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
정두환의 음본세-3
음악으로 본 세상이야기
가슴 펼 수 있는 부산 음악가로 살아남기
정두환 (문화유목민)
항구 부산은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의 도시이다. 바다를 품어서 그 마음이 넙ㄹ은 것인지, 아니면 산에 기대어 그 마음에 여유가 있는 것인지? 강을 흐르게 하여 여유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부산은 여유가 있는 도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지금 무슨 퉁단지 같은 소리를 하냐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만 더 생각해보자 정말 여유가 없는 도시인지를? 2022년 12월 연말 기준으로 부산 인구는 3,317,212명이다. 인구 1위 도시는 경기도로 13,589,432명이며 2위는 서울 9,428,372명에 이어 3위가 부산인 것이다. 물론 서울, 경기를 합하면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50%에 육박하는 인구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이는 17개 광역시도 중 오직 2개의 시도에 몰려있는 기형적인 구조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니 굳이 긴말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부산은 살기 좋은 도시임은 분명하다. 부산시민은 실감하지 못할지라도 국회 미래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한국인의 행복조사 주요 결과 및 최근 3년 동향보고서’에 보면 시민행복감지수에서 10점 만점에 7.19점을 받아 7대 특별·광역시 중 부산이 1위를 차지했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대한민국 도시 브랜드 평판지수’에서도 2022년 9월 전국 도시평가 1위를 시작으로 연속으로 1위를 하고 있다. 이 결과를 보면 부산시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시민들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행복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행복한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하니 기분은 좋다. 필자는 음악인이다. 문화 예술판에 몸은 기대어 살은지가 40여년이 되었다. 문화예술 특히, 음악가들도 이렇게 행복할까?
문화도시 부산
먼저 시립예술단을 살펴보자. 가장 먼저 창단된 부산시립교향악단은 1962년에 창단되었다. 물론 이전에 교향악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5년 부산대학교 관현악단이 창단되었는데 이는 아마추어 관현악단이며, 전문 연주단체로는 1957년 창단된 부산방송관현악단이 있었다. 이 두 단체를 통합하여 1962년 11월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시립 관현악단을 창단하였다. 초대 상임 지휘자는 오태균 선생이 맡았으며, 교향악단의 규모는 작았다. 지금의 시립교향악단에 비하면 규모나 연주력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단원들의 열정은 매우 적극적이며 열정적이 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연장 하나 갖춰진 것이 없어 공연은 영화관이나 체육관 같은 곳에서 연주하였고, 연습은 시(市)공보관에서 하였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으니 초기의 반응은 그다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의 열정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막연하기는 하지만 시립교향악단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 졌으니 지금 생각해보아도 선배 음악인들의 열기를 느낄 수가 있다. 이어 1972년 부산시립합창단이 창단 되었으며, 시립무용단으론 전국 최초로 1973년에 부산시립무용단이 창단되었다. 같은 해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창단되면서 부산 청소년들의 예술교육과 음악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84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 1998년 부산시립극단이 창단, 1994년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이 창단 되면서, 5개의 상임 단체와 2개의 청소년 단체를 포함, 모두 7개 예술단으로 부산시립예술단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역할은 분명하다. 부산 최고의 공연예술을 시민들에게 선사하여야 하며, 나아가 부산을 대표하여 전국 또는 세계적으로 부산을 대표하여 최고의 공연을 소개하여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부산시립예술단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소속 예술인들과 관객들은 정말 냉정하게 평가하는 기회가 필요할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포용력있는 예술단이며 적극적인 예술 행정을 펼치는 곳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창기의 열성과 예술혼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나기 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 그렇다면 예술가와 일반인의 차이는 무엇인지? 모든게 흐릿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오케스트라 민간영역에서도 같은 현상은 일어나고 있다. 1981년 창단한 부산관현악단은 2003년 창단 25년 기념 특별연주 및 제50회 정기연주회를 끝으로 그 막을 내렸으며 현재는 부산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비롯하여 CBS교향악단, KNN방송교향악단, 유나이티드 코리안 오케스트라, 인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부산메트로폴리탄 필하모닉오케스트라, 뉴프라임 오케스트라, 미래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부산체임버오케스트라, 부산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시노두스심포니 오케스트라등 다양한 교향악단이 존재하나 대부분이 독립된 단체이지만 연주자들은 혼재하고 있는 형태이다. 결국, 연주 단원들은 이곳 저곳으로 객원연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각 단체는 부산시립교향악단처럼 상임체제를 유지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니 연주자들은 연주이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생업에 뛰어야하는 실정이다. 어디 교향악 부분만이겠는가? 공연예술을 비롯한 전 예술 영역이 비슷한 실정일 것이다. 부산 예술의 영역이 이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대학 교육의 현장
부산에는 부산대학교를 비롯하여 동아대학교, 동의대학교, 경성대학교, 고신대학교, 인근 인제대학교까지 6개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할 수 있다. (신라대학교는 음악과를 폐과하고 미래융합학과 음악트랙으로 운영) 하지만, 여기서도 순수예술 보다는 실용음악으로 점점 치우치고 있는 실정이다.대학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중고등학생들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더 강할 수 밖에 없다. 인재 유출이라며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막아보고자 하지만, 각 대학의 정원 미달 사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그 이유는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들을 수 있었다. 부산에서는 여전히 파벌 다툼으로 서로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졸업해도 들어갈 단체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다른 연주 또한 많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부산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이러한 것은 전국적인 문제이며 수도권은 오히려 파벌과 연주자들 간 힘겨루기는 더 심하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수도권으로 모두 달려가고 있다. 일단 수도권으로 가고 보자는 심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부산의 교육기관들이 제대로 진단하고 체계적인 미래 상황을 설명하여야 하지만 현실은 아주 여유롭다. 입시기간에만 반짝 긴장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는 대학을 비롯한 선배 음악인들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며 다함께 힘을 모아 음악 후배와 제자들을 살펴야 할 것이다. 선배되는 자의 몫은 자명하다. 미래 인재가 될 후배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 시작한 자들의 몫이다.
1968년 12월 19일 부산일보에 故오태균 선생님의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고장을 ‘예술의 불모지’라고 일컬어왔던 것에 비하면 다행히도 아직 질식상태를 모면할 수 있는 그 명맥만을 유지해온 것이 음악계의 현황이라 할 것이다.” 이 글을 다시금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짐은 단지 필자만일까? 6·25전쟁 이후 피난민의 고향처럼 모든 백성을 품었던 부산에서 열정적으로 예술혼을 발휘하였던 선배 음악인들이 이제 한분 한분 고인이 되어가시는 시간이다. 그분들의 젊은 날 외침이 아직 유효하다는 것에 많은 비애를 느낀다. 필자는 ‘문화불모지’는 ‘문화노다지’ 라며 예술계 변화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였다. 지금 다시금 우리가 선배들의 예술혼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적어도 사랑하는 내 고장 부산과 후배들에게 가슴펼 수 있는 시민이자 선배이기를 스스로에게 이야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