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일요일 맑다. 형님의 생신
어제 밤과 오늘 아침에 경희궁에 들어가서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산책을 하였다. 서울 시내에서 매미소리를 듣다니 뜻밖이었다. 아직 모든 시설이 완공되지 않았는지 문을 지키는 사람도 없다. 집사람은 10시 반경에 예정대로 퇴원을 하였다. 집에 와서 홍관이를 보고 모시고 있으라고 하고서 나는 형님의 생일이라서 큰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왔다. 내가 대구에 있었기 때문에 자주 못 보던 아이들이 많이 컸다.
모자가 점심은 나가서 곰탕을 사먹고 왔다고 하였다. 홍관이를 돌려보내고서 나도 피로가 쌓였는지 오후부터 자기 시작하여, 겨우 저녁만 챙겨 먹고 또 잣다. 이렇게 몇일 동안이라도 병원에 드나들다 보니, 평소에 집에서 별 일 없이 지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절감하게 된다.
8월 19일 월요일 맑음. 공안과에 가다.
3개월 전에 친구가 시간제로 근무하는 안과에 갔더니 별 탈이 없다고 하면서도 3개월 뒤로 예약 날짜를 잡아 놓아서 오늘 또 가보았다. 오늘도 역시 별 탈은 없다고 하면서도 안약은 눈이 피로 하거든 넣으라고 처방을 하여 주었다. 전번에 처방하여 준 것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는데도 말이다.
점심때까지도 시간이 남아서 병원에서 가까이 있는 대형서점 영풍문고에 가서 책을 몇 권 샀다. 《당시삼백수》(상,하 유종목), 《당시》(이원섭), 《한시 작법의 정석》(하영석), 《아 돌아가야지, 중국자연시선》(김하풍) 등이다. 앞의 2가지는 지금 당시를 강의하고 있기 때문에 참고를 하려고 샀고, 3번 째 책은 지금 그 저자와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 한시를 짓고 있기 때문에 반가워서 샀고, 4번 째 책은 이름이 독특한데다가 저자의 약력을 보니 ‘28년 생으로 6.25 전에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다니다가 미국에 가서 23년간 철학과 교수를 하였다고 하고, 그 책 발문에 “노년에 그 세계처럼 즐길 세계가 없다”고 한 말이 매우 재미있게 보여서 샀다. 3,4번 저자 모두 일본 책을 많이 보고서 만든 것인데, 어떤 특색이 있는지 좀 자세히 읽어 보았으면 한다.
오후에는 전통문화연구회에 가서 강의를 하였다. 이제 1주 만 더 하면 끝인데, 진도를 좀 빨리 하여 오늘 어기조사와 감탄사를 끝내고, 동사 같이 보이는 허사를 시작하였다.
오늘도 역시 집에서 많이 잤다.
8월 20일 화요일 맑음. 결국 보청기를 주문하다.
아침에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에 갔더니 찢어 보았던 고막은 붙었다고 하면서, “고막 안에 끈적끈적한 게 들어있었으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보청기를 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병원 안에 있는 보청기 업자를 만나보라고 하였다. 앞서 다른 병원에서도 똑 같은 말을 해서 업자까지 만나보았다가 그만 두었는데, 오늘 여기서도 똑 같은 말을 하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 뒤면 왼쪽에 낄 것 하나를 만들어 준다고 하면서, 만약 그것을 사용할 때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 지 시험 삼아 들려주기도 하였다. 고약한 잡음과 함께 확실히 크게는 들리는 듯하였다.
몇 달을 서울서는 이름이 있다는 병원을 두 세 곳이나 다녀보았으나 결론은 비슷하니 좀 맥이 빠진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늙는다는 것을 감수하는 수밖에…내 귀의 구멍이 딴 사람들이 귀 보다 훨씬 좁다고 하는데, 그래서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오후에 시내에 딴 일도 있었지만, 접어두고 집에 와서 북한산 문화원에서 8주(16시간) 동안 할 강의의 교재를 대충 A4 용지로 20매 정도 만들어 보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많이 보완해야 할 것이다.
저녁을 먹고 마당에 나가 보니 달이 만월이다. 바람도 제법 선선하여 내자가 천천히 몇 바퀴를 돌았다. 병이 나서 수술을 한 것은 아니니 곧 회복이 될 것이다. 퇴원할 때도 특별히 약을 주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