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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金正恩 | |
김정은 (2018년 3월)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3대 지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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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2011년 12월 17일 ~ |
전임: 김정일(제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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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일 | 1984년 1월 8일(1984-01-08) (34세)[1]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거주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
본관 | 전주 |
학력 | 베른 공립중학교 9학년 중퇴 김일성종합대학 학사 |
정당 | 조선로동당 |
부모 | 아버지 김정일, 어머니 고용희 |
배우자 | 리설주 |
자녀 | 2남 1녀 (장남 미상, 차남 미상, 장녀 김주애) |
종교 | 무신론 |
김정은 金正恩 | |
생애 | 1984년 1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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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본관 | 전주(全州) |
별명 | 은하(별칭)[2], 박운(가명) |
부모 | 김정일(부), 고용희(모) |
배우자 | 리설주 |
친척 | 할아버지 김일성 작은할아버지 김영주 고모 김경희 고모부 장성택 이복형 김정남 동복 형 김정철 동복 여동생 김여정 |
복무 | 조선인민군 |
복무 기간 | 2011년 ~ 현재 |
최종 계급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
지휘 |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
김정은(金正恩[3], 1984년 1월 8일[1]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세우는 등 차츰 영향력이 커지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부터 국가안전보위부장
그는 조선로동당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는 조선로동당전주김정일과 고용희[4]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영도자"로 칭해지고 있다. 2012년 4월 11일에 아버지 김정일원수[5]
2016년 5월 9일 자신의 조선로동당 제1비서 직책을 폐지하고 노동당 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권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했으며,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대신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김정은은 1983년 (주체 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 겸 수반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 네번째 부인인 고용희[6] 친형 김정철이 있었고, 여동생으로 1987년에 태어난 김여정김정남
당초 그의 출생 정보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출생연도에 대해서 김일성 (1912년생)과 김정일 (1942년생)의 출생연도와 끝자리를 맞춰 1982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며, 김정일과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겐지는 1983년생이라고 밝혔으나, 후에 대한민국 통일부와 국가정보원[1] 출생지에 대해선 평안북도 창성군이라고 알려졌으나,[7][8] 실제로는 강원도 원산시에 위치한 김정일의 별장 "602호 초대소''에서[9][10][11]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김정은의 어린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프랑스를 거쳐 16세 때 스위스스위스 베른의 공립 중학교에 유학[12][13],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학교 기록 등에 따르면 베른 공립 중학교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일어 보충학습을 받은 뒤 1998년 8월에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해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9학년이던 2000년말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담임이었던 시모네 쿤은 마이니치(每日; 매일)신문에 “그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서 ‘내일 귀국한다’고 말한 뒤,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13]
200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2009년 북조선의 최고인민회의와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확인하였다.
귀국 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 및, 조선노동당과 주변의 주목을 받기 시작[14]했으며, 2004년에는 아버지인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 인민군에서 하전사로 입대하였으며 하전사로서 1년 6개월동안 군복무를 한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진급[15]했다.
한편 김정일은 2009년 3~4월경 김정은을 국가안전보위부장[16] 그 과정에서 군사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우동측 부부장이 김정은의 보위부를 통한 엘리트 장악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16]
2000년대 중후반부터 당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로서 실질적인 무력정치활동이 시작되었다.
2010년 11월 23일, 대한민국북조선아사히 신문[17] 이것이 김정은 후계 구도를 더욱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김정은은 북측에서 포병 전문가로 미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18]
한편, 대한민국의 시민단체 모임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번 연평도 포격이 "계획적인 한국 영토 조준 공격,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 대량 살상용 방사 포탄 사용 등의 공격 유형으로 보아 연평도 포격 도발은 유엔헌장 제2조 4항, 로마규약 제8조에 저촉되는 전쟁 범죄"라고 강조하며, 북한의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하였다.[19]
이와 관련해서, 북한측은 도발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010년 12월 28일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당시 전사한 조선인민군 5명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20]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시점은 2009년으로, 대북 소식지가 이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21]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으며,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와 같은 국내 대북 전문가와 미국[22][23]
그러나 머지 않아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중국에 알리는 등[24] 후계자 지명이 구체화 됨에 따라 후계자 지명은 기정 사실화 되었으며, 김정일 유고시 김정은의 군부 장악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도가 뒤를 잇기 시작했다.[25] 그 후 2010년 9월 27일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26], 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북조선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27] 그동안 유년기, 청소년기의 사진으로만 알려져왔던 김정은의 얼굴은 후계자로 확정된 9월 28일 노동당대표회의 기념사진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다.[28] 10월 6일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을 경축하는 행사를 벌인다.[29]
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 구축은 북조선 내외에 불만을 가중시켰다. 북한 내부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반발 조짐이 일면서 김씨 부자를 비방하는 전단이 돌거나 폭약이 밀반입 되는 사건이 발생[30] 했으며,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31]
2011년 12월 17일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이 사망하자 김정은은 일단후계자로서의 업무를 맡게 되었고, 12월 30일에는 조선인민군[32]2016년 5월 북한 노동당 7차 조선 당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당 위원장으로 추대하는 결정서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 수위에 높이 추대할 데 대하여' 가 7차 조선 노동당 당대회에서 채택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016년 5월 10일 보도하였다.[33]
2012년 4월 11일, 김정은은 4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노동당 1비서로 추대[34] 되었고, 이틀 후인 13일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선 국방위원회 1위원장에 추대되어 김정일의 직책을 모두 세습하는데 성공한다.[35] 이로써 근ㆍ현대사상 최초로 공화정 지도자의 3대 권력세습이 공식화됐고, 같은 날 광명성 3호대장 계급에서 2단계 높은 원수원수 칭호는 이미 사망한 김일성·김정일에게만 부여된 대원수의 바로 아래 계급으로, 이전까지는 리을설원수 바로 아래 계급인 차수는 보직 해임된 리영호
12월 12일에 북조선에서 은하 3호
2013년 2월 12일에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리히터 규모미국 지질조사국은 리히터 규모핵실험[36] 또한 각종 미사일이 핵탄두를 장착한 채 대기상태에 있다고 위협했으며, 1991년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와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 단절을 선언했다.[36] 이에 대한민국 국방부[36] 국방부 또한 조선인민군이 대규모 훈련을 위해 집결한 상태라며, 만약에 공격할 경우 대응 규모와는 상관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36] 그 후 4월 26일 대한민국의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내의 잔류인원에 대한 철수를 결정했으며,[37] 이에 따라 27일 개성공단에 체류하고 있던 126명이 철수했고, 29일에 나머지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38] 그러나 남은 잔류인원 50명 중 43명만 귀환 허가를 받았다(물론 나머지 7명도 훗날 귀환하였다).[39]
2013년 12월 3일 대한민국의 국정원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40] 12월 9일자 로동신문[41]
원고지 20매 분량의 1면 기사에서 로동신문은 장성택의 비위사실을 자세히 다뤘다. 로동신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앞에서는 당과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는 종파적행위"를 일삼았다. 또한 로동신문은 "장성택은 당과 수령의 높은 정치적 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위치에 등용되였지만 인간의 초보적인 도덕의리와 량심마저 줴버리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기 위한 사업을 외면하고 각방으로 방해하는 배신행위를 감행하였다"고 평가했다.
또한 로동신문에 따르면 장성택은 모든 직무에서 해임되고 모든 칭호를 박탈당한 것은 물론, 조선로동당에서도 출당 조치됐다. 로동신문은 이를 "장성택 일당이 적발 숙청됐다"고 표현함으로써 장성택 개인만 처벌대상이 아님을 시사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고위층이 조선로동당 회의 도중 끌려나가는 사진이 공개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중앙TV
재판결과 장성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60조의 적용을 받아 사형 판결을 받았다. 로동신문은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며 글을 마쳤다. 로동신문 기사에는 여러가지 장성택의 죄상이 나온다. 기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42]
- 장성택은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추대하는 시기에 계승문제를 비아냥대며("왼새끼를 꼬면서") 음양으로 방해했다. 구체적으로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결정되자 건성건성 박수를 치는 등 오만불손한 행동을 했다.
- 자신이 김정은("경애하는 원수님")과 자주 현지지도를 다닌 점을 악용하여 자신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 했다.
- 장성택에게 아첨하다가 해임된 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산하기관에 끌어들였다. 특히 청년사업 부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배신한 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조선로동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중요 직책에 넣었다. 1980년대부터 리룡하
- 대동강 타일공장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 영상작품과 현지지도 사적비를 만들지 못하게 방해했다. 또한 김정일이 조선인민내무군 부대에 보낸 친필서한 비석을 그늘진 곳에 건립하게 했다.
- 장성택 자신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킨 결과 장성택이 있던 부서의 아첨꾼들이 장성택을 '1번동지'로 부르며 조선로동당의 지시를 거역하는 일이 있었다.
- 김정일이 최고인민회의 제10기 1차회의에서 세운 국가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을 자신의 밑에 소속시켰다. 정부기관이나 지방단체를 멋대로 변경시켰으며, 외화벌이나 생활비 적용 등 국가경제에 관한 사항을 좌지우지했다.
- 자신이 정한 국가건설감독기구 방침과 김일성, 김정일이 정한 건설법이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자 "그럼 건설법을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한 평양시 건설사업에서 부패를 저질러 돈벌이를 했고 결과적으로 건설사업을 망쳤다.
- 경제적 혼란 초래: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마음대로 팔아먹고, 나선경제 무역지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매각했다. 또한 2009년 박남기
- 1980년대 광복거리 건설 때부터 국가 은행 자금을 빼내 귀금속을 수집했다.
- 2009년부터 여러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를 유포시키고, 가는 곳마다 방탕한 생활을 했다. 특히 2009년 한 해에만 비밀 금고에서 460여만 유로
—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장성택 특별군사재판 전문 내용 발췌, 정리
안창연이 숙청당한 이유는 완벽히 알 순 없으나, 대한민국최룡해정청래최현조선일보[43] 대북 전문가 김근식 경남대[44]
12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장성택의 실각 사실을 공개한 이후에는 김정은 일가가 직접 장성택 숙청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일보의 주간지 주간한국은 장성택의 부인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김여정[45]
헤럴드경제는 장성택이 김정은을 제거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자 자리에 김정은의 이복형이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46]
탈북자인 대북 전문가 이윤걸리룡하 행정부 부장과 장성길 행정부 부부장을 체포하고 처형한 것은 김정철[47][48]
연평도 포격에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 등 여러 면에서 비판이 존재한다.
김일성 때부터 이어져 온 호화사치 생활은 단연 비난의 대상이 되며, 그러면서도 인민들의 의식주를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 "인민을 굶겨죽이는 지도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49]
하태경 열린북한 대표는 10월 10일 일본 도쿄 메이지 대학에서 북조선마오쩌둥[50] 이와 관련해서, 일본 산케이 신문[51]
김정일 3남의 이름은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키무종운"(일본어로는 キム・ジョンウン)이라 부르면서 김정운으로 알려졌다.[52] 하지만 이름이 김정운이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설이 퍼졌고, 9월 중순 원산 인근에서 "만경대 혈통, 백두의 혈통을 이은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로 표기된 선전벽보가 발견되었다.[53] 일본어는 김정은이나 김정운이나 똑같이 "키무종운"(キム・ジョンウン)으로 발음, 표기하기 때문에 처음에 일본인 요리사가 그렇게 말했던 것으로부터 혼선이 빚어졌던 것으로 보인다.[52] 이에 대해 원세훈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장은 "오래 전부터 김정은이라는 첩보를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확인해줄 사항도 아니고 이름이 중요한 사항도 아니라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54]
중국 및 일본에서는 한동안 김정운의 한자 표기인 '金正雲'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 후 한글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것이 명확히 밝혀지면서 한자로 金正銀 또는 金正恩이라 쓰기도 했다. 10월 초, 조선중앙통신에서 김정은의 한자 표기는 金正恩이라고 밝히면서 일본 언론들과 중국 언론들은 金正恩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확정하였다.[55][56] 한편, 서방 언론권에서 쓰는 Kim Jong-un이라는 표기는 북조선에서 여전히 사용하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중국 선전 위성TV는 2013년 1월 1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닮아 보이도록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 언론인 관야오(管姚)는 이 방송에서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 외교관을 언급하며 "우리 외교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사적인 대화에서 북한 외교관에게 `김정은이 조부 김일성과 꼭 닮았다`고 하자 `성형수술을 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서울 주재 특파원과 평양 주재 특파원을 모두 연결해 보도 경위와 근거를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주재 특파원은 "북한에선 김정은 성형과 관련된 보도가 한 번도 없었다"며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57]
일반적으로 김정은의 어머니는 고용희(고영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복형 김정남은 김정은의 어머니는 고용희가 아닌 김옥[58]
2015년 탈북한 북조선(북한) 장교의 딸 임희연(가명)은 2017년 9월 3일 대한민국[59]
또한 임희연은 북한 관리들이 학교에 찾아와 10대 여학생들을 김정은의 성노예로 차출해간다고 주장했다.[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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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직 金亨稷 1894 - 1926 |
강반석 康盤石 1892 - 19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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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金英柱 192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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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
고용희 高容姬 1953 - 2004 |
김경희 金敬姬 19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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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평일 金平日 195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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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
고용희 高容姬 1953 -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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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金正恩 198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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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金與正 1987 - | |||||||||||||||||||||||||||||||||||||||||||||||||
김주애 金主愛 20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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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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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임 김정일 |
2011년 12월 17일 ~ | 후 임 (현직) |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
전임 김일성 |
제2대 조선로동당 위원장 2016년 5월 9일 ~ |
후임 (현직) |
전임 (김정일) (위원장) |
제1·2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4월 13일 ~ 2013년 4월 8일 2013년 4월 9일 ~ 2016년 6월 29일 |
후임 (직제 폐지) |
전임 (신설) |
제1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2016년 6월 29일 ~ |
전임 조명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2011년 12월 17일 ~ 2012년 4월 13일 |
후임 (직제 폐지) (제1위원장으로 격상) |
전임 김영룡 (직무대리) |
국가보위부장[출처 필요] 2009년 3월 ~ 2011년 12월 17일 |
후임 우동측 (직무대리) |
전임 장성택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10년 6월 4일 ~ 2010년 9월 3일 |
후임 장성택 |
전임 김정일 |
제4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2011년 12월 30일 ~ |
후임 (현직) |
전임 - |
제13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 2014년 ~ |
후임 (현직) |
중앙위원회 위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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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위원회 제1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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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위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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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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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위원장 | |
위원 |
주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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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위원장 |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