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중 사찰순례는 팔공산 은해사와 거조암입니다. 은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809년(헌덕왕 1)에 혜철국사(惠哲國師)께서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그 뒤 1270년(원종 11)에 홍진국사(弘眞國師)가 중창하였고, 1275년(충렬왕 1)에는 원참(元旵)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1485년(성종 16)에는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스님께서 묘봉암(妙峰庵)을 중창하였다. 1543년(중종 38)에는 보주(寶珠)스님 등이 중수하였으며, 1545년(인종 1)에는 천교(天敎)스님께서 지금의 장소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지었다. 그때 법당과 비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
1563년 묘진(妙眞)스님께서 중건하였고, 1589년(선조 22)에는 법영(法英)스님께서 법당의 사방에 새로 건물을 세우고 단청하였다. 1651년(효종 2)에는 백흥암(百興庵)과 명부전(冥府殿)을 신축하였으며, 1667년(현종 8)에는 백흥암과 명부전을 중수하였다. 1712년(숙종 38)에는 은해사를 종친부(宗親府)에 귀속시켰고, 1714년에는 절 문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를 심었으며, 1730년(영조 6)에는 백흥암의 보화루(寶華樓)를 중건하였다.
1737년에는 법당 · 누각 · 천왕문 등을 단청하였고, 1750년 법당의 아미타후불탱화를 조성하였다. 1759년에는 백흥암과 명부전을 중건하였으며, 1761년에는 천왕문을 세웠다. 1767년에는 백흥암의 영산전(靈山殿)을, 1772년에는 설화(雪華)스님 등이 백흥암의 동대(東臺)를 쌓았고, 자암(慈庵)스님께서 대웅전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도봉(道峰)스님께서 영산전과 시왕전(十王殿)의 불상을 개분(改粉)하였다.
1780년(정조 4)에는 혜옥(惠玉) · 서징(瑞澄) · 덕윤(德玧) · 체주(體周)스님 등이 묘봉암을 중창하였고, 1785년에는 쾌민(快敏)스님께서 거조암(居祖庵)을, 1797년에는 경옥(璟玉) · 석린(碩麟) · 해운(海雲) · 유화(有和) · 승수(勝修)스님 등이 법당과 누각을 중수하고 단청하였는데, 이때 운부암 조실(祖室) 지첨(知添)스님께서 불사를 지휘하였다. 1801년(순조 1)에는 기기암(奇奇庵)을 중창하였는데 기기암의 원래 이름은 안흥사(安興寺)였다.
1900년에는 운부암의 보화루를 중건하였고, 1920년에는 석담(石潭)스님께서 대웅전 · 단서각(單捿閣) · 계삼당(洎三堂) · 보화루 · 창고를 수선하고, 주지실 · 요사 4동 및 2대문(大門)을 지었다. 또한 구재(舊材)와 신재(新材)를 사용하여 옛 조실(祖室)을 하지전(下持殿)으로, 극락전을 응접실로 바꾸었다.
현재 이 은해사는 말사 39개 소, 포교당 5개 소, 부속암자 8개 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이다. 1943년까지만 해도 이 절은 논 46만4000여 평, 밭 2만8000여 평, 임야 920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2,484평에 세워진 건물은 35동 245칸에 이르렀다. 이 절은 동화사(桐華寺)와 더불어 팔공산의 대표적인 사찰로 지눌(知訥)이 거조암에서 신행결사(信行結社)를 도모한 이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홍진국사가 머문 뒤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총본산으로서 사격(寺格)이 고양되었고, 조선 후기의 고승 영파(影坡)대사께서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華嚴敎學)의 본산으로서 그 명성을 드날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 · 산령각(山靈閣) · 설선당 · 심검당 · 단서각 · 종루 · 보화루 · 승당 · 요사채 · 객실 등이 있으며, 그 밖에 1999년 성보박물관이 완공되었다. 대웅전과 보화루의 현판은 추사(秋史)의 글씨라고 전해지며, 대웅전 안에 봉안되어 있던 극락구품회탱(極樂九品會幀)은 1750년에 성청(性淸)과 옥련(玉蓮)이 그린 뛰어난 작품이나 수년 전의 도난사건 이후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은해사와 부속 암자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3점의 문화재와 기타 60여 점의 사중 보물, 24동의 건물이 있다. 지정문화재로는 중국식 건축양식을 본뜬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국보, 1962년 지정),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보물, 1968년 지정),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보물, 1969년 지정) 등이 있고, 산내 암자로는 운부암 · 거조암 · 기기암 · 백흥암 · 묘봉암 · 중암암 · 백련암 · 서운암 등이 있다.
거조암은 거조사(居祖寺)라고도 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의 산내 암자이다. 693년(효소왕 2)원효대사께서 창건하였다는 설과, 경덕왕 때 왕명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 고려시대에는 지눌(知訥)대사께서 송광사에 수선사(修禪社)를 세워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이룩하기 전에 각 종파의 고승들을 맞아 몇 해 동안 수행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1182년(명종 12) 지눌대사는 개성 보제사(普濟寺)의 담선법회(談禪法會)에 참여하여 동료들과 함께 선정(禪定)을 익히고 힘써 지혜를 닦자는 맹서의 글을 지어 후일을 기약하였다.
1188년 봄에 거조사의 주지 득재(得才)스님은 지난날 결사를 기약했던 수행자를 모으고, 당시 경북 예천의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 머물렀던 지눌을 청하여 처음으로 이 절에서 정혜결사를 시작하였다.
그 뒤 이 결사는 송광사로 옮겨갔다. 1298년(충렬왕 24)원참(元旵)이 밤중에 낙서(樂西)라는 도인을 만나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本心微妙眞言)과 극락왕생의 참법(懺法)을 전수받아 기도도량으로도 크게 부각되었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근래에는 나한 기도도량으로써 3일만 지성껏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많은 신도들이 찾아들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62년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영천 거조사 영산전과 2동의 요사채가 있다. 영산전 안에는 청화화상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려 앞산의 암석을 채취하여 조성했다는 석가여래삼존불과 오백나한상, 상언(尙彦)이 그린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그 중 법계도(法界圖)를 따라 봉안된 나한상은 그 하나하나의 모양이 특이하고 영험이 있다고 전한다.
이 밖에도 영산전 앞에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높이 3.6m의 은해사 거조암 삼층석탑 1기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 순례일시 : 2023. 10. 8(일) 07:00 대전세무서 출발
- 순례장소 : 은해사, 거조암
- 순례코스 : 대전(07:00) - 은해사(09:40) - 사시불공(10:00~11:00) - 점심공양(11:10~12:00) - 거조암(13:00~14:00) - 대전(18:00)
* 점심공양 : 은해사
- 순 례 비 : 40,000원
- 입금계좌 : 하나은행 740-910157-83807(정인자) 010-5454-4560
자비행사찰순례단장 최종대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