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 아픈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나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도록 강요되는 경우 왜 그 일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래서 그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일을 해야만 하느냐고.
과거의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다. 요즈음에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 학창시절의 권위주의적 분위기에서는 수학선생께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불손한 거동으로 간주되어 체벌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었다. 요즘에도 이런 질문은 선생의 오해를 사기 쉬우므로 학생은 집에 와서 어머니께 투덜대듯이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한국의 어머니들은 백이면 백 “수학이 입시과목 중 점수 차가 가장 큰 과목이므로 수학을 잘 해야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수가 있지. 좋은 대학교를 나와야 출세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잘 살게 되는 거지”라고 대답할 것이다.
천 년 전에도 위와 같은 취지의 권학문(勸學文)을 하교한 중국 황제가 있으니 송나라의 진종(眞宗, 재위 997-1022년)이다. 그의 권학문은 아래와 같다.
富家不用買良田 書中自有千鍾粟 (부자 되려고 좋은 밭 사지 마라. 책 속에 저절로 천종 연봉이 있다.) 安居不用架.高堂 書中自有黃金屋 (편히 살려고 큰 집 짖지 마라. 책속에 저절로 화려한 집 있다) 出門莫恨無人隨 書中車馬多如簇 (외출 시 따르는 하인 없다 한탄 마라. 책속에 거마가 떨기처럼 많다.) 娶妻莫恨無良媒 書中自有顔如玉 (장가들려는데 좋은 중매 없다 한탄 마라. 책속에 옥 같은 처녀 있다.) 男兒欲遂平生志 六經勤向窓前讀 (사나이 평생 뜻 이루려면 육경 경전을 부지런히 읽어라.)
아주 명쾌하게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답이다. 약간 천박하기까지 하다. 물론 이 같은 권학문을 수용하고 드립다 공식을 외우고 문제풀이를 거듭하는 등 수학공부에 매진하여 남아의 평생 뜻을 이룬 모범생들도 많다. 그러나 조금만 더 궁리를 해보면 그 답은 무언가 모자란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길 터이다. 가상의 예로 구슬치기가 입시과목이 되어 이것을 잘 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것이 구슬치기를 열심히 연습해야할 이유가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수학을 공부하는 데에는 더 근본적 이유가 필요하다.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 페르마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수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중고교의 수학지식이 있어야 이공계의 대학에서 한 단계 위의 이공계열의 학문을 습득, 연구할 수가 있음은 이해가 되지만 문과 계열의 대학 지망생들도 골치 아픈 상당히 고난도의 수학을 공부할 필요는 어디 있을까?
나는 그간 수학공부를 함은 어떤 문제를 다각도로 깊이 심사숙고하고 조직적으로 사유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리라고 짐작해 왔다.
그런데 오늘 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해스컬(David Haskell)의 “나무의 노래”를 읽다보니 수학에 대해 아주 울림이 오는 해설을 한 문장이 있어 길지만 아래에 인용하기로 한다.
<수학자의 작업은 엄밀하며, 그들은 객관적 진리, 또는 적어도 객관적 진리에 가장 가까운 것을 추구한다. 우리는 이 수학을 믿고서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고 원자 내부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머리 위 지붕의 무게를 지탱한다. 항공학자, 물리학자, 목수 앞에 미학적인 수학적 판단이 있다. 이 판단은 특정한 학문 분야와의 오랜 관계를 통해 발전했다. 수학자들은 아름다움을 지침으로 삼는다. 우아함은 옮음의, 또는 옮음으로 향하는 단계의 한 가지 기준이다. 이 우아함을 보려면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수학 문제와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만이 이런 아름다움을 알아차릴 수 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로 유신론이나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인 폴 디렉(Paul Direc)은 “방정식에서 아름다움을 얻는 것이야말로 생산적인 통찰을 추구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디렉은 물리학의 여러 경우에서 실험 결과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보다 수학적 아름다움이 더 신뢰할 만한 지침이라고 주장했다.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우리가 물리학에서 미지의 분야에 대해 예측을 하는 이유는 “자연이 단순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이 아름다움은 수학, 즉 세상에서 “가장 심원한 아름다움”을 찾는 방법을 통해 드러난다. 파인만은 케플러를 비롯한 여러 선배 수학자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방정식을 귀금석이나 보석으로 묘사했다.
따라서 수학은 심오한 관계에서 탄생한 미감을 이정표 삼아 인간정신을 초월하는 진리를 추구하는 전례를 보여준다.>
고교 3학년말 모의고사에서 수학에 영점을 받기도 한 나로서는 “수포자”로 불리는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에게 강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한 마디 과거에 수학을 가르쳐주신 은사들께 뒤늦은 불평을 하자면 당시 어려운 유클리드 기하학과 방정식을 무작정 주입시키려고 하지 마시고 왜 그런 기하학과 방정식을 공부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해주어 공부할 동기를 일으켜 주셨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현될 가능성은 없지만 교과서의 맨 앞머리에 그 과목을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잘 일러주는 명문을 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것이 어렵다면 선생님들은 첫 학습시간에는 앞으로 1년 동안 무엇을 배울 것이라고 대강을 설명하고 그것들을 배울 필요를 간단히 해설해주는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코앞에 닥쳐온 AI시대에 교육은 환골탈태해야 할 터이고 추세는 암기보다는 숙고와 창의로 지향하지 않을까 예측하는데 우리 선생님들은 어떻게 준비들은 잘 하고 계신지 살짝 걱정된다.(끝)
첫댓글 재미있는 글이네요. 고3 모의고사 수학(해석) 문제에 한번은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문제들이 나왔는데, 소생은 전혀 모르는 문제들을 즉흥적으로 모두 풀었고 그 풀이 과정이 의외로 완전해가 되어서 담임 (수학) 선생님이 소생을 과대평가하였던 기억이 나네요. 가을에 "해석연습" 참고서를 두번째 풀고 있는데, " 그책은 너댓번 풀었으면 이제 그만 풀고, 일본 대학 입시문제를 풀어라" 하고 말하셨죠.
여기 카페지기인 jays는 모의고사의 기하 문제는 모두 정답을 내어 담임 이근식선생님으로부터 수학과로 가라는 권유까지 받았답니다. 가히 文理兼全이라고 감탄했는데 박공도 역시 그러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