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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9일 일요일
의향 광주 - 무등산 인물벨트
독수정,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충장사, 충민사 다녀왔어요.
무등산 둘레길 무돌길
무돌길은 무등산의 옛 이름인 '무돌뫼'를 한 바퀴 도는 옛길로 광주와 담양, 화순에
걸쳐있는 무등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을 1910년 지도를 바탕으로 복구한 길이라고 합니다.
600 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려의 충신 이야기가 서려있는 독수정길을 걸어갑니다.
독수정(獨守亭)
독수정이 있는지도 몰랐고 처음 접한 이름이었다.
정자문화를 자랑하는 담양에서 가장 먼저 생긴 정자라고 한다.
고려가 기울어가고 태조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즈음 옛 고려의 많은 충신들은 조정에
나가지 않았어요. 송도에서 조금 떨어진 광덕산 밑에 두문동이란 마을을 이루고 숨어 살았어요.
굳은 절개로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지키며 이성계의 어떠한 회유책에도 동요하지 않고
마을이 온통 불바다가 되어도 단 한 사람도 '두문동'에서 끝까지 나오지 않은 '두문동 72인'
이 있었지요. 두문동 사건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한 곳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음'이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두분불출했던 그 중에 한 분!!! 고려말 병부상서(지금 국방부 장관급)를 지낸
서은(瑞隱) 전신민(全新民)이 이곳으로 내려와 송도(지금개성)가 있는
북쪽을 향해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독수정(獨守亭)"!!!
아침마다 북쪽을 향해 바라보며
"고려 왕조여~ 안녕하십니까?"
를 외치며 두 나라를 섬기지 않겠다는 것을 다짐하며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는 주인공이 있었습니다.
서은 전신민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
우리는 독수정의 오가는 길목을 걸어보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독수정을 빙~ 둘러보았어요.
내리는 가랑비에도 느낌이 좋았어요~
독수정이란 이름은 이백의 시구
'백이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죽었네'
夷齊何是人(이제하시인)
獨守西山餓(독수서산아)
에서 따온 말이라고 합니다.
피어난 한송이의 꽃이 마치 고려 충신의 지조와 절개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소쇄원(瀟灑園) 안내도
소쇄원은 1530(중종25) 조광조의 제자 소쇄옹 양산보(梁山甫)가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건립한 민간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별서정원이란 세속의 벼슬이나 당파싸움에 야합하지 않고 자연에
귀의하여 전원이나 산속 깊숙한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정원을 말한다.
소쇄원이란 뜻은 양산보의 호가 소쇄옹으로 호에서 따온 것으로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양산보는 창평에서 창암 양사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세에 부친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서 조광조의 문인으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기묘사화로 인해 스승 조광조가 화순 능주로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벼슬이 싫어'
'한양이 싫어' 이곳에 살면서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소쇄원은 집도 아니고 언론소역할과 대학교 역할했다고 한다.
모든 속세의 것을 벗어던지고 청담을 논하였던 선비들
자연으로 돌아가 살고자 했던 삶
담양 소쇄원은 있는 모습 그대로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대봉대(待鳳臺)
소쇄원의 정문 역할을 하는 곳
봉황처럼 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곳
봉황은 누구였을까?...
오곡문 (五曲門)
담장 아래 터진 구멍으로 흘러든 물이 바위틈 사이로 다섯 굽이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담장을 지탱해주는 여러 층을 이룬 돌기둥이 참 멋지다.
소쇄원과 외부의 경계를 구분하는 담장이다.
2단의 단을 두고 매화를 심었다하여 매대(梅臺)라고 불렀다고 한다.
소쇄처사 양공지려 (瀟灑處士 梁公之慮)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고 한다. 복원한 글씨체!
제월당 (霽月堂)
'비개인 하늘에 뜨는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제월당은
바깥 주인이 거처하면서 학문하는 공간이었다.
비온 다음에 뜬 달 →제월
맑은 바람이 풀어와 →광풍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말은
비가 갠 다음에 부는 바람과 맑은 달처럼 시원하고 고결한
인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성품이 맑은 선비의 마음을 비유한 말이기도 하다.
양산보는 송나라 명필가 황정견이 성리학 개조의 한사람인 주돈이를 존경하여 주돈이의 사람됨을
광풍제월에 비유하여 평가한 것으로 이에 유래하여 소쇄원의 대표적인 건물
제월당과 광풍각(光風閣)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다음 기회에 이곳에 와서 나는 말을 건네야 겠다~
"주돈이의 가슴 속 품은 뜻이 광풍제월과 같군요"
"주돈이의 인간됨이 잘 드러난 집이군요"
이렇게 말하면 누가 나를 잡아줄래나....
어쩌면 제월당 마루에 앉은 두 분은 주돈이를 얘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제월당 뒤뚤에 놓인 아름다운 굴뚝
광풍각(光風閣)
광풍각의 백미는 마루 가운데 온돌방이다.
손님을 밪이하는 사랑방역할을 하는 곳.
이곳 아궁이에 불을 때면 굴뚝이 계곡쪽으로 나 있어 뿌연 연기가
계곡에 흐르는 냇물과 함께 피어오른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구상을 했을까?
참으로 아름다울것 같다?
광풍각 + 제월당 + 연지
우리는 지실숯불갈비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있는 점심 먹고 다음 코스로 이동~~
지곡리 지실마을 입구
우리는 성산(星山 - 별뫼)을 바라보며 송강 정철이 거닐었을
지실마을 길을 거닐어보았다~
식영정 안내판에서
식영정 오르는 돌계단은 108개 라고 한다.
오르면서 108개가 나온다면 운수대통 한다기에 세어보았는데 욕심많게 120개가 넘게 나왔다~~
식영정(息影亭)
식영정은 성산(星山 - 별뫼)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로
명종때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이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石川) 임억령(林憶齡)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제봉 고경명(齊峰 高敬命)
송강 정철(松江鄭澈)을 식영정의 사선(四仙)이라 부른다.
이곳에 정철이 지은 시가인 성산별곡(星山別曲)의 시비가 있다.
송강 정철은 이곳 사람이 아닌 한양 사람이었고 세명의 누나중 두 명이 왕족과 결혼했다고 한다.
큰누나는 중종임금 세자(훗날 인종)의 후궁
셋째 누나는 왕족 계림군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이런 인연으로 궁궐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경원대군(명종)과는
소꿉동무로 친구처럼 잘 지냈다고 한다.
정철이 9살 되던해 집안이 망하여 공부도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 이곳 담양에서
16세 부터 27세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조선시대 전체 보는 시험에서 1등을 했다고 한다.
그후로도 정철은 죄지은 일로 이곳으로 4번이나 와서 지냈다고 한다.
식영정(息影亭)
그림자를 숨겨서 내 몸을 쉬게 하는 정자
성산별곡(星山別曲)의 시비(詩碑)
이 일대의 절경을 자유롭게 묘사한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탄생한 곳
성산별곡 한소절을 읊어주셨다~
환벽당 들어서기 전 용소(龍沼)
김윤제가 어린 시절 정철을 처음 만난 사연이 전해지는 곳.
환벽당(環碧堂)
'푸르름으로 빙 둘러쌓여 있는 집'
나주목사(나주시장)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정년퇴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학양성 교육에 힘쓰던 곳이다.
어느 날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창계천의 용소에서 용 한마리가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꿈속에서 깨어나 용소로 내려가보니
16세 소년이 목욕을 하고 있었단다 그가 바로 송강 정철!
김윤제는 소년에게 여러가지 문답을 하는 사이에 영특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이 역모사건으로 인해 가족이 뿔뿔히 흩어짐을 알고
이곳 환벽당에서 10년 동안 공부를 시켜 과거급제 하는데 뒷바라지를 해주었다고 한다.'
정철 사랑하는 마음이 지대해서 김윤제는 외손녀를 정철과
혼인시켜 곁에 두고 싶어했다고 한다.
김윤제의 제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철과 김성원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 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김윤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독수정→소쇄원→식영정→환벽당
이들 기능은 무엇인가?
어떻게 가르칠것인가
"옳게 살아라"
무슨 일에 부딪쳤을때 판단의 문제
→책을 많이 읽어라
양서(良書), 고전(古典)
좋은 책을 정해 여러번 읽어라
박상용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돌아본 가르침의 산실 정자문화권을
둘러보고 이렇게 요약해 주셨습니다.
정말 환벽당은 푸르름으로 빙 둘러쌓여 있습니다.
충장사(忠壯祠)
충장사는 아주 위대한 분 임징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 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1975년에 세워졌다
사당에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셔 놓아 그 분의 생각(정신)을 만나는 곳입니다.
사당 들어가는 입구 홍살문 빨간 화살이 나와있는 문
쇠창살이 귀신들을 찔러 혼내줍니다
"아이구! 귀신 살려줘~"
중국 홍살문에는 문턱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귀신들은 콩콩 뛰어다니기 때문에 (영화에서 강시?)
문턱을 높게 만들어 귀신이 넘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당 뒤로 묘소에는 김덕령장군의 부모님 가족 고조할아버지의 묘를
썼다고 합니다.
박상용 선생님께서 기리키는 곳 바로 이 자리는
우리나라 묘자리 중 최고의 묘 자리라고 합니다.
옛날 중국인이 이 자리를 얻기 위해 찾아왔지만
이미 묘자리가 정해진 뒤 였다고 하는데요
중국인이 이 자리에 묘를 썼다면 최고의 자리로
'황제가 될 자리였다'고 합니다.
충용문(忠勇門)
여느 사당과는 달리 붉은색이 아닌 미색을 띠고 있는 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세워진 사당인데 육영수여사가 미색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색문이라고(?)
조그맣게 지어진 담벼락에 박힌 정돌은 완도에서 가져온 돌이라고 합니다.
가운데 닫힌 문은 신들이 다니는 문.
방문자 입장에서 우리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고
나올 때는 왼쪽 문으로 나가야합니다.
김덕령 장군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 담양에서 5000 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싸웠으며,
이순신장군 수륙연합작전으로 왜군을 물리쳤고, 충청도에서 일어난 이몽학반란(1596)을
토벌하던 중 "이몽학과 손잡았다네" 라는 소문으로 투옥되어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도 감옥에서 매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장군의 나이 29세!
정조 임금때 충장공(忠將公)이란 시호가 내려졌고,
장군이 태어난 마을 석저촌을 충효의 고을이라하여 충효리(忠孝里)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위인 중 가장 훌륭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디선가~~~ "세종대왕이요~"
세종대왕 이름을 딴 서울 중심가 1번길은 '세종로'가 있고
광주 1번길은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붙여서
'충장로(忠壯路)'라 부른다고 하셨습니다.
무등산의 정기를 받은 기운이 이곳으로 온다고 합니다.
충민사(忠愍祠)
이곳은 충민공 전상의(全尙毅) 장군을 모신 사당입니다.
전상의 장군은 광주 서구 구동에서 태어났으며
29세에 무과급제 하였고, 광해군(1617년)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 150명을 귀국시키는 외교관역할을 했고,
1627(인조5) 구성부사(龜城府使)로 있을 때 후금→청 침략으로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안주성(安州城) 남쪽진영 백상루(百祥樓)에서
5일동안 싸우다 순절했다고 합니다.
장군의 신도비에 '구성부사'라 새겨져있는데
'구성'은 지명을 뜻하면서 장군의 '호'를 뜻한다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따와서 광주에 '구성로'란 길을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요
(광주일고 앞~월산동로터리) 쭉~ 뻗은 길을 '구성로'라고 합니다.
광주에는 3충신(三忠臣)이 있는데 김덕령장군(충장사) 고경명장군(포충사)
전상의 장군(충민사) 이라고 한다.
그 중 전상의 장군 사당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곳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 광주의 소란을 진압한다며 전두환 대통령 당시 이 사당이 생겼다고 한다.
전두환, 전상의 같은 성씨? (아니다 전두환은 완산 전씨이고 전상의 장군은 천안 전씨이다.)
전두환 동생(전경환)이 갖고 있는 유물을 이곳에 기증했는데
그 일을 누구누구 기증이라고 비석에 새겨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두환의 사람이라네 라는 오해를 받으며 외면당하다
잊혀졌다고 합니다.
전두환과는 아무 상관없는 전상의 장군의 정신을 품고있는 사당입니다.
요즘은 후손이 잘 되어야 선조까지 빛을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되면 여러분 선조까지 잘된다~
많은 정성과 돈을 들여서 홍보하고 선조의 사당이라든가 묘를 잘 보살필 수 있으니까요...
독수정,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을 쭉~
돌아보며 정자문화(亭子文化)에서 올곧은 선비정신을 읽을 수 있었고
충장사와 충민사를 살펴보면서 '옳다' '義'를 알 수 있었습니다.
광주정신은 '옳다'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박상용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전상의 장군 영정
정묘호란때 안주성 싸움중 남영인 백상루 전투에서 입고 싸우셨다는 갑옷(복제품)
1627(인조 5) 정묘호란때 청나라 3만대군의 침략군을 맞아
안주성 싸움중 남영인 백상루 전투
첫댓글 해설대본완성. !!!
감사합니다.
줄곧 유명한 곳만 다니다
우리고장을 돌아보니 느낌이 색다르고 정작 고장에 대해 너무 많이 모르고있다는
생각에 반성하고 더 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꼭 원장님 해설이 듣고싶었는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샘ᆢ이리도 생생한 후기를 ~
대단하세요
좋은사람들과 다니는답사 그야말로 힐링이네요~^^
이제야 올려놓은 글 수정했습니다.
옷에 적셔도 싫지않을만큼 비가 내려 운치를 더해주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이기에
저도 즐거윘습니다. 응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