아 있음과 날아다님, 달밤과 대낮, 현실과 환상이 이렇게 역동적으로 만난다. 시인은 여기서도 “무겁게 어둠 눌러 덮은 오랜 자국이 저 희디흰 배때기”라는 역발상을 보여준다. “희디흰 배때기”는 그대로 옥개석의 노출되지 않은 부분이다.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거운 돌을 덮어쓰고 풍상을 맞았던 몸이 그 설레는 첫 시간을 살아 가오리로 날아다니니 “그 빛은 참 아뜩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산은 이제 “달밤에 천 마리 가오리들이 날아다”니는 바다라는 공간으로 몸을 달리 한다. 시인은 달이 둥싯 떠오른 밤, 번성했던 왕조의 시간, 그 순수한 시간을 새로이 재현한다. 그 시간은 “코 떨어지고 목 사라진 돌부처/앉음새 고쳐앉은 몸에/금강소나무 같은 굵은 팔뚝이 툭, 툭 불거진다”에서 보이는 회복과 재생의 시간이다.
천년 세월쯤은 한 손에 얹고 비추는
환한 볕살 나눠 덮고 벌초에 든 고분들
머슴애 뒤통수처럼
고분고분 순하다
가을볕이 손수 든 바리캉 아래에서
슬며시 금관 벗고 수굿하니 디민 머리
바람이 쓰윽 쓰다듬어
고분고분 고분들
참하니 잘 다듬어진 평화로운 저 위엄
천년 이불 가벼이 다시 또 당겨 덮고
혼곤히 맑은 잠에 드는
고분고분 고분들
- 서숙희, 「고분고분 가을 고분」 서숙희, 『빈』, 작가, 2024.
전문 – 대릉원 사진
고분을 보며 고분고분한 중학생 머리를 떠올리는 시에서 우리는 말놀이와 함께 한껏 부풀어오른 해학과 익살을 본다. 신라는 천년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가졌지만, 고분을 둘러싸고 있는 잔디는 해마다 푸르렀다가 누렇게 변하는 순환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시간성이 다르다. 시인은 그 시간성의 결을 이용하여 이런 싱그러운 시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다.
첫수의 풍경은 고분의 가을 벌초 풍경이다. “천년 세월쯤은 한 손에 얹고 비추는/환한 볕살”을 보는 예지와 감각. 그 햇살 속에서 가을 고분들이 일순 “고분고분 순”한 “머슴애 뒤통수”가 되는 천진한 풍경이 눈앞에 다가온다.
둘째 수에서는 관점을 약간 달리하여 금관을 쓴 지체 높은 분이 그걸 벗고 “수굿하니 디민 머리”를, “바람이 쓰윽 쓰다듬어” 고분해졌다고 한다. 인부들의 예초기를 들고 벌초하는 장면을 “가을볕이 손수 든 바리캉”이라 직관하는 통찰 때문에 시가 더 깊어진다.
셋째 수는 벌초가 끝난 후의 풍경이다. 어느새 고분들은 “잘 다듬어진 평화로운 저 위엄”을 회복했는가? 아니다. “천년 이불”인 볕살을 다시 당겨 덮고 “혼곤히 맑은 잠에 드는/고분고분 고분들”에 이르면 아직 영락없는 철부지다. 우리는 이 시편에서 위엄과 천진, 햇살과 천년 이불, 영원과 현재, 성과 속이 넘나드는 경지를 맛볼 수 있다.
이렇듯 유적들이 오늘의 풍경 속에서 다양하고도 유쾌하게 변주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기만 하다. 다음에는 우주와의 화음 속에 선 ‘친구’들을 다룬 시편을 살펴 본다.
올봄 동네 친구들 계모임을 경주에서 했다
서울과 부산, 대전과 대구, 구미와 창원
그리고 청도와 밀양, 포항에서 온 친구들
불국사, 안압지, 첨성대를 보고 황룡사지
반월성도 올랐다가 포석정을 거치는 동안
누구는 원효와 요석공주가 되고 또 누구는
김춘추, 김유신, 선덕여왕이 되고 나는
피리 잘 불고 향가를 짓던 월명사 아니면
왕께 상서를 올리던 고운 선생이고 싶었다
남산 초입 삼릉솔밭에 이르러
칼국수와 파전, 돼지수육과 동동주로
신라 적 이야기와 어렸을 적 이야기
꽃은 더욱 피어나고 왁자지껄 그러다가
모두들 삼릉계곡 솔바람 쐬러 나갔는데
잠자코 말없던 점순이 삼릉 앞에서의 포즈
내가 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유방암 수술로 젖 하나 들어낸 점순이
삼릉의 세 개 젖무덤 중 하나 가져갔으면
싶은데, 둘레 소나무 가지 손을 뻗고 있다
그런데 삼릉 솔숲 안쪽의
석조여래좌상 머리는 누가 가져갔나?
― 이종암, 「삼릉, 세 젖무덤 중 하나는」 이종암, 『꽃과 별과 총』, 시와반시, 2024.
전문 - 삼릉 사진
이 시에서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호흡을 나누는 신라인들의 세계를 맛볼 수 있다. 시인이 구체적으로 아홉 개의 도시 지명을 나열한 것도 ‘모든 길은 경주로’라는 미학을 깔고 있었다 보여진다. “동네 친구들”은 불국사와 반월성을, 첨성대와 황룡사지를 걸으면서 신라와 경주의 시공간에 합류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원효와 선덕이, 월명사와 고운 선생이 된다. 신라의 시간을 숨 쉬고 살았던 오늘의 존재가 된다.
삼릉 솔밭 칼국수와 파전, 동동주와 돼지수육을 먹을 때는 이미 신라적 이야기와 그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는 어느새 섞여버린다. 경주의 유적을 걷는다는 건 ‘신라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을 함께 숨 쉬는 일’이고, ‘집안 장롱이나 밥상을 대하듯 불국사와 첨성대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유방암 수술로 젖 하나 들어낸 점순이/삼릉의 세 개 젖무덤 중 하나 가져갔으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유방과 젖무덤의 유사성과 함께 이는 인간의 일에 자연으로 표상된 역사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웬걸? “둘레 소나무 가지”가 그걸 알고 “가지 손을 뻗고” 막아버리는 반전이 일어난다. 신라의 젖무덤을 두고 ‘나’와 ‘소나무 가지’가 한바탕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화자는 “삼릉 솔숲 안쪽의/석조여래좌상 머리는 누가 가져갔나?” 하면서 딴전을 부린다. 이런 나의 생각(속말)을 소나무가 듣고 쳐다보는 사이 훔쳐가겠다는 유머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재치가 이 시에는 들어 있다.
다음의 시는 마을을 찾아온 엿장수에게서 신라의 고승 원효를 떠올리며 진정 내가 내놓아야 할 것은 고장난 마음이라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골목길에서 한 사내 떠들어 댔네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 나
빈병과 헌책, 고장난 선풍기를 들고 나갔네
그 사내 보이질 않고
사금파리 하나에 골목길이 환하였네
멀리 내 사는 마을까지 찾아와
고래 고래 외쳐던 까닭 몰라
텔레비전 보는 온종일이 허전하였네
혹, 그가 찾아다닌 것이
못 쓰는 물건들이 아니라 어디에도 쓸모없는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
프로야구 중계방송이 끝난 저물녘에서야
간신히 생각 하나 건져 올렸네
고장난 마음은 생각지도 못하고
못 쓰는 물건들만 들고 뛰어나갔던 어리석음들이
한꺼번에 노을빛으로 몰려들었네
가슴팍에서는 씁쓸함들이 박수를 쳐대는 소리
비웃는 소리 들리는 듯하였네
눈 베일 뻔했던 사금파리 하나가
세상 환히 밝히는 태양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컴컴한 어둠 속으로 날 감금시켰네
가위소리 끊어지지 않던 그날 밤
검은 하늘에 뜨는 검은 해를 보았네
- 전인식, 「엿장수 원효」 전인식, 『검은 해를 보았네』, 불교문예, 2019.
전문 - 원효 사진
진리는 어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으면서 그 본래의 모습을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에게만 언뜻언뜻 비치다 사라진다. 전인식의 시는 지금 눈과 귀 앞의 사물과 현상, 소리들의 근저를 꿰뚫고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경주를 “죽은 사람들이/밤마다 걸어나와/살아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가르쳐도 금방 까먹고/오래된 것들 위에 열심히 덧칠을”하면서 “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경주」) 변명을 해대는 곳으로 본다. 그러면서 “먼저 간 사람이 뒷사람/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불러/지붕 하나 방 한 칸/한 마을 다시 만들어 살아가는 마을”(「공동묘지」)을 직관하라고 깨우친다. 그의 시집 『검은 해를 보았네』에는 이런 깨달음의 환한 세계가 군데군데 펼쳐져 있다.
「엿장수 원효」에서 그 진리는 사금파리 하나로 드러난다. ‘나’는 골목길에서 떠들어대는 한 사내의 음성을 듣고는 “빈병과 헌 책, 고장난 선풍기” 등 못 쓰는 물건들을 들고 뛰쳐나간다. 그러나 그 사낸 이미 보이지 않고, “사금파리 하나에 골목길이 환하”게 비치고 있다. 문제는 텔레비전의 소리와 빛, 그 날름거리는 물(物)이 눈알과 몸을 사정없이 지지고 빨아들이는 시간에 그 사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 사건이, 바꾸어야 할 것은 “못 쓰는 물건”이 아니라 “고장난 마음”이었다는 노을빛 자책으로 이어지며 또 하나의 자아가 현실적 자아를 비웃는 소리(“가슴팍에서는 씁쓸함들이 박수를 쳐대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다.
화자는 “사금파리 하나에 골목길이 환하”고, “사금파리 하나가 세상 환히 밝히는 태양”이 되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그 사금파리 하나는 결국 예지의 빛이고, 그 깨달음을 준 원효가 드나드는 통로이고, 그 엿장수는 결국 원효가 된다. 이런 환한 순간은 시 「경주」에서처럼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가위소리 끊어지지 않던 그날 밤/검은 하늘에 뜨는 검은 해를” 아아, 나를 포함한 미망(迷妄)에 가득한 현생의 어두움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오랜 깨달음 끝에 나는 진여(眞如)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4. 맺으며 – 한국문화의 근원으로서의 경주
필자는 이제 한 편의 시를 통해 외국인에게 여전히 한국을 떠올리는 근원으로 작용하는 처소 하나를 살핌으로써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얘야, 이 사진 좀 보아라.
엄마가 한국으로 돈 벌러 갔을 때란다.
… 모처럼 쉬는 날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 열댓 명이
놀러갔었지.
아주 유명한 절이었어.
아름다운 축대와 돌계단,
사진엔 안 보이지만
오래된 돌탑이 둘 있고,
긴 회랑을 따라
철쭉꽃이 흐드러졌었지.
절 이름?
뭐더라. 엄마도 찾아봐야 알겠다.
네 아빠가 사준 것이라서
한 번도 안 쓰고 넣어둔
수건 한 장.
여기 있다,
풀, 국, 사 관광기념.
그래,
엄마가 지금 네 나이에 돈 벌러 갔던
먼 동쪽나라의
늦은 봄날 오후였다.
풀,국,사였다.
- 윤제림, 「풀국사」 윤제림, 『그는 걸어서 온다』, 문학동네, 2008.
전문 -불국사 사진
이 시의 스토리는 그 한 장의 사진에서 기인한다. 시적 화자는 아시아 어느 나라 출신의 어머니다. 이 시는 그녀가 청자인 딸에게 “아주 유명한 절”에서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청운교와 백운교, 연화교와 칠보고, 범영루가 소나무를 배경으로 서 있는 그 앞에서 “열댓명”의 처녀 총각 노동자가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때 시적 화자는 꽃다운 처녀였다. 사진 속에는 그녀를 사랑했던 현재의 남편도 있었나 보다. 그는 그녀의 마음을 사기 위해 ‘불국사 관광기념’이라 찍혀있는 수건 한 장을 선물했다. 그게 그녀의 마음을 뛰게 한다. “네 아빠가 사준 것이라서/한 번도 안 쓰고 넣어둔/수건 한 장”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설레는 시간의 감격과 잔상을 읽을 수 있다. 그 “수건 한 장”은 그녀를 향한 그의 프로포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이 시의 문맥으로 보아 이 세상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기억은 새롭고, 그 앞에서 아직도 그녀는 수줍어한다. 우리 삶에도 가끔 그런 설레는 ‘기억’은 봉인을 뚫고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떤 날을 다른 날과는 다르게, 어떤

첫댓글 손교수님 글을 여기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