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의 말
이달균
안방에 놓인 장롱은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녀를 빼지 않은 어머니의 팔십 평생 오늘도 오동나무는 안으로 결을 세운다
손이 귀한 집 손자는 언제 보냐고 벽오동 한 그루를 담장 아래 심었을 외가댁 어른들 한숨이 손끝을 져며온다
대동아 전쟁이란 흉흉한 소문 속에 감춰둔 놋그릇마저 기차에 실려 가고 처녀는 장롱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일곱의 탯줄을 끊은 가위며 실꾸리며 눈치 보며 세 들어 산 좀들의 흠집들과 닦아도 추억이 되지 않는 삭아가는 소리들
딸들은 내다버리자고 무심코 말하지만 피란 간 식구들을, 아버지의 임종을 묵묵히 지키고 기다리며 예까지 왔노라고......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오래된 악기의 만 가지 소리와 만 가지 사연들을 너희가 어지 알겠냐고 안방에 앉아 일러준다. -시집‘장롱의 말’에서
*오늘 소개할 시는 이달균 시인의 ‘장롱의 말’입니다. 어머니의 한평생과 지난했던 삶을 지켜본 장롱이 그 소재입니다. 역사의 질곡을 어머니와 함께 묵묵히 지켜온 장롱은 한 집안의 역사이며, 한 사람의 생애입니다. “딸들은 내다버리자고 무심코 말하지만” 어머니는 이 사연들을 “ 너희가 어지 알겠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 비녀를 빼지 않은 어머니의 팔십 평생”과 같은 것입니다. 이 시를 쓰신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였으며, 1987년 ‘남해행’이란 시집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95년 <시조시학>에 신인상으로 당선되어 시와 시조를 병행하여 함께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2003년 중앙일보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마산시 문화상,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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