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敍此。以爲後來者之勸。比者使人之行。去日以南風。歸日以北風。初發明州。以其年五月二十八日。放洋。得順風。至六月六日。卽達群山島。及回程。以七月十三日甲子。發順天館。十五日丙寅。復登大舟。十六日丁卯。至蛤窟。十七日戊辰。至紫燕島。二十二日癸酉。過小青嶼,和尙島,大青嶼,雙女焦,唐人島,九頭山。是日泊馬島。二十三日甲戌。發馬島。過軋子苫。望洪州山。二十四日乙亥。過橫嶼。入群山門。泊島下。至八月八日戊子。凡十四日。風阻不行。申後。東北風作。乘潮出洋。過苦苫苫。入夜不住。九日己丑。早過竹島。辰巳望見黑山。忽東南風暴。復遇海動。舟側欲傾。人大恐懼。卽鳴鼔招衆舟。復還。十日庚寅。風埶益猛。午刻。復還群山島。至十六日丙申。又六日矣。申後風正。卽發洋。夜泊竹島。又二日風阻不行。至十九日己亥午後。發竹島。夜過月嶼。二十日庚子。早過黑山。次過白山。次過五嶼夾界山。北風大作。低篷以殺其埶。二十一日辛丑。過沙尾。午間。第二舟三副柂折。夜漏下四刻。正柂亦折。而使舟與他舟。皆遇險不一。二十三日壬寅。望見中華秀州山。二十四日癸卯。過東西胥山。二十五日甲辰。入浪港山過潭頭。二十六日乙巳。早過蘇州洋。夜泊栗港。二十七日丙午。過蛟門望招寶山。午刻。到定海縣。自離高麗。到明州界。凡海道。四十二日云。
근자에 사절의 행차는, 떠나가는 기간 중에는 남풍을 이용하고 돌아오는 기간 중에는 북풍을 이용한다. 처음 명주를 출발한 것은 그해 5월 28일이었는데, 큰 바다로 나가서는 순풍을 얻어 6월 6일에 가서 곧 군산도에 도달하였다.
귀로에 오르게 되어서는
7월 13일(갑자)에 순천관(順天館)을 떠났고, (도보로 출발후 강을 운항하는 작은배를 탔을것으로 보임)
15일(병인)에 다시 큰 배에 올랐다. (대해 항해용 대선을 말하는것)
16일(정묘)에 합굴(蛤窟)에 이르렀고,
17일(무진)에 자연도(紫燕島)에 이르렀고,
22일(계유)에 소청서(小靑嶼)ㆍ화상도(和尙島)ㆍ대청서(大靑嶼)ㆍ쌍녀초(雙女焦)ㆍ당인도(唐人島)ㆍ구두산(九頭山)을 지났는데, 이날 마도(馬島)에 정박하였다.
23일(갑술)에 마도를 떠나 알자섬(軋子苫)을 지나 홍주산(洪州山)을 바라보았으며,
24일(을해)에 횡서(橫嶼)를 지나 군산문(群山門)을 들어가 군산도 아래서 정박하였다.
8월 8일까지 도합 14일 동안 바람이 막혀 가지 못하다가, 신시(申時) 후에 동북풍이 일어나 밀물을 타고 큰 바다로 나가 고섬섬을 지났고 밤으로 접어들어서도 머물지 않았으며,
9일(기축)에는 아침에 죽도(竹島)를 지났다. 진시와 사시에 흑산(黑山)을 바라보았는데, 느닷없이 동남풍이 사나워지고 또 해동(海動)을 만나 배가 한쪽으로 쏠려 기울어지려고 해서 사람들이 대단히 두려워하여 곧 북을 울려 뭇사람을 불렀더니, 배가 다시 바로 돌아왔다.
10일(경인)에는 풍세가 더욱 맹렬해져 오각(午刻)에 다시 군산도로 돌아갔다.
16일(병신)까지 또 6일이 지났다. 그날 신시(申時) 후에 바람이 가라앉자 곧 큰 바다로 떠나 밤에 죽도에 정박하였다. 또 이틀 동안 바람에 막혀 가지 못하다가
19일(기해)에 이르러, 오시 후에 죽도를 떠나 밤에 월서(月嶼)를 지났다.
20일(경자)에는 아침에 흑산(黑山)을 지났고 다음에는 백산(白山)을 지났고 다음에는 오서(五嶼)와 협계산(夾界山)을 지났는데, 북풍이 대단하게 일어나 뜸을 낮춰 그 기세를 줄였다.
21일(신축)에 사미(沙尾)를 지났고 오시 사이에는 둘째 배의 세 개의 보조 키가 부러졌고, 밤의 누각(漏刻)이 4각으로 내려가자 정타(正柂) 역시 부러졌다. 사신의 배와 다른 배들도 다 위험을 당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고려 영해로 보임)
23일(임인)에 중화(中華)의 수주산(秀州山)이 바라보였고
24일(계묘)에 동서서산(東西胥山)을 지나
25일(갑진)에 낭항산(浪港山)으로 들어가 담두(潭頭)를 지났다.
26일(을사)에는 아침에 소주양(蘇州洋)을 지나 밤에 율항(栗港)에 정박하였고
27일(병오)에 교문(蛟門)을 지나 초보산(招寶山)을 바라보았고 오각(午刻)에 정해현(定海縣)에 도착하였다.
고려를 떠나서 부터 명주 땅까지 오는 데 무릇 바닷길로 42일이 걸렸다.
▶ 明州,即今宁波,是中国东南沿海的一大重要港口
秀州수주, 嘉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