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니!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란 책 제목에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다. 누구나 ‘이 정도는 괜찮겠지’ 혹은 ‘상대방을 위해서’라며 적당한 거짓말을 하면서 산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나마 착한 사람이라고 자평하거나 타인들과 구분 지으려 한다. 적당한 거짓말은 과연 무엇이고 적당하지 않은 거짓말은 무엇인가, 선한 의도와 선하지 않은 의도는 누가 결정하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름 중요한 위치에서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법의 잣대를 피해가기 위해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말이다. 정말로 몰랐거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무책임과 냉소로 일관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통이 터지고 허탈감마저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더욱 더 걱정스러운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의 전염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행동을 보게 되면 그 행동에 전염돼 그것을 따라 하게 되고, 한 번 부정행위를 하고 나면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그 행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나름 정직하려고 애를 쓰던 사람들도 주변 혹은 사회지도층들의 부정행위를 접하게 되면, ‘다들 그러는데 나도 해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최초의 부정행위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 및 그 시점 이후의 자기 행동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겉으로 보기에 악의가 없는 행동들이라 하더라도 이를 줄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다. 사소한 부정행위를 줄일 경우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 정직해지고 그 결과 부정부패는 점점 설 곳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 듀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면서 행동경제학의 권위자인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이란 책에서 작은 거짓말과 사소한 부정행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은 구멍으로 인해 거대한 댐이 무너지듯, 개개인들의 작은 거짓말과 사소한 부정행위로 인해 사회 전반에 온갖 거짓과 부정부패가 만연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댄 애리얼리 교수는 사소한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해보기 위해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시각장애인으로 분장한 한 사람과 평범한 한 사람에게 공항에서 시내까지 왕복 20회 택시를 이용하게 하면서 두 사람 모두 초행자인 것처럼 행동하도록 했다. 시각장애인으로 분장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 가운데 누가 더 많은 요금을 지불했을까? 언뜻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면, 택시기사들이 속이기 쉬운 시각장애인에게 더 많은 요금을 받았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고, 시각장애인으로 분장한 사람이 오히려 더 적은 택시비를 지불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덕적 동기부여와 경제적 동기부여에 의해 행동하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정직한 인물로 봐주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속여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두 가지 동기부여가 충돌할 경우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란 게 작동하는데, 사소한 부정행위를 저지른 후에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결국 택시 실험에서도 기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시각장애인에게 훨씬 더 쉽게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을 속이는 것에 더 큰 죄의식과 저항감을 느꼈고, 오히려 멀쩡한 사람을 속이면서 스스로를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자평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에 소개된 또 다른 실험 이야기다. 댄 애리얼리 교수는 한 대학교 기숙사에 몰래 들어가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에 미끼를 던져놓았다. 기숙사 전체 냉장고 가운데 절반에는 콜라 6개들이 팩을 넣어두었고, 나머지 절반에는 1달러짜리 지폐 6장을 넣어 놨다. 냉장고 안에 있던 콜라와 지폐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기숙사 생활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쉽게 예측할 수 있듯, 콜라는 72시간 안에 모두 없어졌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1달러짜리 지폐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작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진짜’ 돈은 훔치기 꺼리지만, 현금 가치가 명시적으로 표시돼 있지 않은 물건에는 쉽게 손을 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냉장고 안에 든 콜라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사무실에 있는 볼펜이나 A4 용지를 집에 가져가서 쓰는 것에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 아닐까?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란 게 있다. 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것을 방치해 두면, 나중에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범죄심리학 이론이다. 진실을 둘러싼 지루한 공방과 계속되는 거짓말, 거짓과 부정에 점점 더 둔감해지는 국민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