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회 청향문학상 수상작 -大賞-
《 받아쓰기 》 엄현옥
열차가 검암역을 출발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서울역을 거치는 KTX 경부선이었다. 아라뱃길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질 즈음 통로 반대편 좌석이 소란스러웠다. 볼이 통통한 아이는 안경테 장식이 화려한 할머니가 건네준 휴대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끝내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엄마가 할머니랑 기차 안에서 받아쓰기 숙제 끝내고 오래요."
기다렸다는 듯 할머니의 문제 출제가 시작되었다.
"1번 요·양·워~언"
할머니 특유의 발음은 아이가 받아 적기에 맞춤한 속도였다. 게다가 한 음절씩 끊어 읽어주니 입 모양을 따라해 보며 쓰기 시작했다.
"2번은 의·료·기~이"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료'는 써본 적이 없다며 뭔지 되묻자, 할머니는 '요'가 아니라 '료'라며 강한 악센트를 주었다. 아이에게 '료'는 아직 어려운 글자인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보며 입 모양을 재정비했다. 혀를 최선을 다해 굴린 발음을 재차 느리게 들려주었다. 아이는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뭔가를 적었다. 공책을 보던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다음을 재촉했다.
“3번 '게이트 보올~''
‘게는 멍멍개야?’ 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아이의 질문이 계속되었다. 할머니는 집게 달린 '게'라며 검지와 중지로 집게를 만들어 애써 설명했으나 아이는 쓰기를 멈추고 창틀에 발을 올려놓고 탁자 밑에 떨어진 인형 옷을 줍기도 했다. 출제자와 수험생 간의 미묘한 정적은 공항대교를 달리는 소음으로 무마되었다. 출제를 포기한 할머니는 단잠에 빠졌다.
할머니의 작고 고른 코골이는 열차의 규칙적인 소음과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열차가 덜컹이며 소리를 매기면 할머니는 추임새인 양 낮은 코골이로 받아쳤다. 짧은 갈등의 순간이 지나자 아이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혼자 놀이에 빠졌으나, 이내 잠이 들었다. 무릎을 내준 할머니와 아이의 낮잠은 평화로웠다. 열차는 어느덧 한강을 지나 서울역에 진입했다. 할머니의 받아쓰기 문제는 그녀의 관심사를 대변했다.
친구 서너 명은 요양원에 있고, 자신의 요통을 다스릴 의료기 하나쯤은 당장 필요할지 모른다. 노인정에서는 게이트볼 대회에 대비한 연습이 시작되었을까. 문제가 7,8번을 넘을 때면 '노인요양보험'이나 '임플란트'도 출제했을 것이다. 아이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출제였다. 어디선가 보았던, 낯설지 않은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 최우선이다. 그것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받아 적고 싶은 것만을 선별하여 적는다.
언제부턴가 정서 상태와 의식의 흐름을 제때에 받아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근래에 더 했다. 스쳐가는 생각들이 연기처럼 사라지곤 하는 증상이 심해지면서부터다. 자동이체는 통장에 기록 한 줄이라도 남겼으나 뇌가 주관한 의식의 잔재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인간관계도 받아쓰기다. 상대가 던지는 무언의 암시나 불러주는 어휘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문항을 놓치거나 오답을 내놓는다. 재차 물어서 진의를 파악하지 않으면 오해의 벽을 쌓고, 그 벽을 끝내 허물지 못한 채 지내기도 한다. 반면 받아 써야 하는 상대방의 관심사와는 무관한 주관적인 질문으로 일관한다면 관계의 오류가 발생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받아써야 할 것 천지다. 상대적이지만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마음으로 받아쓸 수 있으면 좋은 상사다.
가족의 표정에서 파생되는 것들도 습관처럼 받아쓰게 된다. 글씨로 쓰이지 않지만 행간에 담은 기록도 많다오고가는 계절의 경이로움을 받아쓰지 않을 수 없으며 영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을 외면할 수 없다. 삶이 들려준 내면의 소리와 사물들이 건네는 조곤조곤한 속삭임, 무의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빼놓고는 글을 쓸 수 없다.
삶은 받아쓰기의 연속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쓴 것이 자신의 문학이라고 했다. 나는 시간이 전하는 것들을 받아쓰곤 한다. 습관과 고정관념의 굳은 살을 빼면 어제 보았던 대상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바람의 소리, 시간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들이 내 청력을 장악하도록 마음에 가득 찬 것들을 비워낸다.
열차는 광명을 벗어나자 비로소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받아쓰기를 포기한 할머니와 손녀의 낮잠도 본 궤도에 진입했다
(당선소감)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 청향문학상 대상 선정 소식은 터덜터덜 혼자서 걸어가던 문학의 길에서 만난 오아시스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청향문학상이 그 어떤 문학상보다 공정한 절차에 의한 상이며, 타 문학상과 차별화된 선정 기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귀한 상을 제정하신 청향 선생님과 부족한 저의 작품을 꼼꼼히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청향문학상의 취지를 상기하며
소외된 독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흡인력 있은 작품으로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하! 단풍 물결 칩니다

첫댓글 엄현옥작가님의 대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디 '당선소감'대로 그렇게 해 주실 것을 고대하겠습니다
"청향문학상의 취지를 상기하며
"소외된 독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흡인력 있은 작품으로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나 선생님
작품을 올려주시고...축하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뛰어난 통찰력과 감성의 만남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텔링의 시작과 과정과 마무리가 물흐르듯 이어지고
한 문장 속에 담긴 행간의 의미로 다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시킴과 동시에
백세시대를 즈음하여 대두되는 사회적 현상과 노년에 이르른 사람들의 심경을 세밀한 터치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할머니와 손주를 등장시켜 낮잠으로 대변하며 희석되어 가고있는 효의 가치관에 대한 안타까움도 부각시켰습니다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매서운 눈과 필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제대로 된 작품을 선정하신 심사위원님들의 공력과 노고에도 심심한 경의를 함께 표합니다
수상자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봉화시인님 이곳까지 섬세한 눈길이 머물고
어쩜, 이처럼 '대상' <받아쓰기>에 대한 평론을 잘 해 주셨습니까!
앞으로 '청향문학상'이 한번이 또 한번이 되도록 살펴 주십시요
어제 삼오제 끝내고 밤 늦게 상경 정신이 멍합니다. 감사합니다.
ㅎ
은근히 어깨가 으쓱하게 하시는
묘함이 있으시군요.
암튼 칭찬으로 알고 심사위원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말씀 올립니다.
@대항해 ㅎ 당연지사를 당연하게 하신 걸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라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겠죠
사실 좀 더 세게 감평하고 싶고 또 작가에게 당부의 말도 전하고 싶었지만 요기까지 할랍니다
미셀러니와 에세이 간의 아슬아슬한 경계 정도로만으로...
그리고 대신 전해 주세요
처음부터 유명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봉화 선생님
부족한 작품 세세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淸香(정정숙) 청향선생님
큰 일 치르시고, 시상식까지 하시느라 얼마나 고단하신 기간이셨는지요?
이제 건강을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엄현옥 아마도 멀지 않은 시간에 문명을 널리 떨치시리라 예상합니다
최고의 수필이라 함은 전율과 함께 가락을 타고 망각을 일깨워주며 아름다운 직관을 선물하는 조금 길어도 지루하지 않는 산문시의 조합이다
제가 늘 생각하는 에세이의 품격입니다
좋은 작품으로 수상하심에 한번 더 축하한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매일이 행복하시길 바라오며^^
학창시절부터 '안병욱이나 김태길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영원불멸'의 글인 것을 느꼈습니다
누구든지 읽으면 '힘과 용기'를 주는 진정성이 울어나는 글!
신변기 아닌 사회를 향한 그런 글을 쓰고 싶었었습니다만,
* 건강이 한계에 이르렸고
* 원하는 시나 엣세이 쓸 능력이 없었고
* 나이테 연륜이 깊었습니다
이어지는 투병중, 2012년 '희망이 없구나" 할 정도로
깊은 아픔속에서 제일 먼저 제정 한 일이 '문학상' 입니다
축하! 대상 받으시는 엄 작가님, "청향문학상의 취지를 상기하며
소외된 독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흡인력 있은 작품으로 정진하겠다"
는 님의 '수상소감' 안고 살아가겠습니다.
작가가 쓴 내용들을 살피면
효의 중심이 많이 내포되어 있는데
문득 뇌리에 스치는 무언가 효의 전후가 살아서 하는
효와 사후에 하는 효가 생각키워지는데 살아 생전에 자주 찾아뵙고
안부전화라도 자주하는 효애 비하면 사후애 행해지는 행사들이 너무 많아
전부를 예시하긴 힘들고 우선 虞祭(근심할,염려할우.제사제)에 初虞<초우>,再虞(재우)또는 중우, 三虞<삼우)
이후에도 졸곡이니 부제니 소상,대상이 많으나 근세에는 3일이나 당일로 탈상을 많이 하니 어떤 이야기를 해도
효의 근본 이념은 조상의 얼이라 생각되어 몇자 적어 봅니다.
솔밭향기 님
제 글의 행간에서
효의 중심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할머니와 손녀 사이에 일어난 일에서도
인간관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좋은 글을 찾으려면 역시 구절초향기를 믿고 들어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대상을 축하드립니다.
주향 님, 그리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축하도 감사드립니다.
엄현옥 선생님 대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영록 선생님, 부족한 작품을 읽어주시고,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청향문학상의 제정취지가 맘을 움직여 응모하셨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글로 이 풍진 세상의 빛이 되어 주십사
당부드립니다^^*
@대항해 대항해 님의 축하... 감사드립니다.
심사하시느라 애쓰셨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받아쓰기, 그랬군요
멋진 수필 감상 잘 했습니다~^^
할머님과 손녀의 받아 쓰기에서
나 중심의 대화가 소통이 잘 될리가
없는 현 사회상을 보여 주시는군요
좀 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쉽지는 않지만,
마음의 소리까지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자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겠어요
마금숙 선생님
어제 행사에 두루 애쓰셨습니다.
저도 경청의 자세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입장이 최우선이란 대목에서
대다수 정말 그렇다고 생각되어 가슴이 아픕니다.
진정으로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소통방법은 무엇일까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듣기, 받아쓰기는 무엇일까
성찰해 보게 됩니다.
축하드려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받아써야 할 것 들이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엄현옥 작가님,
6회 청향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 되셨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4회 수상자 이운순입니다.
지금,
엄작가님께서 얼마나 많이 기쁘고 설레실지 저는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청향문학상은 기쁨입니다.
행복입니다.
더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문운이 창대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이운순 선생님
선배 수상자님의 축하, 감사드립니다.
뜻 깊은 수상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축하 댓글을 먼저 달고 싶어 작가님 성함 확인을 하고 댓글을 달고
이제야 작품 감상을 했습니다.
그림이 그려지는 삽화, 마음이 따듯해지네요.
감상 할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이운순 선생님^^
수상작품집을 읽었습니다. 수필마다 내공이 알알이 슴배어 있고 글향기가 지금도 가슴에 진합니다. 두고두고 읽고 싶은 좋은 수필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