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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교육을 살리기 위해 '지식·학력·역량'의 바른 이해와 '참학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글 |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목차
1. 시작말
2. '지식·역량·학력'의 바른 이해
3.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위험성
4. 2015개정 교육과정과 '역량교육'의 연계
5. '학력'의 선정 시 놓치지 말아야 할 2가지 질문
1) 무엇을 위한(for what) 학력인가?
2) 누구를 위한(for whom) 학력인가?
6. '참학력'에 대해 사회적 합의 필요
7. 맺음말
1. 시작말
○ 다음은 학교교육의 목적에 대해 정부 당국자, 학생, 학부모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예상되는 답변이다.
• 질문자: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무엇이었으면 좋겠습니까?"
정부: "국가 발전을 위해서 창의·융합형 인재를 키워야죠."
• 질문자: "공부는 왜 하죠?"
학생1: "좋은 대학에 가려고요." "나중에 시집(장가) 잘 가려고요."
학생2: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학교교육에서 저는 의미를 못 찾겠어요."
• 질문자: "학교교육이 무엇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까?"
학부모: "무엇보다 먹고 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하니까 대입 준비죠."
이상의 가상 질문과 답변에서 보듯이 학교교육의 목적은 이해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이런 상황에서 '학력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 이해당사자들마다 다를 것이다. 학력의 의미는 이렇게 이해당사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하다.
○ 일전 일간 신문에는 '중·고 기초학력 미달, 서울이 1위...전북·강원 순'이란 제목의 기사가 났다. 이때의 학력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말한다. 이 신문기사가 학교교육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아마도 언론이나 국민들은 기초학력 미달비율이 낮으면 교육을 상대적으로 잘했고, 미달비율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교육을 못한 것이란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발표내용에 대해 각 시도교육청과 학부모들이 초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은 이를 낮추기 위해 유사시험문제를 학생들에게 더 풀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바람직한 접근이 아니다. 표준화 시험 성적의 공개와 학력비교는 의도와는 달리 이렇게 학교교육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의 목적을 표준화 시험의 성적을 높이는 것으로 왜곡시킨다. 15세 학생들의 국가 간 학력비교 시험인 PISA 시험 성적도 똑같은 영향을 끼친다. 자국 학생들의 PISA 성적 순위가 떨어지자 미국, 호주, 독일 등은 일제히 연방 수준의 성취기준을 만들어 '학력(?)' 신장을 기도한다. 사람들은 '진정한 학력'은 '시험 성적이란 학력'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 그리고 학교교육은 '진정한 학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도 안다. 하지만 '진정한 학력'을 추구하는 학교 수업은 '시험 성적이란 학력' 앞에서 쉽게 흔들리고 만다. 학부모들의 경우 "(그런 수업하다가)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란 불안감 때문에 '진정한 학력'을 위한 수업을 참고 기다려 주지 못한다. 딜레마다.
이런 상황에서 2015개정 교육과정이 '역량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식기반교육, 시험성적을 중시하는 교육, 역량 교육은 서로 어떤 관계 속에 있으며 학교는 이런 서로 다른 교육의 목표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지식·학력·역량'의 바른 이해
○ 시대마다, 개인마다 요구하는 학력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학력'에 대한 정의는 존재한다. 먼저 학력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살펴보자.
• '학력(academic achievement) - 교육의 결과(the outcome of education) - 학생, 교사, 학교가 교육 목표를 달성한 정도(the extent to which a student, teacher or institution has achieved their educational goals)(Wikipedia, 2015)'
학력에 대한 이상의 정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띤 정의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런 학력은 현재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지식교육'과는 어떻게 다르고 새롭게 강조되고 있는 '역량교육'과는 어떻게 다를까?
○ 기존의 관련 연구 자료들을 종합하면 학력에 대한 정의는 <학력 = 지식(knowledge 무엇을 알다), 능력(skills 무엇을 할 수 있다), 성향(disposition 어떤 사람이 되다)>으로 정리 되는 것 같다. 필자도 이런 학력이 참학력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역량(competency)'은 '학력'을 구성하는 이들 3가지 요소들과 어떤 관계에 있을까? 사용 빈도에 기반한다면 '역량'의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역량=능력(skills 무엇을 할 수 있다)'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전도 'competency = an ability or skill'로 정의하고 있다. 다음은 OECD의 역량연구인 DeSeCo 프로젝트에 있는 역량의 정의다. 역량은 매우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능력임을 알 수 있다.
• '역량(competence)' - 단순 지식(knowledge)이나 기능(skills)과 다르며, 그 이상의 것이다. 이는 기능뿐만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 태도 등의 심리적 자원까지 동원하여 복잡한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언어 사용능력, 정보통신 활용기술, 소통 대상에 대한 심리적 태도 등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역량인 것이다(Rychen & Salganik, 2003).
○ 역량의 내적 구조에 대해 밝히고 있는 연구도 있다.
• 역량의 내적 구조 - 역량은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로 나눌 수 없는 '총체적인(holistic)' 것이며 각 역량은 고유한 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 협업·협력 능력(ability to cooperate)에 관한 역량의 내적 구조:
-지식
-인지적 기능·기술
-태도
-감정
-가치와 윤리
-동기
(UNESCO, Competencies in Curriculum Development. Zhou Nanzhao)
○ '학력'과 '역량'에 관한 이상의 정의를 종합하면 <학력=지식+능력+성향≒역량>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학력과 역량의 개념이 확장되고 규범적으로 재정의 된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의는 현재 한국 교육계의 '학력'과 '역량'에 대한 오해와 혼란을 줄이고 '참학력'이 무엇인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 한국에서는 '학력'뿐만 아니라 '지식'에 대한 정의도 '사실적 정보'의 수준으로 매우 왜곡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교과서에 담겨 있는 내용을 보편적이고 객관적 지식이라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지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차제에 지식에 대한 대조적인 두 가지 정의를 살펴보자.
• 정의1: 지식 =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사실, 정보, 기능(능력)(skills); 어떤 주제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이해(사전의 보편적 정의)
• 정의2: 21세기 지식
- 지식은 과정이며 독립된 것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다.
- 지식은 학습자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또한 행하는 것이다.
- 지식은 전문가 개인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팀을 이루어 혹은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 지식은 교과별로 명확한 경계를 갖는 학문으로 정리될 수 없다. 지식은 매일 새롭게 창조되고 끊임없이 융합하면서 확장되어 가기 때문이다.
- 지식은 필요한 순간 스스로 탐구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지 미래 언젠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배워두는 것이 아니다.
- 지식은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거나 재구축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저장해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출처: http://www.galileo.org/initiatives/leaders/presentations/leaders.ppt)
지식의 '정의1'은 지식은 하나의 실체가 있는 결과물(product)과 같은 정의로서 전통적인 지식의 정의에 가깝다. 한편 '정의2'는 지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보편성과 객관성을 부정한다. 지식은 그 지식을 만들어낸 사회성, 역사성, 정치성 등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포스트모던한 관점이다. 이는 지식이란 인간 및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개인에 의해 주관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란 구성주의 학습관을 반영하는 정의다. 이와 같이 지식의 의미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지식은 사용하는 맥락에 따라 기능과, 또는 역량과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 앞에서 제시한 역량의 정의와 지식의 정의를 보면 둘 다 영어로 'skills(기능, 능력)'란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 skill이란 단어는 '기능'의 의미로만 사용되기도 하고, 미국의 p21처럼 '역량(competency)'이란 의미까지 포괄하기도 한다. 이를 종합하면 '지식(facts+information+skills)'은 ① 사실, 정보 ② 기능(능력) ③ 역량 이 세 가지 중 사용 맥락에 따라 ① 혹은 ①+② 혹은 ①+②+③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사용 맥락에 따라 '지식'의 정의가 이렇게 달라진다. 그래서 지식 교육을 의미있게 탐구적으로 제대로 하면 대부분의 역량이 개발될 수 있다는 주장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 지식과 기능(기술, 능력) 간의 관계를 짐작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움이 되는 도표가 있어서 소개한다.
<표 1> 앤더슨 등의 사고력 모형(Leighton, 2012)
지식의 이름과 분류는 명사형으로 끝나고 기술은 동사형으로 끝난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 둘은 '지식을 활용해서 기술이 발휘되는 것'의 관계라고 생각된다.
○ 한국의 학교교육은 어떤 학력이나 교육 목적을 지향해야 할까? 필자는 앞에서 '지식(knowledge 무엇을 알다), 능력(skills 무엇을 할 수 있다), 성향(disposition 어떤 사람이 되다)'을 다 포괄하는 것을 참학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학력은 교육이 어떤 목적을 지향할 때 갖추어 지는가? 21세기 학교교육의 목적을 잘 정리한 것이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
• "교육의 목적은 아동, 청소년들이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 능력, 성향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는 훌륭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 훌륭한 동료가 되어 주는 것, 함께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 나아가 사회의 전체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것 등."(Jonathan Cohen; NSCC 창립자)
• 전국의 모든 아동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경험을 하고 학교를 졸업하게 하는 것은 어떤가? 비록 이런 시도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사회인이 되었을 때 문제를 주도적으로 제기하고 타인과 협력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경험을 하게 하고 이로부터 배운 스킬을 평생 살아가면서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떤가?(Stephanie Rivera)
http://nepc.colorado.edu/blog/what-purpose-school
3.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위험성
○ 세계적으로 역량교육에 대한 붐이 일자 한국의 교육계 사람들 대부분이 역량교육의 도입과 강화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사람들이 "이젠 지식교육 대신에 역량중심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 그 예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무지한 생각이다. 지식과 역량은 서로 대체될 수 있는 관계에 있지 않다. 지식은 역량의 내적 구조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지식은 역량이란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와 같다. 고등사고력은 탄탄한 지식의 기반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필자는 '역량중심교육과정', '역량기반교육과정'이란 용어의 사용조차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의 현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은 이 두 가지 용어 중 어느 쪽도 아니라는 점이고, 둘째, 이들 용어의 사용은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을 매우 다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고, 셋째, 아직 역량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정착이 안 된 상황에서는 '지식 교육의 폄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 '역량'이나 '능력'이란 어휘가 한국에서 긍정적인 어휘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는 그 배경이 있다. 무기력한 지식교육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과 관련이 깊다. 지식을 단편적 정보 정도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사실 블룸의 교육목표 분류(알다, 이해하다, 적용하다, 분석하다, 평가하다, 창조하다)를 떠올려보면, 지식교육 내에 지금 강조하고 있는 역량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교육이 의미 있게 탐구적으로 잘 이루어지면 역량까지 개발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지식기반교육과 역량기반교육은 그리 다르지 않다. 수업을 잘 설계하면 수행 과정을 통해 정의적 역량까지 기를 수 있다. '역량'의 강조는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부 국가에서 교육과정 기준 문서에 핵심역량 리스트를 제시하는 것도 지식교육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21세기 들어 역량이 강조되는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사회가 지금처럼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지식과 기능(skills) 수준의 능력만으로도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통해 초연결 사회가 도래하면서 좀 더 고도화된 역량이 필요하게 되었다. 과거는 성장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환경과 생태계를 생각하면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는 번영만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번영과, 번영으로 인한 불평등이란 그림자까지 고려하면서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서 지식, 기능, 태도, 가치관 등이 전일적(全一的)으로 작용하는 역량의 필요성이 강조되게 된 것이다.
○ 지식교육이 잘 안 되는 상황을 역량교육의 강화로 해결해보려는 시도는 잘못된 접근이다. 지식기반교육을 중심으로 하되 지식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역량 함양을 강조할 필요는 있다. 무기력한 지식교육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부분적으로 역량교육을 강화하는 것에 찬성한다. 지식기반교육과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이 어떻게 통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4. 2015개정 교육과정과 역량교육의 연계'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 차제에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역량기반교육에 대한 비판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이런 비판의 중심에 서 있는 대표적인 학자가 마이클 영(Young, 2008)이다. 그는 역량은 경제적 도구주의 성격이 너무 강하며, 학교 교육은 전통적인 지식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전시켜 온 지식을 배우고 전수하는 기능을 해야 하고, 또 지금은 지식기반 사회이기 때문에 지식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매우 일리 있는 주장이다.
○ 역량중심교육의 위험성을 가장 잘 지적하고 있는 책이 있다. 국가수준의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세계적 추세를 소개하고 있는 책(Reinventing the Curriculum, 2013)을 보면 그 위험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첫째, 역량기반교육은 분절적 교육과정?: 모든 교육행위가 미래사회에 필요한 수행능력을 기르는데 맞춰진다면 교사의 주된 역할은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학생의 수행능력의 도달 수준이나 여부의 확인에 초점을 두게 될 것이다. 아마 교사 연수도 이를 중심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는 좋은 교육이란 무엇이고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큰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는 교육과정 운영을 통합적이기보다는 분절적으로 운영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둘째, 역량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역량의 습득은 훌륭한 수행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며 충분조건은 아니다. 주요 역량을 다 습득했다고 해서 특정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추가적 조건이 필요하다. 역량(competence)이 수행(performance)으로 전이되기 위해서는 '판단력(judgement)'과 같은 능력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역량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고 판단력은 언제,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할까를 판단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역량을 갖추더라도 그들이 마주하는 과제는 늘 새롭고 특수하기 때문이다.
셋째, 역량교육의 강화는 새로운 행동주의?: 역량중심 교육은 외부로 드러나는 수행과 행동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출 위험성이 있다. 그 결과, 사고(思考), 이해, 성찰, 판단 등과 같은 내적인 것을 소홀히 하면 수행의 'why', 'how'에 관련된 지식의 비판적 이해에는 소홀해지고 학습자의 행동 수정에 몰두할 우려가 있다. 평가(assessment)에도 문제가 예상된다. 행동과 수행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하면 이런 수행에 수반되는 지식, 이해, 판단 등은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을 지나치게 실제적인 삶의 상황(real life)과 연결시키는 것의 위험성에 대한 과거 논쟁을 다시 불러올 것이다.
넷째, 학생은 적응의 존재인가 능동적 수행자인가?: 역량의 설정이 기존의 관행과 상황이 요구하는 것에 바탕을 둔다면 이런 역량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한 것이 된다. 그러나 학습자들이 마주하게 될 미래의 도전적 현실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하는 것들을 수반하게 된다. 역량 설정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람직한 삶, 성공적인 삶의 관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개인들이 원하는 삶, 성공적인 삶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다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역량에 대한 규범적 설정은 교육을 적응의 도구(instrument of adaptation)로 전락시키고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민주적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다.
다섯째, 규범적 접근인가 가치적 접근인가?: 역량의 설정은 미래 상황을 예상하고 이런 상황을 대비해 교육이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문제보다는 가치와 규범적인 판단의 문제를 포함하게 된다. 역량이 작동하는 프로세스는 늘 무엇이 가장 훌륭한 수행인가란 가치 판단에서 시작한다. 역량이 과제 수행의 범위를 넘어 가장 바람직한 삶은 무엇인가의 문제로 확장될 경우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마다 그리는 바람직한 삶의 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역량의 설정과 이에 대한 강조는 늘 정당성 문제를 수반한다. 어떤 특정 관점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교육이 학생을 지도의 대상이나 개입의 대상으로 보느냐, 혹은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인 존재로 보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 필자가 요약함)
○ 교육을 역량중심으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경고를 보자. '학교교육 제4의 길'이란 책의 저자이기도 한 Andy Hargreeves는 21세기 역량을 다룬 책(21st Century Skills, 2013)'에서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에 대한 위험성을 아래와 같이 경고하고 있다.
첫째, 신경제가 요구하는 고도의 역량에 대한 필요성이 과장되어 있을 수 있다. 21세기 역량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역량을 강조하는 교육에서는 사회정의와 불평등의 완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도덕성, 윤리성, 격차의 완화,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 구축, 환경 문제, 빈곤, 삶의 질 등은 직업세계에서 요구하는 역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다.
셋째, '21세기 역량' 교육은 좋은 취지와는 달리 임기 내 업적을 내고자 하는 정치가들의 개입, 여전히 표준화 시험 성적을 중시하는 습관 때문에 개혁과 개입은 오히려 학교교육을 후퇴시킨다.
넷째, 역량교육이란 의제는 속도와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피상적 참여와 피상적인 상호작용이란 결과를 낳고 있다. 가슴 뛰게 하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교육의 이념과 목표, 교수학습의 질을 혁신하기 위한 진정한 전문가 공동체 같은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장기적 목표보다는 늘 단기적 목표가 압도한다.([주] 필자가 요약함)
○ 따라서 실패한 지식교육의 대안처럼 역량교육을 과대 선전하고 포장한다면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역량에 대한 세계적 유행에 무비판적으로 휩쓸러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015개정 교육과정이 역량교육을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그렇다. 매우 도식적 접근을 하고 있다.
4. 2015개정 교육과정과 '역량교육'의 연계
○ 필자는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이 인재상, 역량, 핵심원리(big idea) 간의 상호 관련성에 관한 연구 없이 각각 첨가하는 식으로 도입되었다는 점을 비판한 적이 있다(이찬승, 2015). 세계 각국의 역량교육의 강화에 대한 붐은 미국의 p21 (http://www.p21.org/)을 중심으로 한 역량교육 운동과 OECD의 PISA가 금년부터 도입한 '협업에 의한 문제해결능력' 국제비교평가의 도입으로 촉발된 면이 크다. 오래 전부터 교육과정에 역량을 명시적으로 도입하고자 했으나 그럴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이번에 총론과 각론에 반영한 것이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이와 함께 기존의 개별 지식의 습득 중심의 수업방식에서 핵심 원리(big idea) 이해를 위한 수행 중심의 학습으로 대 전환을 시도했다. 핵심 원리 중심의 학습은 단원 설계를 핵심 원리나 핵심 질문(essential question)을 중심으로 역순으로(backward) 설계하고 수업활동은 수행(performance; learning by doing)을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 현장에서는 이를 위한 교육과정 재설계 역량이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요구될 것이다.
○ 역량을 바르게 이해했을 때만 2015개정 교육과정에 반영한 핵심역량의 교육도 제대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사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하고 있는 역량교육에 대한 접근이 매우 우려스럽다. 역량을 분절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식이 바로 그것이다. 6가지 역량은 다 상호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역량을 함양하기 위해 각기 다른 활동을 설계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의 활동을 통해 복수의 역량이 함양된다. 2015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되기까지의 관련 연구를 보면 각론에서 역량을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연구자들이 역량교육에 대한 이해부족인지 중앙정부가 이를 요구해서 그렇데 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역량을 분절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역량교육에 대한 무지를 나타낼 뿐이다. 미국의 역량 연구 기관인 p21에서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관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설명의 용이성을 위해 각 요소를 분명히 구분해서 서술하고 있지만 우리는 21세기 핵심역량은 교수·학습하는 과정에서 모든 요소들이 상호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고 본다."
http://www.p21.org/storage/documents/docs/P21_Framework_Definitions_New_Logo_2015.pdf
○ 역량 교육은 아래 3가지 특성이 있다.
-역량은 분절적으로 가르칠 수 없다.
-역량 교육은 맥락 의존성이 크다. 역량은 구체적인 맥락속에서만 함양할 수 있다.
-역량은 실제적 상황에서 연습과 적용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 핵심역량을 각 교과에서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 국내에는 아직 제대로 된 샘플이 없다. 2015개정 교육과정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미국의 차세대 과학이 어떻게 역량과 빅 아이디어 중심의 교육과정 설계 방식을 통합하고 있는지 예를 하나 제시하겠다. 다음은 '전염병 예방에 관한 학습모듈(module)'의 예시다.
<표 2> 역량·성취기준·핵심개념(big idea)의 통합한 수업설계 예
○ 아울러 PISA의 협업에 의한 문제해결능력 평가 도구의 개념 모형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그림 2] 협력적 문제해결 개념 모형도(Griffin et. al. 2010)
이상의 개념 모형도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수행에 사회적 능력, 인지적 능력이 통합적으로 발휘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아래 다양한 지식과 하위기술이 관련된다. 역량기반교육과정의 위험성 5가지 설명에서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역량의 습득은 훌륭한 수행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며 충분조건은 아니다. 주요 역량을 다 습득했다고 해서 특정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추가적 조건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하나의 활동에는 복수의 역량과 성취기준이 관련되고 지식교육과 역량교육은 물처럼 자연스럽게 통합된다. 이번 교육과정 개발을 주도했던 학자들은 하루 속히 교육계의 역량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교과서 개발도 역량과 성취기준의 관계도 바르게 이해한 가운데 개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학력'의 선정 시 놓치지 말아야 할 2가지 질문
○ 필자는 2015개정 교육과정이 지향하고 있는 역량 모델(=학력 모델)과 이를 각 개별 교과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사회비전과 교육비전에서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론에 제시한 6가지 핵심역량은 매우 자의적인 도출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각론의 역량 도출 방식도 '인지도 조사'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고, 반영방식도 역량의 상호 연계성을 무시하고 개별 역량별로 적용을 하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생각된다. 학력 및 역량 모델을 만들 때는 아래 두 가지 질문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학력'의 선정 시 놓치지 말아야 할 2가지 질문: '미래형 학력'을 묻고 선정하는 작업과 함께 "무엇을 위한 학력인가(for what), 누구를 위한 학력인가?(for whom)"란 질문에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의 탐색은 지금의 아동들이 마주할 미래사회를 염두에 두고 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위 2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무엇을 위한(for what) 학력인가?
○ 기본적으로 학력이나 역량은 미래에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교육을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다. 그러나 추구하는 사회상은 크게는 진영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물론 한국의 학교교육이 정립하고자 하는 학력도 다른 어떤 나라에서 추구하려 하는 학력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의 특수성을 고려한 학력일 것이다. 오늘날 비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정상으로 되돌리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교육의 목적은 <① 지속가능성 ② 공동선의 추구 ③ 사회 정의와 민주주의 ④ 모두의 성장과 자기실현 ⑤ 정서적,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웰빙 ⑥ 의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부의 양극화, 학업 성취도의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고,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학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우선적인 교육의 목표는 이상의 여섯 가지라 생각한다. 이상의 여섯 가지의 목적이 한국의 학교교육의 우선적인 목적으로 설정될 것을 제안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 누구를 위한(for whom) 학력인가?
○ 교과지식으로서의 학력이 누구를 위한 학력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융·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의 개정은 국가의 이해를 위주로 결정된 것이다. 개인 중에는 그런 학력이 불필요하거나 흥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2015개정 교육과정에 의하면 고교생이면 누구나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공통으로 배우도록 되어 있다. 주요국들처럼 사탐과 과탐 과목 중에 자신이 필요하고 흥미가 있는 것만 골라서 집중 학습할 수가 없다. 이는 학생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학력이라기보다는 국가발전과 교사의 생존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갈등은 보수진영을 위해 유리한 지식을 더 많이 포함시키느냐 진보진영에 유리한 지식을 더 많이 포함시키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학교가 교과지식 중심으로 수업을 하는 경우와 삶과 연관된 체험 중심 수업을 할 경우 어떤 학습이 누구에게 더 유리할까? 교과지식 중심의 경우, 중산층 이상의 아동들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책읽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부모가 책을 읽어 줄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은 책읽기 경험이 적어 어휘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교과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교과지식 중심의 수업의 비중이 높다면 중산층 이하의 가정 출신 자녀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역량 교육의 강화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 역량교육의 붐을 일으킨 것은 미국의 기업들이다. 그리고 역량기반교육은 세계경제개발기구인 OECD가 PISA 시험을 통해 금년부터 역량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직업세계로 나갔을 때 필요한 역량을 함양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역량중심교육'을 지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량교육의 지나친 강화는 교육의 도구주의를 강화하고 행동주의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역량기반교육의 위험성 참조).
○ 수학능력시험의 시험 문제도 '누구를 위한 학력인가?'라는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교육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과목인 영어와 수학의 반영 비중이 높아지면 가난한 가정 출신의 아동들이 불리할 수 있다. 그리고 쉬운 수능에 대해 변별력이 부족하다고 문제제기를 한다면 이는 상위권 학생의 학력을 중요시하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쉬운 수능이면서 절대평가를 할 경우 중하위권 학생이나 상위권 아래의 학생들에게는 더 공정하고 장점이 많다. 쉬운 수능의 낮은 변별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보면 한국 사회는 공부 잘하는 상위권 아동 위주의 학력관에 빠져 있다고 생각된다.
○ 내신 성적의 평가 방식도 '누구를 위한 학력인가?'와 관련이 된다. 고교가 서열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상대평가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반면에 절대평가를 동일한 절대기준으로 하면 일반고 학생들이 불리하다. 그러나 절대평가를 하되 각 학교의 평균적 학습 잠재능력을 고려하여 절대평가의 성취수준을 정한다면 좀 더 공정한 절대평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관리할 방법이 어렵고 성적 부풀리기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 어떤 지식도 순수하게 객관적이기 어렵다. 모든 지식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의미가 구성된다. 그래서 마이클 영이나 마이클 애플 같은 학자들은 지식에는 특정 권력층의 문화가 녹아있고 학교교육을 통해 이런 특정 계층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배우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6. '참학력'에 대해 사회적 합의 필요
○ 현재 한국에서 일반 대중에게 통용되고 있는 학력에 대한 정의는 <학력=표준화 시험 성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매우 비교육적이다. 이런 정의는 <학력 = 지식(knowledge 무엇을 알다), 능력(skills 무엇을 할 수 있다), 성향(disposition 어떤 사람이 되다)>이란 정의와 매우 다르다. 학교교육이 후자의 학력관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능력과 성향은 측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편의성 때문에 언론이나 국가가 책무성 관리를 할 때 <학력=표준화 시험 성적>의 정의를 사용한다. 이게 문제다. 이제 <학력=표준화 시험 성적>이란 정의를 사용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할 필요가 있다. 또 '중·고 기초학력 미달, 서울이 1위...전북·강원 순'과 같은 언론보도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 교육의 책무성 관리를 표준화 시험성적의 결과를 통해서 하고, 또 언론이 그런 보도를 계속하게 되면 학교교육의 목적이나 학력은 '표준화 시험 성적 향상'을 넘어설 수가 없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가 언론이 이런 발표를 하지 않기로 합의를 한 것처럼 한국도 이런 조치가 시급하다. 그리고 참학력(=지식+능력+성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참학력에 의한 새로운 책무성 관리 제도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시험성적이란 거짓학력으로 책무성을 관리하고, 학교교육의 성과, 교수학습의 질을 평가하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7. 맺음말
지식·능력·학력·역량의 바른 이해와 '학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 '학력=표준화 시험 성적'이란 사회적 인식이 유지되는 한 한국 학교교육의 어떤 노력도 기대하는 성과를 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어렵다면 호주의 멜본 선언처럼 선언 형식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언에 언론을 포함한 사회의 각계각층이 참가할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대학 당국도 이런 사회적 합의나 선언 내용을 적극 반영한 대입전형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언론도 더 이상 '중·고 기초학력 미달, 서울이 1위...전북·강원 순'과 같은 보도를 통해 '학력=표준화 시험 성적'이란 인식을 강화하지 말아야 한다.
'참학력'을 추구하는 것이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들로 하여금 "(그런 수업하다가) 아이들의 학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요?"란 불안감을 씻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 국민의 열망을 담은 사회비전과 교육비전을 먼저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학력과 역량을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도출된 학력이나 핵심역량을 키울 수 있는 의미있는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대학을 비롯한 교육의 주체들이 소아적 이기심에서 벗어나 사회적, 윤리적 책무성을 최상위에 두고 거듭 태어날 필요가 있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한마음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참학력이 작동하는 새로운 학교교육을 만들자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허핑턴포스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