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롯은 이방 땅으로 들어갔고, 룻은 이방 땅에서 나왔다
본문: 창세기 13:10–13, 창세기 19:37, 룻기 1:16–17, 룻기 4:17, 마태복음 1:5
들어가는 말 — 이름은 비슷하지만, 삶의 방향은 달랐습니다
성경에는 이름이 비슷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롯과 룻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 모압 민족의 조상과 연결되는 인물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훗날 다윗 왕의 증조모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모압이라는 역사를 통해 연결됩니다.
롯은 소돔을 향해 들어갔습니다. 반면 룻은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물론 성경은 두 사람의 이동을 의도적인 대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두 이야기를 함께 묵상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붙들고 그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1.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소돔으로 향했습니다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이 많아지자 두 사람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서로 다투지 않도록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롯은 요단 지역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창세기 13:10 요지)
출처 입력
그 땅은 물이 풍부하고 목축하기에 좋아 보였습니다. 롯은 그곳을 선택했고, 점차 소돔 가까이 장막을 옮겼습니다. 창세기 13장 13절은 소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다고 기록합니다.
롯이 처음부터 소돔의 악을 선택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은 그가 눈에 보이는 풍요를 기준으로 땅을 선택했다는 사실과, 그 선택이 결국 소돔이라는 환경 가까이 그를 데려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조건, 경제적 이익, 편리함, 성공의 가능성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 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당장 유익해 보이는 선택이 우리의 신앙과 삶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도 살펴야 합니다.
롯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 내가 가까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롯의 후손 가운데서 룻이 나왔습니다
창세기 19장 37절은 롯의 큰딸이 아들을 낳았고, 그의 이름을 모압이라 했다고 기록합니다. 모압은 모압 민족의 조상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그 모압 민족 가운데 룻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룻은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했지만 남편을 잃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도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나오미는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룻에게는 자기 민족과 고향에 남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룻기 1:16
출처 입력
이 고백은 단순히 시어머니를 향한 효심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룻은 나오미와 함께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합니다.
룻이 과거 모압에서부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탐구했는지는 성경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장면에서 룻은 자신의 출신과 익숙한 환경을 뒤로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선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롯과 룻의 이야기를 대비하여 묵상할 수 있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소돔 가까이 갔습니다. 룻은 앞날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했습니다.
믿음의 길은 언제나 당장 더 유리해 보이는 길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3. 룻이 떠난 모압은 룻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모압은 그모스를 국가신으로 섬기던 민족의 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모압은 종교적·역사적으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이방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룻을 단지 모압 여인이라는 출신으로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룻기 2장에서 룻은 이삭을 주우며 나오미를 봉양합니다. 보아스는 룻의 신실함을 알게 되고, 그녀를 보호합니다. 룻기 3장과 4장에서는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마침내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고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며,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 5절은 보아스와 룻을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합니다.
이것은 룻기의 놀라운 결말입니다.
모압이라는 배경이 룻의 마지막 자리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 가운데 들어왔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오늘의 신앙에 적용할 때 우리는 출신이나 과거만으로 사람의 미래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우리는 처음부터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룻이 예수님의 조상이 된 것이 그녀의 행위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룻의 신실함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한 이방 여인의 삶까지 포함하여 진행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자신의 출신으로만 규정되지 않으며, 과거의 배경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제한하지도 않습니다.
4. 요셉과 룻 — 고난과 이주를 넘어 이어지는 하나님의 섭리
이 지점에서 요셉의 이야기와도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팔려 갔습니다. 그러나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 가운데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창세기 50:20 요지
출처 입력
요셉은 자신이 겪은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룻기에서는 그와 같은 직접적인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오미 가족을 모압으로 보내신 이유가 룻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결말을 돌아보면, 흉년으로 시작된 이주와 가족의 상실 속에서도 룻의 삶은 다윗의 계보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 두 이야기를 함께 묵상하며 한 가지 신앙의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겪는 고난과 위기를 넘어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난의 이유를 우리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정이 있더라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생명을 보존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그 고난이 왜 일어났는지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여실 수 있다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5. 모압을 떠난 룻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룻의 이야기는 오늘날 신앙을 찾아가는 사람들, 자신의 과거와 환경을 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특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거나, 신앙을 접하기 어려운 곳에서 살아온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룻은 모압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출신이 그녀가 하나님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장벽은 아니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신앙을 소개하고, 함께 길을 걸어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나오미는 룻의 신앙 여정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성경은 룻이 어떤 과정을 거쳐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믿음을 강요하기보다, 신실한 삶과 사랑으로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알고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룻의 이야기는 한 민족이나 지역을 그곳의 종교와 정치적 상황만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도 줍니다. 모압이라는 배경에서 룻이 나왔듯이, 오늘날에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앙을 찾고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은 사람들의 현재 모습만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서 이루어질 수 있는 변화와 회복도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맺는말 —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누구를 따라가는가
롯과 룻은 이름이 비슷하고, 모압의 역사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 사람의 삶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들려줍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소돔 가까이 갔습니다. 룻은 익숙한 고향을 떠나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향했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이 대조는 두 사람의 모든 삶을 선악으로 단순하게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과 선택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과거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누구를 신뢰하며 어떤 길을 걸을 것인지는 믿음의 결단과 연결됩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지만, 성경은 그녀를 모압이라는 출신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다윗의 계보에 기록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가 예상한 경계에 갇히지 않습니다. 이방 땅에서 태어난 한 여인의 믿음과 신실함도 하나님의 큰 역사 안에서 귀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눈에 보이는 유익만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의 출신과 환경 때문에 누군가의 가능성을 미리 제한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실한 사랑으로 주님을 보여 주게 하옵소서. 우리의 이해를 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