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정이 담긴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을 지닌 멋쟁이 할아버지!
사람들은 나이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은 할 수 없다는 선을 긋는다. 조금은 낯 간지러울 법한 내용이 담긴 초대장은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더 보내기 힘든 법으로 아예 단정 짓는다. 아마 체면을 중시하는 습관 탓이리라. 나이가 들면 따뜻한 마음 자락을 내 보이는 일이 더 소중하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일일진데 왜 그런 말이나 이야기를 하는 걸 마다하는지 사람들의 세상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 많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않은 수락산 마당바위를 지나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면 언덕 위에서 건너편으로 동화속 그림같은 집이 한 채 있다. 「하이디하우스」(031-841-8803)다. 1990년대 초반 꽃동산이라는 곳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전원카페의 효시로 인정받는 집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곳은 동화 속 이야기같은 추억들이 곳곳에 묻어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늘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뜨락에서 펼쳐지는 곳으로 이곳 주인이 바로 나이를 떠나 얼마간은 낯 간지러운 초대장을 보낼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할아버지다. 그는 봄철이면 손수 텃밭을 일구고 검정고무신 차림으로 찾아오는 길손들을 맞아 들꽃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며 세상 사는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슬그머니 풀어놓을 줄 안다.
나나 몇 사람 그 이와 오랜 인연을 맺은 이들은 그를 알름할배나 촌장님이라고 부른다. 하이디하우스는 문화가 살아있는 작은 마을이고 그는 그 마을의 촌장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불현듯 눈이 내리는 길을 달려가다 전화를 걸어 “지금 이곳은 설국으로 내일 아침 나무들이 온통 눈꽃을 피워 근사하니 한 번 오시지요.”하면 금시로 달려오는 여전히 나이를 잊고 낭만을 즐기는 이다. 그의 마을엔 자연히 그런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남과 밤, 그곳엔 다양한 이들이 각자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는다. 사실 매년 맞이하고 보내는 송년과 새해지만 그곳에서는 모두 한 마음으로 손에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기에 특별하게 사람들의 추억으로 자리하게 된다.
예전 그도 가난한 청년시절을 보냈다. 사랑 하나만 믿고 지금의 아내와 상경을 했지만 세상이 그리 쉽게 그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았다. 생선장수를 하며 새벽에 받아온 생선이 서서히 물이 가는 걸 애타는 심정으로 도랑에 앉아 헹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세상살이의 고난을 몸으로 겪으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런 그가 50대로 접어들며 아내의 여고동창들의 모임에 동반하여 아내와 아내의 친구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어울리는 모습을 본 이들이 한마디씩 했단다.
“우리 친구가 시집은 정말 잘갔네. 저렇게 자상하고 좋은 신랑이 어디 흔한가.”
추운 겨울날 마당가에 피워놓은 모닥불처럼 따뜻한 사람! 들꽃 한송이 피는 모습에도 감동 할 줄 아는 사람, 안개가 소리봉자락을 타고 내려와 그의 작은마을 뜨락을 서성이면 그 자체로 배부르다고 흐믓한 표정으로 차 한 잔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차홍렬 촌장이다.
겨울나무
차홍렬
나무도
겨울이 되니
그는 한 마을의 촌장인 동시에 세상을 담는 사진작가며 시인이다.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작은 것 하나도 예사로 비치지 않는 까닭이 바로 사진과 시인의 감성에서 출발한다. 낙엽이 지는 모습을 어느 순간 놓친 경우 불현듯 나무 밑둥치에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는 발이 시리면 잠을 잘 수 없는가보다는 발상을 끌어낸 그의 눈이 맑다. 나무도 사람처럼 발이 따뜻해야 잠을 잘 자고 새 봄을 맞을 것이다. 그런 시인의 방엔 늘 불이 밝혀진 채 하나의 낱말이라도 어디 흘려놓지는 않았을까 챙긴다. 사실 경기가 어려워지면 그도 마찬가지로 곤란을 겪을터인데도 여전히 더 어려운 이들을 잊지않고 매년 그들을 찾아 온기를 나눈다. 그런 그이기에 아주 작은 소망을 늘 이야기 한다.
다시 장가든다면
차홍렬
다시 장가든다면 충청도 어디쯤 야트막한 산아래 양짓녘 동네 어귀에 자동차 세워두고, 느긋하게 살아가는 장인어른이 좋아할 정종 한 병 들고 도랑 하나쯤 훌쩍 건너뛰어 논두렁길 질러가면, 빠알간 감나무 아래 대대로 살아온 야트막한 기와집, 넓은 앞마당엔 누렁이가 한가로이 삭임질 하고 높은 관을 쓴 장탉이 여러마리 암탉을 거느리고 채전밭 두엄더미에 올라 제왕인 듯 노닐고 볕발 아래 백년손 맞아주는 장모님 따라나온 복실이도 꼬리 흔드는, 그런 집안에 맞사위로 장가들어 대소가 청년들이 권한 술을 밤 늦도록 받아 마시고, 광목띠로 양발 동여매여 대들보에 매달려 북어채로 발바닥 얼럴럴 불이나게 얻어맞고, 사위 죽는다고 장모님께 엄살도 부려가며 막걸리 너댓말에 통돼지 한 마리 잡겠노라 허풍도 치다가, 고자누룩한 마당에 별 떨어질 때 군불 지핀 사랑방에 들어, 분내음 나는 새색시 곁에서 꽃잠 깨면 창호지구멍으로 드는 햇살 따라 소여물 끓는 냄새 솔솔나는 그런 아침을 맞을거야.
그의 시를 보면 곰살맞은 소년이 떠 올려진다. 제목이 다시 장가든다면이 아니라면 그저 이런 여인을 하나 만나길 꿈꾸는 이 시대와는 거리가 조금은 먼 소년이 하나 있는가 보다 싶은 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꽃잠을 자는 사람이다. 그 꽃잠의 달콤하고 향긋함을 은밀히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 나누어 즐길 줄 아는 여유로운 이다. 그런 그는 지금도 주말이나 성탄전, 송년의 밤엔 무대에 올라 찾아 온 이들에게 실팍한 추억의 꽃들을 한 아름씩 안겨준다.
오솔길에 내린 눈도 성급하게 치우기 보다 적당히 밟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를 아는 이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무대에서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팬인 그가 ‘카루소’를 열창하면 모두들 숨 죽이게 만드는 힘도 지니고 있다.
여기 빛나는 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일어나 테라스를 불어대면, 여기는 소렌토 만의 정면 한 남자가 한 아가씨를 포옹하고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네 그러면 그는 목소리를 맑게 하여 노래를 다시 시작하네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바다의 엷은 빛도 사라지고 아메리카의 밤을 생각하며 나는 홀로 등불을 들고 방황하네 하얀 뱃자국이 솟아오르며 음악 속의 회환을 느낄 때면 피아노 소리는 고조되는데 그러면 달빛이 구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 모습은 부드럽지만 죽음을 닮고 소녀의 시선을 응시하면 그것은 바다와 같은 청록빛 그러면 예기치 않게 흐르는 눈물 이는 그를 숨 막히게 하고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오페라 가수의 가능성이 감각의 연극을 거짓 이야기로 꾸미는데 그것은 트릭과 흉내로써 이루어지고 이윽고 전혀 다른 것이 된다네
너를 쳐다보는 두 시선 그렇게 와서 너를 보면 너는 그 가사를 잊지 않으리 혼동하며 생각하며 그렇게 모든 것은 왜소해지고 아메리카의 밤은 그렇게 거기서 돌고 보면서 사는 인생 뱃자국이 솟아오르는 뒤로 인생도 그렇게 끝날 것임을 그리고 인생을 충분히 생각도 못한 채 천사의 소리만 느끼며 그의 노래를 다시 시작하네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당신의 목소리는 아주 들떠서 나는 벌써 잘 안다네 여기 하나의 사슬이 있어서 그것이 풀리면 피가 흐르는 것을
원어로 부르던 노래를 다시 한 번 번역으로 부르면 사람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Caruso
Qui dove il mare luccica e tira forte il vento
커피 한 잔 이라도 손수 내주어야 마음이 편한 모양으로 그는 오랜 세월 잊지않고 찾는 이들에게 정이 가득 넘치는 덕담을 잊지않는다.
“오늘 아침에 까치가 생강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걸 보고 내 니 올 줄 알았다.”
생강나무나 산수유 가지끝에 몽울진 봄꽃을 미리 꺼내 희망을 전달할 줄 아는 차홍렬 촌장과 함께 하는 송년의 밤이 은근히 기다려진다. 더러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 온 이들을 위해 넉넉히 뜨락에 모닥불을 지펴 추위를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그의 따뜻함을 알기에 더욱 그곳이 그리운 건지도 모른다.
오늘쯤 미리 전화를 해야겠다.
“촌장님 장독대에 된장 맛 잘 들었는지요? 냉이 한 줌 챙기고 도치알탕 재료 들고 연말에 찾아 볼 생각입니다. 반가운 이들 모여 송년의 밤 다시 하얗게 지세워 보기로 하지요. 이제 몇 번이나 더, 밤을 하얗게 눈처럼 밝혀보겠는지요. 오랜만에 촌장님께서도 약주 한 잔 하실 준비 해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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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사님 당장 뛰어 가고픈 "하이디하우스" 소개 감사합니다. 촌장님도 꼭 뵙고 싶고 도시에 찌꺼기가 낀 영혼을 조금은 맑게 하고 싶군요.
아, 제가 이번 토요일에 서울을 가는데 그날 하이디하우스에서 저녁 7시 30분 토요음악회겸 번개를 할까요. 찾아가는 길은 링크된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
지난 봄엔가...이곳 카페 회원이신 이만원님께서 사진게시판에 다녀온 흔적을 남긴..그 카페가 맞군요웰빙 퓨전요리가 준비되어 있나요 어떤 음식이 특히 입맛을 당기는지요...이곳이 맛집게시판이기에...
다양하고요. 소주도 제법 맛(?) 좋답니다. ^^
한사님 제가 이번 토요일은 약속이 있어 기회를 못 잡는군요. 아쉽습니다. 다음에 작은 음악회도 준비해서 가보면 좋겠습니다.
학무님 말씀에 동감
몇해전...결혼 기념일에 그곳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했었지요 가을이었는데..고즈녁하고 운치가 있었어요 구불 구불 산속에 어찌그리 멋진 곳이 있던지 감탄이 저절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