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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가야산(伽倻山 677.6m)은 칠갑산에서 북진하는 금북정맥 상에 솟아 있다.
예산군과 당진군, 서산군 등 3개 군에 걸쳐 우뚝 솟아있어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그윽한 풍경을 자아낸다.
가야산 정상인 가사봉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그래서 가사봉 북쪽 2km 거리인 석문봉(石門峰 653m)을 오르는 데 그친다.
그러나 예부터 이곳 주민들은 석문봉을 주봉으로 생각해 왔다.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와 가야사터에 맥을 대고 있는 봉이 바로 석문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야산 산행은 남연군 묘가 있는 상가리에서 옥녀폭포를 경유하여 석문봉을 오르내리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가야동이라고 불리는 가야산 석문봉 동쪽 아래의 넓은 골짜기에 99개의 암자가 있었으며,절터의 중심지라고 전해지는 곳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묘(南延君墓)가 자리 잡고 있다.
가야사 터가 2대에 걸쳐 왕이 나온다는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이를 믿은 대원군이 자기 부친의 묘를 연천에서 이곳으로 이장하기 위해 1844년에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던 이 가야사를 불태워 버렸다.
천년고찰 가야사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번 가야산 석문봉 산행은 백제의 미소라 일컬어지는 국보 84호인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보기위함이다.
백제의 미소길은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와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를 잇는 6.54㎞에 이르는 연결도로이다.
이 길은 남연군묘를 시작으로 대문동 쉼터, 가야산 수목원, 으름재 쉼터, 보원사지, 서산 마애삼존불 등 가야산의 빼어난 자연과 문화자원이 산재해 있다.
산행코스: A) 남연군묘-미륵불-석문봉-옥양봉-퉁퉁고개-백제미소길(또는 수정봉)-용현리 보원사지-마애 삼존불(5시간)
B) 남연군묘-미륵불-백제미소길-퉁퉁고개-용현리 보원사지-마애 삼존불(6.5km,천천히 4시간)
※ 산행과 문화유적 답사 ◇ 회비: 30,000원
예약문의: 총무 김외숙 010-3945-9438
산행문의: 대장 김복현 010-9208-0812
백제미소길 6.54km (예산 상가리→서산 용현리)
국보 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6년이 지난 날 보원사터를 조사나온 홍사준 선생에게 어느 나무꾼이 서산마애불을 설명한 말이 다음과 같다.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지고 집어든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권에서...>
상가리 미륵불(上加里彌勒佛)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돌기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머리에는 풀과 꽃무늬가 장식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의 가운데에는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다.
얼굴은 길쭉하며 양 볼에 두툼하게 살이 올라있다. 왼쪽 어깨를 감싸며 입은 옷은 선으로 새겼으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양 팔은 몸에 붙인 채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었고 왼손은 손바닥을 배에 대고 있다.
이 불상에 표현된 양식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이런 유형의 불상은 충청도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1822)의 묘이다.
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말을 듣고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절을 불태우고 탑을 부순 후 이장했으며, 이장한지 7년 후에 차남 명복이 태어났는데 그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그 후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으며, 이 일로 대원군이 서양에 대한 배척을 강화하는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날머리인 용현리 보원사지에 있는 보물들이다.
보물 104호인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보원사(普願寺)터 서쪽의 금당터 앞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석탑이다.
보원사는 백제 때의 절로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절터에는 이 탑 외에도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기단 옆면에는 사자상을 새기고 윗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을 2구씩 새겼다.
8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보물 102호 '보원사지 석조'
보물 103호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물 105호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보물 106호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