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다리 보험왕 --- 조 용모 ---
가난하여 중학교만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지방대학을 졸업하여
서울대학원에 입학을 하였어나 가정형편상 진학을 못하게 되자 친구의 도움으로 무작정
상경을 하여 영등포 근처에서 직장을 구하든 중 구두닦이를 강요당하며 구타를 당하든 중
방어할려든 것이 폭행죄로 구금생활을 했어나 그때 판결을 내린 판사님의 도움으로
그 가정에서 가정교사로 대학원생활은 유지하나 사모님의 횡포로 많은 고생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마치고 좋은 직장에서 청운의 꿈을 펼치던 중 뺑소니차에 치어 다리를
못써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직장에서도 쫒겨나 술로 생활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2년 6개월 동안 상거지로 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길을 가다가 하천밑으로 떨어졌는데
물이 깊었어면 죽었을 텐데 물이 적어서 목숨은 살았어나 더러운 개울물을 마셔서 이질로 근처
보건소에서 푸대접을 받아가면서 치료를 받고 까마귀도 죽을 때는 고향땅으로 가서 죽는다고
죽을려고 고향으로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냥 들어갈 수 없어서 술을 먹고 늦게사
집을 찾았으나 반겨주는 사람은 없고 모든 사람들의 홀대에 골방에서 표창을 던지며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을 저주하며 분을 삭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향에서 1년 6개월 동안
술만 먹고 공동묘지에서 잠을 자면 어머니가 찾아와서 집으로 돌아오고 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가 이제는 죽기로 작적하고 죽을 방법을 연구하였다. 결국 수면제로 죽기로 결심하고
약국에서 약을 사다 모아 84알을 준비해 놓고 오월 단오날을 맞춰 목욕재배하고 편지를
써 놓고 약을 먹었는데 어머님에게 빨리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겼지만 의사의 진단은
사망으로 판정이 났다. 그러나 어머님이 우리 아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면서 입관을 거부하는
바람에 4일간을 아들의 옆에서 물 한모금 드시지 않고 아들의 시신을 지켰는데 얼굴의 색깔이
변하면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입술이 약간 움직이는 것 같아 의사를 불러
다시 검진을 해 보라고 하였더니 기적같이 다시 소생을 하였다. 18일후 퇴원을 하여 회복을
하였는데 이 때 깨달은
3 가지 방법---
1)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사람이 없다.
2) 죽음의 계곡은 내가 언젠가 가게 될 것인데 서두를 필요가 없다.
3) 내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한 앞으로 어머님 가슴에 한이 되어 드리지 말자.
이렇게 생각하고 돈을 벌자고 작정하며 취직자리를 알아보는데 108군데 서류를 넣었는데
다 떨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109번째 신동아화재에 서류를 넣었는데 서류심사는 합격하여
서울로 면접을 보러 올라왔다. 그러나 다리저는것 때문에 면접도 보지 못하고 불합격을
받았는데 그때 면접관인 송병태 부장에게 돌아서면서 2년안에 당신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모셔야 될 때가 올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아픈 마음으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왠 비는 그렇게 오는지...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를 삼키며.....
결국 110번째로 한국 자동차 보험대리점을 계약하고 보험업계에 진출을 하게 된다.
어렵게 자전거를 배워 하루종일 도시락 두 개를 싸들고 업무를 시작하였지만 상이용사로
오인하고 상대도 해 주지를 않았다. 밤 12시까지 돌아다니며 피눈물나게 노력을 하였다.
살기 위해서, 목표를 정해서 하루에 다섯건이 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어느날 그날에 4명은 만났으나 한명을 채우지 못하자
늦은 시간에 파출소에 찾아갔다. 근무중인 순경이 화장실을 찾는줄 알고 화장실을
가르쳐주자 보험 때문에 왔다고 하니 지금이 몇신줄 아느냐며 기가 막혀 하길래
나는 몸이 불편하여 오늘 하루 목표를 채우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어서 이렇게 왔노라
하며 보험을 권유를 하니....
이런 사람 처음 봤다며 보험을 들어주었고, 또 세사람을 소개 받아 돌아올 수 가 있었다.
명함 관리법 : 켄트지에다 명함을 붙여서 정리하고 명함 받은 다음날 전화를 하여
나를 기억시켜 준다. 명함 받은 날자를 적어놔서 30일 100일 일년 주기로 전화를
해 주고 관심을 주고 하여 나를 더욱 기억 시켜주는 것이 좋다.
지독한 고객의 예
- 전자대리점의 사장의 자동차 보험 청약하기. ( 12대의 자동차가 있었음 )
사장의 생일날 커다란 케익을 보냈으나 무반응을 보였고 집들이를 할 때 큰 괘종시계에다
이름을 크게 써서 보냈으나 역시 무반응, 사장의 아들이 결혼식을 할 때 바로 축의금을
주지 않고 기념사진을 찍고 난 다음 신랑에게 아버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얘기 하며
신혼여행에 써라고 두둑한 봉투를 주었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날
우산도 없이 비를 철철 맞으며 대리점으로 들어가 동정을 호소해 보았지만 물걸레를
들고 나와 물만 닦았지 반응이 없었다. 그 해 겨울 눈이 많이 왔을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출을 해 보기로 작정하고 대리점 앞으로 자전거로 돌진하여 일부러 넘어졌는데
재수가 없을려고 무릎뼈가 들어날 정도로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깜작 놀란 사장이 뛰어나와
왜 이렇게 눈이 오는데 겁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냐고 질책을 하자 “ 사장님 나는
몸이 불편하여서 이런날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 죽습니다.” 라고 하자 감동한
사장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을 하고 모든 보험을 들어주었다.
** 얻은 교훈 : 목표를 세웠어면 땀을 흘려라. 그래도 안되면 눈물을 흘려라.
그래도 안되면 피를 흘려라.
또 다른 예.
-- 수출자유지역에 들어가야 보험을 따 내겠는데 경비가 막아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자
다음날부터 새벽 5시반만 되면 그 입구에 나가 고급 세단차만 나타나면 꾸벅 절을 하였다.
그것을 무려 8개월 보름동안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그치지 않고 하였다.
그랬더니 어느날 자동차가 그 앞에 서고 사장이 내다보면서 당신이 누구인데 이렇게
차만 보면 절을 하느냐고 묻길래 나는 보험을 하는 사람인데 경비가 막아서 들어가지
못해 사장님에게 절을 하였노라고 하였고 함께 들어가서 이야기 하고 총무부장을 불러
필요한 모든 서류를 다하여 보험을 계약하여 주었다. 총무부장의 생각으로는 이 사람이
사장님과 인척관계라고 생각하고 인사발령때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 주인정신::: 왕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것이 주인 주자이다.
주인과 종과 머슴.---종은 시켜야 일을 하고 머슴은 시간만 지나면 되고 주인은
모두가 떠난 그곳에 항상 있는 사람이다.
* 37개의 지점에서 28위를 하든 지점을 2년 2개월만에 전국 1위를 만들고 매스컴을 타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서울에서 가장 안 되는 지점의 지점장을 맡으면서 취임사에서...
-- 거절의 강을 건너서 문전박대의 산을 넘어서 눈물젖은 빵과 피 묻은 밥을 먹으며 여러분은
성공의 열매를 맞보았는가? 그 위대한 탄생을 여러분은 지켜 보았는가? 나는 수천번, 수 만번의
좌절과 실패를 거듭했지만 나는 또 다시 성공의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최고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
나는 지금 또 다시 그 길을 향한다. 나는 오늘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이 땅에 왔다. 여러분은 입추의 입자가 무슨 입자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분명 설 립이었다. 봄을 만들지 않는자는
절대 가을을 거둘 수가 없었다.
바로 성공이란 성공의 대열에 서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3개월만에 500명의 직원들이 열심히 하여 전국 1위를 하게 된다.
2001년 4월 16일 자로 교육부장을 취임하게 된다. “ 바다로 간 나무꾼”이라는 책을 내었다.
* 14년이 지난 어느날 뺑소니 운전사를 찾게 되었다. ( 구멍가게 아줌마를 통해서 )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페인이 되어 목포 유달산 밑에서 기거하며 알콜중독자로 살고 있었다.
결국 용서를 해 주고 그 아이들을 위하여 매달 학자금을 막내 고모에게 몰래 보낸게 7년이 넘었다.
여러분은 몇 번의 실패를 해 보았는가?
* 만년 과장 강진구 과장. 그는 99번 실패한 사람으로 유일한 취미는 호프집에서 호프를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서 대장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15년이 넘도록 만년과장으로
지내든 어느날 같은과 김대리의 생일축하자리를 마치고 기분좋게 호프를 또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피투성이의 아들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빠 일등이 무어야?
대답할 말을 잃은 아빠는 아들을 데리고 호프집으로 가서 같이 맥주를 마시면서 아들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반에서 일등을 한 아이하고 싸움을 하였는데 선생님이 그 아이는 나무라지 않고
40명중 38등을 한 아들만 몽둥이로 때렸다는 것이었다. 강과장은 너무나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를 하고 다음날부터 8군데의 학원을 다니며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얼마가 지난후 회장의 회의때 강과장의 진가가 드러나고 회장으로부터 다음날 파격적으로
사장으로 승진을 하게 된다. 그 아들도 처음에는 정신병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석학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끝으로 여러분은 얼마나 인생을 감사하고 얼마나 원망하고 살고 있는가?
* 성악을 전공한 한 선배가 대학 2년때 연애결혼을 하고 3학년 올라가면서 배낭여행을 한다고
나간 사람이 군대 지원을 하고 월남으로 지원을 하였다. 부인은 만삭이었고 2대 독자였기에
군대는 가지 않아도 되었었다. 월남 간지 4개월만에 야자수 나무밑에서 총을 잡고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낸뒤 한달이 지난 어느날 전사통지가 오고 일주일만에 선배의
유골이 도착되었다. 모두가 국립묘지에 가서 장례를 치뤘다. 핏덩이를 들쳐업고
절규하며 눈이 없고 팔다리가 없어도 제발 살아 돌아왔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울부짖다가 기절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돌아왔는데 열흘후 그 죽은 선배가
전화를 통하여 살아온 것이었다. 우렁찬 목소리는 지금 돌아왔으니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정신이 없었지만 틀림없는 선배의 목소리였기에 급히 달려가 보았더니 둥글둥글 팔 다리가
없는 상태로 살아 돌아왔든 것이다. 그의 왈 30명이 죽었는데 자기만 살아 돌아왔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 하였다며 자기는 30명의 몫까지 살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죽어버리지 하고 속으로 생각을 하였지만 부인은 너무나 좋아하며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너무나 좋은 목소리로 불경을 녹음하여 배포하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설법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7년후 그 음성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든
어느날 만나 보았드니 살아있는 부처처럼 변하여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가 웃겼다가
자유자재로 하고 있었다. 그 사람왈: 사람으로 태어나서 손에다 물안대고 밭에다가
흙안대는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해
여러분은 원망의 씨앗을 종자부터 파서 버리십시오. 감사의 기쁨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손가락 4개로 피아노 치는 소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