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콘‘을 돌리다 우연히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게 되었다. 그 날의 주제는 ‘환경 호르몬의 공격’ 이었다. 제일 먼저 다뤄진 것은 생리통을 겪는 젊은 학생부터 주부에 이르기까지의 사례들이었다. 고통에 못이겨 손톱으로 벽을 긁는 여학생, 화장실에 가서 토하기를 계속하는 회사원, 3살 정도 되는 아이를 둔 아기엄마도 생리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결혼하면 그 고통에서 해방될 줄 알았는데 애 낳은 후 더 아프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TV 앞에 가까이 가서 앉게 되었다.
대학생인 작은 딸 아이도 생리통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아무 것도 못하고 시작하자마자 이틀 동안은 꼼짝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 진통제만 찾는 것이다. 안타깝긴 해도 내가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주변 분들 말씀에 나중에 결혼하면 괜찮다는 말에 기대를 걸었었다. 그런데 그 젊은 주부가 결혼 전 보다 더 아프다고 하니 긴장이 바짝 되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한동안 그들의 상태를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그들의 생활 방식을 관찰한다. 플라스틱통에 담긴 냉동밥을 그대로 전자렌지에 돌려먹거나 합성 세제를 쓰는 것 등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들을 중단시키고 음식도 유기농으로 바꾸게 했다. 도시락 반찬으로 햄이나 고기 반찬을 먹던 여학생이 유기농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울상 짓는 모습도 나왔다.
그 후 제작진은 그들이 다시 생리하는 시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배를 웅켜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토하며 꼼짝 못하던 그들이 하나같이 언제 통증이 있었냐 싶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활동하는 것이다. 그 통증의 주범은 환경호르몬이란다.
배란기에 자궁 내벽을 두껍게 하는 에스트로겐이 많으면 생리통이 생기는데 환경호르몬에 그와 유사한 물질인 제노 에스트로겐이 많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호르몬 체계가 좀더 민감한 타입에 통증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 집도 플라스틱 용기가 만만치 않게 많다. 작은 반찬 그릇부터 시작하여 큰 김치통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물병이며 조리 기구까지 온통 플라스틱 투성이다. 거기에 냉동실에 음식을 보관할 때 쉽게 쓸 수 있는 비닐 봉지며 랩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내가 모르고 그랬다고는 해도 가볍고 편리한 플라스틱의 생활에 젖어있던 것이 아이 가 배를 잡고 구르게 하는 통증으로 연결되었다고 여겨지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나는 아이에 대해 보상이라도 하듯이 플라스틱 없애기 전쟁에 들어갔다. 사용하기 무거워 높은 선반에 올려놓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유리 반찬 그릇이며 도자기 그릇들이 다시 주방의 중심으로 등장했다.
김치통은 항아리로 반찬 그릇들은 유리며 사기 제품으로 국자며 주걱 뒤지게 등 뜨거운 열과 직접 닫는 것은 스텐으로 물병은 유리로 바꾸었다. 김치 하나 꺼내려 해도 물 한잔 마시려해도 무거운 용기를 혹시 떨어뜨릴지 몰라 손목에 잔뜩 긴장이 들어갔다.
또 늘 쓰던 합성 세제 대신 비누를 물에 불려 세탁기를 돌리고 마지막에 헹굴 때 쓰던 섬유린스도 빼버렸다. 빨래는 때가 개운하게 빠지지 않는 것 같아 삶아야 하고 섬유린스가 빠지니 빨래가 예전처럼 보드랍지 않지만 마음만은 할 일을 한 것 같이 개운했다. 손은 편리하나 뭔가 마음이 찜찜하던 예전과는 반대다.
내 생활 속에서 플라스틱 밀어내기 전쟁을 한바탕 치루며 알 게 된 것은 플라스틱 제품 뿐 아니라 샴푸 린스 화장품 등을 비롯하여 세제, 섬유 유연제, 염소계 표백제로 표백된 흰 종이, 방향제, 살충제 등등.... 우리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든 제품들 역시 환경 호르몬의 공격권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으뜸은 뭐니뭐니해도 플라스틱 용기인데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하는 용매. 가소제. 이황제 등이 외부에서 열이 가하게 될 때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자신이 생활의 변신(?)을 하며 아이 먹는 것에도 규제가 들어갔다. 군것질 좋아하는 딸에게 당분간은 밖에서 떡볶이나 오뎅 등을 사먹지 못하게 했다.
대부분 멜라닌 그릇에 비닐을 깔고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떡볶이나 갓 튀긴 튀김 등을 담는데 뜨거운 열로 흐느적거리는 비닐에서 얼마나 많은 환경 호르몬이 흘러나올까 하는 생각에서다. 딸아이도 생각이 있는지 내 지시를 따라주었다.
그렇게 생활을 변경한 후 3주 정도 되었을까? 아이 생리 시기가 되었다. 그즈음 우리 집은 플라스틱 제품을 2/3정도 줄였고 뜨거운 열이 닿는 국자나 주걱이라던가 플라스틱 용기채 그대로 전자렌지에 넣는 것은 모두 중단시킨 상태다. 그러나 음식을 유기농으로 바꾸진 못했었다. 플라스틱이며 세제없이 빨래하기도 바빠 그럴 틈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통증이 사라질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워낙 예전부터 그 때문에 고생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그러나 배를 움켜쥐고 빨리 진통제 달라고 아파 죽겠다고 할 아이가 처음으로 점잖게(?) 생리 기간이 끝났다. 실로 7-8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이가 진통제 없이 생리 기간을 보낸 적이 과연 있었던가? 기적은 가까운데 있었다. 환경 호르몬 문제가 남의 일인줄만 알았는데 오래 전부터 우리 집 현관문을 넘어 습격해온 것이었다. 그래도 플라스틱을 줄이고 음식물을 조심시킨 것만으로도 아이가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로마서 8장 21절-22절을 보면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고 싶고 또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살기 위해 인간들이 제조한 내분비 장애 물질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인간을 공격한다. 인체 호르몬 체계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의 고통과 탄식 소리가 딸 아이 생리통 신음 소리로 변형되어 나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도둑 맞은 미래>의 작가 ‘테오 콜번 박사’는 경고한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지구의 환경 멸망시간을 12시로 잡는다면 지금의 지구는 12시 5분전으로 멸망의 위기에 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들어선 길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으면 다시 유턴 해야 한다. 빠르고 편리한 생활 패턴을 위해 버리고 희생되어 왔던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존중해야 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창세기 1장 31절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고 한 창조의 질서를 닮은 자연의 원리로 나아갈 때 지구 멸망의 위기로까지 몰려있는 환경 호르몬의 위협에서도 놓여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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