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22일 (수)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전쟁
오늘의 말씀 : 사사기 20:12-23 찬송가: 524장(구 313장)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20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중심 단어
이스라엘 지파, 베냐민 온 지파, 싸우다, 하나님, 여쭈다,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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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
12-13절: 베냐민 지파 전역에 사절단을 보내어 기브아 불량배들을 징벌하도록 요구하였다
14-17절: 베냐민 지파의 반발로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싸우게 되었다
18절: 싸움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았다
19-21절: 베냐민 지파와의 1차 전투에서 패하였다
22-23절: 다시 싸움에 임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았다
도움말
1. 물매(16절): 가죽이나 천 조각으로 만든 기구에 돌을 넣어 돌리다가 날려 상대방을 맞추는 무기다. 다윗은 이 물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렸다(삼상 17:41-49).
2.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16절): 문자적으로는 머리카락 두께 정도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맞추는 자를 뜻한다. 그만큼 물맷돌을 정확하게 던질 수 있음을 강조한 표현이다.
말씀묵상
15대 1의 싸움
미스바 총회에 모인 40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은 모두 전사였습니다(17절). 반면, 이들과 맞설 베냐민 자손의 수는 2만 6,700명이었습니다(15-16절). 숫자상으로는 베냐민 사람 1명이 이스라엘 연합군 15명을 상대해야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기막힌 사실은 이들의 싸움이 동족 간의 싸움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레위 사람 1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첩을 얻은 결과가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낳고 말았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수직 관계가 깨질 때 사람들 간의 화평한 수평 관계 역시 깨질 수밖에 없음을 교훈해 줍니다.
의외의 패배
공격을 개시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이스라엘 연합군은 드디어 전투에 임했습니다(19-20절). 그러나 이들은 1차 전투에서 도리어 패하고 말았습니다(21절).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며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23절). 이처럼 이스라엘 연합군이 의외의 패배를 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 사건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깨닫고 회개해야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의외의 패배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베냐민 지파와의 1차 전투 결과는 어땠습니까(19-21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서로 돕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내가 만약 레위인이었다면? 내가 만약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면? 내가 만약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였다면?
미스바 총회에 모인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책임을 물었다.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지만 베냐민 지파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인다. ㅇ
베냐민 자손의 수가 이만 육천 명,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이 이스라엘 군대 사십만 명과 싸우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거절당한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께 묻는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말씀해 주신다.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올라가 싸웠지만 이스라엘이 이만 이천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게 된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아이성 전투에서 예상치 못했던 패배처럼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분명 하나님이 유다가 먼저 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패배에 충격 속에서 다시 싸울 의지를 가지고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하나님께 다시 묻는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올라가서 치라!”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 왜 패배했습니까? 라고 묻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묻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묻지 않는다. 오직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습니까? 만 묻고 있다.
하나님은 동족끼리 전쟁을 원하지 않는 분이셨다. 먼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왜 이런 분열이 생겼는지 원인을 찾아가지 않았다.
레위인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이 베냐민과 싸우기 전에 자신으로 인해 동족끼지 싸우는 것을 막아야 했었다. 막지 않은 것은 베냐민 지파가 기브아 사람들이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브아 사람들이 불량배를 붙잡아 자기 앞에 끌고 와서 용서를 빌게 해야 했다.
자신이 불량배 앞에서 첩을 보호하기는커녕 자신의 안전을 위해 내어준 자가 자신의 죄와 책임은 묻어두고 모든 잘못을 불량배에게 떠넘기고 있다. 또한 그들을 내어주지 않고 싸우려고 하는 베냐민 지파에게 떠넘기고 있다.
레위인은 동족끼리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믿음의 공동체가 서로 죽이는 전쟁터로 변한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통감하고 멈춰달라고 호소해야 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시작은 ‘어떻게 감히 이스라엘 땅에 레위인과 상관하려고 요구하는 못 된 불량배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레위인의 아내를 욕보여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참 세상 말세다 말세!’ ‘그런 인간들은 죽어 마땅하다!’라는 감정으로 이스라엘이 하나가 된 것이다.
‘더 글로리, 넷플릭스 톱10 2주연속 세계 1위… 1억2359만 시간 시청’ 오늘 신문 기사다.
왜 사람들은 복수에 열광하고 있을까? 억울함을 대신 풀어주는 것 같아 통쾌하게 여기는 대리 만족일까?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불의한 세상, 신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억울함을 주인공이 아주 통쾌하게 복수를 했기 때문은 아닐까? 왜 우리는 모두 심판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만 이천명의 희생자 앞에서 왜 레위인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들은 통곡하고 있는 것일까? 왜 싸우고 이기려고만 하는 것일까?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유다가 먼저 올라갔는데 패배한 것일까? 그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이 없다. 오로지 싸워서 이기려는 마음뿐이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힘으로 이겨서 죄인들을 심판하려고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들이 없다. 이긴 자가 옳은 자가 되고 이긴 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자가 되는 것이다.
레위인이라면 안식일, 안식년, 희년 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동족을 끔찍이 생각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신23:19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20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그렇다면 레위인이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잘 못 때문에 벌어졌으니 이제 멈춰달라고 했어야 했다. 하지만 레위인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내 안에도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도 이 세상은 어찌할 수 없다고 단정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나에게 주님은 오늘도 십자가를 보여 주신다.
사람들의 악한 모습을 보며 저도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정말 공평하신 분 맞습니까? 하나님 정말 공의로우신 분 맞습니까?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했던 것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박국처럼 저도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마치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자처럼 십자가 앞에 서 있는 종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아브라함과 하박국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십자가 앞에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십자가 앞에서 손으로 제 입을 막고 고백합니다. ‘주님 저의 교만이 겸손으로 바뀌게 하옵소서.’ 오직 심판자는 주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