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짱구형님을 추억하며
오늘도 점심을 해결하고 재활운동을 위해 습관적으로 현관을 나섰는데 아파트 단지
광장한견에 카트를세워놓고이것저것 배달물건을 챙기며 일에 몰두해 있는 겨자색
유니폼을 입은 아줌마를 보자 기억저편에 항상 활기차고 우아한모습으로동네에
요구르트 배달을 하던 짱구형님의 형수모습이 아련히 피워 올랐읍니다.
짱구형님은 유별난 꼴통으로 60년대에 탈영,입대를 반복하며 아주 길고 굵게
병역의무를 마쳤고70년대 초반고양,파주에서 알아주던 동네건달로 국민학교
중학교 친구의 맏형이었읍니다. 땅딸하고 다부진 몸매가 특징이었지만 인상이 퍽
깔끔하진 안했던 것으으로 기억 됩니다.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결혼할 나이가 가까워
올 즈음 용모가 빼어난 아가씨가 원당 박제궁 동네에 있다는소문을 듣게된 짱구형님!
먼발치에서 한눈에 반한후 궁리끝에, 삐삐선(군용통신선)한다발을 어깨에 걸쳐매고
결혼승낙을 받으러 돌진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따님을 주지않으면 이삐삐선으로
저대들보에 목을매총각귀신! 한이라도 풀겠다"고화끈?하게 청혼하였고 놀란 처가
어른들이 승낙을 할수밖에 없었다는 고금소총에 남길만한 일화를 만들고 가신 분이지만
일산읍내에서는 동네어르신들에게 항상 깍듯했고 특히 후배들에세 말한마디 함부로
하지않했던분으로 기억하고 있읍니다. 대부분의 건달들이 그러했듯 짱구형도 생계에
무심했던탓에 그때부터 형수님이 겨자색 유니폼을 입고 일산읍내를 누비기 시작했는데
소문난 미인이었고 항상 웃음을 잃지않고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형수님은
어린나이의 필자에게도 아주 고왔던분으로 각인되어 있읍니다.그밑의 후배들인M.K.Kang
, Y.B.Kim, S.C.Lee, J.Y.Ko에 내려와서는 신군부의"사회악일소 특별조치법"의영향으로
동네건달들은 이빨빠진 호랑이로 전락했고 신도시개발과 함께"쩐"의 위력을 앞세운
호남출신의D.S.Min이 지역을 대표하며낭만건달은 찿아볼길없고 보통 조폭이라 말하는
양아치들만 활개치고있는 현실입니다
짱구형님은 50대에 간질환으로 투병을 시작하기전에 천주교에 귀의했고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했읍니다.
내친김에 형님들의 세계를 잠간 엿보는것으로 오늘의 글발을 풀어볼까 합니다.
[2]사료로 살펴본 왈패들의 세계
해방이후 조폭에 대한 자료는 일목요연하고 폭넓게 축적되어 있으므로 필자는
첫째정치세력에연루되어 태생한 조폭의 흔적과 둘째 해방이후 조폭들이 진화해온
과정을 간략히 개괄해 보는것으로 만족할까합니다.
첫째 정치세력과 결탁된 한국 조폭의 기원은
(1) 통일신라기 견훤과 궁예로 소급해볼수 있다고 봅니다.
사회불만세력을 규합한후 백제와 고구려의 부흥을 기치로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대표적사례입니다.
(2)다음으로 고려조의 "당취"가 되겠는데 개혁추진을 시도하던 공민왕(제31대)이
신돈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신돈이 각도에서 1명씩 자신을포함한 8명으로 만든 개혁
추진단의 명칭이 당취였는데 전횡을 일삼자 당추로 변하고 땡추,땡중과 동의어가
된 경우로 요즘은 술,고기,여자를 즐기는 파계승을 이르는 용어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3)끝으로조선조 대표적인 폭력조직으로검계가 있었읍니다.
순조때 이긍익의<연려실기술>에의하면 검계원은 창포검을 휴대하고 태평소로
신호하며 수시로 습진을하며 싸움연습을하는등 숙종조부터 활개 쳐왔는데 영조때 포도대장
장붕익에 의해 일망타진된뒤에도 몸에 칼자국으로 표시하고 검계원임을 과시하며
순조때까지 활동한기록이 있는바 1980년이후 회칼과 쇠파이프를 흉기로 활용하고 있는
신세대양아치들과 그행태가 거의 유사함이 놀라울 뿐입니다.
조선시대 낭만주먹은 "왈짜"라 했고 무리지어 다니면 "왈패"라 했는데 신윤복의 풍속화
<기방난투>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 장면을보면 한국조폭의 역사 참 질기고 긴것
같읍니다.
다시 정치 깡패로 촛점을 맞추자면
(4)1898년 구한말 참정대신 조병식이 주도해 발족한 "황국협회"도 대척점에 있는
독립협회를 탄압하기위한 정치깡패단이었읍니다.
(5)해방이후에 이르러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와 이정재의비호로 유지광이 주도한
"삼우회"가 본격 정치깡패로 활동을 시작하며 자유당의 폭력전위가 됩니다.
(6)드디어 1987년 4월 20일~24일 용팔이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용팔이 사건은 신군부의 사주를 받고 동원된 김태촌의 범 서방파가 통일 민주당 창당을
방해하기위해 5일간 20여개 지구당에 난입해 까부순 사건입니다.
둘째 조폭들이 경제력을 기반으로 기업형 양아치로 진화하기까지 그과정을
약술하자면 1950년대 4대문안 세력판도는 명동의 평양출신 이화룡,동대문의 이천
출신 이정재, 종로의 김두한이 대치하는 삼각구도였읍니다.
김두한은 1954년 종로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폭력계를 떠나게 되고
1958년에 유지광이 기획하고 경찰과 공조한"충정로 도끼사건으로 명동파가 와해되며
1960년 4월 18일에 부정선거반대 데모중이던 고대생300여명을 유지광이 지휘한
삼우회소속 깡패20여명이 린치한 고대생 린치사건의 책임을 물어5.16 혁명당시
이정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데 2008년 낙화유수 김태련(81)씨의증언에 의하면
희생양으로 처형된 억울한경우라 합니다 이를 틈타 이화룡의 휘하에 있었던 특무
상사출신의 신상현씨가 사보이호텔을 거점으로명동파를 신상사파로 확대 재건해 명실
상부한 조폭1세대로 평가 받게됩니다.
그이후 1975년 사보이호텔 주차장에서 신상현씨를 칼과 야구방망이로 습격한
서린호텔사건이 발생하는데 세간에는 조양은이 시도한것으로 알려지며 김태촌,조양은
,이동재등 호남조폭 3대 패밀리가 부상하는 계기로알려졌으나 2008년 3월24일에 범
호남파 두목 오종철(68)씨가 증언하길 사보이호텔사건은 본인이 직접 저지른 사건이라
했읍니다. 아무튼 1세대 낭만주먹들이 퇴장하고 흉기가 동원되는 양아치 천하가 되는
상징적 사건이었읍니다.
상기사건으로 서울도 호남조폭들의 천하가 되었고 그이후 황금무대 서울을 놓고
호남파는 오종철의 범호남파와 김태촌이 줄을 대고있던 박종석의 번개파로 분열되었고
1986년 김태촌,조양은이 구속되자 목포출신 신흥조직7명의 "장진석파"가 '밤의평정"을
기치로 연고를 주장하며 기존세력 4명을 난자하는"서진룸싸롱 사건이 발생되고
뒤이어1988년9월 조양은이 OB파 두목 이동재의 다리를 난자해 은퇴시킨다.
급기야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조폭 대부분을 수감했는데
2000년 전후해 출소하여 투자가,벤처사업가,유흥업소경영, 로비스트등으로 변신하고
주간에 활동하며 경제력으로 무장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3]21C조폭이 상실한 덕목
흉기사용과 철학부재로 인한 요즘조폭들에게 부족한 소양은 신의부재,낭만과 인간
존엄성 상실입니다. 비록 조폭의 세계일지라도 인간이 모여 사는 집단인지라 열거한
필수덕목 회복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자멸할수밖에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4]PSY와 같은 Gangster를 보고싶다!
갱(gang)하면 대부, 대부하면 알카포네,그알 알카포네가 공인회계사였읍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을 관리한 두목이며 동시에 다양한 사업을 경영한 사업가
였읍니다.
이런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필자는 개인적으로 경동고,서울상대출신의 낙화유수 김태련
(81)씨를 가장 좋아합니다.또한 김두한은 물론 막노동을 할지라도 자존심을 끝까지
지켰던 동양최고의 주먹 시라소니 이성순(1918~1972)씨도 좋아합니다.PSY가 단신으로
세계를유린하고 있는것을보면 대단하지 않읍니까? 한국의 조폭도 동네 양아치가 아닌
세계적 대부가 되어야 하지않겠읍니까?
필자가 조폭의 보스라면 조직원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흡수활용할수 있는 용병회사를
설립해 국제평화 정착에 크게 이바지 할것입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간행하는 2010년 년감에 의하면 21C에1천명 이상의
희생을 치른 전쟁이 년평균 15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최고의 용병회사를 꿈꾸며
먹고 살만하지 않겠읍니까?
참고;고려왕조 실록 상권(백지원 지음),친절한 조선사(최형국 지음),오늘의 세계분쟁
(김재명 지음)
나는참!행복합니다늘!감사합니다Nov.20.2012어기여차 강 경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