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국-안휘성 지도
사로신라와 동신라의 연원을 추적하기 라는것은 매우 힘든 일 일 수도 있다. 사로신라와 동신라의 관계및 제왕연대력에서 매끄럽지 않게 연결고리가 이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음을 부정 할수는 없다. 하지만 두 부분 공히 요령성 하북성을 중심으로하는 문명의 기반을 가지고 2000여년전 대륙남쪽으로 진출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청나라의 사관들이 편술한 <만주원류고>에는 신라의 연원 및 역사 그리고 백제등 왕조가 반도로 이동한 사실등을 기록하고 있음을 본다. 하지만 신라의 멸망이 1100년정도 지난 지금 대륙에서 그 존재를 찾기가 쉽지 않으나 다행히 옛지도 및 기타 자료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본인이 이부분을 추적하고자 하는것은 이미 신라의 존재에 대하여 확인하기 위하여 대륙 여기저기에 발품을 파신 오재성선생을 비롯한 여러 학자분들이 노력으로 인하여 밝혀진것 이지만 누리꾼들의 이해를 돕기위하여 정황상 판단되는 근거를 들어 정리하는 의미로 설명을 드리는것 이다. 이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견이 많을 수 있겠지만 댓글등을 이용하여 논의하심도 좋을듯 싶습니다.
사로신라의 수도가 어디냐 하는것에 대한 여러 개연성있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위의그림이 경주가 표시된 청시대의 지도이다.
1.천하고금대총편람도(청-1666)에 나오는 경주
청시대에 작성된 천하고금대총편람도는 1666년에 작성된것으로 청초시기에 작성되어 명나라의 지리적 지식을 기본으로 했다고 하지만 ,대륙고려사를 필두로 <경주>의 위치에 대하여 이론이 많은것이 사실이고 영하성에서부터 대륙서북부에 경주의 위치가 나타나기도 하였다.하지만 이 지도에는 결정적으로 경주가 매우 큰 도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며 경주의 주변 소도시들이 표기되어 있으며 현대의 지도와 정확하게 들어맞고있다.
위의 그림을 보면 <경주>로부터 인근에 아래와 같은 도시들이 기술되어 있다.
1) 淮安 -현 강소성 북 2) 蘇州,常州,鎭江-현 강소성 남 양자강 유역 3) 徐州 -현 산동성 남 4) 德安 -현 하남성 남 5) 八公山 -현 안휘성 중
1912년 및 2000년도 하남성 지도에 보면 팔공산 이 위치하고 있고 북부에 경주가 위치하고 있다고 총람도에 기술되어 있으므로 그주변을 보면 용왕묘,고성,몽성,반(월)성등의 묘와 현재 경주의 주변에 붇여진 산의 지명과 대동소이함을 알수있다. 지도에 경주가 나타남은 청황제 자신이 신라의 왕통을 이어받은 적통자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바로 그 근거지가 대륙중앙이었음을 알리려고 했던것 아닐까?
2.중화민국에서 보는 안휘성의 道名.
唐이후 전국을 통일하고 행정지명에 일대 변혁을 기하였는데 그것이 道의 개념이다.현재의 省의 개념은 아니지만 지방의 큰 행정지명을 잘게 짤라 통치하는 조직인 道가 도입되었고 이는 금,요,고려,조선,명,청나라에서 사용되었다. 현재의 縣보다는 상위개념이다.즉 省 >道 >縣 의 크기이지만 중공이후 道의 개념은 없어지고 省 과 縣의 개념이 존재한다.
안휘성은 3도로 구분되는데
1) 淮泗道
2) 安慶道
3) 蕪湖道
,안경도>가 안휘성의 중앙에 위치하며 천하고금대총편람도(청-1666)에 나오는 경주의 위치와 거의 일치하는것이며 도의 이름도 < 慶 >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지명을 지을때 과거의 연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나타내주는것으로 판단된다. 즉 지명은 산,산맥,하천,종족,전쟁.기후.나라 .등등에서 따온다.
3.신라왕자 김교각스님이 입적한 <구화산>이 안휘성에 있다.
김교각스님은 신라왕자로서 8세기후반 出宮하여 구화산에서 득도하고 그곳에서 지장보살 등신불이 되었다.지금도 그 행정구역은 안휘성 남동부 이다.즉,신라수도에서 멀지않은 동남방에 구화산이 위치하고 있고 지금 알려진 대로 득도하기 위해 동신라에서 절강성을 지나 산맥이 3-4중으로 있는 곳을 넘어 안휘성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지리감각으로 넌센스이다.
동신라 주에서 배로 직선거리 1500km 와 대륙동해안에서 구화산까지 400km직선 거리를 가로 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경주에서 대하를 끼고 동남으로 내려가는 길이 훨씬 쉽고 편안한 길이 되기 때문이다.
4.신라의 이름은 바로 <실크>에 있다.
안휘성은 바로 어마어마하게 큰 뽕나무산지와 그를 먹고 자라나는 누에를 기를수 있는 적합한 환경이며 연평균기온이 겨울 7도 에서 여름 26도정도이다.고대부터 지금까지 유명한 비단의 산지이며 옆의 강절의 소주,항주는 그 집산지이다.
5.고구려 연개소문은 강소성 중부 <숙천>을 넘어 강소남부 <고우>까지 진출.
고구려군은 당군을 파하며 복속을 시킨 전설이 대륙내에서 아직까지 전해져오고 있고 산동과 강소,안휘를 잇는 삼각 지점에서 당군과 고구려,고구려군과 신라군간의 싸움이 빈번했었다는 것이고 이 설은 이미 <사무불통>님이 본 사이트에서 발표한적이 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그 지점에 현대지도상에도 당군과 전적지 유적도 명기되어 있다. 6.그렇다면 경주는 현재의 어디쯤인가?
경주의 수도를 혹자는 <낙양>이라고도 추측한다.하지만 개인적 견해로는 하남성 낙양은 산서성과 맞물려 백제와 가까운 지역아니겠는가 판단한다. 왜냐하면 산서성 남동부 고성과 진평이 백제의 중기수도라고 언급이 된적이 있다. 천하고금총람에 기재된 경주는 지금도 존재하는 안휘성 팔공산 에서 정북쪽에 위치한 <宿州 >,巢 부근이 아닐까 하는것이다. 이곳은 현재 산동성 < 徐州 >와 남북으로 직선거리에 있고 교통상 요지이다.
곳곳에 호수와 강의 황하,양지강의 지류가 있어 수량이 풍부하며 평지이며 남북으로 산이 겹으로 가로막고 있다.
운영자 심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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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라의 경주는 지금의 중국 섬서성 난주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신라 56대경순왕이 운주계30여성과 함께 나라를 받쳐 항복한곳입니다.이래서 고려 태조 왕건이 여생을 편안히 살라며 자신 공주까지 보내주지요 누구에게 신라 경순왕에게요...<참조>"상고사의새발견"명문당. 이중재저-
그렇지요... 지금의 경주는 토함산에 화산 흔적도 없고, 반월성이라는 것에 가 보면 야트막한 언덕배기인데 궁성이라고는
보여지지 않지요.. 그러면 불국사/석굴암/나정이니 뭐 이런것은 언제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 그리고 1100년을 내려온
제국의 임금 묘가 어찌 확인된 것이 하나도 없고요....우리는 원래 어디서 온거야요 ...?, 우리 사학계에서는 뭐 이런 간단한 것도 해결하지 못해 주남요 ?, 누구든지 박사 논문테마로 삼아 연구를 좀 해 보시지요... 이병돈지 뭐신지는 잊어버리고..삼국사기에는 압록강은 서쪽에서 동으로 흐른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왜 그 반대인지... 지질학적으로 변동이 생긴것인지.. 등등... 우리 사학계는
요즘의 국회의원들 처럼 하는 것 없이 세비나 타내고, 65세 이상은 무조건 150만원인지 연금을 받도록 입법이나 하는 도둑놈들과 달라야 하는디...... 우리의 뿌리도 제대로 설명치 몬하는기 무신놈의 역사 학자들 이신지 원.... 월급이나 축내는 것 아니신지... 월급 받기가 떳떳하신지 어떤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