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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가수
지학자씨가 주연으로 등장하고, 코메디언 김희갑씨가 데뷔했던 한형모
감독의 코메디물 <청춘쌍곡선>에서는 작곡가 박시춘씨가 제작한
동명의 주제가가 큰인기를 끌었다. 또한 유교적인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던 <자유부인> 역시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김용환은 기존의 레코드 음악과 함께, 캬바레에서 벌어지는 밴드의
연주와 당시 유행하던 맘보나 지루박과 같은 춤곡들을 영화 곳곳에 사용하였다.
1957
텔레비전의 보급과 함께
드라마와 주제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청실홍실>이 정일택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손석우씨는 1958년 소설가
박계주씨의 원작소설을 기초로 만든 영화 <나 혼자만이>의 주제가를
작곡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한편 여성국극단이 창극으로 <대춘향전>을
영화로 제작하였다. 해방후 한때 대중들의 인기를 받고 유행했던 여성국극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배역까지 소화하면서 노래와 연기 그리고 춤까지
곁들여야했던 한국의 오페라같은 것이었다.
1958
영화음악으로
크게 인기를 몰고 있던 박시춘씨가 오향영화사(五響映畵社)를 창립하고,
스스로 감독까지 맡아 <딸 칠형제>라는 뮤지컬 홈 드라마를 제작했다.
특히 이 영화에는 당시에 인기있던 가수들이 총출연함으로서 주제가의
붐을 예고하기 시작 했다. 또한 주제가와 동일한 영화제목으로 제작된 하한수
감독의 <목포의 눈물>은 작곡가 손목인씨가 담당했고, 박성복
감독과 작곡가 황문평씨가 음악을 담당한 <눈물>에서는 심연옥씨가
부른 주제가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59
그동안 100편을 넘기기
어려웠던 한국영화는 이 해에 이르러 111편이나 제작되었다. 특히 1959년에
제작된 다수의 영화들은 주제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주제가로 가요계에서
또다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김내성씨의 원작을 영화화한 홍성기 감독의
<청춘극장>은 작곡가 김동진이 가수 남일해에게 '축배의 노래'라는
대중가요를 취입시킨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노필 감독의
<꿈은 사라지고>에서 영화의 주연을 맡은 최무룡은 자신이 직접
주제가를 불렀으며, 여주인공이었던 문정숙씨 역시 '나는 가야지'라는 또하나의
주제가를 불렀다. 또한 권영순 감독의 <가는 봄 오는 봄>의 주제가는
백설희씨가 불러 크게 히트시켰고, 정일택 감독의 <동백꽃>에서는
백설희씨와 배우 최봉의 노래가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나애심씨의 <과거를
묻지마세요>, 박춘석씨의 <비극은 없다>, 손석우씨가 작곡한
<별하나 나하나>이외에, <타향살이>가 고복수씨의 목소리로
리바이벌되었고, 신상옥 감독의 <동심초>에서는 가곡 '동심초'가
가수 권혜경에 의해 불리워졌다.
1960
이 해에도 주제가로 영화를
성공시킨 작품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박종호 감독의 <이별의 종착역>에서는
손시향이라는 신인가수의 주제가가 큰 인기를 얻었으며, 또한 이인권씨가
작곡한 <카츄샤>는 송민도씨가 그 주제곡을 불러 가요로서 성공시켰고,
이만홍 감독의 <인정부부>에서는 영화보다 나애심의 노래만이 남는 결과를
가져 오기도 했다. 1960년에는 제7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김성태씨가 <흙>으로
음악상을 수상, 한국의 영화음악이 어느 수준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또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는 자극적인 불협화음과
무조성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스코어를 삽입함으로서 스릴러물의 느낌을 뛰어나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당시의 영화음악가에 대한 생각은 순수음악 분야의 작곡가들이 영화음악을
담당한다는 인식이 짙어졌으며, 문예작품을 영화화할 때 순수음악 분야의
작곡가에게 그 음악을 맡기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 당시의 대표적인 작곡가들로서는 김동진, 김대현, 김성태, 정희갑,
정윤주를 꼽을 수 있다.
첫댓글 하하 어디서 이런 자료를 발췌했을까요? 정말 보헤미안적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