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가 끝난 뒤 안방에는 빈소가 있었고 작은방에는 용이 부자와 영팔이 거처하게 됨으로 임이네는 부득불 판술네와 함께 객줏집에 묵을 수밖에 없었는데 임이네의 안달은 이미 모두가 예사했던 일. "비단가리 하나라도 챙기야제. 남 좋은 일 와 시킬 기고. 이게 다 누군 건데? 우리 홍이, 홍이 거란 말이다." 해가 뜨기도 전에 달려와서 들으란 듯 집 앞뒤를 쏘다닌다. 그리고 잡아먹기라도 할 듯 서슬 푸르게 영팔이 내외를 대하는 것이었다. 이틀 밤이 지난 뒤 "삼우제나 보고 갔이믄 싶지마는 아지매는 우리 판술네하고 함께 집에 가 있이소." 영팔이 입에서 말이 떨어지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임이네는 팔을 걷고 나섰다. "보자보자하니, 해도 가이방해야지 그래, 가라 오라 대관절 판술아 배가 먼데 그러요?" "여기 있어 봤자 동네방네 우세스럽소. 누구 귀머거린 줄 아나?" "그래 귀머거리가 아니믄!" "죽은 사람 얘기는 와 하고 댕기요! 우리 홍이가 있어서 사람 구실을 했다?" "그거야 틀림없는 얘기제. 우리 홍이 아니었으믄 상주 하나 없는 생이. 꽃생이큰 머하고 금생이믄 머하노. 가련한 그 꼴 보기가 참 좋았겄소. 내가 어디 틀린 말 했단 말이오?" "임이네를 잡고 말하느니 마차 끄는 말이나 보고 얘기하지." "허어어, 내 말 사돈이 한다더니, 사람 좋은 체 그러지 마소! 누가 그 속을 모를까 봐서? 속에는 열두 꼬리가 달린 능구렝이가 들어 있다 카이. 피도 살도 안 닿았는데 만사 제폐하고 여기 와서 친정 오래비 행세하는 거는 무신 까닭이오. 마음이 시꺼멓다! 마음이 그래 집 하 채라도 거기 몫이 될 성싶으든가? 입다 남은 옷가지 임자 없는 살림이니 나도 좀 차지하자 그런가?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내 눈이 시퍼렇기 살아 있는 이상은." "이런 벼락을 맞아도," "돌아앉은 구신도 물밥으로 달래야지 나한테 우떻기 했다고? 내 맘이 좋아야 모지라진 빗자리 하나라도 얻을 기구마." 못 견디겠던지 홍이 작은방에서 뛰어나왔다. 용이는 장례가 끝난 뒤 이불을 쓰고 송장같이 밤낮으로 자고 있는 상태였다. "가소! 가란 말이오!" 악을 썼다. "뭐라꼬? 니 누보고 하는 말고? 여기 이 사람보고 하는 말이제?" "어머니가 무슨 상관이오! 어머닌 아무 상관 없단 말이오! 권리도 없고! 끝내 그러면은 내 이 집에다 불을 지르고 말 기니가 네! 불을 지르고 싹 불을 지르고!" 하며 흐느껴 운다. 임이네 어세가 누그러진다. "지랄한다. 다 니 생각해서," "내 생각할 거 없어요. 어머니 마음보나 고쳐요! 무슨 경사난 줄 압니까? 남이 부끄럽소!" "어이구 자식도 에미 마음을 모르고, 우째 나는 이리 인덕이 없는고 모 르겄다." 흐지부지 끝이 났으나 판술네만 혼자 돌아갔고 임이네는 전과 같이 설치고 다니지는 않았으나 바위틈에서 대가리만 내밀고 외계를 살피는 뱀같이 객줏집 일각에 도사리고 앉아 사사건건 귀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객줏집으로 후퇴한 것은 용이와 홍의 날카로워진 감정의 칼날을 패해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공노인의 내외가 월선이 남긴 재산에 대하여 상당한 재량권이 있는 거승로 짐작한 때문인데 그러면 공노인 내외는 어째서 그처럼 사갈시하던 임이네를 붙여놓고 있느냐, 체면상 박절히 할 수 없는 때문이지만 그보다 용이와 홍이를 대접해서 형식이나마 임이네를 존중해주었던 것이다. 사흘 만에 용이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그는 정말 사흘동안 깊은 수렁과 같은 잠 속에 빠졌던 것이다. "홍아." 옆에 앉아 있던 홍이 "아부지." 반가웠던 것이다. "나 냉수 한 그릇 주라." "야." 홍이 냉수를 떠다 건네준다. 단숨에 다 마시고 빈 그릇을 놓으며 "며칠인가?" "사흘 밤 내리 계속해서 잤소." "음... 영팔이아제는 어디 갔노. 집에 갔나?" "아니오. 판술이옴마만 가고, 아제는 가라 캤는데 객줏집 할아부지가 좀 기다리라 캐서, 그라고 길상이아제도 그랬는가배요. 좀 있으라고," "그런데 어디 갔노?" "심심하다 하서 권서방하고 술 마시러 가싰는가배요." "..." "점심 좀 잡수시야지요?" "음, 그래야겄지." 이 무렵 영팔이는 박서방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초라 손님이 없고 일거리도 없는 거게에 권서방과 함께, 술은 권서방이 냈다. 조선서 공노인이 돌아온 후 공노인의 은덕으로 몇 군데 흥증을 붙여주어 한겨우 동안 호구지책은 되었으나 영팔이를 불러내어 술까지 사는 데는 권서방 나름의 은근한 술수가 있었다. 길서상희 뒤편에 있는 땅이 아직 팔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을 영팔이가 어떻게 좀 다리를 놔주었으면 싶어서다. "금년 설은 가꾸로 쇴는데, 여기 이렇기 앉아서 술을 마신께 별놈의 생각이 다 나누마." "그럴 거야. 그새 김서방도 많이 늙었거든." 술을 못하는 박서방은 곰방대를 물고 콧구멍에서 연기를 내며 말했다. "내가 여길 떠난 지도 칠팔 년 될거로. 그땐 신을 삼아서 박서방 한테 넘기고 주갑이를 만낸 것도 여긴데 광산에 일자릴 얻을라꼬 함께 떠난 일 하며... 지금 내 심정이 우떤지 당시들은 모를 기구마." 월선이 죽어서 쓸쓸한 것도 그렇지마 뜻하지 않았던 귀향에의 서광이 그의 마음을 몹시 복잡하게 한 것이다. 희비쌍곡이라고나 할까. 우직한 영팔이는, 자다가도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그 기막힌 소식을 되새겨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영팔은 부끄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초상집에서 혼자만 좋아하고 있는 것은... 참말로 나도 야박한 놈이구나. 월선이가 죽었는데, 죽은 지 며칠이 됐다고,' 그러나 어느새 행복의 나라고 떠날 배를 타기 위해 뱃머리에 서있는 아이같이 영팔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행여 배가 안 오며 어떻게 하나, 과연 나도 태워줄 것인가, 설레임은 불안과 초조로 변해간다. '이거는 상가집에 온 까매기 겉은 것 아니가. 남은 사램이 죽었는데 좋아서 지랄을 하고 있으니, 하기사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산사람은 살아야제.' 하기도 했으나 들뜨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또 의기소침하는 마음상태의 되풀이는 종내 신경질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죽은 김훈장도 모습을 드러내며 영팔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모르기는 왜 몰라. 누군 안 겪었나? 고향산천 버린 것도 마찬가지 사고무친한 곳에 와서 고생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래도 김서방, 우리네보담은 나은 편이야. 길서상회댁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함께 온 일행들이 일가친척같이 서로 의지하고 살았으니," 권서방 말에 영팔이는 "그거는 그렇소만, 김훈장이 돌아가시고 홍이네도 죽고 보니 그뿐이겄소? 참말로 말 못할 일이 많구마. 하기야 살아남은 사람은 궂이 일 마른 일 다 보지마는..." "아까 말이 났으니 그러는데 주갑이 그 사람 요즘에 어디 있는지 김서방 아요?" 박서방이 물었다. "일정한 거처가 있겄소? 연해주 방면을 돌아댕기겄지요." "글세 작년에 난데없이 여기 왔더구만." "섣달 그믐께 이서방하고 함께 왔지요?" "그랬다더구먼. 만나기론 초정이었지." "뜻밖에 산판으로 찾아왔십디다. 그래서 이서방하고는 용정으로 가고 나 는 집으로 갔인께." 박사방은 킥킥 웃는다. "하여간에 그만치 재미있는 사람도 드물 거야. 만났다 하며 얘깃거리가 생기거든. 그때 마침 나는 다리가 아파서 절룩거리고 있었는데 아 글세 만나자마자 다짜고짜로 발바닥에 침을 놔주겠다고 덤비지 않겠어? 침을 함부러 맞나? 잘못 놓으면 흔히 죽는 수도 있는데 뭘 믿고. 그래 안 할려고 했지. 했더니 허허 그러들 마시랑께 내가 박사방한티 해를 끼칠 사람인지 아닌지 잘 알 거 아니어라우? 해서 억지로 발을 내밀긴 했으나 아무래도 미심쩍어. 이놈의 뜨내기가, 싶어 겁이 더럭 나는 거라. 침을 막 놓으려는데 발을 빼버렸지. 오매 워째 이런다요? 그래 주서방이 의원도 아니겠고 했더니 누군 뱃속서부텀 배워 나오는 사람 있더란 말씨? 그러는 거 아니어라우, 사내장부 죽는 한이 있어도 간이 그러크름 콩마혀서야, 싸가지없는 소린 그만두고, 그래 할 수 없이 하하핫..." "그래 어찌 되었나." "씻은 듯이." "주갑이가 우리한테서 도망친 것이, 그 말 할라 카던 긴데, 우떤 의원한테 반해가지고 간다온다 말없이 가 기라요. 그 한의한테서 침놓는 거는 배웄을 기거마는," "그 얘기는 하더군. 한데 전과는 좀 사람이 달라진 것 같고." "그 한의가 누군지는 모르지마는 독립운동하는 사람 같더마." "옳아. 바로 주서방 하는 수작이 독립운동하는 것 같더라 그 말이오. 아주 유식해지고," "무식했일 때도 주갑이 하는 말은 멋인지 뼈대가 있었지요. 사람이 수숫 대처럼 남보기 헐렁벌렁해서 그렇지." 권서방은 주갑이를 모르기도 하려니와 무슨 궁리를 하는지 얘기에 끼여들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독립운동이고 머고우리네 무식군이야 무슨 일을 하겠나만 그것도 따른 식구가 없어야 말이지." "그러니까 처자식이 거물장이라 안 하요." "식구란 웃목에 밥상 보듯 늘 그런데 막상 떨치고 떠날라 하며 그게 그렇게 안 되더구먼." "없인께 그러지요. 내 없이믄 못 살기라는 생각을 한께요. 그까짓 묵고 사는 걱정만 없다믄 남자란," 하는데 권서방이 "김서방, 나 청이 하나 있는데," 허두를 꺼내었다. "야?" "부탁이 하나 있소." "나한테 말이오?" 어리둥절한다. "김서방도 알다시피 일정한 직업도 재주도 없는 내가 거간이랍시고," 시작하여 권서방은 신세타령을 한참 늘어놨다. "해서 얘긴데 힘 좀 빌립시다." "하참, 나한테 무시 힘이 있다고," "길서상희 바깥양반하곤 잘 아는 터가 아니오." "그거야." "다름이 아니라 장터에 그러니까 곡간 뒤에 빈터 말인데 그게 덩어리가 크거든요." "그걸 팔려고 내놨다는 소문은 벌써부터였지. 한데 아직 팔았다는 말은 없고 또 듣자니까 곡간도 그렇고 가게도 모조리 판다 하고... 김서방. 날 좀 살게 해주소. 그걸 내가 맡아서 팔아주면은 목돈을 자아 조그마한 가게라도 하나," 영팔이는 서희가 한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내 사정을 길서상희 바깥양반한테 말을 좀 해주며은." "나는 잘 모르겠소만 그런 일이라 카믄 공노인이," "그 늙인이 넋나갔어요.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저번에 조선 갔다 오 더니만 영 폭싹 늙어버리고 이번엔 또 조카딸이 죽고 보니," "그, 그것도 그렇겄소만, 말하는 기야 어렵잖지마는 그러세, 그 사람들 생각은 따로 있지 않겄소?" "되든 안 되든 말이라도 한번 건네주시오. 김서방 나 알지 않소?" "말만 엄벙했지, 재주는 없구먼." 박서방이 끼여들었다. "옳아, 내겐 시 짓는 재준 없네." "엿 고우는 내주도 없고," "그럼." "엿판 메고 떠난다는 얘기는 했었지." "안 되며 별수 있나. 사는 날가진 살아야지." "김서방." "야." "엿판 메고 떠나는 것 볼 수 없지. 악마구리같이 우는 새끼들, 젊은 마누라 뿌리치고, 안 그렇겠소?" "그야," 허허 하고 영팔이 웃는다. "하니, 어려운 일 아니거든 말 좀 건네주라고, 뜨물에도 아이 생기더라고 뉘 알아요?" "말이나 해보겄소. 그놈의 가나오나 계집 자식 땜에," "김서방이야 이젠 고생 다 했지. 범의 장다리 겉은 아들아이가 셋," "하긴 이자 다 컸지요. 홍이애비 일이 난감하지.' "난감할 것 뭣 있소.' 마음이 느긋해진 권서방이 명태를 찢어 초간장에 찍어서 입에 넣으며 말했다. "국밥집 아주머니가 집도 한 칸 남겨놨겠다 그간 번 돈도 수울찮을 건데 식구가 많단 말가," "속 모리는 소리 하지도 마소. 은금보화가 산더미겉이 쌓여도 그사람 맴이사," "죽은 그 아주머니 생각 땜에 그렇다 그거요?" "사내자식이 그런 거사 잊어부릴 수도 있겄지요. 거 세상에 사내치고 못 할 것은 계집 하나 잘못 마내는 일인데," "홍이엄마가 대단하긴 하지." "대단할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아니라요. 쇠라며 다 삼키는 부가사리라 카 이. 자식이고 가장이고 살가죽가지 뺏겨묵을 계집인께. 웬만하면 이런 얘기 하고 접지도 않고 사내가 얼매나 못났이믄 친구 계집 험담할 기요. 나는 피도 살도 안 닿은 남이지마는 우떤 때는 꼭괭이로 그만 콱 찍어 직이부맀이믄 싶을 때도 있다 카이. 젊은 시절에도 영악하고 욕심이 많았지마는 그래도 촌에 살아 물정은 모리더니 도방에 나와 세상물정을 알고서부터는 날로 느는 게 패악이고 날 잡아묵으소, 그 판이라, 이거는 머 남부끄 러운 줄을 아나," 흥분한다. "사내가 물러서 그런 게요. 이서방이 용해서 그렇다니까." "이서방이 용해? 그거는 모리는 소리라요. 그 사람이 그렇기 사는 거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고집이제, 순 고집이라요. 내용을 몰라 그렇지." "그래도 계집이란 말로 안 되면 매로 다스려야지." 그 말에 박서방 "장담하구먼요. 예사 제가 못하는 사람이 남의 말은 하기 쉽지. 하하 핫..." 놀려준다. "에키 순," "말이 무섭겄소. 매가 무섭겄소. 숨 끊어지지 않는 한... 용이 아니더믄 그 계집 뒤졌거나 다리 밑에 거적 쓰고 앉는 신세엿일 긴데 사람으 탈을 쓰고 그걸 모르는데 말해 머하겄소." 그 정도로 그쳤으며 임이네 과거사에 언급은 안 한다. 듣는 사람들도 남자들이라 미주알고주알 파고 묻지는 않았다. "아까 권서방은 집도 남기놓고 돈도 남기놨을 기라 했지마는 두고 보라고요. 참말로 구신이 곡할 일들이 생길 긴께," 영팔이는 한숨을 내쉰다. "사람이란 팔자가 기박하다 보믄은 인성이 달라지기도 한다고들 하더라만 설령 그렇다 카더라도 그것도 정돠 있는 기리요. 고슴도치도 제 샜기는 귀타 카든데 제 주둥이 하나밖에 모리는 그기이 어디 사람인가." 영팔은 꾸역구역 올라오는 것을 꾹꾹 누르듯 술을 들이켠다. "제에기, 아니꼬운 꼴 보기가 싫어서 한시라도 집에 가고 접지마는 무신일인지 좀 기다리고 있이라 카이." 영팔이는 박서방 가게에서 나온 뒤에 곧장 월선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할 일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헤매다가 해란강 강가의 살을 에는 바람을 받으며 서 있기도 하고 어두워진 뒤 술집을 찾아들었다. '왜 내 마음이 이리 이상한지 모르겄네. 정말로 고향에는 돌아가게 될 긴가? 그라믄 또 월선이는 정말로 죽었다 그 말이지? 나는 좋아해야 하나 실퍼해야 하나. 도라가문 아무 일 없일까? 왜놈의 순사가 잡으로 오지 않으까?' 또 하루가 지났다. 임이네는 여전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나발을 불어대고 있었다. "말로만 우리 홍이, 우리 홍이 했지. 챙겨보니께 세상에 옷 한가지 변변한 게 없더라니까," "그래도 홍이는 늘 부잣집 아들같이 차리고 다니든데?" "그러니께 그 계집이 예삿것이 아니다 그거 아니오. 겉만 번드르르 남보기 빈치만 낫지 옛이야기도 있지 않드가배. 투둑하게 입은 전실자식은 늘 오돌오돌 떨고 있는데 친자식은 얇은 옷을 입었는데도 추위를 안 타더라고, 해서 아바니가 옷을 뜯어본께 전실자식의 옷에는 갈대꽃을 넣었고 제 자식 옷에 찰떡 같은 목화솜을 넣었더라나?" "월선옥 아주머니한텐 자기 낳은 자식이 없지 않았수?" "그러니께 그 계집이 우리 홍이아배를 잡아놓을라꼬 사랑스럽지도 않는 우리 홍일 껌뻑 넘어갈 듯 좋아하는 시늉을 했제. 그러니 그년이 벌받아 뒤진 거라 카이. 죄는 지은 대로 공은 닦은 대로, 소문엔 돈 많이 벌었다 카더마는... 그 내숭스런 년이 그걸 어디다 묻어놨는지." "그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지 않우? 홍이아버지가 벌어준 돈도 아니겠고," 얘기를 듣는 상대도 얄미웠는지 쏘아준다. "그런 말 마소. 우리 홍이아배가 산판서 번 돈 꼬박꼬박 그년한테 갖다준 걸 몰라 그렇지." "그야 홍일 맡겨놨으니까," "맽기놨나? 뺏아갔지." "아 말이야 바로 하지. 산판에서 떼돈 벌었겠수? 국밥집을 했으니 망정이지 굶고 있으며 남편이 벌어다 아 먹였을라구? 그런 소리 자꾸 하면 임이엄마 얼굴 쳐다봐요." "알고 본께 한통소이었구마. 돈 벌었다 하는 말이 머가 우째서? 영낭들고 나서는 거를 본께 이 집에도 그 돈 묻어놓은 거는 아니오?" 돈 잃어버린사람은 세상 사람이 다 도둑이로 뵌다. 임이네 경우도 월선이 남겼을 것이 분명한 돈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추적하다 보니 의심 안 가는 곳이 없다. 해서 시비가 붙는데 월선에게 호감적인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월선에게 동정이 모이니까 공연히 심통나는 사람도 있고 국밥집 하던 여자가 호사스런 장사를 치렀다 하여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한 얘기다. "흥! 미꾸라지 용 됐네. 무당딸, 술 팔던 여자가 그런 꽃상여에 실려갔음 나는 금은보화로 만든 상여 타고 가야겠구먼." 그런 여자를 만나면 임이네는 신이 별의별 해괴망측한 얘기를 꺼내며 월선을 헐뜯는데 예를 들자며 고향에 있을 때 관계했던 사내가 한둘이 아니라는 둥, 숲속에서 백정놈한테도 치마를 걷었다는 둥 거의 자신이 밟아온 이력이 어느새 월선의 이력으로 둔갑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이네는 월선을 헐뜯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죽이 맞는 사람과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그렇지만 시비까지 벌여가며 월선의 편역을 드는 사람들에게조차 접근해가는 이유는 돈의 행방에 대한 무슨 단서라도 잡자는 속셈에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수법을 월선에게 적용했던 것이다. 남한테 돈을 주어 이자놀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이네는 어떤 것도 알아내질 못하였고 환장이 된 그는 영팔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며 왜 영팔이가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무느냐, 왜 나를 따돌리느냐, 그렇다면 그럴 마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초상이 끝났을 때 먼저 가라 했던 영팔의 말을 새삼스레 꺼내어 시비를 건다. "내가 와 가아! 내가 와 가느냐구! 여기가 어딘데 내가 가아! 그년 땜에 그 촌구석에 쫓겨가서 못할 고생 다 했는데 그것만 생각하믄 이가 뼈가 갈리는데 내가 와 가느냐고? 당연하게 있일 사램이 있는데 자개가 가라 마라, 거기서 가라고! 무신 상관이 있어서 이 집에 죽치고 있느냐 말이오! 그래 내개 객줏집에 가 있고 김서방은 여기 와 있어? 멋 땜에? 집 임잔가, 집 임잔가, 말이오! 그년 서방이든가 말이오! 내 참말로 이런 경우없는 일 듣도 보도 못했구마!" "미친개를 갈밨이믄 갈밨지 아무리 입에 거품을 물어도 내사 볼일 다 보고 갈 긴께, 그라고 여기 임이네 집이 아니고 홍이엄마 집인께 다른 데 가서 잘 생각 없구마. 임예 집이라믄 있이라고 고사를 해도 있일 사람 아니니께." 영팔이도 어지간히 약을 올린다. 그러나 정작 일이 크게 벌어지기는 그날 밤, 홍이는 두메 하숙방으로 자러 가고 작은방에는 길상과 영팔이 용이 세 사람이 함께 자리를 했다. "진작 이런 얘기를 했어야 하는 건데 나는 나대로 좀 깊이 생각해봐야겠기," 길상이 말을 꺼내었다. "실은 월선아지매 생전, 내게 돈 팔백 원을 맡긴 일이 있어요. 아지매 말이 홍이아배는 내 생전 이 돈을 받지 않을 것이니 네가 가지고 있다가 전하라 그런 말 하더군요. 아지매 말이 또 홍이 공부도 시키고 장가도 들일 양으로 그 돈을 모았다는 겁니다. 나로서는 아지매가 말한 대로 용이아제한테 드리며 고만이겠으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나는 그 돈 받을 수 없다." 용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길상이나 영팔이 다 예상한 대로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돌아가신 아지매가 그런 말을 하긴 하더구먼요. 그 성미에 받지 않을 거를 생각해서 그럴 경우 내가 그 돈을 맡아 있다가 홍이를 위해 필요할 때는 써달라구요." "그럼 그기이 좋겠구마." 영팔이 말했다. "그러나 제 형편이 그럴 수 없게 됐어요." "그럴 수 없게 되다니?" "그건 차차 알게 될 겁니다. 그러고 멀지 않아서 아제들은 고향으로 내려가게 될 건데 그렇담 영팔이아제가 그 돈을 맡아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 그러야 모, 못할 것도 없지마는." 이때였다.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객줏집을 나와 온종일 싸돌아다니면서 동정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던 임이네는 길상이 가는 것을 보았다. 필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직가만 임이네는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벽에 붙어서서 방안의 말을 엿들은 것이다. 외치고 나오는데 주저할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와 내 자식 거를 김서방이 맡을 것꼬! 에미 애비가 눈이 시퍼러니 살아 있는데 에미 애비 손에 쥐어줄 일이지 누가 어느 놈이 그것에 손댈 것꼬!" 방문을 막차고 들어왔다. "이 여자가 와 이러제?" 용이는 남을 보듯 중얼거렸다. "하여간에 이 일을 옳게 끝단지우지 않는다믄 생사가 날 긴께! 나도 이잔 오기요! 오기! 누가 죽고 사는가 보자! 천금 겉은 내 자식! 그래 우리 홍이가 김서방 자식인가 길상이 자식인가! 우째서 우째서 내 자식 일을 좌지우지한단 말입네까!" "자식이야 임이엄마 자식이지요." 길상이 말에 "그러면은! 그러면은, 우째서 내가 임이엄만가 홍이엄마다! 홍이엄마!" "그걸 누가 모르나요? 하지마는 내가 맡아 있는 돈은 실상 여기있는 사람, 어느 사람의 돈도 아니고 홍이 돈도 아니지요. 죽은 월선아지매 것이고 보면 월선아지매 생각대로 해야지요." "그 말 한분 잘했다! 그 여자는 홍이한테 주기로 했다니까 그거는 홍이 돈 아니구 누구 돈이고? 그런데 우째서 길상이가 가져야 하고 또 김서방이 가져야 하노!" "가진다기보다 맡아 있는 거지요." "맡아 있거나 가져 있거나 매한가지, 그 돈 이래 내놔!" "용이아제가 안 가지겠다 하였소." "애비는 마다해도 에미인 나는 가져야겠다. 내놔."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 영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 돈 못 맡는다! 나라 금사자리를 준다 캐도 안 맡을란다! 이 더러븐 꼴을 삼천갑자 동방석이라고 보까? 당할 때마다 명이 십 년씩은 줄 긴데, 두 사람이 알아서 의논하라고," 하면서 방문을 거칠게 닫아붙이고 나간다. "임자 거기 좀 앉아." 용이 음성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임이네는 시위를 하듯 거친 몸짓으로 무릎 하나를 세우고 되바라진 눈을 휘두른다. "그 돈, 임자 줄 수도 있다. 내가 받아서 임자 주믄 될 거 아니가?" "그, 그야, 어차피 홍일 위해 쓸 거 아니오." 당장 회색이 돈다. "그러나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신 일인데요? 하라 카는 대로 하겄소." "돈을 받는 대신, 그 대신 해야 할 일은 우리하고 인연을 끊는 일이다. 홍이에미도 아니고 내 계집도 아니고 임자가 멀리 떠나든지 아니믄 우리가 멀리 떠나든지." "뭐라꼬요?" 그렇게 말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임이네는 놀란다. 길상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임이네는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말 대신 울기 시작한다. "우째 그리 야속한 말을 합니까? 진작부텀 눈에 까시처럼 하더니, 사람이 죽어서 이제는 없는데 그래도 내가 까시가 됩니까?" 그것이 헛울음이라는 것은 뻔한 일, 눈앞에 다가온 황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임이네는 아니다. 두 사내는 침묵으로 지켜본다. 그 큰돈을 어디서 만져보노, 논을 사도 서른 마지기는 더 살 긴데, 좋은 논 서른 마지기만 해도 나락을 팔구십 섬은 너끈히 추수할 기고, 이삼 년만 추수한 나락으 굴리믄 백 섬지기 백오십 섬지기는 누워서 떡먹기... 청국놈 땅 부치다가 일어서믄 남는 것은 이불보따리뿐인데, 이때를 놓치면 그런 돈 꿈에나 만져볼까? 헛울음을 울면서 임이네 생각은 재빠르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불속에 태워버린 돈 생각이난다. 그 돈까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팔자가 기박하여 그렇기 못 봐서 밤낮으로 천대하고, 그래도 갈데올데 없으니 오늘까지 살았소마는 이자는 못 보아서 애간장을 태우던 사람도 죽고 없는데 우찌 그리 막말을 합니까. 이녁 마음만 고치묵으믄 남부럽잖은 자식 남과 같이 키워서 노리 보고 살 긴데," 그래도 말이 없자 초조해진 임이네 "정 그렇다믄 좋소. 나 소리도 매도 없이 이녁 앞에 나타나지 않을 긴께." 순간 용이 주먹이 임이네 얼굴을 친다. "아아나 쑥떡!" 당장에 임이네 코에서 코피가 펑펑 쏟아진다. "홍이? 천금 같은 자식?" "아제! 이런 안 됩니다!" 길상이 얼른 임이네 상체를 뒤로 젖힌다. 임이네는 숨이 넘어가는 듯 나자빠진다. 용이의 잔인한 웃음이 방안을 흔들어댄다. "길상이 보았나? 돈이 있으며 저 계집 혼자 아귀가 되는 거 아니다! 나도 홍이도 아귀가 된다! 아니면 살인 죄인이 되든지." 길상이 얼른 밖으로 나가 바가지에 물을 떠온다. 용이는 물건을 보듯 임이네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얼굴에 물을 끼얹고 벽에 걸려 있는 수건을 찬물에 적셔 이마에 올려놓고 그러는데 길상의 손을 확 뿌리치며 임이네는 일어나 앉는다. 바다에서 숨돌리는 비바리의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고 나서 "이렇게 되고 보믄 이판사판," 말을 시작하려 하는데 용이 말했다. "길상아." "네." "나가자. 안 나가면 나는 사람을 죽이겠다." "네. 나갑시다." 길상은 정말 살기를 느낀 것이다. 한 팔은 용의 팔목을 잡고 다른 한 팔로 벗어놓은 외투 털모자, 그리고 벽에 걸린 용이 흰 두루 마기와 털모자를 주섬주섬 거둬들고 밖으로 나온다. 집을 나서서 골목에 나온 뒤 비로소 길상은 뚜벅뚜벅 걸어가는 용이에게 두루마기를 걸쳐주고 털모자를 씌워주고 그런 뒤 자기도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다. 바람은 살을 에듯 차다. "윌 집에 갑시다, 아제." "아니다. 가믄서 얘기 끝내고 작은아버지댁에 들리겄다." "작은아버지?" "객줏집 말이다." 용이 입에서는 처음, 공노인을 두고 작은아버지란 말이 나왔다. 삼촌도 아니요 아저씨도 아닌 작은아버지, 그 호칭 속에는 무한한 애정이 서려 있었다. 길상의 가슴에도 용이에 대한 애정이 솟는다. 인간에 대한 애정. "아까 자넨 영팔이더러 그 돈을 맡으라 했는데 그거는 처음부터 안 될 얘 기네. 나는 사내니까, 하는 오기에서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홍이에미가 원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피땀을, 홍이는 그것 없이도 큰다. 그것 없이도... 홍이가 기어 공부를 하겠다믄 무신 짓을 하더라도 내가 공부시킬 것이요, 하지마는 자식은 제 부모가 젤 잘 알지. 홍이는 공부에 별로 생각이 없다. 이곳에 있자 카니 공부랍시고 한 거지. 또 장가드는 일도 그렇다. 형편 되는 대로 정화수 한 그릇 가지고 예는 올릴 수 있는 거고, 피땀나게 살다 간 사람 땜에 우리가 편하게 살아 옳겄나?" 용이의 음성은 잔잔하였다. "그래 이거는 내 생각이네만 그 돈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그렇고 홍이 처지로서도... 길가에 버릴 수는 없는 돈 아니가? 그러니 독립운동 하는 곳에 기부하는 게 좋겄다. 홍이에미가 홍이에게 남긴 거라면 홍이가 그걸 맏아서 독립운동 하는 데 썼다 할 것 같으면 과히, 안 그렇나?" "아제!" 길상이 용이 팔을 꽉 잡는다. "아제!" "나보고 그럴 것 없다." "어지 그리 못살았습니까. 아제하고 아지매는," "아니다. 우리는 많이 살았다.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았네라." "그, 그건 압니다." 용이하고 헤어진 길상은 울면서 집에 돌아갔다. 용이 객줏집에 들어갔을 때 공노인과 방씨는 용이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아랫목에 끌어다가 앉히려 한다. 그러나 용이는 기어 윗복에 서서 "작은아버님 그리고 숙모님," 공노인과 방씨의 눈이 화등잔만큼이나 커다래진다. "절 받으십시오." "응, 응, 그, 그러지." 공노인은 엉겁결에 안고 방씨도 낯선 집에 온 것처럼 두리번거리다가 공노인 옆에 앉는다. 용이는 절을 올린다. "거, 거 이제 앉게, 앉아요." "예." 두루마기 자락을 걷고 앉는다. 방씨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공노인은 쉴새없이 눈을 깜박거린다. "그, 그렇잖아도 내, 자네하고 김서방을 만나려 했는데 오늘 밤은 김서 방이 거기 간다기에." "예, 방금 왔다갔십니다." "그래?" "이서방." 방씨가 새 사위를 본 듯 은근하게 부른다. "저녁은 묵었나?" "예, 묵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홍이에미가 살던 집 말입니다만," "응." "지는 내일 남은 일을 해놓고 떠날 작정입니다." "떠나기는? 뭣하러 떠나누?" 그 말 대답은 없이 "홍이에미는 불쌍하게 살다 간 사람입니다." "..." "해서 작은아버님께서 알아 하시겠지마는 불쌍하게 살다 간 사람의 집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이 좋은 듯싶어서," "그게 무슨 소린가." "내일이라도 여기 방 하나 치워주시므은 빈소를 옮기고, 별거는 없지만 세간도 옮기고 홍이에미 옷은 무덤가에 가져가서 사루울 작정입니다. 아무튼 집은 싹 비워야겠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구렁이(임이네)가 들앉을 것이란 말은 차마 입밖에 내질 못한다. 그러나 공노인는 짐작을 한다. "당분간, 홍이는 이곳에서 빈소에 상식도 올리야 하고," "그것은 어찌 하든, 내 말이나 들어보게." "예." "아무튼 자네하고 김서방은 이제부터 고향 갈 차비를 차려야 하네. 아니 고향이 아니지. 진주로 가는 게야. 길서사회도 여름, 늦어도 여름에는 이곳을 떠날 걸세. 허니 자네들은 미리 가 있는 게야. 진주에 가면은 관수, 관수를 알지?" "예. 압니다." 용이는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거기 있어서 다 주선하게 돼 있고, 머 자세한 얘기는 떠날 때 해도 늦잖으니, 일단 퉁포슬로 돌아가서 차빌 서두는 게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