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긋고 살기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세상은 늘 선을 흐리게 만든다. 처음에는 또렷하던 경계가 어느 순간 종이처럼 얇아져, 내가 아직 그 안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그 위를 무심히 건넌다. 모르고 넘기도 하고, 알고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조선 광해군 무렵의 이야기다. 벼슬을 버리고 물러난 선비 몇이 시골집에 모여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끼니를 이으려 수제비를 끓이려 했으나 땔감이 없었다. 다급해진 손이 끝내 마루의 궤짝으로 향했다. 오래 아껴 두었던 나무였다.
불길은 금세 살아났지만, 방 안에는 이상하게 말이 끊겼다.
한 사람이 낮게 중얼거렸다.
“가난이 원수로다.”
탄식인지 변명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남은 것은 뜨거운 국물이 아니라, 이미 한 번 넘어가 버린 마음의 흔적 같은 것이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권력 가까이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권력은 기대는 자를 오래 품지 않는다. 마침내 칼날은 그를 향했고, 그는 형틀에 묶여 끌려갔다.
그를 배웅하던 이가 말했다.
“그토록 소인기(少忍飢)를 말하더니, 끝내 그 한 고비를 넘지 못했는가.”
잠시의 굶주림을 참으라는 말. 그러나 그것은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무너짐을 막고 있던 마지막 얇은 끈 같은 것이었으리라.
선은 그렇게 무너진다. 밖에서 한순간에 깨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먼저 미세하게 갈라진다.
문득 오래전 직장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무 말 없이 서랍이 열리고, 봉투 하나가 조용히 밀려 들어갔다. 봉투의 흰 모서리가 잠깐 형광등 불빛 아래 번들거렸다.
나는 무심히 시선을 들었고, 그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가벼운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 남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리에서 사라졌다. 설명은 없었다. 다만 설명되지 못한 공허만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선은 거창한 결심 끝에 무너지지 않는다. 대개는 아주 작은 타협,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
“이번만.”
“이 정도쯤이야.”
그런 말들이 마음속 경계에 가장 먼저 금을 낸다.
또 다른 장면도 있다. 상인의 보따리가 잠시 인부의 눈앞에 놓였다.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한낮의 거리였다. 그는 한참 보따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한 번 무너진 삶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어렵다.”
그 말은 비장한 결심이라기보다 오래 몸에 밴 습관처럼 들렸다. 흔들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붙드는 사람의 낮은 목소리였다.
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족함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은 대부분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순간의 욕망 앞에서 스스로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흔들린다.
결국 선은 밖에 그어진 금이 아니라 마음 안에 세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선은 거창한 의지보다, 흔들리는 순간 한 걸음 먼저 멈추는 힘으로 버텨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어쩌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넘어서는 안 될 선 앞에서 끝내 자기 자신을 붙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2013)
첫댓글 하늘이 사람에게 '양심'을 주었으나 많은 사람이 애써 양심을 외면하고
악심을 먹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성경말씀이 생각 납니다.
자기 분수대로 맞춰서 살면 될테인데 많은 사람들이 탐욕에 빠져서 신세를 망치는 것 같습니다.
늘 내면의 욕심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욕심이 없을 순 없기에 절제하는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겠지요.
절제와 분수지키기는 살아가면서 명심하고 지켜야햘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작은 타협이 삶의 둑을 무너뜨리기에, 선을 지키는 것은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 멈춰 서는 힘입니다.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미세한 균열을 경계하며, 넘어설 수 있는 유혹 앞에서도 끝내 스스로를 붙드는 것이 삶을 존엄하게 지켜내는 길임을 이 토록 명쾌하게 쓴 聽石만의 글입니다.^^
욕심을 제어하는 일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해야함을
알게 됩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을 그르친 것을 역사를 통해서나 주변에서도
보아왔습니다.
광해군시대에 벌어진 설화는 많은 것을 일깨우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