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 아래 가라앉은 설탕을 분리하려 애쓰며
선물 받은 포도즙을 컵에 따른다.
포도 향을 맡으며
한 모금씩 혀끝으로 맛을 보며
목구멍으로 넘긴다.
위장으로 넘어가는 몸의 경로를 따라
포도즙에 집중해 본다.
포도 농사를 짓고
그걸로 즙을 짜서
나에게 선물한 이에게
감사의 마음은 들지 않는다.
맛있는 것과는 별개다.
혼자 사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양의 포도즙!!
두고 먹으라지만
여분의 것이 싫다.
내 눈앞에 많은 팩을 보니
마치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몹시 힘들고 불편하다.
텅 빈 방과 텅 빈 냉장고를 사랑하는 나에게
포도즙 50개는 마음의 짐이다.
얼른 먹고 치워버리자.
매일 호흡 명상하고 백날 춤춰봤자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여전하구만.
포도즙이 내 뱃속에서 절규하겠구나!
첫댓글 한 편의 시 같네요. 행복한 절규라고 보는데요. 포도즙이 많으면 주변 분들께 나누어 양에 대한 부담을 더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이웃에게 주는 번거로움이 있다면 경비 아저씨도 좋고요.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감사함과 적당한 표현이 참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포도즙이 뱃속에서 절규하지 않게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