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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월에 걸친 세계 순회 성령사역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으며, 실행할 수 있겠는가? 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시작부터 너무 큰 장애물에 봉착하였던 계획이었다. 하나님의 주신 비전은 너무나 감동이 되고 가슴을 뛰게 하여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다. 그 이유가 될 수 있었던 사모님의 심장병이 치유되고 군에 입대하는 외아들이 외로움을 생각하는 애처로움은 아들의 믿음직한 믿음과 축복에 가슴에 묻을 수 있었다.
정말 원함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더욱 확정되고 인도되었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던져진 두 분은 날아올랐다.
1. 깨어라, 민다나오
1.1. 민다나오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협력사역을 했던 곳이다. 후끈한 남국의 열기가 첫 번째 선교지임을 알렸다. 고 목사님의 환영과 안내를 받아 목사님의 집 2층에 여장을 풀었다.
필리핀은 7100여개의 섬 안에 8천만 명 정도의 사람이 살고 있다. 100여 개의 다민족으로 이루어져 200여 개의 방언을 사용하는 아주 복잡한 민족성의 나라이다. 그런가 하면 400여 년간 스페인, 미국, 일본 등의 식민지 로 살아온 나라로서, 절대소수의 부유층, 적은 수의 중산층, 그리고 절대 다수의 빈곤층으로 형성된, 소득과 경제가 늘 불균형을 이루는 나라이기도 하다.
필리핀 사람들 중 85% 이상은 스스로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슬렘은 8%정도이다.
그런데도 민다나오는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와 인접해 있어서 모슬렘 문화가 가장 강한 곳이다. 하지만 모슬렘 문화가 가까운 곳으로 그 만큼 선교에 있어서 전략적인 곳이다. 이런 곳에 한인 선교사들이 교파의 차이를 극복하고 연합활동을 열심하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1.2. 죄 문제
필리핀 학생들은 죄에 대해 더 이상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죄짓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라고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곤 한다.
복음선교대학에서 성령론 강의 시간에 성령의 사역을 강의하는 도중 남학생으로 시작하여 회개의 영을 부으시는 것을 보았다.
이들의 참다운 회개의 열매는 선교를 위한 결단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복음이 민다나오는 물론 인도네시아, 말레시아의 모슬렘권 전역에 확산되고 스스로 썩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리라는 순교적 영성으로 무장하는 큰 다짐을 하게 되었다.
1.3. 대상포진의 치유
아내는 EMS소속 한인 선교사 사모님들을 대상으로 Mother Wise라는 프로그램으로 가정 사역 세미나를 인도 하였다. 선교사들의 아내에게 찾아오는 심적 부담들을 극복하고 선교사 부부를 건강하게 하여 선교 사역이 건강하도록 도왔다.
몇 주 동안 대상포진이라는 질병에 걸려 엄청난 아픔을 겪었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약을 구하게 되어 낳게 되었다.
1.4. 여호와의 증인
젊은 필리핀 여성들이 집 문 밖에서 서성대는 것을 보고 여호와의 증인이구나! 그들을 친절히 불러드려 토론하였다. 이단들은 대하는 태도로 첫째 절대 상종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잘 무장하여 그들에게 올바른 진리를 전하는 일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배척당하는 이유(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 한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고집과 편견이 있다) 다음에 또 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해어졌다.
1.5. JDM
필리핀의 JDM 사역은 1991년 다바오에서 시작되어 10여년 이상에 걸쳐 본격적인 캠퍼스선교를 펼치고 있다.
두 분의 풀타임 한인 선교사와 여덟 명의 현지인 사역자들이 7개의 대학 캠퍼스에서 50명의 리더들과 250여 명의 멤버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었다. 미래의 사람과 국가를 변화시킬 학생들이 몰려 있는 캠퍼스에서 많은 캠퍼스 사역자들을 세우고 올바른 복음적 정신으로 운영되는 기독교 학교와 비전 공동체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10-20대의 대학생들로서 재정적 자립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집회 후 기도 시간에 방언을 다시 할 수 있도록 기도 요청한 필리핀 자매가 있었다. 방언 기도가 지금 가능하다고 말해주고 기도하자 눈물의 기도와 방언 기도가 시작되었다. 방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신자의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1.6. 필리핀의 부흥
필리핀의 부흥은 이름뿐인 크리스천들이 온전한 크리스천들로 변화되어짐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100년 전 평양 대부흥운동이 있기 쩐 서양 선교사들의 회개와 기도가 먼저 필요했듯이, 필리핀의 부흥 역시 먼저 믿는 사역자들의 기도와 연합을 필요로 한다. 진정한 신자의 회개가 전제 되어야 하며, 그것은 곧 교회의 갱신과 일치를 가져 오며, 따라서 교회의 일치된 힘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며, 마침내 세계선교의 원수를 향해 힘 있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1.7. 혈압측정기
출국 전 병원으로부터 받은 검진결과표에는 혈압이 놓고 지방간도 위험수치여서 고민거리가 되었지만 선교지에서 혈압이 모두 정상이었다.
2. 검은 대륙의 꿈(아프리카 선교지 탐방 및 강의) 2008년 3월
2.1. 복된교회 선교팀
복된교회 해외선교팀은 파송선교사 부부들과 이 교회 1호 파송선교사가 있는 아프리카에 모여 선교대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 우리 부부를 초청해 주었다. 보츠와나의 한 촌락 디푸트후드 교회에서 전도하고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저녁 배식을 했는데 온 동네 아이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서 배식을 받아 맨 손으로 밥을 먹었다. 세미나 둘째 날 새벽예배 시간에 선교 현장의 부흥에 대하여 설교 했다. 선교현장과 파송교회 간의 기대치의 차이, 선교사들 간의 화합과 일치의 필요성 등에 대해 전하고 기도하였다.
2.2. 선교현장의 부흥
신자의 회개, 교회의 갱신과 일치, 그리고 사회변혁과 세계선교의 완수로 이어지는 부흥의 핵심가치가 과연 우리가 섬기고 있는 어느 선교현장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공통적인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선교현장의 선교사역이 교회당 건립으로 치우친 감이 있다. 교회만 있고 진정교인다운 교인들과 복음이 없다면 선교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교사역을 둘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1단계 선교사역은 교회개척 사역이라고 한다면 2단계 선교사역은 부흥 사역이다.
선교사역의 부흥사역을 위해서는 큰 희생이 요구되어진다.
첫째 일치된 기도운동이다. 둘째는 후원교회의 넓은 이해와 협조이다. 후원교회는 가시적인 교회당이나 신학교에 치우칠 때가 많다.
셋째 성령의 능력이다. 부흥을 실제적으로 가능케 하시는 분, 그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소이면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이 타오르고, 세상과 죄악과 자아를 이길 수 있는 정결의 불이 온통 뒤덮으며, 그리고 사역을 향한 능력의 불이 영혼 속에서 솟구쳐 나온다.
2.3. 요하네스버그
남아프리카침례신학교에서 개신교 성령론의 발생이라는 강의와 성령의 능력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모두가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론의 발전과 변화 대해서도 궁금해 했다. 주여 삼창을 가르쳐 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중국인 교회에서도 성령님에 대해 말씀을 전했는데,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반응은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아프리카에는 다음의 문제점들 때문에 더욱 복음적 성령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첫째는 기복주의, 둘째 혼합주의, 셋째 기도만능주의, 넷째 잘못된 신유관념, 다섯째 성경의 자의적 해석, 여섯째 은사중심주의와 육감주의,
2.4. 케이프타운
이곳에서 19세기 부흥사 앤드류 머레이의 교회와 사역지를 방문하였고 모라비안파가 최초로 남아프리카에 들어와 활동하던 기념지도 방문하였다. 존 웨슬리는 모라비안을 토하여 구원의 확신에 대한 교훈을 받는다. 모라비안은 가장 오래된 개신교라고 하면서 후른후트에 최초의 본부를 두었다. 30년 전쟁에서 카톨릭의 박해를 모면하려고 모라비아에서 피난 온 이들이 갈 곳이 없어 허덕일 때 진젠돌프 백작이 이들을 자기 영토에 거주하기를 허락하였다. 이 일로 인해 진젠돌프는 훗날 모라비안 운동의 지도자가 되게 되었다. 웨슬리와의 만남도 헤른후트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웨슬리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줬던 피터 뵐러도 역시 모라비안파의 중요 인물이었다. 모라비안파는 엄청난 선교열을 가졌다. 60인 마다 선교사 하나를 외지로 보냈다. 남아프리카에 모라비안파가 들어온 것은 1737년이다.
2.5. 부흥을 꿈꾸는 기도모임
케이프다운을 떠나오기 전날 밤 백인 성도님들과 함께 가진 기도모임에서 성령께서는 이들에게 그 지역 부흥을 위한 기도모임을 시작하게 하셨다. 현제에서 부흥의 핵심가치들이 싹트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2.6. 가나신학대학
중부 아프리카 가나의 가나 신학대학교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소속의 유 선교사님이 10여 년간에 걸쳐 운영해 오면서 그동안 이백여 명이나 되는 현지인 사역자들을 길러낸 곳이다.
가나신학대학 채플에서 열린 나흘 동안의 부활절 부흥회에서 기도시간에 성도들을 위해 사역자들로 하여금 안수를 부탁했다. 갈급한 많은 성도들이 기도를 받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쓰러지고 또 바닥에 구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더러운 영의 영향에 의해 발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힘입어 치유와 해방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얻게 되었다.
3. Again 종교개혁
3.1. 런던 히드로 공항
4월 첫 주일에 도착하였다.
3.2. 영국 선교
주후 400년 경 선교사 펠라기우스가 전도하여 기독교가 많이 전파되었다. 패트릭은 주로 아일랜드 동북 지방에서 수십 개의 교회와 수천 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캔터버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레고리 11세의 파견으로 켄트에 이르러 선교했으며, 콜롬바는 스코틀랜드의 아이오나 섬으로 가서 교회와 수도원을 세우고 성결한 생활과 기적을 행하면서 많은 신자를 얻었다. 중세 후기에서는 롤라드파가 평신도들의 영성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종교개혁 전야에 영국 출신 존 위크립은 부패한 성직자들의 교권 남용을 비판 교황에 의 해 1377년 이단으로 정죄 받았다. 그러나 영국 황후와 민중의 후원 때문에 손댈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헨리 8세의 정치적 원인과 신구교간의 치열한 쟁취후 여왕 엘리자베스는 될 수 있으면 가장 많은 수의 국민들을 흡수시킬 수 있는 형태의 교회 구조를 채택하여 로만 카톨릭과 개신교적 요소를 병합하여 영국국교회가 되었다.
16세기 초 지방분권적 봉건제도가 몰락하면서 교회 절대적 권위 몰락, 신흥 시민사회의 등장, 민족의식의 강화 등으로 급속한 변화가 초래되어 절대 왕정의 해체와 더불어 근대 시민사회를 향한 변혁을 낳았다.
17세기 청교도 혁명을 통해 영국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적 시기 거쳤고 18세기 존 웨슬리의 고향이며 19세기와 20세기 선교의 원동력을 제시한 19세기 부흥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현제 영국에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유학생들과 이민자들로 인하여 문화가 낯설고 언어가 다른 지역에 들어가 힘든 적응기간을 거치고 교회를 세워서 마침내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는 어려운 선교가 스스로 찾아온 피선교지역의 영혼들을 만나 사랑과 복음으로 양육하며, 그들로 하여금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되돌아가게 하는 이 일처럼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영국교회는 힘을 어어가고 있다. 찬란한 교회사적 전통을 가진 영국은 새로운 부흥을 필요로 한다. 잠자는 사자가 일어나 포효하게 될 것을 믿고 기도한다.
3.3. 존 웨슬리
존 웨슬리는 영국의 링컨셔의 가난한 목사로 38년간이나 목회를 하고 있던 사무에 웨슬리의 열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서에 기초한 규율, 습관, 복종을 주제로 하여 엄격하게 자녀를 양육한 어머니 수잔나의 영향으로, 웨슬리는 유년시절부터 규칙적이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1720년 옥스퍼드의 그리스도교회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1725년 성직 안수를 받고 그 학교의 특별연구원이되고 이 때 동생 찰스 웨슬리와 친구들과 함께 신성클럽을 조직하고 이를 지도하였다. 1735년부터 1738년까지 대부분을 북미주의 선교사로 활동 하였다. 북미 선교의 실패로 영적인 고민과 좌절에 빠져 있던 웨슬리는 영국으로 돌아오는 선상에서 모라비안 교인들을 만나 영적 큰 도전을 받게 된다. 그리고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의 집회에서 성결을 체험함으로 인생의 완전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웨슬리는 신학사상의 이론적인 면에서 실제적인 면으로 체계화하여 그의 구원관은 신생과 그리스도의 완전사상으로 성숙한다. 그리고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그 당시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운동사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끼쳤다. 또한 오늘날의 윤리적인 반성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실천 속에 포괄적인 사회적 책임을 고취시키는 일을 위해서도 귀중한 동기를 제공한다. 어느 한인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을 때 아침 묵상 시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두 가지 영상을 소개하며 성령님의 인도가운데 진정한 회개와 헌신의 예배를 드렸다.
3.4. 유레일 패스
유럽여행에 21일 유레일패스를 사용하였다. 좀 비싼 방법이지만 이용기간 동안 자유로운 시간과 행선지를 선택할 수 있고 또 일등석을 사용할 수 있어 편안하고 안락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은 이용시간과 행선지를 미리 정해 두고 짜여진 스케줄대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장점은 비용이 저렴하다. 단점은 이등석을 사용하는 것과 스케줄 변경이 어렵다. 변경하려면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영국에서 이태리 로마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하고 그 때부터 유레일패스를 이용하였다. 이태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헝가리, 체코, 영국 12개국을 돌았다.
3.5. 아씨시의 프랜시스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창설자인 프랜시스는 이태리의 아씨시에서 출생하였다. 중병에 걸려 앓게 되었을 때 내적 병화를 얻게 되고, 마태복음 10장 7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과 같이 문자 그대로 그 말씀을 복종키로 하고 전도자로서의 삶에 들어간다. 이 구절들에서 7절은 복음전파, 8절은 신유, 9절과 10절은 청빈, 그리고 11절부터 14절까지는 전도 유랑의 사명을 주는 것이라고 프랜시스코는 확신하였다.
프랜시스코가 세운 프래시스코 수도회는 독신생활, 빈곤, 그리고 복종 세 가지 서약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이들은 그 당시 침체된 기독교 세계에 단순성과 기쁨을 회복시키고, 극빈자를 위한 복사를 위해 새로운 세력의 조성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3.6. 울리히 즈빙그리
스위스 츄리히는 1519년 즈빙그리에 의한 종교개혁의 진원지가 된 곳이다.
즈빙글리는 스위스 빌트하우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당대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학문적 소양을 넓혔다. 1502년 바젤대학에 입학하여 성경의 유일한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의 무용성에 대한 개혁사상을 배웠다.
토마스 빗덴바흐라는 인문주의자로부터 헬라어로 로마서를 배웠다. 이를 통하여 즈빙그리는 면죄부 판매를 극렬히 비나 하였다.
즈빙그리는 1506년 그의 나이 22세 때 사제가 되었다. 조그만 마을의 성당 목사로 시무하기도 하고 군목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523년에 로만 카톨릭을 대항하여 67개 조항을 발표하였다.
성경의 권위가 중요하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 연옥은 없다,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은 쓸데없다. 모든 성직자는 결혼하라
그는 초대교회의 말씀중심의 예배를 채택했고 기독교회제도는 민중적인 입헌제도를 창안했으며, 성례전의 성만찬은 상징설, 혹은 기념설을 택했다.
그는 1524년 안나 라인하트라는 과부와 결혼하였고, 예배시간에 라틴어 대신 독일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상, 미사, 성물 등의 카톨릭적 요소들은 폐지했으며, 카톨릭교회와 수도원의 재산 등을 몰수 하였다.
즈빙그리는 정치적 수완도 탁월해서 개혁운동을 위해 1527년에 외국과 동맹을 체결하고 국내의 신교도들과 카톨릭 세력을 대항하였다. 1529년 개신교회들 사이의 결속을 위해 필립 백작이 마련한 말부르그 회담에 참석하여 루터와의 대화를 가졌다. 하지만 15개항 중 마지막 조항인 성만찬의 의견대립으로 그만 결렬 되었다. 스위스 연맹은 신교도 연맹과 카톨릭 연맹의 대립으로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카톨릭 연맹은 8000명의 군대로 츄리히로 진격하였으나 즈빙글리는 카펠 강화조약을 이끌어 내었다. 그리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 그 해 10월 11일 개혁군을 지휘하다 전사하였다. 그의 사후에도 그의 제자들에 의해 개혁 운동은 지속 되었다.
3.7. 존칼빈
캘빈은 기독교회의 대 개혁자로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수립하고 개신교의 장로교회를 창설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소위 카빈주의를 이룩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507년 7월 10일 프랑스 파이에서 60마일 떨어진 노용에서 태었다. 1523년에 그는 파리 대학에 입학하였고, 신학과 스콜라첼학을 전공했으며, 1528년에는 또 다른 대학들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 그리고 독일 개혁운동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1530년대의 프랑스는 비전통적인 개혁사상을 가진 사람에게는 위험한 곳이었다. 마침 15833년 친구 니콜라스 콥이 파리 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할 때, 칼빈은 그 연설문의 초안을 잡았는데 그 연설문에 루터와 에라스무스의 말을 인용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였고 카톨릭을 공격하고 개혁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여 국왕 프란시스 1세에 의해 이단령을 받아 콥과 칼빈은 추방되어 피신 생활을 하게 되었다.
1535년 봄에 바젤로 이주해가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였다. 그 후 칼빈은 제네바에서 개혁운동에 착수하였다. 그는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요리문답을 작성하였다. 시의회에 통과되어 그 요리문답으로 제네바 시의 모든 성도들에게 교육시키게 되었다.
칼빈은 1559년에 제네바 대학을 세우고, 제네바 시의 산업구조를 개혁하여 정밀기계공업, 견직물 공장, 그리고 중공업 방면에 역점을 두었다. 칼빈은 규칙을 사회의 모든 면에 확장했다. 또 그는 루터와 즈빙그리 양대 진영을 규합하려고 노력한 온건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분파된 개신교의 일치운동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다가, 1564년에 55세의 나이로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3.8. 존 후스
체코 프라하는 12세기 이후 동, 서 유럽을 잇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당신 중부유럽의 최고 도시였다. 그런데 개혁사상을 부르짖는 존 후스를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규정하고 처형하자, 이로 인한 종교 전쟁이 일어나 국가 몰락을 가져왔다.
후스는 보헤미야 출신으로서 위클립의 교훈을 추종하였다. 그는 교회 안의 사람과 교회의 사람을 구별하였고, 교회 안의 사람이라고 해서 다 참된 교회원이 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우주적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이며, 교황과 감독들의 통치는 교회에 불필요하다고 했다. 민족주의와 개혁운동의 지도자였던 그는 성직자의 부패와 성직 매매를 반대하는 글과 강연을 했다.
그는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공격한 후 교황이 그를 파문함에 항거하여, 종교회의에 교황을 고소했으나, 결국 모략에 걸려 화형 당했다.
3.9. 프랑크프르트 가는 길
유레일 사용기간이 다차고 체코는 유레일패스의 사용이 불편한 곳으로 프랑크프르트 가는 차편은 인터넷에서 직접 예매를 하였는데 Frankfurt am Oder, Frankfurt am Main) 두 곳이 나와 가격이 저렴한 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독일을 프랑크프르트는 2곳 이었고 나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3.10. 필립 스페너
다시 티켓팅을 하여 프랑크프르트 암 마임 도착하여 경건주의 아버지 스페너의 발자취를 찾았다.
독일 경건주의 운동을 시작한 중심인물인 스페너는 1635년 알사스 지방의 귀복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철저히 루터파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1666년에 안수를 받고 프랑크푸르트의 한 궁정 설교자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프랑케를 자신의 견해를 따르는 제자로 삼았다.
그는 자기 집에서 형식적인 종교에 불만을 갖는 자들과 함께 작은 집회를 만들었고 이 집회를 경건회라 하였고 경건주의로 불려지게 되었다.
1675년 그는 경건한 열망리란 표제로 경건주의 운동의 요강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 여섯 가지로 제의 하였다.
- 성서연구: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집회자 가정 모임에서 성경을 보다 더 분명하게 그리고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신자의 영적 제사장직 활용: 평신도들에게 이런 작은 모임에서 책임있는 일을 부여함으로서, 신자가 만인제사장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실천적 성격: 기독교의 본질이 교리적인 공식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참 신앙이란 실제적인 경험과 싦 자체를 통한 태도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실제적인 경험과 실천이다.
종교적 논쟁의 비유익성: 모든 종교적 토론은 이해와 관용심을 갖고 진행되어야한다.
신학교육의 혁명: 목회자의 훈련은 논리적 정통신학을 넘어서 경건한 책과 훈련에 흠뻑 젖어야 하며, 또한 양떼를 치는 실제적인 활동과 경험을 동신에 수반해야 할 것이다.
설교의 개혁: 강단은 실제 생활과 거리가 먼 묵은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을 가르치고 감찰시키고 양육하는 본래의 목적을 되찾아야 한다.
3.11. 네델란드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은 코카인과 동성애 등을 합법화 한 세계에서 제일로 자유분방한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어디에서나 합법적으로 대마초를 피울 수 있으며, 홍등가에 위치한 섹스 박물관은 관심있는 관광객들에게 유럽최고의 장소하고 한다.
피와 땀의 결실로 일구어놓은 개신교 국가인 네델란드가 세속화와 방종의 나라로 퇴색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성령의 비상한 능력으로 인한 부흥이 이 땅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절박한 기도가 솟구쳐 올랐다.
중세 후기 네델란드에서는 신경건운동의 선구자들로서 게라드 그루테와 그의 제자인 토마스 아켐피스가 활약했다.
신경건운동은 무엇보다 영적 회심을 중시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자기부인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적 순종을 통한 영적 훈련으로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간다고 보았다.
16세기 네델란드는 오늘날의 벨기에, 네델란드, 그리고 룩셈부르크와 북부 프랑스의 거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북부로는 독일 문화와 남으로는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루터주의, 재세례주의, 칼빈주의 등 새 종교 이념이 쉽게 전해 졌고, 그중 칼빈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절약과 근면을 존중하며 타인에 의존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칼빈주의는 바다와 싸우고 토지를 매립하면서 이러한 정신을 길러온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3.12. 마르틴 루터
독일의 베를린에 도착하였고 루터의 발자취를 찾았다. 비텐베르게의 작고 황량한 마을을 찾아 갔지만 비텐베르그 대학을 찾을 수 없었다. 도착한 Wittenberge는 루터와 연관된 곳이 아니었습니다. 루터와 연관된 비텐버그는 아예 루터의 도시 비텐버그로 도시의 이름을 바꾸어 Lutterstatt Wittenberg로 부르게 되었다
비텐버그 온 마을은 루터 박물관을 위시하여 온통 루터의 문물과 문화로 가득 차 있었다.
마르틴 루터는 독일 아이스레벤에서 1483년에 출생하여 1501년 엘프르트 대학에 입학 문학사와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깊은 죄의식과 영혼의 구원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다가 7월 17일 엘푸르트의 어거스틴 수도원에 수도사로 들어갔다. 루터는 곧 수도 생활에서 인정을 받고 1507년에 신부 안수를 받고 엘푸르트 대학에서 견습수도사를 가르쳤고 1508년 비텐버그에 연구와 강의를 위해 파견되었다. 거기서 윤리학과 기독교 신학을 강의했다.
그 후 루터는 1512년에 신학박사가 되어 비텐버그 대학의 신학교수로 정착하였다.
그는 시편을 강의 할 때 ‘구원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임을 발견했다. 즉 로마서의 이신칭의의 교리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성당의 완공을 위해 면죄부를 팔기시작하자 95개 조항을 대학정문 게시판에 붙였다.
그는 결국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였으나 파문장을 동료들과 학생들과 많은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3대 논문을 발표하고 헬라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의 세 가지 구호로 요약 될 수 있다.
4. 타는 갈망의 나라
4.1. 멕시코성서신학교
6월 초순 멕시코시티에 내려 린세이 박사의 영접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신학박사이며 선교사로 멕시코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멕시코 성서신학대학교는 OMS international에서 세운 멕시코 현지인 신학교이다. 실력있는 멕시코의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해 매우 복음적이며 강도 높은 신학교육을 시키고 있다.
멕시코는 미국과 남미를 연결하는 중요한 나라이지만 개신교 신학교들이 별로 없고 한인 교회나 한국인 선교사들이 별로 없는 지역이다. 거리적으로 멀고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문화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는 비록 카톨릭 국가이지만 다른 카톨릭 국가와 같이 토속 종교와 정령 신앙 등이 섞여서 매우 혼탁한 영성이 나라 전역에 흐르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영적 재충전의 기회도 없이 오랜 기간 동안 영적 싸움터에 있다
복음의 불모지 같은 지역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전통기독교지역들도 세속주의, 타종교, 이문화 등의 홍수 속에서 선교사들은 탈진하게 된다.
타문화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은 종교적 상대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에 빠질 때도 있다. 그리고 무분별한 은사운동과 혼합적인 영성의 이단적 영향들이 개신교를 혼미 시키고 분열시키고 있다. 그래서 복음적 성령론을 정립시키는 일은 절실하다.
성령론 강의의 반응은 대단하였다. 학교 창립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4.2. 성령론 강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령, 성령과 거듭남, 성령의 열매, 성령과 성결, 성령 충만, 성령 세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성령과 치유, 성령론과 극단적 영성운동, 개신교 성령운동의 흐름, 한국교회와 성령운동, 성령의 주되심의 주12 가지 주제로 강의 되었고 이론적 수업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성령께서 강하게 감동하심을 따라 회개의 영이 임하여 많은 이들이 참회의 눈물로 기도했다.
또한 성령께서 놀라운 치유와 성결의 은혜를 주심으로 새로운 삶과 사역의 헌신인 있었다.
4.3. 린세이 박사와 아르투로
멕시코에서의 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잘 적응되었다. 음식이 흥미롭고 입맛에 맞았다. 그리고 멕시코 사람들의 인간미가 정다웠다.
린세이 박사는 성령의 사역에 내면의 성결을 강조하며 나는 근본적으로는 내면의 성결을 강도하나 성령의 역사가 내면의 성결에만 그치지 않고 은사와 능력으로 드러나야 한다. 반면 강의를 통역하였던 아르투로 목사는 성령의 은사주의적 관점이 강하다. 그래서 통역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첨가하여 통역하곤 하였다.
린세이 박사와 함께 통역에 문제점을 지적하여 강의 내용만 통역하기로 하였다. 아르투로 목사는 나의 처음 강의에서 아프리카의 신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21일 금식 기도를 한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아 성령론 강의 내용이 본인의 사역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목표로 21일 금식기도를 하였다.
4.4. 멕시칸 타임
멕시코의 아침시간은 11시경이다 점심은 2시, 저녁은 늦은 저녁에 한다. 약속시간에 대해서도 늦어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4.5. 노숙자 사역
멕시코에 살고 있는 한인들 가운데는 미국으로 이주해 갈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는 이들이 많다. 멕시코를 선교하는 일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멕시코를 떠날 목적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도 이곳의 한 한인교회에서는 실업인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기도하고 헌금하여 멕시코 선교에 힘쓰고 있다. 벌써 십여 년째 길거리의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만찬을 제공해 왔다.
수백 명의 노숙자들이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가 교회 문이 열리면 들어와 멕시코 사역자들이 인도하는 찬양과 말씀을 듣는다. 한인 크리스찬들은 모두 뒤에서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다.
말씀을 전하러 올라간 린세이 목사님이 갑자기 나에게 간증을 하라고 하였다. 간증을 하고 나니 린세이 박사가 회중에게 결신을 권면하였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신앙의 결단을 하게 되었다.
4.6. 전인적 성령사역
6월 중순 어느 날 린세이 박사님이 목회하시는 산타모니카 교회 창립기념예배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한 순복음교회에서 전인적인성령사역이라는 강의의 내용으로 성령께서 드러내기 원하시는 초월적인 능력의 사역을 일곱 가지 차원으로 분류하여 설명하였다. 그것은 곧 회개사역, 구출사역, 중생사역, 성화사역, 충만사역, 주되심 사역, 그리고 순교적 영성사역이다.
4.6.1. 성령께서 베푸시는 회개 사역은 삼단계로 심화되어간다. 첫째,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회개케 하신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는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죄의 차원보다는 예수님께 대한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죄인들에게 보기 원하신다. 둘째, 성령께서는 크리스천들이 범하는 여러 가지 죄악을 회개케 하신다. 사실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영혼 속에 아직도 죄악된 본성이 거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서 중생한 자에게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동기와 죄악된 본성 사이의 싸움이 시작되며, 이 싸움에서 지게 될 때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성령께서는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도혹 회개케 하신다.
4.6.2. 구출사역은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 곧 하나님 나라가 전파되는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초대교회에서는 악령이 쫓겨나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중요한 표적중의 하나였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능력을 주셨다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 능력의 근원은 우리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귀신 즉 더러운 영의 정체를 바로 알아 올바른 의식을 지니게 되면 더러운 영들은 더 이상 터전을 마련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담대하게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능력을 선포할 때 더러운 영들의 영향은 우리의 의식과 삶에 아무런 힘도 행사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4.6.3. 중생사역은 성령의 사역과 직결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오셨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따라서 성령께 이끌리는 삶,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는 삶이 곧 예수 믿는 삶의 실체이다.
4.6.4. 성화사역은 성령께서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이끌기 원하신다. 우리 안에서 성령의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의 형상을 완성시키실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께 순복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품성이 우리의 인격과 삶을 통해 나타날 것은 당연하다.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 닮기를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 가는 것이다.
4.6.5. 충만사역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케 된 상태를 말한다. 성령의 은사나 기적 행함 열광적인 기도의 몰입 황홀경의 체험 등으로 오인되기 쉬운 성령충만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지배받는 상태를 말한다. 둘째 성령충만이란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때 성령 충만을 받았으나 현재 충만한 삶을 지속하지 못하고 자주 쓰러지는 이들이 있다면, 과연 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성령께 복종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그 부분을 새롭게 회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성령 충만은 성령과 친밀한 교제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령충만은 다음과 같은 증거를 보아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첫째, 기도하는 동안 그리고 마치고 난 후 성령께서 전인적으로 주장하는 확신이 있느냐는 것이고, 정결의 능력, 주님께 대한 사랑의 능력, 주님께 대한 봉사의 능력 이 세 가지에 대한 확증을 갖게 된다. 둘째, 기도하고 난 후 삶에 나타나는 구체적인 변화와 능력을 보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4.6.6. 성령의 주되심 사역은 성령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삶을 의미한다. 성령의 주되심 삶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 내향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리스도 닮기’를 실현시켜나가는 일이다. 둘째 외향적 목표는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 전파의 완수를 위해 능력을 주시는 일이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권능 있게 증거하도록 하며 우리의 삶속에서는 풍성한 복음전파의 열매가 맺히게 한다. 성령의 주도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성령의 열매 뿐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이 이루어진다. 성령의 나타남 사역이란 성령의 능력이 초자연적 또는 초이성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첫째, 깨달음을 통한 성령의 나타남;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들 분별함, 둘째, 발성을 통한 성령의 나타남: 예언과 각종 방언 말함과 방언들 통역함, 셋째, 믿음의 행위를 통한 성령의 나타남;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이 모든 성령의 나타남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만 성령의 나타남이 주어지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4.6.7. 순교적 영성 사역은 결연한 의지로 죽음까지라도 각오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경건의 능력은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순교적인 십자가의 영을 받음으로써 가능해 진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함을 통해 순교적 영성의 모범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영광스런 소망 가운데 죽음을 각오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하였다. 이처럼 기독교 성령론의 핵심은 명백하게 십자가의 능력이 가져다주는 거룩함의 능력에 있다. 청교도들의 성화론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화과정을 지속적인 죄에 대한 억제를 통해서 된다고 가르쳤다 19세기 후반의 케직 운동의 성결에 대한 가르침에서도 자기에 대한 죽음이 강조 되었다. 또 웨슬리안 성결론에서 말하는 죄성제거설도 역시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역사의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영적사실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강 후 안수기도를 하였는데 하나님의 주시는 감동과 영상을 따라 기도하였다. 그런데 안수 받는 이들의 영적 상태를 적절히 말씀하고 기도할 수 있게 하셨다.
온 성도는 진지한 회개와 은혜의 시간을 가졌다. 한 장로님의 회개와 당회 앞에서의 고백과 용서를 구하는 일은 교회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게 하였다.
5. 한인교회여, 일어나라(미국과 캐나다) 2008년 7,8월
5.1. 포틀랜드
6월 하순, 미국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에 있는 처제 집에 몇 주간 머물렀다. 처제가 다니는 곳은 빌리지침례교회는 다민족 교회의 좋은 모델로 한인공동체가 미국인 교회에 소속되어 동역하고 있었다. 처제의 집에 머물면서 야고보서를 영어로 읽으며 예배를 드리고 암송도 하였다. 내가 영어 설교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도 영어성경 암송에서 시작 되었다.
5.2. 영어
영어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성실히 준비하고 사역에 장애를 제거한다. 늘 영어에 부담감을 가지고 준비하였고 어렵지 않게 영어설교와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어는 친숙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늘 영어책을 끼고 다녔다.
주님께서 세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기에 영어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과 결부시켜 필수 항목으로 준비하였다.
주변 환경을 영어식으로 바꿔나가면 영어의 생활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영어 기도를 시작하였다. 설교를 들으면서 한국말로 동시통역하여 은혜를 받았다. 이와 같이 영어와의 씨름은 계속되었고 이제는 불편하지 않게 세계복음 전파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영어권의 한국인 1.5세대와 2세대에게 부흥회나 세미나를 통한 부흥의 불씨를 전달하는 일에 소망을 가지고 있다.
5.3. 천국 영성
천국의 영성은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영성이다. 한국교회를 천국의 영성으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5.4. 캐나다
이 목사님의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로 향하였다. 교회에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성령의 강한 임재가 있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십대 청소년들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청소년들이 강단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기도를 받았다.
목사님이 나에 대해서 우리 목사님이 말씀 하셨지요? 나 때문에 밴쿠버에 오셨지요? 하는 한 아이의 눈망울이 마음에 새겨졌다.
밴쿠버를 떠나기 전 성결대학교 동문들을 한자리에 만나 정을 나누었다. 매월 철야기도 했던 것이 너무 잘했다고 감사해 했다.
신학교의 커리큘럼이 학문에만 쏠려 있는 것이 안타깝다. 기도훈련, 전도훈련, 생활훈련을 시키지 못하면 학생들은 준비되지 못한 사역자가 되고 만다.
밴쿠버를 떠나 리자이나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캐나디안신학대학원이 있었다. 나는 한인 교회에서 한 주간 동안 말씀을 선포하고 아내는 가정세미나를 인도하였다.
6. 시카고에서 LA까지
미국에서 만난 어느 자매의 이야기다 지난 5월 베를린에 있을 때 홈페이지 방명록에 올린 어떤 여성의 글에서 순회성령사역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분이었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이 중고등 시절 최초의 이성교제 대상자였던 것이다.
인디아나 주 카멜의 한 교회에서 부흥회 강사로 서게 되었다. 집회에서 안수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각자에게 적절한 기도였고 특히 그 교회 사모님이 선교사역에 상처와 아픔이 눈 녹듯이 녹으면서 치유가 임하는 시간이었다.
아트란타연합장로교회에서 세 번의 예배 때 성령께서는 큰 은혜를 부어주셨다.
7. 부흥을 기다리는 땅(호주) 2008. 9, 10월
7.1. 퀸즈랜드신학대학
태평양 상공에서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였다. 시드니 항공에 내려 피터 랄프스 박사가 학장으로 있는 퀸즈랜드신학대학에 갔다. 두 주간 개신교 성령론의 발생이라는 제목의 성령론 강의와 성령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7.2. 시드니연세중앙교회
시드니 지역의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교회 중의 하나인 시드니 연세중앙교회에서 도착한 바로 당일 토일 부터 기도회를 인도하였다. 시드니대학 전도 팀과 함께 시드니대학교에서 전도도 하였다. 시드니대학에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수많은 학생들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이 세상이 땅 끝이구나 싶었다.
한번은 이 교회 국제사역 담당 전도사와 길을 걷다가 네팔출신의 한 청년을 만났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청년이었다. “광야 길에 지친 그의 두 어깨에 무언가 커다란 돌 판이 눌려 있다. 그는 거기서 헤어 나오려 안간힘을 쓰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님께 간구하며 복음으로 인도하여 영접을 하였다.
아내는 젊은 부부 커플을 대상으로 가정사역 세미나를 인도하였다. 성령께서 보여주신 것이 있었다. 서로 말로서 상처를 주던 교회내의 문제 그리고 부부간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10월 1일부터 15일가지 로마서 강해를 지행하였다. 강해 후 말씀을 놓고 합심기도가 계속되었다. 개인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사람들만 따로 줄서서 기다리다가 기도를 받게 했다. 성령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더러운 영이 떠나갈 것을 명령하기도 하였다. 악한 영이 떠나가면서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고 쓰러졌다 일어나면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자매가 방언받기를 원한다는 두 자매를 위해 방언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결국 방언은 나오지 않았다. 성령님의 인도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던 것이다. 두 자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 앞에서 그들만의 특별한 회개였다.
기도 받는 사람이 내 앞에 설 때, 성령께서 어떤 영감이나 메시지를 주시면 그대로 순종하며 기도한다. 어떨 때는 기도받는 사람이 남을 원망하고 있는 마음을 느끼게도 하시고, 또는 어떨 대는 마음의 영상을 통해 기도 받는 분의 영적 상태를 보이시기도 한다. 기도해 주면 방언을 말하게 되는 이도 많이 있었지만, 공통적인 것은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기도 받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갑작스런 눈물과 함께 흐느끼며 울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함께 통곡이 터져 나온다.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 악령이 쫓겨나가기 전이나 또는 성령의 능력을 받기 전에 성령의 회개케 하심에 따라 흘리는 눈물이다.
개개인의 문제를 기도해 줄 때, 기도해 주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도 받는 사람에게서 더러운 영이 분리될 때는 눈이 감기고 몸이 뒤로 넘어가는 현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꼭 넘어지지 않아도 더러운 영을 쫓을 수 있고 또 성령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은 당연하다.
7.3. 퍼스 사역
10월 중순 비상시 시드니에서의 일정을 비어둔 기간을 어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 퍼스에서 연락이 왔다. 퍼스는 비행기로 4~5시간의 거리였다.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방문한다는 마음으로 주님의 인도를 받았다. 퍼스에 도착하여 차로 8시간 오라가 김선교사님이 사역하시는 큰 광산촌에 이르렀다. 한 한인 교회에서 한국어 예배와 영어예배에 말씀을 전하였는데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다.
퍼스에서 성령님께서 인도하신 특별한 사역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님 나이 지긋하신 이목사님의 사모님과 어느 한국 자매와의 만남이다. 사모님에게는 극한 슬픔, 자매에게는 갈망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아내는 강의안도 없는 가운데 몇몇 한국인 부부들을 위하여 가정사역을 부탁받았다. 꿈으로도 인도해 주시고 약속되어진 부부들이 아니라 다른 부분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였다. 기도하고 있던 분들이었다. 강의 후 기도시간에 뜨겁고 간절한 시간이 이어졌다. 부부끼리 손잡고 기도하는 시간에는 서로 미워했던 마음, 용서하지 못했던 마음 등을 서로 주고받으며 기도해주는 눈물의 시간이었다. 기도해 오던 부부들이 회복되었고 그 중에 극한 슬픔의 사모님과 목사님 사이에 여러 자녀들이 있었으나 여럿이 사고나 또는 질병으로 죽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모님의 영혼 속에서는 극한 슬픔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자라나게 되어 목사인 남편과 성도들에게 독화살처럼 쓴 뿌리로 인한 원망과 비난의 마음을 쏟아내었다. 이로 인하여 목사님과 성도들은 상처가 늘어가고 막힌 담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온전히 치유해 주신 것이다.
7.4. 아파트 사기 사건
한국에서 처남에게 문자가 왔다. ‘매형이 입주한 아파트가 사기사건에 휘말려서 날아가 버렸습니다’
아파트사기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된 조합장은 성령께서 주신 인도를 따라 복음을 전하였던 분이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순회사역을 하고 있는 동안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성령께는 그의 구원을 위해 그가 비록 복역중에라도 강하게 일하실 줄을 믿는다.
아들 명지도 대견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도 약속해 주셔서 귀국때까지 우리는 집에 대해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오직 주어진 사역에만 전심을 다 하였다.
7.5. 초월적인 성령의 능력
9월 중순경 어느 순복음교회에서 부흥에 대한 주제로 말씀을 전하였는데,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이후 삶을 부흥의 밀알로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어느교회에서는 말씀을 선포하는 중 회개의 영이 임하여 성도들중 여러명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리고 곧 이어진 기도회에서 그 교회 사모님이 옆으로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그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인 영들에 의한 공격이었다. 편안한 자세로 누이고 기도하니 사모님은 제정신이 들었다. 여러 교회, 청년부 집회 등에 초대되어 말씀을 전하였는데 성령님은 강하게 역사해 주셨다.
8. 그를 세워 보내라(필리핀 일로일로)2008년 11월 ~2009년 2월
8.1. 일로일로
11월 초순 일로일로에 도착하였다. 오선교사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곳은 6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매번 겨울방학마다 집중강의를 해왔다.
이번에는 3개월 동안 한 과목을 1주일 한 번씩 강의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설교, 신학교 특강, 또 모임의 강사로, 금요일 기도회로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에 대해 말씀을 전하였다.
8.2. 아내의 가정사역
아내는 신학교에서 ‘가정사역’에 관하여 가르치며, 불우한 가정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에게 위로와 격려와 함께 주님 안에서 세워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8.3. 로마서 기도회
일로일로 성결교호의 금요심야기도회를 맡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연속 강의했던 로마서 강의를 영어로 옮겨 부흥회의 성격으로 로마서 기도회를 갖기로 했다. 연속강의의 주제는 Gospel(1), Sin(2), Justification(3), Salvation(4), Sanctification(5), Dedication(6), Holy Spirit(7), Christian Life(8), Worshipping Life(9), Christian Life Goal(10) 순서로 정하였다.
8.4. 성령의 나타남
일로일로성결교회에서 이교회 전도사가 자신의 형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공동의 기도와 안수 기도를 하였다. 근본적인 내면의 치유가 일어나게 되었고, 육체의 질병으로 부터도 행방되었다.
어느 필리핀 여성목사가 담임하는 아담한 시골교회에서도 성도들이 회개하고 여목사 얼싸안고 통곡하며 기도하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였다. 여성목사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들에 눌려 있었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영적으로 기도하기도 어려운 질식 상태에 있었으나, 기도회를 통해 성령께서 한 순간에 치유하시는고 영혼의 기쁨과 회복을 넘치게 하셨다.
8.5. 홀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의 유흥적 분위기를 거룩한 크리스마스 즉 Holy Christmas로 기념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 설교도, 장식도 Holy Christmas로 하였다.
8.6. 보라카이 조셉
한국 청년이지만 조셉이라 불리는 모습이 좀 험상궂은 청년이 있었다. 험난한 세상적인 삶을 살다가 마침내 예수님을 믿게 된 이다. 기도하면서 함께 머물려 영적 안내를 해 주고 싶었다. 이 일은 곧 실행되어 조셉은 우리와 함께 거하면서 날마다 급격히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로마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고 적절한 신앙서적을 추천해주고 거기에 대한 독후감을 쓰게 했다. 성경이나 신앙에 대한 질문들을 답변해 주고 함께 토론 하였다. 새벽기도나 예배시간에 빠진 적이 없으며 찬양예배 때도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날 밤 기도회에서는 마치 사자 같이 울부짖으며 기도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그 다음날 새벽 누구보다도 일찍 새벽에 나와 기도하였고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3주간의 영성훈련을 마치고 보라카이로 돌아가면서 보라카이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겠다는 단단한 결단을 가지고 돌아갔다. 몇 주 후 오선교사님과 함께 보라카이에 찾아가 조셉에게 세례를 주었다.
8.7. 바기오 사역
필리핀 바기오에서 정 목사님 가정에서 돌봐주던 방황하던 10대 청년이 집회 중에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하며 기도를 받았다.
8.8. 마지막 사역
일로일로 성결교회에서서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리고 28명의 성도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유목민과 같았던 14개월의 사역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9. 결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뛰어든 순회성령사역은 성령의 다스리심 속에 있었다. 인본적 이론도 아니고 최면술도 아닌 성령님의 임재가 교수님과 사모님의 사역속에서 나타났다. 회개와 구출과, 중생, 성화, 충만, 주되심, 순교적 영성의 성령의 사역이 인종, 언어, 문화가 다른 선교의 현장속에서 일어났다. 정말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성령님의 자리를 우리의 사역속에 인정해 드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우리는 내어드려야 한다.
성령의 사역은 초자연적, 초이성적 사역으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역이 아니다. 성령님이 다스리시는 사역이시고 성령님은 성령님을 필요로 하는 세상을 잘 아시며 치유와 회복 부흥의 사역을 하시기를 원하신다.
나는 기다린다. 성령님이 나를 기뻐하시기를......
나는 내어드린다. 성령님이 나를 마음껏 사용하실 수 있기를......
나는 기대한다 성령님
이 나를 온전히 다스리시기를......