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 후보 소개
임진각하면 한국전쟁으로 두 동강 나버린 이 나라의 대표적 통일관광지라는 거 다들 떠올릴 것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7km 떨어져있을 뿐인데 서울에서 경의선 열차를 타면 1시간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북한이 정말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딴나라가 아님을 느끼게 해준다. 눈으로는 빤히 보이는 땅에 발을 내딛지 못해 임진강역에 내려 쓰린 가슴을 달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임진강역에서 조금 떨어져 있을 뿐인 도라산 역까지만 가려해도 신분증 검사까지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마음은 또 어떻고.
평양이 멀지 않은데...
추석이다, 설이다 해서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북에 계신 부모님의 생신 때마다 보고픈 얼굴을 그리고 그리다 임진각으로 발길을 향하는 수많은 실향민 어르신들은 우리의 부모님, 조부모님 들이다. 북쪽에 핏줄을 남겨놓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아픔까지 알진 못한다 해도 임진각에 가면 우리와 닮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 코앞으로 보여서 찡한 가슴을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학창시절에 한 번쯤은 가게 되나보다. 부모님들은 서울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한국의 역사를 생생히 대면할 수 있는 이곳을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방문한다. 한국사람 뿐 아니다. 남북이 휴전하고 대치중인 한반도의 상황이 몇 십 년 째 세계적인 사건이라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들 방문한다. 그렇게 임진각 관광지로 찾아드는 내외국인 방문객이 한 해 200만 명이란다.
임진각을 찾는 이들은 마음속에 뭘 기대하는 걸까. 어차피 갈 수도 없는 땅 가까이나 가보자, 하는 것만은 아닐 텐데. 마음 한구석 허전함과 아픔, 슬픔을 무엇으로 달래려 임진각에 가는 걸까.
거기에 가면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만들어진 통일연못이 있단다. 한반도의 지형을 본 딴 연못이다. 연못은 남과 북을 가를 필요가 없겠지? 거기 사는 물고기는 서로 마주 서 있어야 할 필요 없겠지? 작년 세계평화축전을 하며 조성했다는 평화누리. 남북분단과 대치상황의 상징인 곳에서 정말 ‘평화세상’의 기운을 엿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화세상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북녘 땅에 갈 순 없지만 그 안타까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 북한관도 찾아봐야겠다.
그래서 임진각 관광지로 발걸음을 향한다. 이런 마음, 욕심 아니다. 임진각 관광지가 설마 이런 마음에 생채기 내진 않겠지?
그런데...
이렇게 멍에스러울 수가! 그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표관광지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이 허접스러움의 극치라니? 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본 기자가 이리 통탄하며 임진각을 멍에 후보로 당당히 추천하고 있는 걸까?
조목조목 살펴보자.
멍에 후보 추천의 배경
첫째, 북한관과 평화누리, 관리가 허술하다.
관광안내소에 있는 브로셔엔 북한관을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최근의 북한 실상을 담은 비디오를 상영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근데, 셔터가 굳건하게 내려져 있다. 북한, 망한 거냐? 북한관 건물 전체가 ‘운영중단’이었던 것이다. 관광안내소에 물어보니 리모델링 중이란 대답이 돌아왔지만 외관을 보면 현재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지난 가을 쌓였을 것이 분명한 낙엽이 아직까지 황량하게 뒹굴고 있던데.
굳건히 내려진 북한관의 셔텨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의 모습 말고, 평양방송에 나오는 익숙한 장면 말고 좀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북한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은데 셔터만 하염없이 쓰다듬고 왔다.
이 허전한 마음을 평화누리에서 달래보자.
바람개비 팔랑팔랑 바람의 언덕, 이건 좋은데..
임진각 평화누리는 2005년 경기 방문의 해를 기념해 지난 해 8-9월에 열린 세계평화축전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세계평화축전은 2백4억5백 만 원을 들여 진행하고 101만 명의 방문객을 불러들인 대규모 행사였다. 2백4억5백 만 원,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이 엄청난 재원은 국민들 세금에서 나왔을 터. 경기도 진짜 용썼다. 근데! 얘 지금 뭐니? 얘도 망한 거니? 한마디로 현재 임진각 평화누리는 ‘손’놓았다.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금을 모금하고 촛불을 점화하는 ‘생명촛불파빌리온’은 지금 모든 초의 불이 꺼져 있고, 초가 놓여있는 공간도 어둡게 방치돼 있다. 아름다운 마음을 필요한 곳에 전하는 이 초들이 지금은 초라하게만 보인다. 바로 옆 캔들샵에 있는 분께 “저쪽 불 안 들어와요?” 여쭤보니 “불이요? 안 들어와요. 아, 저녁에 들어오던가? 모르겠네.” 하신다. 축전 기간에만 진행할 단발성 행사였다면 대규모 실내공간을 소비해 촛불전시관을 만드는 것부터 무모했다. 그게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책임 있게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고.
유리창 너머 불이 꺼친 채 방치된 초 떼
야외공연장이라는데 ... 썰렁하고 황량하다.
‘통일기원돌무지’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고 북한의 결핵 어린이를 돕는 취지로 마련된 기부 프로그램인데 취지만큼 성과가 있진 않았던 걸까? 시민들의 바램이 적힌 돌조각이 뒤덮여 돌무지가 된 돌기둥이 몇 개 없다. ‘통일기원돌무지’가 아니라 ‘통일기원돌기둥’ 같다.
바램이 적힌 돌조각으로 돌무지가 되어야 하는데(왼쪽) 돌무지가 된 돌기둥은 약 1.4개라니(오른쪽)..
평화세상의 희망을 싹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둘째, 임진각 관광지에 왠 놀이공원?
김현정과 쿨의 노래가 주구장창 흘러나오는 ‘평화랜드’. 범퍼카, 바이킹 등이 있는 놀이공원이다. 임진각 관광지에 놀이공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임진각’이 갖는 의미나 특성 다 무시하고 ‘관광지’니까 놀이공원 정도 있어야 하는 건가?
한 쪽에서 북녘땅을 그리는 노래가 구슬피 들려오고 또 다른 쪽에선 철지난 가요가 발랄하게 들려온다. 방금 전 망배단에서 슬픔을 달랜 사람의 눈물 고인 눈에 이젠 촌스런 색깔로 옷 입은 놀이기구가 보인다.
임진각에 바이킹이 왠 말인가
이왕 만들어 놓은 거, 운영은 잘하고 있나 보자.
어른 기준으로 자유이용권이 15,000원이고 기구별로 티켓을 사면 한 번에 3,000원이다. 유명 놀이공원과 비교해보면 운행도 안하다가 ‘저, 왔거든요.’ 해야 운행을 시작하는 놀이공원 이용가격 치고 비싸다. 그러니 손님이 없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거의 버려진 놀이공원이 임진각의 수준만 떨어뜨린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가격은 또 비싸네.
셋째,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내려간다?
임진각 3층은 전망대다. 고향땅을 바로 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분들의 뜨거운 눈물이 맺혀지는 곳이다. 저 땅에 언젠가는 가볼 수 있겠지, 작은 희망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건물 내 계단을 이용해도 되고 옆 계단으로 쭉 오를 수도 있다. 분단된 지 61년째, 그러다보니 실향민들의 대부분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노인들이시다. 그 배려였을까?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다. 버튼 옆에 휠체어 표시가 있는 걸 보니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인가보다. 근데 그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계단으로’ 지하 1층까지 내려가야 하는 구조, 이거 심히 당황스러운 시츄에이션이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긴 있어야 하니까 겨우 구색만 갖춘 게 아닌가 싶다. 무성의와 형식적 삽질의 극치!
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이 계단을 '걸어' 내려와야 한다.
임진각 관광지에서 느끼는 실망은 이게 끝이 아니다.
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도라산 역 등을 돌아보는 DMZ투어는 ‘빨리 찍고 빨리 도는’ 정신에 투철하다. 2시간 30분 이라는 정해진 시간에 다 돌다보니 버스 놓치지 않으려 제대로 감상할 여유도 없다.
제3땅굴 입구와(왼쪽) 도라전망대(오른쪽) 천천히 둘러볼 시간 없다.
관광지의 꽃,은 아니지만 감초같은 기념품. 그런데 관광지의 특성을 강조하지도 못하고 방문객에게 의미 있는 상징물이 되지도 못하고 있다. '스크림' 마스크가 왠 말이냐.
임진각을 기념하는 막대풍선과 스크림 마스크?
한반도의 지형을 본떠 만들었다는 통일연못. 거기선 남과 북을 가를 것도 없이 물고기들이 자유로이 다니고 있겠지, 생각했는데. 이게 왠 걸. 물 빠진 연못에 수도관만 앙상히 드러나있다.
물빠진 한반도를 관통하는 수도관
그리고 또 있다. 음식이 맛이 없다. 맛없기 힘든 음식 돌솥비빔밥이 맛이 없었다. 도라지와 시금치, 채 썬 계란 부침이 올려진 돌솥비빔밥은 요상한 고추장과 섞여 '배고파서 다행히' 먹히는 음식이 됐다. 개중 사람이 많은 식당이었는데도. 다른 식당에서 떡볶이와 파전을 먹은 젊은 연인은 "떡볶이는 고추장에 소금 넣고 후추만 냅다 섞은 것 같구요, 파전은 노릇노릇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태워서 주더라구요."라는 말을 남겼다.
추천인 정리의 변
분단의 아픔을 달래며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통일관광지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임진각 관광지는 그 역사적 의미와 지정학적 위치가 민망할 만큼 너무나 부족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가슴의 슬픔을 달래려 찾은 사람에게 실망을 주며, 역사의 현장에 떨리는 마음으로 선 사람에게 떨림을 빼앗아가고, 먼 길 온 외국인 방문객에게 역사적 사실 이상의 특별함을 전해주지 못하는 현재의 임진각 관광지는 ‘멍에의 전당’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대안 제시
이곳의 운영을 총괄하는 파주시설관리공단은 임진각 관광지 운영에 관한 청사진을 갖고 있는가? 그저 현상이 유지되는 수준이 아니라 파주시의 대표적 관광지로써, 나아가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로 부끄럽지 않은 명맥을 잇기 위한 발전적 계획을 갖고 있는가? 지금 같아선 발전이 아니라 현상 유지도 힘든 것 같아 보인다.
이스라엘에 가면 마사다 요새가 있다. 마사다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손꼽히는 곳이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겠다며, 이스라엘 군에 입대하는 군인은 물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찾는 역사적 유명지다. 이스라엘을 찾는 관광객들 역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는다. 그렇다고 그곳을 화려하게 꾸민 것도 아니다. 그 곳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게 하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없게끔 할 뿐이다.
임진각에 삐까뻔쩍한 걸 더 만들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임진각을 더 재밌게, 더 화려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분단의 현장에 온 사람들에게 그거나 제대로 느끼고 돌아가게 해주세요.’ 이 말이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상, 멍에의 전당 후보지로 ‘임진각 관광지’를 쾅쾅 선포한다. 마지막 판단은 물론 독자 분들에게 맡긴다. 요 아래 배심원 평가 버튼을 누르고 판결 내려주시라.
지난 멍에의 전당 결과 보고
제6탄 찌질한 신주씨 : 총 57표 중 멍에 인정 30표로 과반수 이상을 획득하였기에 영광의 제6대 멍에의 전당에 등극함. 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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