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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크리에 관한 세인트 저메인 대사의 가르침 --------
---사람은 디크리의 올바른 사용법을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이 말한 일체의 사소한 말에 대해서도
심판의 날 그에 따른 응보가 주어지리라.
너희는 너희 말로 인해 의롭다함을 얻겠고,
너희 말로 인해 저주를 받으리라
." 디크리는 부주의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세심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권하는 패턴은
사람을 위해
지고의 선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것이다
.
(실상 사람의 모든 말은 디크리이고
만트라(주문)입니다.
우리의 말을 통해서
신의 에너지는 항상 작용합니다.
'나는 바보다'
라고 말한다면
'내 안에 계신 신은 바보다'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신의 에너지는 당신을 바보로 만드는 데 쓰일 겁니다.
'나는 빛이요, 진리다'라고 한다면
'내 안에 계신 신은 빛이요 진리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은
당신 안에 빛과 진리로 현현될 것입니다.
'너는 왜 그리도 모자르냐'고
상대방을 힐난하면
내 안에 있는 신의 에너지가
상대방을 멍청하게 만드는데 쓰입니다.
그렇게 나간 신의 에너지는
상대방의 성장을 방해하는 족쇄로 현현됩니다.
그래서 비난을 오랫동안 받게 되면
대개의 사람은 성장을 멈추고 풀이 죽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미 자신에게 있는 능력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말은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용한 대가는
반드시 자신이 거두게 됩니다.
내가 어리석었어. 라고 말할때,
그게 자기 반성에 그치면 되겠지만
그게 자기 존재의 모습에 대한 시인이라면 정말로 멍청해 질 겁니다.
그게 맨날 되풀이되면 정말로 멍청이가 됩니다.
그게 왜곡된 신의 힘 즉 마야의 힘입니다.
물론 본질은 어리석지 않겠지만요.
쓸데없는 말이 부정적인 카르마를 만들기 때문에
수행자는
침묵을 금처럼 여겨야 하는 겁니다.
필요한 말만 하고
그 외는 '예'나 '아니요' 만으로 대답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시인하는 것하고
현재의 자기 모습을 완전하다고 보는 것하고는 다른 얘깁니다.
'너희는 신이다'라고 했을 때
자신의 현재의 모습(에고)을
그 자체로 신이라고 여기는 것은 그야말로 네피림적인 생각입니다
. 교만과 탐욕의 덩어리인
자신의 모습을 신으로 보고 자신의 매사를 합당하다고 본다면
그 악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역사를 보면 실제로 그런 존재들이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서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다주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신성에 대한 견해는
겸손과
'자기 존재의 긍정' 사이의 균형 속에서 자리잡아야 합니다.
겸손은 자신의 현재 모습 이 결코 신이 아니라
거짓된 것이기에 드러나지 않은 신성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자기 존재의 긍정'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자신의 신성이
자기의 본질이자
자기 존재의 법칙임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러한 긍정은 되풀이 될수록
존재의 참빛이 점차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흔히 만트라 또는
디크리라고 하는 것은
신성 에너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발산할 수 있도록
그 의미와 단어를 세심하게 배열해 놓은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문이나 디크리를 할 때
평소보다 좀 더 집중해서 말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말보다 효과가 강한 것입니다.
세인트 저메인의 말을 계속 인용하겠습니다. )
디크리는 일반적으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크리는 신께 보내는 편지로 여겨져야 한다.
(1)디크리의 인사말은 기원적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과 딸들의
개별화된 신적 현존체와
영적 하이어라키를 구성하고 있는 하느님의 종들에게 고하는 것이다.
이런 인사말(디크리의 서두)은 경건히 바쳐졌을 때,
하느님과
승천한 이들의 응답을 재촉하는 부름이 된다.
(즉 아엠 프레젠스와 여러 대사들,
천사들의 이름을 서두 부분에 넣습니다.)
소방수가 그대의 도움요청을 거절할 수 없듯이
우리도 이러한 소환 요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 때 인사말의 목적은
그대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합심하여
사랑스럽게 소리내는
신께 보내는 편지의 몸체부에 대한 응답 안으로
승천대사들의 에너지를 즉각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다.
(즉 자기의 기도에 대사나 천사들을 끼여들게 하는 겁니다.)
(2)편지의 몸체부는
자신이나 남을 위해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특질들,
보통의 기도에서도 포함될 수 있는 기원들을 명시한 글귀로 구성된다.
그대의 외면적 의식과
하부의식 그리고 초의식
또는 상부 자아를 통해서 발언의 힘을 발출하게되면,
그대가 불러일으킨 승천 대사의 지고한 의식 도
그대가 간구한 것의 발현에 관여하게 된다는 점을 확신해도 좋다.
(즉 대사나 천사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현되게끔 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존재들은 우리가 신의 뜻에 합당하게 요구하는 기도나
간구에 대해 반드시 응답해야 합니다.
이기적이거나 저질적이라면 어두운 것들이 일할 위험이 있지요).
(3)이제 디크리를 종결함에 이르러,
하느님의 가슴 안에서
편지를 봉인하는 받아들임(the acceptance)은
영의 권역으로 위임하는 마음으로 바친다.
그러면
그곳으로부터 연금술(alchemy : all-chemistry of God 하느님의 일체적 화학)과
침전의 틀림없는 법칙을 따라
발현이 물질적 형태의 세계 속으로 되돌아온다.
( 종결부분에서는 자기가 바라는 바가
꼭 발현하고 확대되길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수학에서 제곱의 힘을 이해하는 자는
집단으로
신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킴에 동참할 때
단순히 일 더하기 일
베이스로 참여자의 수만큼 그 위력이 증대되는 것이 아니라,
디크리를 하는 사람 수와
디크리의 횟수로 제곱하여
발언을 실현시키기 위한 힘의 발산을 증대시켜 주는
'제곱의 옛 계약' 속으로 동참자들이 진입해 들어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두워진 세상으로
보내는 빛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의식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생명안으로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개인적인 디크리를 충심으로 권하고 있지만,
그룹 디크리는
소원하는 선에 대한 강력한 심상화가 동반되었을 시에는
개인적인 디크리보다
세계적 규모에서 더욱 효과적이며,
참여한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 신속한 응답을 초래하게 된다.
( 심상화는 시각화, 영상화 즉 visualization을 말합니다
. 그러니깐 여럿이 모여서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디크리를 하면 전쟁이나 재난도 막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때
성 주위를 돌면서 소리를 지르니까 성이 무너져 버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것이 그 예지요.)
명심할 것은
누적된 필멸적 악취로 에워싸인
오늘날의 형태의 세계 속으로 선(Good: God 신)을 불러일으킬 때면
언제나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높은 데서부터 발출되어 오는
선(빛)은 (그 빛의 높은 진동수 때문에)
지구의 대기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부정적 바이브레이션에 의해(
이들 바이브레이션의 낮은 진동수때문에)
거의 항상 자동적으로 반발된다는 점이다.
(이 점 때문에 디크리를 함에 앞서
자기 주변에 보호의 역장을 형성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 대사들이 주는 디크리 중에는 개인적,
세계적 악에 도전하는 디크리가 있는데
이런 것은 충분한 준비없이 하다가는
오히려 반작용에 말려들어가 버리기 쉽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버리기도 하고
갑자기 분노가 일어나거나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도 반작용의 하나지요.
반작용은 대부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빛에 비례해서 나타납니다. )
디크리에 있어서
박자 또한 중요하다.
올바른 박자는 디크리를 통해서 불러일으키고 있는
신의 특질들을 혹성전체로 끌어 당겨올
영적인 바이브레이션의 가장 침투적인 투사를 만들어 낸다.
혹성체 위로 물결치는
원들을 형성하는 이들 파장의 모멘텀은
헌신자가 같은 노력을 쏟기 위해 모이는
그 어느 곳에서도 빛의 심화를 창출해낸다.
"너희는 일을 명하라. (Thou shalt decree a thing.)
그러면 그 일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이사야?) 이 말은 디크리를 지배하는 법칙을 밝힌 고대의 격언이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은
"하느님께서 '빛이 있어라' 하니 빛이 있었다."라고 했던
그 태초에 하느님이 사용한 그것을 작용케 할 수 있는 동일한 힘을 갖고 있다.
디크리를 지배하는 법칙과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운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우리의 모임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디크리하는 것을 접하는 사람은
어떤 부정적 세력이나 엔터티(entity)들의 영향 아래 놓일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들 세력은 자연스레 다이나믹 디크리의 사용을 정면으로 반대한다.
(디크리를 하는 장소에
처음 들어가거나
디크리를 녹음한 테이프를 처음 듣게 되면
거기서 발출되는 강렬한 빛으로 인해
그 사람의 내면에 숨어있던 엔터티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분노나 두려움에 휩싸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우리들 의식 속에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아들인 온갖 종류의 엔터티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수행을 방해하고 빛의 흐름을 왜곡하는 요인들입니다.
이는 빛의 정화작용을 통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제대로 하면 그런 엔터티들이 발동을 못합니다.
'성령과 불에 의한 세례'로써
신성의 빛과 에너지로 변환(transmutation)시켜 버려야지요
. 엔터티는 인간하부의 감정덩어리 같은게
응집되어 나름대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겁니다
. 예를 들어 엔터티 중에는 알콜의 엔터티,
마리화나의 엔터티,
자살의 엔터티 같은게 있는데
술자리라면 알콜의 엔터티같은 게 형성되는 장소고
또한 이런 엔터티들이 술을 더 부추기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술을 먹고
그로 인해 발산되는 에너지가 그 엔터티들의 생명원이니까요.)
디크리의 올바른 사용은 연습을 요한다.
처음부터 우주의 완전함이
자신의 생명에 쌓인 일체의 쓰레기를 쓸어가 버릴 거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올바른 디크리는 기술이다.
좀 더 숙달됨에 따라
디크리의 속도를 높여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즉 바치는 비율을 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속도를 높여감에 따라
어떤 일이 생기는지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전자적 패턴의 진동율을 고양시키는 이러한 가속은
그 사람의 세계 속에 있는
부정적 생각과 감정들을 떨쳐버리고 변환시키기 때문이다. -----
뭐든지 잘하려면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그 모멘텀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마치 피아노같은 악기를 연습하는 것처럼 여겨야 할 것입니다.
악기 연주자는
한두 대목을 연습하고 또 하고 또 합니다.
어떤 수행도 마찬가지지요.
힘 안들이고도 쉽게 효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믿지 마십시오.
생명의 에너지들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신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그리스도적 주체 또는 상부 자아의 특권입니다.
인간적 자아는 불완전하고
미완인지라 창조적 명령을 발할 수 있는 권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디크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안에 계신 전능한 하느님의 현존이신 '아앰'과
나의 거룩한 그리스도 자아의 이름 안에서"
'In the name of Mighty Victorious Presence God I Am in me, and My Holy Christ self'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자신의 현재의 한계와 능력을 인식하는 제자는
일체의 육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성
령의 힘으로 자신의 의식을 새롭게 할 신의 전능함을 시인합니다.
성령은 제자의 심장 안에
세줄기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는 거룩한 불로 발현되어 있습니다.
디크리 또는
신적인 명령과 디크리하는 자,
그리고 디크리에 대한 응답 모두는
신으로 신의 삼위일체적 발현인 것입니다.
디크리하는 자는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이 이 디크리를 바치는 것이다.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에너지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발현하고 있는 '발언의 힘'에 의해 법칙을 실현하고 있는 이도
바로 하느님이다"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사람(하급 자아)은 신의 가슴으로부터 나와
발현된 완전함으로 응집되는 빛의 도구인 것입니다.
그는 빛의 원천도 아니고,
창조의 주재자도 아니며,
빛으로 하여금 자신의 명령에 따르게 할 고유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신의 빛, 신의 말씀, 신의 디크리가 자신을 통해
흘러나가
창조주의 완전한 일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살아있는 희생물로 순결에 헌정합니다.
그처럼 누가 '행위자(doer)'인지를 명심하고
제자는 아버지/어머니 하느님(아앰 프레젠스)과
성자(자신의 그리스도 자아로 현현된 만유의 그리스도)와
성령(형태와 의식에 신의 에센스인 생명을
부여하는 거룩한 불의 에너지들)의 이름으로
디크리를 바치는 거룩한 의식을 집행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문이다(I AM the Door)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라고 했을 때 'door'는 'doer'입니다.
그리고 '나는'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하느님)'입니다.
즉 바로 진정한 행위자는 하느님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예수께선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것이지요.
'부처가 부처를 깨닫는다'는 말하고
일맥상통하지 않습니까? 이런 인식이 참다운 수행의 요체입니다.)
디크리하는 장소는
잘 정돈되고,
깨끗하며,
환기도 잘되고,
조명도 적당한게 좋습니다.
먼지가 많거나
어수선한 곳,
탁한 공기, 어두운 불빛은 디크리의 효과를 떨어트립니다.
이런 것들은 빛의 흐름을 방해하고 천사들을 물리치기 때문입니다.
이들 천사들은
신의 거룩한 에너지를 증폭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천사들입니다.
수행할 때
천사 또는
신장 또는 데바라고도 하는 존재들이
옆에서 수행을 돕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주변을 정돈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민감한 존재라
약간의 부조화스런 진동도 꺼려합니다.
불가에서 오채를 먹지말라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오채의 냄새나
진동이 이런 존재들을 못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음식들은 수행자의 몸속에 들어가
수행자의 부조화스런 의식의 일부가 됩니다.
이런 존재들은
수행자를
외부의 나쁜 진동에서 보호하는 일도 하지만
신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수행자의 기도를 전달하는 사자 역할도 합니다.
야곱이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꾼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일은
안 보이는 세계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