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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04
꿈
▲ /일러스트=이철원
2025년 새해 첫날, 어떤 꿈을 꾸었나요? 꿈은 여러 가지 인지적, 생리적 과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현실과 꿈은 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쁜 꿈을 꾼 날은 마음이 뒤숭숭해지지요.
옛날 사람들은 꿈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한다고 믿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꿈과 엮여 있지요. 태몽에서 곰을 보면 남자아이가, 뱀을 보면 여자아이가 태어난다고 믿었어요. 최고는 역시나 용꿈이었습니다. 검은 용이 나오는 꿈을 꾸고 낳은 아이의 이름을 현룡이라고 짓고, 그 꿈을 꾼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고 지은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율곡 이이였지요.
이보다 좀 더 원대한 꿈도 있었습니다. 조선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는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아기 막동(莫同·막둥)이가 떠오르는 태양 안에 앉아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웃 노파가 해몽을 해주었는데 "태종이 왕이 되어 아기를 안아준다"라는 뜻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 이 꿈 이야기는 정종 실록에까지 실리지요. 그러나 이 꿈은 당시 아기였던 셋째 아들 세종이 다음 왕이 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느 쪽이건 정말 영험한 꿈입니다.
이렇게 다들 좋은 꿈을 꾸고 잘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할까요. 이때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남의 좋은 꿈을 사는 것입니다.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끈 신라의 장군 김유신에게는 두 여동생 보희와 문희가 있었는데, 어느날 보희는 자신이 눈 소변이 경주 시내를 가득 채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보희는 이 꿈을 민망하게 생각했지만 여동생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지요. 이후 문희는 오빠의 친구 김춘추와 뜨거운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합니다. 이후 문희는 태종무열왕의 왕비이자 문무왕의 어머니가 되고, 후손들은 왕손이 되어 나라 안을 가득 채웁니다.
이런 문희의 이야기 때문일까요. 꿈 '매매'는 후대 사람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최근엔 조선 시대에 꿈을 사고판 매매문서도 발견되었지요. 그럼 특히 비싼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용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대구에 살았던 박기상은 1814년 용들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이 꿈을 과거 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가는 친척 동생 박용혁에게 팔았습니다. 꿈의 가격은 무려 1000냥. 당시 번듯한 기와집을 살 수 있는 엄청난 가격이었지요. 지불 기한은 '과거 급제해서 관직에 오를 때'였습니다. 아쉽게도 박용혁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으니 거래는 성사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이런 거래를 맺는 것만으로도 서로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판 사람은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 좋고, 산 사람은 새해 운수가 좋으리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이한 작가·'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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