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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관절염 외 4편 ‧ 이상윤
심사평|체험이나 상상력으로 부조해내는 능력 ‧ 박남희
심사위원|박남희 이영식 김광기 나금숙 안차애
관절염 외 4편
이 상 윤
어머니 무릎에 강이 흘렀다
걸음을 옮기면 강물소리가 들렸다
그 강엔,
물렁뼈에 의지한 지구의 중력과
어머니가 걸어 온 세상의 길들이 산다
오래전 샛강이었을 때
어머니는 운동화를 깁다 새벽 강을 건넜고
빈 쌀독을 다독거리다 눈 덮인 겨울 강을 건넜다
늘어나는 나의 발 치수에 맞춰
강폭은 넓어지고 수심은 더 깊어졌다
어제도 차오르는 강 수위를 낮추려
약손한의원과 샛별약국으로 가는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고 난 어머니는
광목천으로 시린 강의 마디를 여몄다
언제부턴가 내게도 강물소리가 났다
어깨에 샛강이 흘렀다
강물이 등줄기를 타고 잠자리까지 차올랐다
아침저녁 강물소리를 들으려
귀는 강의 초입에 쫑긋 서 있었다
산다는 건 몸에 강을 하나씩 들이는 것이다
저녁 바람 뒤끝이 젖었다
내일도 강물소리가 무척 요란하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 파스를 붙였나 보다
마을에 어머니의 강물냄새가 난다
직립의 숲
도시는 직립하는 것들의 숲이다
바람도 때론 직벽 앞에선 직립을 강요받는다
만일 직립이 완고하다면
바람은 생각을 수평으로 비틀게 된다
아니, 비트는 게 아니라
직립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추락을 피해 직립을 선택한 인류가
층을 올리는 건 모순이다
혹시 직립의 궁극이 추락은 아닐까
계단이 필요했다는 가설이 힘을 얻는다
추락하기 위해선
기어올라야 하다는 게 그럴듯한 이유다
계단을 만들지 못한 인류가
간혹 샤워 부스에 올가미를 건다
직립의 자세로 매달려야 바닥에 닿지 않는다
새들은 그 사실을 알고
허공을 수평으로 눕히기 위해 날개를 만들고
아침이면 서둘러 나무를 떠난다
조간신문이 말한다
어제 밤 도시의 숲에서
누군가 마흔을 하루 남기고 직립을 버렸다고
하지만 그건 일종의 오보다
죽음도 직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어제 직립을 버린 것이 아니라
직립을 바닥에 눕혔던 것이다
빈집
바람이 채질하던 덕석에 가을볕이 시끄럽다
가을 장맛비에 손을 탄 장독이
몸을 뒤집어 할머니의 손맛을 털고 있다
습관을 지운다는 건 자신을 뒤집어야 하는 거다
들깨 턴 밭에서 사부작대던 저녁이
댓돌 무릎까지 차오르자
단단한 바람이 수수깡 벽을 잡아 비끄러맨다
새 앞가슴으로 앉아 군불을 품던 아궁이는
설마른 할머니의 기억을 때고
굴뚝 그늘엔 산까치의 발자국이 부산스럽다
대추나무 손가락 마디가 굵다
늙음이란 순을 낸 마디에 굳은살이 서는 거다
문지방 시리게 들락거리는 문풍지를
마을 개가 꼬리가 길다고 늙은 아재처럼 나무란다
곡간 창엔 들쥐들이 달을 켜고
할머니가 내어 준 세간을 새벽까지 정리한다
겨울이 마을 들머리에 왔는지
낙수그릇에 잔별들이 이를 달달 떨며
큰 눈이 오던 날
뒷산으로 마실 간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운 수족관
마트는 동물원이야 동물들은 질소에 잠들어 있어 건드리면 빳빳하게
성을 내 세게 움켜쥐면 펑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녀석도 있어
아이가 들어왔어 고래밥을 한 개 집어 드네 고래에게 밥을 줄 모양이야
고래밥이 정말 고래의 밥일까
아니라면, 동해에 서식하던 고래가 진화해 육지로 걸어 나온 걸 거야
동해노래방에서 고래를 사냥하던 기억이 나 그녀는 고래의 속눈썹을
가졌었지 고래 숨구멍 같은 입으로 긴 한 숨을 뱉어내곤 했어
어쩌면 고래밥은 수족관일 수도 있어 오징어, 거북이 심지어 한 쪽 어깨가
허물어진 별들도 살거든
수족관에 어떻게 그 많은 바다생물이 살까
수족관은 심해처럼 깊을 지도 몰라 그게 어부가 커다란 그물을 들고 마
트에 오지 않는 이유일 거야
수족관은 왜 내 마음처럼 깜깜한 걸까
햇살이 들면 어둠에 익숙해져버린 물고기들의 마음이 쉽게 상하기
때문일 거야
어! 수족관 뒷면에 입장료가 붙어 있네 이건 분명 내 기다림의 시간일 거야
떨어진 수족관에서 어류들이 우루루 흘러나왔어 사각형 어보가 어류들의
이름과 서식지를 설명하네 그녀의 서식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집으로 가는 어두운 골목길
젖은 별이 그리움에 부레처럼 부풀어 올랐어 나는 그녀가 없는 수족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수족관을 흔들어봤어 스윽스윽 그녀와 듣던 파도 소리가 들려
새의 독백
바람도 직사각형으로 불어들었어 새장 밖 하늘은 쇠창살이 그려진 푸른
도화지야 밤하늘을 울음소리로 건너는 새들의 대오(隊伍)도 빗물이 덧칠
한 얼룩이지 난 점점 변해가고 있어 알람기능이 내장 된, 단단한 절망의
돌기들로 덮여진 로봇 새로 쇠창살의 두께를 가늠하던 부리엔 밤낮 기어
나가려는 생을 풀칠하던 사료들이 자라고 있어 의도를 간파한 눈초리를
모조의 지저귐으로 받아내지 깃털이 뽑힌 날개는 엉성한 손가락으로 진화
해 가고 있어 새장 속에 난 늘 부재중이야 머릿속엔 하늘 길에 대한 지도
가 두 발의 잔 지문처럼 그어져 있어 어둠이 세상 틀의 경계를 잠으로 돌
려보내면 난 흘러나와 나미비아의 등이 굽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를 바라
보고, 킬리만자로의 초원에서 잠이 든 표범의 허름한 어깨를 쓰다듬고,
시베리아의 저녁 굴뚝에서 사각으로 접혀진 내 영혼이 아직도 흐르는 오로
라의 강을 바라보곤 해 오늘도 밤을 틈타 비행 연습을 해 혹시, 정말 혹시,
올지도 모를 그 어떤 날의 딱 한 번의 우연을 위해
[당선 소감]
다시 길을 시작하며
그 길이 그곳으로 가는 길이라 믿고 걸었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길을
잃은 사람을 보듯 바라보았습니다. 가끔 위로한다며 혀를 찾습니다. 어두운
길에선 산 위에 달을 등처럼 걷고 걸었습니다. 난 되돌아와야 할 길을 걸었
던 것입니다. 이제야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 보입니다.
문우들과 삼겹살에 소주를 먹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술 받기 전 마취될
때의 느낌 같은, 그런 뜨겁고 묵직한 뭔가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한 동안 먹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가 뚝뚝 끊
겨 들렸습니다. 순간 삼겹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득 내 마음이 삼겹살을
많이 닮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많은 불면의 시간들이 내 젊음의 날수만
큼이나 겹겹이 쌓여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인은 세상이 참 냉정하다고 한숨 쉬는 사람입니다. 상처를 준다고 맨 앞줄
에 서서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다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산다고 큰 소리
로 외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고 속살이 돋을 거라 조곤조곤 속삭
이는 사람입니다. 비록 추워도 먼저 옷을 벗어 자신의 상처 난 부위를 보여주는
뜨거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슬픔과 치유를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꺼진 소파에 앉아 이미 가버린 기억을 만지작거리며 남은 날을 보내실 어
머니와 항상 힘이 되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글
공부를 함께 해준 「작가이야기」와 「한국작가회의 양주지부」 문우님들께도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아낌없는 응원으로 용기를 주신 수필가
이현재 선생님과 시를 흘린 채 걸어오던 내게 주워 온 내 시들을 슬그머니
손에 쥐어준 한복용 선생에게도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새 신발을 마련해주신 계간 <시산맥> 심사위원님들 앞에 작은
감사의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이상윤
1969년 경북 경산 출생, 국민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광영고등학교 재직,
제 6회 시산맥 신인상|작품평
체험이나 상상력으로 부조해내는 능력
신인상 심사를 하다보면 기대보다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경우보다 그 반대의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것은 우리 시단에 신인을 등단시키는 문학잡지가
너무 많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학잡지가 많다는 것은 글을 쓰는 이들
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지만, 잡지를 운영하는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신인을 뽑는 일이 잡지의 중요한 역할이라면 이왕이면
실력 있고 가능성 있는 신인을 뽑고 싶은 것이 선자(選者)의 마음이다. 시산
맥이 이번 신인상부터 당선 상금을 두 배로 올려서 공모를 시행한 것도 이러
한 잡지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이런 시산맥의 취지를 반영하듯 이번 공모에는 평소보다 많은 70여분의 작
품(평론 2편 포함)이 응모되었다. 멀리는 해외에서부터 연령별로는 고등학생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작품이 응모되었는데, 응모된 작품의 질을 따지
기에 앞서 응모자들의 열정에 고마움과 감동을 먼저 느꼈다. 하지만 이들 작품
을 모두 당선작으로 할 수는 없으므로 심사위원들은 정밀한 심사에 들어갔다.
이들 작품 중 결선에 오른 작품은 평론 2편을 포함해서 10편이다. 두 분 응모자
의 평론은 심사 결과 아직 전문적인 비평의식과 안목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
배적이어서 아쉽게도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시산맥은 앞으로 단 1편의 평론
이 응모되어도 글의 수준이 시산맥의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이라면 기꺼이 선
정할 예정이다. 평론가를 지망하는 분들의 많은 응모를 기대한다.
이번 심사는 인사동 근처에 있는 시산맥 사무실에서 결선에 오른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읽고 A,B,C로 등급을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최종 결선에 오른 시작품은 강정아, 김태인, 노현수, 박은석, 신종수, 오광석,
이상윤, 조철형 등 여덟 분의 80여 편의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등단작으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하지만 작품을 꼼꼼히 살펴본 결과 1)몇 작품은 좋은데
작품의 질이 고르지 못한 경우, 2)표현이나 상상력은 좋은데 시적 울림이 약한
경우, 3)작품이 지나치게 장황하여 응집력이 떨어지는 경우, 4)한자어나 개인
상징 등을 사용하여 시가 보편성을 잃고 생경하게 읽히는 경우, 5)지나치게
고전이나 소재주의에 집착하여 패러디시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 6)시적
기교가 앞서서 체험이나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 등의 지적되었다.
이러한 냉정한 평가를 뚫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작품들은 신종수의
「네버랜드에서 가져온 시간」 외 9편, 김태인의 「눈 사골국」 외 10편, 이상윤의
「라브카페」 외 9편 등이다.
먼저 신종수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일상사의 직, 간접적인 체험들을 형상화 하려는 노력이 엿보였지만, 시의
길이에 비해서 응집력과 울림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흠이었다. 이 시인은
앞으로 시의 몸에 숨어있는 감각을 짚어내어 울림을 만들어내는 법을 터
득해나갈 필요가 있다. 시의 울림이나 응집력은 체험과 상상력과 시적
언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총체적인 화음 같은 것이다.
다음으로 김태인의 작품들은 시적 대상을 관찰해서 효과적으로 운용해내는
언어표현 능력이 돋보였으나, 시인의 체험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일반론에
그치거나, 의도적인 한자어 사용으로 문맥의 흐름이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
었다. 김태인의 작품들은 당선작과 끝까지 겨루어 당선의 영예는 차지하지
못했으나 낙선작 중에서 가능성을 가장 많이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을 마지막까지 고심하게 만들었다.
끝으로 이번에 시산맥 신인상 당선자로 선정된 이상윤의 작품들은 시적
주체나 대상들을 시인의 체험이나 상상력으로 부조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특히 이번에 당선작으로 선정된 「관절염」, 「직립의 숲」, 「빈 집」, 「그리운 수족관」,
「새의 독백」 등은 체험과 상상력이 균형을 이루면서 일정한 울림을 내장하고
있는 작품들이어서 미더웠다. 우선 어머니의 관절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 「관절염」은 “어머니의 무릎에 강이 흘렀다/ 걸음을 옮기면 강물소리가
들렸다/ 그 강엔./ 물렁뼈에 의지한 지구의 중력과/ 어머니가 걸어온 세상의
길들이 산다”와 같은 구절에서 보듯이 체험과 상상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
면서 언어표현의 묘미마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다음으로 ‘직립의 숲’으로
상징되는 문명을 비판적 안목에서 그리고 있는 「직립의 숲」은 ‘직립’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삶의 모순을 설득력 있게 형상화 해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빈집」은 할머니가 살던 빈집을 의인화하여 과거 할머니의 구체적인 삶과
연계해서 정감 있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돋보였고, 「그리운 수족관」은 마트를
동물원으로 비유해서 사랑으로 맺어진 개인사를 ‘고래밥’이라는 과자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법이 이채로운 작품이다. 끝으로 새장 속에 갇힌 새의 독백형
식으로 되어있는 「새의 독백」은 비교적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시인의 뛰어난
관찰과 표현 능력에 의해서 현대인의 고독한 삶이 구체성을 얻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상윤 시인의 시들은 시산맥 신인상 등단작
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등단작으로 선정되지 않은 「라브카페」
와 같은 작품이 고흐의 삶을 울림 있게 형상화하고 있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시인의 체험과 일정한 거리감을 노정함으로써 패러디시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재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고 아쉽게 낙선한 분들께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글: 박남희)
심사위원: 박남희(글) 이영식, 김광기, 나금숙, 안차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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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상윤 시인 합니다
막걸리 한 잔
난 다른 나가 없는데
누구세요 ㅎ
어찌되었든 감사합니다.
축하해 .....
글에 날개가 달리길 바라네...^^
고맙구먼.ㅎ
이상윤 시인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함께 걷는 시의 길이 곱고 아름답길 기원합니다.
성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산맥 식구 되심 축하드립니다. 이상윤 시인님 환영합니다.^^
만나뵙게 되서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