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5.신명기-075 재판을 공정하게 하라(신명기 17장 8-13절)
성경말씀은 신명기 17장 8절에서 13절까지 봉독합니다.
[신명기 17장]
8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9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을 네게 가르치리니
10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무릇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11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법률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고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기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12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13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히 행치 아니하리라
이 신명기에 있는 말씀 속에는 우리의 신앙과 생활 그리고 또 우리들보다는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이렇게 책임을 진 사람들이 꼭 읽어서 숙지해야 될 그런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가 직접으로 재판에 관여할 일은 많지 않겠죠?
혹시 우리 사회가 삼심제가 되어서 판결 환경이 달라진다고 할지라도 우리 중에 무슨 배심원가서 앉아 있을 일은 뭐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이 정치하는 사람들 혹은 이 법을 잡은 사람들은 이런 말씀에 아주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재판이 이 공평해야 화평이 이루어지는 거죠. 공평이 화평을 이루는데 만약에 이 재판이 공평하지 못해가지고 화평을 이루지 못하면 불평이 나오는 거야.
이 불평과 불만과 이런 게 나오니까 원칙은 우리가 꼭 무슨 재판관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든 그 대소 공사를 공평하게 해야 된다. 이 원칙은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되겠죠?
오늘 낮 시간에 17장 그 첫머리를 살피지 못했는데, 장이 나누어지기를 조금은 이렇게 불합리하게 나누어진 그런 경우가 있는데, 16장이 22절로 끝났습니다만, 그 사실은 17장 1절까지가 16장으로 되어 있으면 더 좋을 뻔 했죠.
[신명기 17장]
1 무릇 흠이나 악질이 있는 우양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지 말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 됨이니라
이것은 앞에 단락에 이어져 있어야 될 말씀이죠?
2절입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의 가운데 혹시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3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하지 아니한 일월 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4 혹이 그 일을 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5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 남자나 여자를 쳐죽이되
6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거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사형에 해당하는 그런 죄라는 것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이상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한 사람의 증거로는 죽이지 말라.
그래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일대일로 그저 감정이 있는 것을 가지고 그 허위 증언. 위증을 해 가지고 그 허위로 위증을 해 가지고 모함을 하는 수가 있으니까 증인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정도 확보 되었을 때 사형이 집행 된다. 그런 말씀이죠.
지금도 아마 그 원칙은 온 세계가 아마 비슷하게 지킬 겁니다. 한 사람의 그 증인 가지고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두 사람이상 증인이 필요한 것이죠.
7 이런 자를 죽임에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이런 법도 그 끝까지 읽어보면 그 법 정신이 막 이렇게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가, 하다가 그 끝에 가서 보면 그 목적은 악을 제하는 거야.
다시 말하면 이렇게 이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 하는 것을 법으로만 아니고 최소한 그런 일을 그렇게 엄하게 다스려서 한 사람을 벌하므로 백 명, 천명, 만 명을 경계하는 거죠. 일벌백계. 일벌백계, 천계, 만계가 될 수 있으니까..
한 사람이 이렇게 죽임을 당함으로서 많은 사람들로 범죄에 들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사실은 법은 좀 엄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은 엄해야 되는데 법이 느슨하고 결국은 또 풀어 줘 버리고 또 풀어 줘 버리고 이런 것을 정치인들 스스로 먼저 하니까 정치인들이 더 죄를 많이 범하는 거야. 어떻게 정치인들은 들어갔다가 조금 있으면 뒷문으로 나와요. 이렇게 하니까 백성들이 불평이 나오는 거죠. 공평하지 않으니까. 정치인들이라든지 경제인들이라든지 악을 행하면 뭐 영원히 그저 일어나지 못하게 엄하게 그렇게 법을 세워 나가야 하는데 그걸 그렇게 못하니까 사람들이 뭐 악한 사람들이 다 죄를 범하기에 마음이 담대해 지는 거죠. 그래서 여기 보면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한다.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악을 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거야 다시 말하면 일벌백계를 해서라도 악을 제한다. 이것이 목적이죠!
자, 그 다음에 8절 오늘 본문이죠.
8 네 성중에서 송사로 다투는 일이 있으되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9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로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 것을 네게 가르치리니
10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무릇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11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법률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고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기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12 사람이 만일 천자히 하고,
이 ‘천자히’라는 말은 우리가 회화체에서 안 쓰는 말인데 ‘오만 방자한 것.’ 이런 것을 천자하다 이렇게 씁니다. ‘염치없고 교만하다. 오만 방자하다.’ 뭐 그런 뜻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역시 죽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목적은 악을 제하는 것입니다.
13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천자히 행치 아니하리라
여러분 이 법질서가 무너져 버리면 도덕적 해이라든지 내지는 그 무질서 이런 사회가 되면 그것은 독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무질서라는 거야.
아무리 악한 정부도 무정부 보다는 낫다 그러죠. 여러분 무정부 상태가 된다든지 무법천지가 되면 그 약자는 거의 살아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소크라테스 같은 분이 ‘악법도 법은 법이다.’ 악법이지만 그래도 그 독배를 마시잖아요. 그 말은 어떻든 간에 무정부 상태 보다는 낫다는 거예요.
그 둘째 아이가 그 윤리를 가르치는데 이런 걸 해 봤다고 그래요.
한 아이가 그냥 태어나가지고 계속 학원으로 학교로 그냥 집에서 엄마, 아빠, 오빠한테로 그 계속 교육, 교육 하는데 그 전부다 인간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이런 교육인데 그런 것을 영상으로 된 것을 보여주고 아이들로 하여금 한 주간 동안 자료를 다 수집해 가지고 아이들 끼리 막 입에 거품을 물고 토론을 하게 했다는 거야. 이런 교육이 과연 필요하냐? 이런 교육이 정말 필요하냐? 사람들이 똑 같이 그 나중에 그 교육을 하고 나니까 전부 똑같은 사람들이 종종종종 나오더랍니다.
줄서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획일화 만드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냐? 이걸 가지고 중학생들인데 이걸 중3들에게 이걸 토론을 시켰다는 거야. 그래서 상당히 귀추를 주목하면서 결과를 지켜봤는데 결론은 그래도 이런 교육은 필요하다고 나오더랍니다.
그래 왜 필요하냐? 그 필요하다하고 결론을 내 놓고는 왜 필요하나 그 이유를 대라고 하니까? 사람이 최소한 기본으로 배워야 될 것이기 때문에 교육은 필요하다. 기본으로 어디까지는 똑같이 배워야 되기 때문에 이런 교육이 아이들을 그렇게 힘들게 하지만 이런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교사로서 굉장히 아주 숙연해 졌고요. 그리고 다른 반에 는 반반이 가서 그 한 시간씩 그렇게 했는데 거의 그렇게 나오고 이런 교육은 이 사람을 갔다가 기계적으로 획일적으로 만드니까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그 정도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거기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그 토론을 갔다가 우리 교회학교에 가져와서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싶어요. 어제 밤에 그것 때문에 아주 재미있게 그 들었는데 아이들이 제멋대로 떠들고 그렇게 대책 없이 그 설치고 다녀도 그래도 생각하는 것이 있고 토론을 시니까 보통 수업시간 그 점심시간쯤 되면 네 번째 시간 같은 경우는 그 1분도 더 안 하려고 하더래. 가만 요것만 이 말만 해도 아니요 하고 땡하고 점심시간. 점심시간 1분도 뺏기기 싫어한다고 애들이 지금 아이들이 그런데 그 토론을 벌여 놓으니까 선생님 5분만요 5분만요 하면서, 그래가지고 끝났는데도 복도에서 또 얼굴이 벌게 가지고 토론하면서 나중에 마치고 또 보자고 하면서..
그러니까 옳은 것에 대한 어떤 감각이 있으니까 학생들이 그런 기본적으로 어떤 배워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적 교육이 획일화 하는 것 같아도 필요하다. 그 획일화된 교육이라는 것은 최소한의 그 기본 과정이니까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되기 때문에 필요하다. 중학교 3학년짜리인데 결론을 전부 그렇게 도출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재가 볼 때 결론은 그래서 모든 과목을 너 혼자만 특별한 시간에 특별활동시간에만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과목, 과정을 사실은 그렇게 토론을 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 가지고 모를 때 해결이 안 될 때 선생님이 이렇게 도와주던가 해야지 전부 선생님이 막 주입을 하니까 정말 그렇게 하니까 아이들이 그렇게 토론한 것은 영원히 일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거야. 가치론에 관한 것도 전에 공부를 그렇게 시켜가지고 아이들 공부를 했던 것을 들었는데 우리가 이런 것을 가지고 토론을 해 볼 필요가 있는 거죠.
특히 청소년 때 그러면요 논술 그런 것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야. 워낙 토론 안 했기 때문에 논술에 딸리거든요. 지금요. 어려서부터 처음부터 계속 토론으로, 토론으로 컷으면 논술 같은 것은 전혀 문제가 안돼요.
여러분 그 우리 어린 아이들 같으면요 앞으로 그 대수능은 별 차이가 안나 전부다 거의다가 만점 갈 테니까 하도 다 공부를 해 가지고 문제는 전부 논술에서 막 걸리게 될 텐데 여러분 그 논술을 잘 시키려면 예배시간에 설교를 잘 듣게 하세요. 어린 아이들이. 어린아이들이 설교를 잘 들어가면 이게 논술이 느는 거야.
그래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딱 당위성이 있는 얘기를 해야 하거든요. 사람이. 그래가지고 더 재미있는 것은 그 토론하면서 누가 우리 반에서 토론을 제일 잘 하느냐? 일반 성적하고는 상관없이 전부 그 말하는 태도 그런 걸 체크 하는 그 포인트를 만들어가지고 그리 했더니 토론 잘 하는 사람 누구냐면 공부 1, 2등 하는 사람들 아니고 전부 중간 치기들이 그 일반 수업 성적이 보통 되는 사람들이 제일 잘 하고 활발하게 하고 그래서 그 아이들 또 그렇게 좋아 하더랍니다. 우리가 이 교회에서도 그래요.
우리가 배운 것을 꼭 생각해 보고 우리 속에서 정리를 해 보고 정말 진리가 참 옳구나. 하는 그 인식이 우리 스스로 있어야 돼요. 그냥 그저 주입하는 정도가 아니라 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그렇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 말씀이 옳다는 거죠.
자, 17장 14절,
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서 그 땅을 얻어 거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열국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우리라는 뜻이 나거든
이것 지금 하나님이 내다보고 있는 거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으로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16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17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우리 중에 뭐 왕이 될 사람 많지 않겠죠?
그래도 왕이 아니라도 지도자가 되도 마찬가지야. 여러분 지도자가 된다고 할 때 왕이 된다고 할 때 여러분 군사력을 많이 너무 군비를 그렇게 많이 증강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힘이 있으면 괜히 그 어디 한번 싸워 보고 싶어요. 힘이 괜히 넘치면 그러니까 그 운동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괜히 한번 싸워 보고 싶어가지고 아무나 그저 걸리면 말만 뭐 째려 봤다는 거야. 뭘 째려 봤어 그냥 봤겠지. 그 힘이 넘치니까 사람이 군사력을 기르면 뭔가 한번 그 한번해 보고 싶은 거예요.
김정일이도 내가 그 위태위태한 것이 온 그 이북에 있는 국민들을 그 굶겨가면서도 군비는 착실히 싸왔는데 세월이 가면 자기들 구닥다리 그 써먹지도 못하고 남한이 자꾸 경제가 발전하니까 신무기를 가지고 여태까지 쌓아놓은 것 전부다 무용지물 될 판이라.
그리고 김정일이가 뭐 살 큼 살았고 인생이 아무 재미도 없고 권력이 흔들리고 하면 한 번 써 먹을런지 몰라요. 이판사판이니까 그냥 이래도 망할 판 저래도 죽을 판 하니까 한번 엉뚱한 짓 할런지 모르죠.
어떻든 힘을 기르면 괜히 한번 싸워 보고 싶은 거야. 일본이 지금 원자탄 맞은 것 그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괜히 그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하니까 이 원래는 이 자위대라고 시작했는데 군비가 엄청나죠! 우리나라하고 게임이 안 돼요.
그러니까 그 은근히 그저 뭐 한번부터 봐도 뭐 나쁠 것 없다. 이리 생각하면서 자꾸 그런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그 미국도 마찬가지야 미국도 저게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무기를 요 자꾸 쌓다보니까 어딘가 처분을 해야 돼. 처분하는 것이 그 전쟁이죠. 그냥 처분 하면 아까우니까. 전쟁을 해 가지고 뭐 처분하겠다. 중국도 마찬가지고 사람이 타락한 본성 속에는 어떻든 힘이 생기면 꼭 한번 싸워보려는 생각이 나고..
그 다음에 군사력을 많이 이렇게 예비하다보면 아무래도 하나님 의지하는 것 보다는 자기 군사력 그걸 더 의지해 하나님을 믿는 나라라 하더라도 그걸 하나님께서 염려하는 거죠.
두 번째,
17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이걸 솔로몬이 이걸 봐야 되는데 이걸 안 본거야. 사람이..
어떻든 뭐 어느 시대든 예나 지금이나 여자를 많이 두거나 복잡하게 해 가지고 결과가 좋은 경우를 제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건 잘못된 거죠.
그 다음에,
..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이게 왕들이 권력자들이 꼭 주의해야 될 것이 군사력이나 여자나 재물 문제 이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죠. 항상 이런 걸 너무 쌓아두면 반드시 거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야.
이것은 하지 말 것을 경계한 것이고, 반대로 해야 될 것이 뭐냐?
18절 이하인데,
18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20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여러분 성경을 많이 공부해 가지고 그 얻는 최종적인 결론은 겸손해 지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어설프게 알면 그것이 지식에 교만이 될 수 있는데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성경이 원하고 바라시고 우리에게 바라는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 높은 수준에 비해서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옳은 데도 불구하고 행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을 제대로 보면 아무도 큰소리 칠 수가 없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우리 중에 아무도 거기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도 옳은 말씀이고 저것도 옳은 말씀 다 옳은 말씀인데 그렇게 살아지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보면서 겸손해 지는 겁니다. 최소한 율법을 제대로 배워서 율법을 행하려고 했던 사람은요 교만 할 수가 없어요. 행하려고 안 했기 때문에 지식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교만할 수 있는 거지 정말 그것을 실천해 보려고 했던 사람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왕이라도 달리 다른 방법이 없고, 이 율법서를 등사해서 항상 읽어서 그 규례를 지켜 행하다보면 사람이 겸손해 지고 형제 위에 이 군림하거나 교만하거나 하지 않고 또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게 될 것이다.
이 율법서 안에는 특히 오경 안에는 제가 볼 때는 뭐 한 개인의 윤리라든지 한 가정의 기강이라든지 아니면 뭐 국민 전체의 윤리라든지 아니면 그 왕도라든지 이런 게 다 있습니다. 이 안에.. 이 안에 있는 법 정신으로 그대로 살면요. 법을 저렇게 많이 만들 게 없어요.
이걸 행하지 아니하고 자꾸 또 법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그렇지 원래 법이 아주 단순한 것 아닙니까! 맨 처음에는 선악과 하나만 안 따먹으면 되는 거야.
그러다가 조금 가니까 십계명으로 늘어나더니 나중에 뭐 612조로 늘어나더니 오늘날 법이 도대체 법이 몇 조나 되는지 자꾸 법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율법을 제대로 공부하게 되면 왕이라 할지라도 겸손하게 된다.
18장입니다. 18장에는 레위인들에 관한 것이죠.
[신명기 18장]
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 그들이 그 형제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은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된다.’ 하셨는데, 여러분 그 레위 한 지파가 다른 지파가 받들어 드리는 그런 십일조 헌물을 가지고 사니까 그 레위 인들의 생활이라는 것은 대체로 볼 때 국민의 평균에서 조금 낫거나 말거나 그런 정도야. 평균에서 조금 낫거나 말거나 그 정도입니다. 레위인들의 그 생활수준이라는 게..
왜냐하면 그 열두 지파가 사실은 뭐 11지파죠. 11지파가 십 분지 1씩 바치니까 그걸 가지고 레위인이 살아가니까, 평균보다 조금 낫거나 말거나 그 정도고 또 그 제사장들은 그 십 분지 1을 바친 것 거기서 또 십일조를 하니까 제사장도 역시 그 평균보다 조금 뭐 낫거나 못하거나 그 정도예요.
절대로 그 제사장이라든지 레위인들은 화려하게 막 이렇게 잘 살수가 없어요. 그저 보통이거나 조금 보통보다 조금 낫거나 좀 못하거나 그런 정도라는 거지. 하나님이 장치를 그렇게 해 놨다는 거야.
어떤 목사님이 그 원리를 가만히 생각 해 보시고는 그 냉장고를 안 사시는 거야. 왜 냉장고를 안 사시냐고 물으니까 잘 대답을 안 하시더니 자꾸 물으니까 그러시더랍니다. 자기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성도들 아직 절반이 냉장고를 못 샀다는 거야. 그래 자기 교회 성도들 절반이 냉장고를 사면 그때 가서 자기도 냉장고를 사겠다고 그러니까 그 정도. 여러분 목회자가 너무 궁상을 떨어도 곤란하죠.
그 다음에 너무 잘 나가도 막 성도들은 죽을 판인데 목사님은 너무 잘 나가도 그것은 곤란해요. 그래서 그저 성도들 중에서 한 중간 쯤 되거나 중간보다 더 낫거나 말거나 그 정도 되어야 돼. 거기가 목회자의 자리라고 봅니다. 저도..
그래서 성도들이 제가 그 지금은 뭐 교회 회계에 대해서 전혀 일절 터치를 안 해서 잘 모르는데 이래 보면 그 성도들이 십일 조하는 것을 이래 보면 이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다 그 대충 알죠! 그 쭉 해서 평균을 내 보면 내가 십일 조하는 게 비슷하다 싶으면 중간 쯤 간다. 싶으면 그 잘하는 거야.
그 정도 목회자가 너무 배불러도 안 되고 너무 또 궁상을 부려도 안 되고 레위 인들은 그저 하나님이 그 정도 보장을 한 거야. 그렇게 뭐 잘 살고 출세하고 잘나가고 그런 것 전혀 그저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하나님이 절대 굶어죽게 하지 않습니다. 레위 인들이라는 것은 굶어 죽게 돼 있지 안 아요. 백성들이 십일조도 안하고 그 헌물도 안 드리면 그러면 뭐 레위 인들 뭐 삶을 찾아가는 그런 경우도 있었는데 장치라는 것을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 다음에 18장 9절 이하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하는데요.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첫째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그런 짓 하지 마라.
그 몰렉 신에게 아들을 불살라 바치는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그런 짓을 했는데, 그 악한 짓이야. 우리나라에도 뭐 에밀레종을 만들어가지고 그걸 같다가 자랑처럼 맨 날 두드리고 앉았는데 그것 정말 천벌 받을 일이죠.
그런 것 하지 말고 그 다음에 ‘길흉을 말하는 자. ’여러분 혹시 무슨 기도원에 갔더니 아 당신 앞으로 위험하다. 그러면 빨리 거기 있는 것이 위험해 거기 가는 것도 위험하고 그런 말 듣는 것도 위험해. 그런 길흉을 말 하는 자 일절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해 가지고 사람을 옭아매는 겁니다. 마귀가 늘 그렇게 해. 절대로 어떤 길흉을 말하거나, 내가 기도해 보니까 당신 아들이 앞으로 위험하다. 당신 영혼이 위험하다하면서 빨리 쫓아내 그렇게 말하는 사람 정말 그 사람 영혼이 위험한 거야. 그런데 그런 말 다 우리 자녀들이 너무 귀한 나머지 그 얽매이는 거야.
여러분 점쟁이에게 가 보면요 탈 없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 점 하는데 가보면요 무슨 탈이든지 다 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절 그 길흉을 말한다든지 그런 것을 믿고 그 얽매이면 큰일 납니다.
그 다음에 ‘복술자나 점치는 자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 자나 신접 자나 박수나 초혼 자 이런 것을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이것은 전부 가나안 땅 사람들이 하던 일들입니다.
이게 지금 우리 민족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어디 가든지 점쟁이마다 다 하는 거죠. 초혼 자.
저는 옛날에 우리 집에서 점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우리 집이 딱 길가 집이 돼 가지고 점쟁이가 딱 오면 우리 집에 본거지를 차려놓고 온 동네 점을 우리 집에서 치니까 우리는 공짜로 점을 치고 하는 거야. 그런데 항상 보면 내가 문제라는 거야. 나보고 셋째 아들이 위태롭다는 거야. 위태롭지 예수 믿을 거니까..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막 그것 때문에 또 사색이 되는 거야. 그러면 또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주님께 비나이다. 아휴..
우리 어머니는 항상 그저 아들들 때문에 그런 걸 봤어. 그런데 그 점쟁이가 그 조상을 불러내 초혼자죠. 초혼 자.. 조상의 영혼을 불러내가지고 점을 치면서 대를 흔들면서 그런데 그 제가 본 그 어떤 점쟁이는 정말 그 귀신이야. 그냥 그 점을 그냥 엉터리가 아니고 이것은 귀신이 있는 건데요. 돈이 없다고 하니까 농짝 오른 쪽 농짝 옷 세장 들치면 그 안에 소쿠리 밑에 있지 않냐? 아 세상에 이 귀신이 귀신같이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그렇게 까지 알아맞히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 있습니까? 셋째 아들이 위험하다고 하니까 그냥 막 하라는 대로 다 해 그 뭐 몇 십만 원짜리 굿을 하는 거죠. 그런 길흉을 말하는 자 초혼 자, 박수, 무당, 요술하는 자 일절 용납하지 마라. 여러분 기독교 점쟁이 같은 사람이 이상한 그런 기도원 같은데 많이 있습니다.
그 말이 맞을 지라도 거기 따라가면 안 돼요. 그 말이 이룰 지라도 거기 따라가지 말라는 거예요.
12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 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자, 이 이야기는 짧게 말하면 여호수아를 말하기도 하고, 또 훗날로 말하면 예수님을 말하기도 하는데, 꼭 예수님이나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꼭 필요하면 그 시대에 인물을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필요한 종을 세울테니까 괜히 딴 데서 기웃 거리지 말라는 거야.
여러분 우리 교회 안에서 있는 문제 같으면 우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그 답을 주신다는 거예요. 괜히 뭐 이산 저산 다니지 말고 지리산, 한라산 가 봐야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리산 도사야 제가 제일 많이 알죠.
그런데 도사들 불러가지고 그 물어보면 그 스님이라 하는 것들이 완전히 땡땡이야. 사성제 팔정도도 모르는 것들이 스님이라고 그 머리만 깎고 말이야. 그 전에 제가 한 번 이야기 했죠! 그 중산리에 그 교회 뒤에서 그 예배시간만 되면 ‘마하 반야 바라밀다 관 자제 보살..’ 하는 그 사람도 그 중이 돼 가지고 올라가 있다니까..
그래가지고 암자를 세웠는데 어떻게 돈을 많이 가져오는지 그래가지고 이 친구들이 야 이 순 엉터리야. 네 까짓 게 무슨 스님이라고 그 년 놈들이 갔다 주는데 어떡하냐? 갔다 주니까 안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순 엉터리들이 그 도사라고 앉아 있거든요. 진짜 도사는 그렇게 안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일절 그런데 이 기독교 점쟁이들도 많습니다. 제가 본대도 엉터리가 많아요.
그런데 그 본인은 그 누구를 속인다고 마음먹고 있는 게 아니고 정말 성령인줄 알고 떠드는데 사실은 악령이야. 자기 속에 있는 것이 성령인지 악령인지도 모르고 그리 떠들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 집회를 하고 있다가 한번은 그런 사람을 강사로 초청해 가지고 그 집회를 했다니까요 하다보니까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중간에 그만 둬 버렸죠! 중간에 그 다음부터는 아예 그런 집회를 시골 교회 다 보니까 분별력이 없어가지고 그런 집회를 해 가지고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수많은 교회들이 그런 집회에 휩쓸렸는데 그 말이 막 맞고 능력이 임하는 것 같고 막 그리 합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위험 한 거야. 차라리 성경해석을 뭐 조금 잘 못하면 문제가 덜 될지 몰라도 어떤 영을 받았는데 그 영이 잘 못 됐을 때는 그 위험하지 않습니까? 분별력 없이 그런데 뛰어다니면 아주 그 영적으로 위험하다는 거죠.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사람의 음성으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게 하겠다. 그렇게 약속을 했으니까 그대로 될 거다.’ 그 말이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 뜻을 전하는데 그러게 해 봐도 또 거짓선지자가 나오는 거야. 계속 거짓선지자가 나오기 때문에 안 돼서 하나님께서 안 되겠다. 이 수시로 예언자들을 이렇게 세우니까 예언자가 참 예언자는 하나인데 거짓 예언자가 막 다섯 명, 일곱 명, 열 명, 나중에 400명까지 그래서 도저히 이 어떤 그 선지자에게 영을 주어 가지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분별 못하고 거짓 선지자 와서 달콤한 소리하고 숫자가 많고 항상 사람에게 유익하게 이렇게 해 주고 하니까 참 선지자의 말이 신청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서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하신 방법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 경에 기록해서 여기 일절 더하지도 못하게 빼지도 못하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무슨 다시 어떤 그 직통계시를 받았다하면 그 엉터리입니다.
여러분 제가 자주 하는 말씀이죠. 이게 직통계시입니다. 이게! 이 진짜 직통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만고불변의 직통계시야. 이걸 제 껴 놓고 이것 한권도 옳게 알지도 못하면서 특히 여성들이 또 그런 것 많이 하는데 여자 점쟁이가 많아요. 그러니까 그런데 일절 찾아다니면 안 됩니다.
19절,
19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거짓선지자처럼 무서운 죄가 없다는 거야.
여러분 계시록을 보면 예수님이 재림 하셨을 때 제일 먼저 잡으러 가는 자가 거짓선지자야. 하나님을 가장 위해하는 어떤 세력이 있다면 거짓 선지자야 하나님 말씀을 잘못 가르치는 자 거꾸로 가르치는 자 그게 뭐 보내지도 않았는데 작기가 뭐 증인으로 나선 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이죠.
전혀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않았는데 저희가 스스로 나서서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면서 그 엉뚱한 짓을 하는 거야. 또 여기 뭐 하나님의 교회 뭐 안상홍 증인회 그 참 그 기가 막힌 얘기죠. 그런 엉터리도 있고 뭐 또 지가 무슨 보혜사라고 떠드는 또 이만희 같은 사람 여러분 놀라운 것은 우리 국민이 얼마나 분별력이 없는지 그렇게 해도 또 빠진다는 거예요.
또 한두 사람이 거기 빠지면 말도 안 해. 몇 만 명이 거기 빠진다는 거야. 몇 만 명이..
여러분 이재록이라는 그 만민교회라는 그 만민이 다 빠져 세상에 그냥 만민이 아니고 4만 명. 4만 명이나 모여요. 거기요.. 만민교회 이재록이라는 사람이요. 아 이 사람은 정말 그 참 그 영상으로 그것 그것도 뭐 PD수첩인가? 뭐 추적 60분인가? 그 잘 모르겠는데 어떻든 그 비슷한 프로그램을 보니까 하얀 양복을 입고 나오는데 광명의 천사야. 그리고는 뒤에서 그 가뜩이나 하얀 것을 입고 나오는데 거기 또 굉장히 현란한 서치라이트 비추니까 완전히 또 빛의 사자야 또 그러니까 그 뒤에 뒤쪽에 있는 그 카메라 가까이 있던 어떤 자매가 그 아이를 업고 와 가지고 막 자기 아이들에게 설득하기를 바라 아버지는 빛이시다. 봐라..
그런 음성이 막 들어가 있더라고 녹음에 아버지는 빛이시다. 그 아버지래 아버지. 이재록 이를..
그런데도 수 만 명이 빠진다니까 그 진리를 모르면 분별력이 없으면 아무데나 빠져 사람들이 여기도 빠지고 저기도 빠지고 통일교 같은 그런 해괴망측한 교리에 대학 교수들도 빠지고 말이야.
여러분 우리 중에 나는 그런데 절대로 안 빠진다. 그런 사람 더 빨리 빠져요. 그러니까 우리도 자칫하면 그런데 빠질 수 있으니까 조심을 해야 돼. 아무데나 함부로 이렇게 다니지 말라고..
21절에,
21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까 그건 두려워 할 것 없다.
자, 그 다음에 19장에는 살인자의 도피성, 역시 여전히 그 재판하는 문제인데 개개인들 사이에 이해가 문제가 있어서 이해관계가 얽혀서 재판하는 그런 것은 아주 작은 문제. 돈 문제라든지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 아주 작은 문제고 제일 심각한 문제는 영적인 문제야.
거짓 선지자를 다루는 문제 일월성신에게 무슨 절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그런 재판들 이런 게 그 더 큰 거죠.
그래서 19장에는 그 이른바 살인자의 도피성이야기가 나오는데 도피성이 요단강 동편에서 바산 골란, 길르앗 라못, 베셀이라는 곳 세 군데가 있었고,
요단강 서편에 가서 헤브론, 세겜, 가데스에 있었고. 이렇게 여섯 군데가 있었는데 만약에 봐서 너희들이 하나님 말씀을 성실히 더 잘 지켜 나가면 요단강 동편은 두 지파 반인데도 세 곳을 뒀는데 그 요단강 서편에는 아홉 지파 반인데 세 곳밖에 안 뒀으니까 나중에 한 세 성읍쯤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시면서 살인자의 도피성 이야기 인데 이것은 이런 얘기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과실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아니면 심하면 과실 치사 사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 바라지도 않는 것이고 원하지도 않는데 원래부터 무슨 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미워해서 죽일 계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업하다가 업무상 무슨 과실 치사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금. 지금이야 누가 그 과실 치사 사건이 났을 때 피해자의 가족들이 막 가해자에게 가가지고 바로 그냥 칼을 들고 덤비는 그런 일은 뭐 지금은 안 하겠죠?
그래도 지금도 때로는 그 피해자의 가족들이 가해자에게 감정적으로 좇아가서 보복적 할 수 있는 위험은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더 하거든요. 특히 그 유대인들이나 중근동 사람들은 다혈질이고 단순해. 터키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그 팔레스타인까지 그 사람들 그 전부다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이고 고기를 많이 먹어가지고 까딱하면 싸우려고 하고 그 죽이고 막 이렇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하고는 많이 달라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간 해 가지고 뭐 자기 부모 때려죽인 그 대 천지 원수라도 그것은 내가 가서 막 칼로 가지고 보복하고 이런 것 잘 없는데 저쪽 사람들은 요 그런 경우는 막 그 금방 가서 그 죽여 버립니다.
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아무리 가해자고 살인자라 할지라도 고의성이 없었고 계획적인 것이 아니고 의도적인 것이 아니고 그냥 정말 과실 치사사건이었을 때는 정당한 판결을 받기 까지 아무리 가해자고 살인자라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야.
그리고 정부나 제사장들은 그런 그 사람을 보호해줄 장치를 마련해 주라는 거야. 정상적인 판결을 받을 때까지 그러니까 이걸 어떤 사람들은 뭐 도피성 이야기를 막 구원의 도피성이라고 막 그러면서 교회를 막 구원의 도피성이다. 그렇게 막 자꾸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조금 무리한 해석입니다.
교회는 뭐 그런 장치가 아니고 그 도피성 얘기는 오늘 같으면요 경찰서하고 흡사합니다. 경찰서가 아무리 피의자라도 누군가 와서 감정적으로 보복하지 못하게 재판 받을 때까지 보호하는 그런 역할 을 하는 거죠. 그런 장치야..
만약에 그렇게 누군가가 피해 왔는데 알아보니까 이게 완전히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살인을 했다. 그러면 뭐 재단 뿔을 붙잡고 있어도 반드시 끌어내서 죽이라고 그러니까 고의적인 범죄는 해당이 안 됩니다. 전부다 과실 치사, 과실 치상일 때만 해당되는 그런 법률이 이 도피성 이야기입니다.
자 그 다음에 15절에 보면,
15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정도의 증인이 있을 때까지 판결을 보류하고, 확실한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정도의 이렇게 그 증거가 확실할 때 사형으로 확정을 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위증자의 죄가 큽니다.
우리가 십계명에 ‘네 이웃을 해하려 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마라’ 할 때 이것은 일반 사회생활에 개인적인 어떤 거짓말은 성격이 다릅니다. 이것은 법정용어야. 이웃을 해할 목적으로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할 때는 위증. 재판 석상의 위증을 말해요.
물론 우리가 일반적으로도 거짓말 하면 안 되지만 거기 말하는 것은 위증을 두고 말합니다. 이웃을 해칠 목적을 딱 품고는 재판 석상에 가서 위증을 해 보세요. 그러면 판사 뭐 검사 변호사 몽땅 다 속아 버리는 것이고 그 벌 받는 게 그 벌 안 받게 되고 그러면 사회 공의가 다 무너져 버리는 거야.
위증자 한 사람 때문에 결국은 전 판검사 변호사를 무위로 만들어 버리고 그 사회의 법은 공정하게 집행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위증죄라는 것은 사실 어떤 죄보다 더 큰 죄라고 하는 것이고, 거의 그 죄를 범한 죄와 같을 정도로 그 위증죄가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 위증죄가 나오게 되면 사람들은 이 세상을 믿지 않습니다. 세상의 정의를 믿지 않는 거야. 해 봤자 말짱 헛거다! 하면서..
바른 재판이 안 이루어지니까 결국은 뭐 정직하게 한 사람들만 손해를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어지간히 법대로 하면 나만 손해본다고 믿는 사람 한번 손들라고 하면 70~80%가 손 들 겁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런데 우리나라만 그렇지 그 선진국은 그 점은 달라요. 그 선진국사람들은 법대로 하면 결국은 우리 모두가 다 유익하다. 그러니까 그 법을 지키는 거야. 그 사람들은..
그래서 이것은 위증자 문제입니다.
16절,
16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17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19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역시 목적은 악을 제하는 거죠.
그리고 옛날에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이라는 사람이 모르드개에게 행하려고 했던 것이 자기 목에 돌아간 거죠. 그런 건 명쾌하게 재판이 된 거죠. 에스더에 의해서 뭐 그렇게 된 거죠.
어떻든,
19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자, 이것도 역시 판결법이거든요. 이것을 ‘왕의 법’이라 하는 법인데 ‘렉스 탈리오니스(lex talionis)’이라고 하는 왕이 최종판결을 할 때 공평하게 눈에는 눈만큼, 이에는 이 만큼, 데운 것은 데운 것으로, 생명은 생명으로 이렇게 하는 것은 공평하게 하라는 것이지, 이것이 개인행동 강령이 아닙니다.
이걸 그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면서 개인행동 지침처럼 생각하는데 그러면 큰일 나는 겁니다. 저 중동 사람들이 참 곤란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진짜 그렇게 해요.
상대방이 차를 가지고 우리 집 문을 때려 부셨다. 그러면 그 차를 가지고 가서 갈아 버려요. 똑같이. 그런 식으로 행동으로 하니까 이슬람 세계는 한번 싸우면 끝이 안나.
그러니까 이 법은 잘못 해석 했어. 이런 법은 두 가지 목적이 있는데 첫째는 예방법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방. 네가 만약에 아무리 화가 나도 남의 눈을 하나 뽑으면 결국은 네 눈도 빠져 나가야 돼. 그러니까 화가 나도 참으라는 말이야. 예방 차원에서 그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정이 나니까 상대방을 때려가지고 뭐 큰 상해를 입혔다. 그러면 판결할 때 그만큼 그 사람에게 되갚아 주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방법이고 그리고 범죄가 발생했을 때 재판하는 판결 원칙이라는 것이지 개인의 행동 지침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가 성경에 여러 차례가 나오는데 이것도 사실은 그 공평 한 건데 개인이 하는 것 이것 안 되거든요. 그래서 성경은 어떤 내가 손해를 입혔거나 상해를 입혔다 할지라도 절대로 개인적으로 보복을 하지 않도록 여러분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사람은 내가 재판관이고 내가 집행관이죠. 내가 판사며 판사처럼 내가 판사라고 내가 판사처럼 내가 집행해 버리면 그것은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그 피해자나 가해자는 절대로 객관적 판단을 못해요. 감정 때문에 그래서 피해자나 가해자나 가만히 있고 제 3자가 이해관계 걸리지 않은 제 3자가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 3자를 재판관으로 세우는 것이 벌써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주어진 법령 속에 본인이 자기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반드시 재판장을 두어서 재판장은 십분 공정하게 이렇게 재판을 해 야만 그 나라의 공평이 이루어지고 공평한 재판을 통해서 화평이 이루어지고 화평이 이루어져야 불평이 없어지는 거야.
여러분 이 법의 세계 혹시 우리 교회 중에 또 무슨 그 법학을 해 가지고 법조인이 되려고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 별로 가치가 없는 거야. 왜냐하면 법이라는 것은 최고해 봐야 공평입니다. 최고수준이 정의야 정의..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라는 것은 기본이 공평이상은 해야 돼. 정의 이상 공평이상을 해야 되니까 우리가 공평, 정의 이하가 아니고 우리는 그 위의 사랑을 하는 거니까! 그 법조인 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을 제일 재미없게 사는 길이니까 그런 길로 가지 말고 가능하면 전도자가 되는 거. 이 복된 소식 영원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 이게 최고로 영광스러운 일이죠.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지만 여러분 요 천국가면 진짜 별 볼일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가지고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줄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까지 그 종이 성실히 그 일을 행하는 것 보면요 복이 있다는 거야.
저는 여러 가지 그 다른 복 받는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 말씀을 본 후에 다른 길 기웃거릴 이유가 없다.
여러분 집에 가거든 오늘 저녁에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지고 어떤 청년이 아주 그 실력도 있고 능력도 있고 참 믿음도 좋고 인물도 잘 생겼는데 너무 너무 힘들게 힘들게 해 가지고 재수, 삼수 해 가지고 한 몇 년을 준비해 가지고 그 은행에 그것도 외국계 은행에 탁 취직을 한 거야. 한 3개월 됐어요. 취직되었을 때 드디어 취직을 했습니다. 하고 또 감사 인사까지 오고했는데 한 3개월 있어보고 어떻게 사람을 잡는지 1년을 배겨 낼 수 있을 것 갖지가 않다.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든지 그저 달려가고 싶다는 거야. 죽겠다는 거야.
사람을 이렇게 들들볶아가지고 그러면서 그 구구절절이 썼는데 사회 전체에 그냥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속도전에 밀어 붙여가지고 빨리 빨리해서 조그만 늦으면 뭐 전부다 도태되고 그 못할라 치면 뭐 언제든지 나가라고 너 아니라도 얼마든지 우리 또 뽑을 수 있다 그렇게 하니까 이게 이렇게 해 가지고 정말 살아야 되는지 그래 그 회의가 들어서 저한테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결단하려고 편지가 저기 홈페이지에 공개 메일로 온 거야. 올려났어요. 보니까 자기가 공개적으로 올려났어요.
아마 온 천하 만민들이 보라고 그 쓴 것 같아요. 그래 제가 답을 뭐라고 썼겠습니까? 그 이 사람이요 미국이든지 호주든지 뭐 어디든지 제 3세계든지 뭐 잘사는지 못사는지 어디든 가겠다는 거야. 그래서 제가 가 봐라! 거기도 한국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어디를 가도 그 빨리 빨리라는 한국 사람하고 경쟁해야 되고 어딜 가도 이 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절대 덜한 곳이 없다.
이 사람은 워낙 사람이 차분하고 침착해 가지고 항상 남보다 한 발짝 늦어 많이 늦는 것도 아니고 한 발짝 늦는 것 때문에 그렇게 죽을 인생이 죽을 맛이라는 거라.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취직이 안 된 사람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냥 그저 취직도 안 되고 죽어야 되고 취직 된 사람들은 취직 된 사람들 목까지 함께 해야 되니까 또 죽을 맛이라는 거야. 이 온 세상이 죽을 판인데 이런 세상도 이게 참고 살아야 되는지 뭐 그런 아주 그런 장문의 편지를 써 왔어요. 저도 아주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최소한 몇 년을 참아가지고 그 갈 곳이 없거든 지리산 내려 오거라. 단 집 한 칸 장만할 정도는 준비하고 땅 그 팔만 땅은 그 사와야지 지리산 이고 어디도 게으르고 느리고 느린 사람은 안 받아줘 그리고 아무것도 없으면 어디가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이 절박한 편지를 써 왔어요.
여러분 우리 아이들 그래 뼈 빠지게 막 그 숨 돌릴 틈도 없이 공부를 해 가지고 대학을 나왔다. 또 군에 까지 같다 왔다. 그러면 취직이 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취직이 됐다고 행복하다는 보장이 또 없어요. 또 거기다가 결혼이라는 변수가 또 남아 있어. 결혼하기도 힘 드는데 해도 행복하냐? 그래서 그 청년의 그 진솔한 그 절규가 지금도 가슴에 찡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을 진작부터 우리가 찾고 괜히 그저 경쟁해서 이겨봤자 별것도 아닌데 결국은 돈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 청년 하는 말이 그 자기가 자기 고참 고참 해 가지고 그 위에 부장까지 된 사람까지 보니까 저쯤 되면 괜찮겠지 보니까 그 부장은 더 죽을 맛이라는 거야. 그래서 올라 가보면 아무도 없데요. 쳐다보니까..
그래서 그 참 얘기를 듣고 보니까 인생이 씁쓰레한 게 저도 영 뭐 마음이 계속 좀 우울 합니다. 그 청년들 그 우리가 그런 경쟁에 내 몰아가지고 인생에 여유도 멋대가리도 없이 살아야 하는지 말이야 그래서 저는 그 너무 그런 경쟁에다가 우리가 기본으로 아까 우리 학생들이 이야기 했죠! 그 중학생도 이야기하는 정말 인생이 기본으로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합니다.
이 교육이 다 개방 되어 있는 사회에서 사람이 사회에서 기본으로 되어있는 것은 배워야 하지만 사람이 지나치게 경쟁해 봤자 결론도 없는 것 가지고 그게 경쟁해서 인생을 다 허비 하지 말고 어느 정도 선에 가서는 정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을 찾아야 돼요. 우리 한 두 사람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온 사회 우리 온 한 교회가 함께 그런 일을 찾아서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정말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고 짧은 삶을 헛된 일에 분요하지 말고 참 가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공평하게 정의롭게 다스려가기 위해서 재판을 어떻게 해 갈 것인가? 또 증인들은 어떠해야 되는지 이런 것을 규정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지도자가 되었을 때, 왕이 되었을 때 어떠한 자세로 다스려가야 할지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배운 모든 것을 우리가 잘 소화하고 짧은 인생이고 반복도 되지 않는 일회적인 그런 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가 헛된 일에 시간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참되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을 위해서 우리 삶을 온전히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