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2009년 갑작스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허전했던 40대 몇명이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찾아 왔다.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함께 하기로’ 하고 8 가정이 ‘시드니 큰 가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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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 멤버가 쓴 글이다.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어머니의 말과 아버지의 땅을 떠나 이방인으로 삽니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덜 인정 받습니다. 더 외롭고 더 고통받지만 덜 위로 받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먼 곳에 두고 온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바라지 않습니다. 작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도 혼신의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그렇게, 이 땅에 흩어져 살면서 필사적으로 삶의 의미를 모색합니다. 비록 초라하고 비루한 일상을 살더라도 영혼을 비상하게 하고 삶에 위엄을 주는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탐색의 과정을 거쳐, 많은 분들이 차안에서가 아니라 피안에서 답을 찾거나 세속을 떠난 구원과 영생이 해답이라고 믿고 신앙에 헌신합니다. 어떤 분들은 두고 온 나라의 정치, 사회 혹은 문화 운동에 연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과 연대의 공동체는 귀하고 소중하지만 본질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정치나 문화 운동의 의의에 깊이 공감하는 분들의 폭도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호주 사회가 종교 사회가 아닌 세속사회 임을 천명하듯이 우리에게도 세속적인 자기 실현을 텃밭인 세속적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희생하는 분들, 절망적인 몸짓으로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더욱 더 필요합니다.
그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험난하고 외로운 세속의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때, 견디기 쉽도록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위로하고 위로받고 때로는 축하하고 축하 받으며, 함께 기뻐하며 울어주고, 의지할 어깨와 격려하는 손길이 되어 줄..
물론 그런 공동체의 건설에는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쉽게 실천이 가능하도록 단순하게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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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으로 처음 모였을 때는 마치 첫 사랑을 하듯 서로 간에 관심이 많아서 2 주에 한 번 토요일에 전 가족 30명 정도가 모였는데 함께 할 일이 많아서 토요일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명분이나 이념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자.
둘째. 골치 아프게 신경 쓰지 말고 재미로 하자.
셋째. 갇혀 있는 생각의 족쇄를 풀고 서로 배우려고 노력하자.
넷째. 물건뿐만 아니라 지식, 기술, 등 서로 나누는 것을 배우자.
물론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같이’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은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방어적 태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 뿐만 아니라 자기와 생각이 다른 것조차도 경계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어떨 때는 한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는 것도 어려울 때도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하기는 쉽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함께’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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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가족은 어차피 남의 땅에서 살다가 죽을 팔자이니 살아서 가족 같이 살고 죽을 때 서로 관을 들어 줄 사이가 될 수 있는 짝퉁 가족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좋은 것일수록 지불해야 할 대가가 높은 법이다. 생긴 데로 놀고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해서는 될 일이 아니고 서로가 다듬어지고 훈련하고 닦여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를 중심으로 해서 모였고 연장자라고 해서 어떤 지도적인 입장에 있지 않았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나는 3년간 지속된 모임에서 한 번도 5분 이상 내가 이야기를 해 본 적인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배려를 더 많이 해야 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정도이었다.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같이 하면서 창조적이고 재미있고 뜻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예를 들면 휴가를 같이 보내고 누가 집을 사면 모든 가정이 달라붙어서 집수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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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안타깝게도 3 년 만에 콩가루 가족이 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누구 탓이라고 할 수 없는 ‘인사 사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래 무슨 사고든 사고가 나면 보험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의 사고는 보험이 없는 법이다.
애초에 부담 없이 시작했지만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은 공동체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공동체는 강력한 의지와 철저한 정신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