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사려면 차 시간에 다시 와서 줄을 서라.
줄에서 빠져나오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화가 났지만 빨리 잊기로 했다.
`우짜겠노 그렇다는데. 에이 참, 배만 고프다.` 허어 참.
아직까지는 길거리에서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사먹을 용기도 나지 않거니와 딱히 먹고 싶은 걸 팔지도 않아서 호텔로 돌아와 300원짜리 치킨 슾(말이 숲이지 닭 국물에 밀가루 풀어놓은 것 같다. 그래도 먹을 만 했다.)과 말라빠지고 핏기(?) 없이 풀풀 날아가는 밥을 시켰다. 콩도 150원어치 시켰는데 너무나 짜서 물과 같이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
7시쯤 호텔을 나와 정류장으로 갔다. 오토 릭샤 차비는 300원 밖에 들지 않았고 5분 만에 도착했다. 술 가게에서 night bus의 지루함을 달래줄 럼주를 한 병 사고(500원) 느긋한 마음으로 매표소로 갔다. 그런데 매표소에 사람이 없다. 줄도 없다. 매표소 직원 인 듯, 한 사람에게 `마날리. 버스! 마날리. 버스! 세븐 써티` 하고 말하자 `틱해, 틱해` 하며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니 말 맞다는 예기다.
결국 7시 40분쯤에 버스가 올 때까지 표를 팔지 않았는데, 나는 버스가 도착은 했는지, 어떤 버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표를 언제 팔지도 모르는 그 불확실한 짧은 시간동안 넓은 주차장에 있는 여러 대의 버스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니며 버스를 찾았다.
초조한 마음에 타야 할 버스가 이 공터의 어디서 출발하는지 미리 보아 놓고 잽싸게 버스로 와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였다. 십여대의 차로 가서 운전수와 나누는 “마날리 오케이?”를 외치며 주차장을 한바퀴 돌아 매표소로 돌아오니 어느새 줄이 2-30명으로 죽 늘어서 있다.
`참 보통들이 아니시구만!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움직이다니.
그도 그럴것이 예약은 없고 가야할 버스가 오면 그때부터 표를 판다. 어디서 출발하는지도 버스가 와야 알 수 있다니 대비를 할 수 가 있나? 하지만 기막힌 아이러니이지만 이 촌 동네에서도(촌인지, 도시인지?) 버스는 좌석제인데 좌석이 채워지면 바로 떠난다. 예약도 안받는 버스가 좌석제라니, 어느 기준에 맞추어사는지 살아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탔는데, 타지 못한 사람들이 항의를 하고, 사정을 하고 한바탕 시끄럽다. 자리에 앉으니 무릎은 앞좌석에 닿고 등받이는 견갑골(주개뼈 라고 아실란가)보다 밑에 온다. 기차를 타고 올 때는 집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버스는 마을을 거치기도 하고 절벽길을 가기도 한다.
200m, 300m높이의 좁은 절벽길을 털털거리는 버스에 앉아 있으니 천천히 가는 청룡열차 탄 것 같다. 멀리서 이 장면을 찍어 보여주면 수 백미터 절벽에 난 좁은 길을 따라 장난감 같은 버스가 가는 것일 게다. 아찔아찔한 기분을 느껴볼란가 싶었는데 날이 어두워졌다.
캄캄한 길 옆 저편도 캄캄한 낭떠러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씩 들 뜨고 불안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 더 이상 마음이 쓰이지도 않았다. 사람의 운명이 어디 자기마음 먹은 대로 가기는 하나? 한 시간 쯤 가다가 어느 마을 앞에 정차하더니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종점도 아닌데... 나 혼자 있기도 그렇고 ... 휴계소 인가보다!
내려보니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짜이(밀크 티: 염소 젖1, 물1, 설탕-산악지방에는 소가 잘 없어서 염소나 산양 등의 젖을 사용한다.)를 마시기도 하고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차를 만들고 있는 `길거리아 짜이`를 한잔 주문한다.
한잔에 50파이사(15원 : 루피보다 한단계 밑의 단위 - 힌디어로 `돈`이란 뜻이다. 그래서, 얼마요? 하고 묻는 말도 끼뜨나 파이사? 이다.)
싸다. 그리고 맛 도 진하고 구수하다. 근데 쫌, 너무 달다.
권련을 사지 못해서 삐디(인도 전통 잎담배, 냄새와 모양이 꼭 대마초 말아놓은 것 같다.) 에 불붙여 후우 하고 내어뿜는다. 고즈넉한 저녁의 마을 한 곳이 일시적인 소란함과 부산한 움직임에 개 짖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滿月의 밤, 개 짖는 소리”.
얼마만큼 올라 왔는지 쌀쌀해진 기온에 내 복장은 이제 거의 겨울옷으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저녁을 먹기 위해 오래 있을 것 같아 짜파티(밀,호밀,보리,등 여러곡물을 함께 빻아서 반죽하고 불에 납닥하게 구운 떡 ) 2개와 차 한잔을 더시켜 사먹었다. 그런대로 든든하다.
30분 쯤 후에 차가 출발했다. 나는 차가 떠나기 전 럼주의 안주감으로 기름에 볶은 콩을 한 봉지 샀다. 술을 서너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한 시간 쯤 갔을 까 차가 또 선다. 몇 사람이 내리는가 싶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나는 약간 졸리기도 하고 해서 그냥 있으려는데 버스가 떠나지를 않는다. 눈을 뜨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여러 사람들이 내려서 오줌도 누고 있고 짜이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놀고 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가 다되어간다. 오면서 시간이 지체 되었으니 이제 2시간 정도 면 도착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래도 싶어서 운전수에게 다가가 도착시간을 물어보았다.
물론 영어는 통하지 않는다. 처음에 그는 내 말을 도저히 이해 못하는 것처럼 둘 사이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도착시간을 11시에서 12시사이를 가르키며 내 시계를 짚어 보여주면서 이야기 했다. 그런데 그는 자꾸 `네히 네히`(아니,아니)만 되풀이 한다. 용기를 내어 새벽 1시 까지를 짚어줘도 별 무반응이다.
잠시 후 그 운전수는 약간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뚜모로 모닝그 세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속이 하얗게 되며 말문이 막히려했다. 이미 막힌 말문이라 그 느낌은 더 컸다.
설마 하고, 나는 시계를 짚어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마날리, 세븐 오 클랔 ?
예스 . 세븐 오클락.
웁!!!! 세상에, 오 마이....
이런 자리에 앉아서 밤을 새라니, 나는 벌린 입을 닫지도 못하고 내 자리에 털썩 앉았다. .
그 후에도 버스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서더니 10분씩 혹은 20분씩 정차하고 떠난다.
나는 캄캄한 어둠속을 마냥 바라보고 가다가 주체 할 수 없는 졸음에 상체를 조금씩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비포장 산 길, 흔들리는 버스에서 조용히 앉아서 졸기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좌석 뒤 등받이가 너무 낮아 꾸벅거리면 거의 상체 전체가 휙 하고 뒤로 완전히 제껴져서 번쩍 놀라서 다시 깨곤 했다. 뒤를 주의하고 있다가는 앞으로 내리찍어서 앞사람의 약간 제껴진 뒤통수와 박거나 앞좌석의 쇠 파이프 손잡이에 이마를 찍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상체가 뒤로 완전히 제껴져 뒷사람의 숙여진 머리에 내 뒤통수를 박기도 했다. 그 순간 번쩍 놀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황당함과 아픔도 쏟아지는 졸음과 캄캄한 어둠 속에 같이 묻혀버린다. 나의 앞뒤로 앉아 나와 여러번 머리를 부딪혔던 사람들도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들도 졸음에 묻혀 오히려 스스로 미안해 하고 있는지도.
그러는 사이 새벽 2시가 지나고 3시가 지나온다. 헐거운 버스 창문은 덜거덕거리며 소란스럽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새어 들어 온다. 나는 앞으로 있을 더 험난한 여정을 생각해, 버스가 정차 할 때마다 내려서 기지개를 펴고, 굽혔던 다리를 펴는 등 숨쉬기와 스트레칭으로 몸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4시가 지났을 무렵 길옆에 눈이 조금씩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여름인데?) 고개를 들고 보니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불과 1-20층 높이의 건물높이로 바로 옆에 다가 와있다. 풀밭과 꽃이 있는 평원을 지나 지평선 너머 아득히 보이기만 하던, 한여름에 눈이 쌓인 그 먼 산봉우리가 바로 내 옆에 있다니. 아직 캄캄해서 경치도 보이지 않았지만 약간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어쩐지 바람이 차더라니... 또 버스가 선다. 버스 주위를 살펴보니 양옆으로는 낮은 산봉우리와 그 골짜기 사이로 난 길옆에 작은 집이 한 채 보인다. 마을 도 아니니 금방 출발하겠다는 생각과 1시간쯤 깨어있다가 다시 졸음이 와서 나가기가 싫었다. 나는 좁은 좌석 사이에서 완전한 취침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다리를 꺽어서 무릎을 앞좌석에 갖다대고 머리는 뒷좌석에 깊숙이 댄다. )
웅크리고 있는 몸도 찌뿌둥하고 술도 덜 깨는 상태에서 열어놓은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싫어 몸을 더욱 웅크렸다.
`아이구 이번 판은 내리지 말자.`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사람들이 타질 않는다.
두 세 사람만 남겨놓은 텅 빈 버스는 바람이 들어와 더 춥다. `또 오래 있을 모양이다.` 하고 결국 나도 버스에서 내리면서 보니 사람들이 모두 외딴집 뒤편 근처의 밭길을 줄줄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어디 가는 것일까 ?
나도 그들을 따라 잠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밭 저쪽편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고 수증기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어두워서 수증기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아! 노천온천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