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로움 감수하고 손으로 정성껏 만들어내는 원조 병천순대
가정이 화목하고 즐거워야 좋은 맛이 우러나는 것
이정애 할머니는 취재하는 내내 자식들 자랑이 여간 아니시다. <충남집> 본가를 맡아서 운영하고 있는 첫째 아들 며느리 내외에 대한 자랑과 더불어 가족사진을 가져다 보여주며 둘째 아들, 셋째 아들, 딸들 그리고 손자까지 세세하게 설명해 주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신다. “우리 집이 이날 이때까지 장사 잘 되고 음식 맛 변하지 않은 것은 자식들이 잘 따라와 주었고 또 며늘애들이 참 고맙게도 잘 도와준 덕이에요. 음식 만드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 거예요. 집안 분란 일어나고 맨 날 근심걱정 매달고 살면 일이 안돼요. 언제나 즐겁고 자식들 커가는 모습 보며 시누와도 서로 말동무하며 그렇게 사니까, 마음이 편하고 집안이 화목해서 이래 음식 맛도 좋고 장사도 잘 돼는 거 아닐까요? 난 그래 생각해요.”
할머니가 보여주시는 가족사진의 세 아들과 딸들, 그리고 손자손녀들. 모두 편안한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는 순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머니의 가업을 물려받아 세 아들 모두 순대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둘째아들은 천안 시내에서, 그리고 막내아들은 병천 읍내 한 켠에서 고모(할머니의 시누이)가 운영하던 <자매집> 간판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손으로 직접 욕심 없이 만들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순대가 있어 각각 저마다의 특색이 있는데 병천순대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순대 안에 배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채소가 듬뿍 들어있다는 것이다. 순대가 돼지고기와 부산물들로 끓여 기름지고 느끼할 것 같지만 순대 안에 가득 채워진 채소의 청량한 맛이 기름지고 느끼한 맛을 잡아준다고 한다.
순대 하나로 50여 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 해 올 수 있었던데 대해 특별한 비결이 있느냐고 묻자, “우리집 순대라는 게 별로 특별한 게 없어요. 동네 푸줏간서 얻어온 돼지 창자를 깨끗하게 씻어서 동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배추, 파, 양파, 열무 등 채소를 듬뿍 넣고 속을 버무려 넣은거지 뭐 딴 게 있나요? 뭐니 뭐니 해도 깨끗하게 정성껏 만드는 거지요.”
비결이랄 게 없는 원론적인 대답을 듣고 그래도 뭔가 있지 않겠냐고 또 물으니 한 가지 덧붙여 말씀하신다. “다른 순대들을 먹어보니까 다른 집들 것도 참 맛있대요. 근데 기계로 만든 건 정말로 맛없어 못 먹겠더라고요. 그날 쓸 만치만 그날그날 적당히 만들어야지, 많이 만들라 그러면 맛을 못내요. 내가 만든 병천순대를 따라하느라 여기 병천서도 어떤 사람은 공장도 차리고 해서 만들어 내지만 집에서 직접 사람들이 마주앉아 속 버무려 넣어 끓는 물에서 삶아내는 그 맛을 따라가질 못해요. 그 다음으로 한 가지는 깍두기를 잘 담가야 하는 거예요. 맛나게…. 아직도 나는 우리 며늘애가 깍두기 담그는 날에는 직접 나가서 지켜봐요. 언젠가 텔레비전서 어디 설렁탕 집이 나오는 거 보니까 그 집 깍두기가 맛나서 그 국물을 설렁탕 국밥에 넣어 먹더라고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순대국밥도 마찬가지에요. 깍두기가 맛나야 하는 법이지요.”
그날그날 만들어 파는 정성과 수고로움이 있어야
병천순대의 맛과 특징에 대해 어떤 음식전문가는 듬뿍 들어간 배추, 양배추 등의 채소가 돼지고기 누린내와 기름기를 잡아주며 풍부한 식이섬유로 소화력을 높이고 식감을 좋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제 병천순대 원조 <충남집>에 와서 취재를 하는 동안 또 다른 비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정애 할머니는 손수 취재진을 데리고 다니면서 순대 만드는 모습이며 깍두기 담아놓는 항아리들, 그리고 지난 가을 담가놓은 가을 김장독을 일일이 열어 보여주며 음식은 무엇보다도 직접 만들어 제 때에 맛깔나게 내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신다.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 냄새가 안 난다는 거예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고기 중에서도 창자(내장)가 들어가는 요리는 냄새를 없애는 게 중요해요. 재료를 냄새 안 나게 손질하는 게 관건인데 이는 정성스레 꾀부리지 않고 하던 데로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지요. 창자가 오면 일일이 손수 대나무 막대기를 넣어 뒤집어서 소금으로 빡빡 닦아내는 거예요. 어설피 닦아서는 냄새나서 못쓰거든요!”
‘사람이 큰 재산이다’ 몸소 보여줘
이정애 할머니는 가게 곳곳을 안내해 주시며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다. <충남집>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가족처럼 오랫동안 같이 일 해 온 분들임을 강조하신다. 이정애 할머니의 가족사랑은 그 범위가 피붙이 혈연 뿐 아니라 한솥밥 먹는 식구(食口)까지인 것이다. “내 혼자 잘나서 이 장사 이렇게끔 이끌어 왔겠어요? 아니지요.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 줬으니까 아직까지 탈 없이 이끌어 온 거 아니겠어요? 음식은 맛이 일정하고 정확해야 해요. 음식 만드는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고 찜부럭거리면 게서 무슨 맛이 나겠어요? 안 그래요? 우리 집서 일하는 분들 모두 수 십 년간 함께 해 때맞춤 알아서 척척 해주니 그게 큰 힘이지요. 근데 이제는 이런 일을 이어받아 배워 보려는 젊은 사람들이 없어 그게 걱정이에요. 일하시는 분 모시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우리 애들이 그러데요. 엊그제는 막내가 일하시는 분 모시러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시켜준다 그러기에 ‘그래, 그렇게 잘 하라’고 그랬지요.”
어느 대기업 회장이 소리높여 말했던 ‘인간경영’의 구체적 사례를 이곳 병천순대 <충남집>의 가족적인 분위기와 이정애 할머니의 말씀을 통해 실감 할 수 있었다.
어느 시인이 자신의 시에서 ‘뽕짝은 손해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노래’라고 했다고 한다. 음식에도 그에 견줄 맛이 있을까? 시집와서 홀로된 슬픔을 겪고 여섯 자식들을 힘겹게 길러내 화목하고 따듯한 가정을 이끌어온 이정애 할머니의 순대국밥 맛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돼지며 소를 잡아 고기는 누군가를 위해 팔려가고 덩그레 남겨지는 그 부산물들을 정성껏 다듬고 손질해 끓여내는 따뜻한 순대국밥. 그리고 순대 한 접시에 곁들여진 막걸리 한잔. 거기에 우리네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버무려져 있다. 그것이 순대가 가진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041)564-10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